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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73)화 (273/317)

질문을 들은 카밀루스는 입술을 움찔했다. 탑 밖으로 나간다는 현실에 잠시 멍해진 거 같았다.

이온이 채근했다.

“카밀루스?”

카밀루스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이온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이름이 불리자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할 수, 있어.”

그리고 작게 스펠을 외우자 이온과 카밀루스 사이에 푸르게 빛나는 마법진이 그려졌다.

이온과 카밀루스가 잠시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

먼저 크게 한숨을 토해 낸 것은 이온이었다. 이온의 작은 발이 마법진 위로 올라갔고, 이어 카밀루스도 똑같이 했다.

카밀루스는 염려가 되는지 이온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거리감이 정확하지 않아서…… 이상한 데 떨어질지도 몰라.”

“마음의 준비 할게.”

정원에 떨어지는 걸 이미 경험해 봤던 이온은 설마 큰일이 나겠나 싶었다.

카밀루스는 그런 이온의 대답을 들으면서 허리를 팔로 안았다. 떨어지더라도 아프지 않게 지키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잠시 뒤 그들은 이온이 가리켰던 황성 내 연회장의 건물 발코니 위로 뚝 떨어졌다.

하마터면 건물 밖으로 몸이 나갈 뻔했던 이온은 오싹해졌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연회장에서 빠져나와 발코니에서 쉬고 있던 귀족들이 이온과 카밀루스를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주위가 금세 웅성웅성해졌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건물 안에 있음을 알아차린 카밀루스가 혼란스러움에 이온의 허리를 꽉 안는 게 느껴졌다.

곧 이온은 연회장 안의 오브라이언의 황제를 발견했고, 그의 시선이 카밀루스에게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침입자들을 잡아라.”

황제의 손가락이 그들을 가리켰고, 기사들이 순식간에 카밀루스와 이온을 둘러쌌다.

그렇게 황제의 명으로 기사들에게 잡히는 동안이었다. 이온의 의식은 어느 순간 뚝 끊겨 버렸다. 카밀루스가 그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은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어둡고 추운 골방에 있었다.

헉, 허억.

어째서인지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상체가 일으켜지지 않아 방 안을 기어 다녔다. 분명 제 몸인데 마음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느낌.

이온은 어딘가 심히 망가져 버린 느낌에 서늘한 공포를 느꼈다. 심지어 제가 어디에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어 더욱 두려움이 들었다.

그렇지만 의식이 끊기기 전, 마지막 기억을 떠올리고는 자연스레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는 절대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카밀루스는…… 어떻게 됐지?’

무사할까.

기사들에 둘러싸여 버렸었는데.

‘혹시 폐하께서 죽이라 명했을 수도 있을까.’

갔을 때 폐하의 아들이라 밝히라고 했었는데 제대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상념을 이어 가는 가운데, 일어서기 위해 제 몸을 지탱해 줄 물건이나 문고리를 찾았다.

어떻게든 일어나서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 방향 감각조차 없다. 몸은 움직이는 방법을 잊은 것처럼 굴었고, 파고드는 추위에 어깨가 덜덜 떨리기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온은 자신 앞에 실금처럼 가늘고 긴 빛줄기가 비치는 것을 보았다.

“이온, 오라버니……?”

사랑스러운 에밀리.

이온은 동생이 나타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집으로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에밀리.”

아버지인 크레이거 공작의 음성이 들려왔다.

에밀리가 가고 난 후, 이온은 부들거리는 팔로 겨우 상체를 세워 무릎 꿇고 앉았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경멸감이 담긴 아버지의 눈초리를 받았다.

“체벌방에 갇혀 있는 동안 반성은 좀 했더냐.”

“…….”

말 한마디에 밴 공작의 화는 어마어마했다.

이온은 탈력감에 손과 어깨를 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카밀루스는, 어떻게 됐나요?”

“뭐?”

첫 질문에 크레이거 공작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 순간, 이온의 뺨에서 불이 일었다.

짜악.

날카로운 그 소리와 함께 이온의 몸이 휘청했다. 공작은 굳게 믿었던 제 아들의 일탈에 지극한 분노를 쏟아 내고 있었다.

“네놈은 이 크레이거 공작 가문의 명예를 실추했다. 고작 그놈의 측은지심 때문에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놈이 감히 황실의 명을 거역해?”

