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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75)화 (275/317)

그에 제 상태가 어떤지조차 잊고 거의 본능에 의해서 그곳으로 손을 뻗으며 몸을 움직이려 애썼다.

입으로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이, 이온, 크, 크으…….”

그렇지만 목에서 끓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카밀루스는 갑자기 튀어나오려는 그것을 억누르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뒤늦게야 제 손이 사람 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카밀루스가 멈칫한 순간이었다. 이온을 바라보던 에렌스트 경의 고개도 그의 쪽으로 향했다.

“……!”

그리고 주변에 있던 두 마리의 드래곤도, 마기에 둘러싸인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작게 울었다.

“끼이……?”

순식간에 두 눈이 커다랗게 벌어진 에렌스트 경이 이온을 제 뒤의 벽에 기대게 하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차앙, 하고 그가 발검하는 소리가 날카롭게 카밀루스의 귓가를 울렸다.

에렌스트 경의 칼끝은 돌바닥 위에서 꿈틀거리는 카밀루스를 향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공격은 하지 못하고 그가 당혹한 목소리를 냈다.

“……대공?”

카밀루스는 제 등 뒤의 날개가 올라가려고 뿌드득거리는 것을 느끼며, 에렌스트 경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시야 안으로 상대의 단정한 얼굴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모습이 들어왔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크륵…… 크, 크으…….”

인간의 말이 나가지가 않았다.

머리로는 분명히 제대로 된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몸으로는 구현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카밀루스는 그에 제 안의 마기를 몰아내려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등 뒤의 날개가 끼긱거리며 접히고, 굽어지려던 등뼈도 조금 펴지는 것이 느껴졌다.

에렌스트 경은 그런 그의 변화를 주시하며 긴장한 어투로 말을 걸어왔다.

“대공,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렇지만 에렌스트 경까지 상대할 여력이 없었던 카밀루스는 제 안에서 날뛰는 마기를 최대한 억제하며, 그의 뒤에서 정신을 잃은 이온을 향해 다가갔다.

“크, 이……온, 안…….”

이온이 실신했다니 자신이 돌봐야 했다.

오로지 그 한 생각으로 이온의 앞으로 기어갔다. 몸을 완전히 점령하려