카밀루스와 탑에서 나온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크레이거 공작은 그간의 작은 징후들을 곱씹어 어떤 그림을 머릿속에 이미 그렸을 것이다.

이온이 어떻게 카밀루스를 발견하고, 마침내 데리고 나왔는지.

과정 자체는 길었지만 단순한 일이었으니 거의 정답에 가까운 추측을 했을 터.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할 게 있었다.

“아버지는, 카밀루스의 존재를 미리 알고 계셨어요?”

아픈 목으로 겨우 그 말을 내뱉자마자 또다시 뺨을 맞았다. 이번엔 너무 아파 뇌가 다 뒤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기 전에 또다시 따귀를 치는 매서운 손길이 날아왔다.

그렇게 총 세 번. 크레이거 공작의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네놈이 아직 반성을 덜한 모양이구나.”

이온은 얼얼해진 얼굴을 감싸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허탈감에 웃으며 대꾸했다.

“……저는 반성할 게 없어요.”

“…….”

“반성할 건 위선을 떠는 어른들일 거예요.”

황제 폐하를 포함해, 카밀루스를 학대한 모두가.

공작은 뒤돌아서서 구두 뒤축을 울리며 방 밖으로 나가더니 누군가에게 명령했다.

“3일은 더 굶겨라. 지금껏 부족함 없이 살아온 것이 누구 덕인지 저놈도 똑똑히 알아야지.”

“……예, 알겠습니다.”

문은 다시 닫혔고, 이온의 몸은 도로 어둠에 잠겼다.

그의 말대로 3일은 더 굶은 뒤 나온 이온은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 섭식도, 운신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전담 집사 외엔 아무도 이온을 돌보지 않았다. 심지어 에밀리까지 제 방을 찾아오지 않았다.

며칠을 앓고, 며칠을 정신을 잃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 이온은 제 방 침대 위에 누워 바들바들 떨리는 손끝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버지가, 날 포기했구나.

카밀루스를 구한 일이 그렇게 큰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어른들 몰래 알게 된 어떤 진실이 그렇게 위험한 것이었을까.

이온은 눈을 감았다.

또 며칠이 지난 뒤, 황태자가 자신의 상태를 살피겠다며 크레이거 공작가에 들렀다.

제대로 된 조치 없이 방치된 탓에 거의 회복하지 못해 제 방에서 힘없이 늘어진 이온은 그 옆의 낯익은 한 마법사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케이프를 깊게 눌러쓴 여자.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깊고 검은 그림자 아래의 호리호리한 몸과 검게 얼룩진 목을 보고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리엘?”

마리엘.

그녀는 다름 아닌 카밀루스의 금제를 풀 방법을 알려 준 이였다.

이온은 그녀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졌다.

멍하니 있는 버니언 클로델 황태자가 이온에게 다가왔다. 그는 침대에 앉은 채 호흡이 어려워 숨을 쌕쌕 내쉬고 있는 이온의 몸을 위아래로 훑고는 생긋 웃었다.

“네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이온. 그 사생아 새끼를 구하느라 크게 다치게 되었다면서?”

“…….”

다친 게 아니었다, 자신은.

이온이 눈길을 마리엘에게 향했다. 그녀는 진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마리엘은 버니언의 말을 정정해 주지 않았다. 이온 역시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고는 말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묵묵히 버니언의 말을 듣기만 했다.

“백약이 무효하다기에, 혹시 저주일까 싶어 마탑의 마법사를 데려왔어.”

“저주, 요.”

버니언의 말을 곱씹으며 이온은 깨달았다.

마리엘이 저에게 저주를 걸었음을.

이온의 흔들리는 초록빛 눈이 마리엘을 다시금 마리엘을 응시하자 그제야 그녀는 케이프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악마가 있다면 이런 존재일까.

검은 얼룩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녀의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보면서 이온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눈앞의 유혹적인 악마가 깔아 둔 견고한 덫에 제가 걸려 버린 것 같다고…….

그리고 마리엘과 이온 사이에 형성된 그 기묘한 긴장감을 무어라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버니언이 마리엘을 돌아보며 이온 쪽으로 손짓을 했다.

“마리엘, 이온의 상태를 살펴 주겠어?”

“그러겠습니다. 소공작, 손을.”

이온은 얼떨결에 그녀에게 제 손을 맡겼고, 마리엘은 눈을 내리깔며 안타까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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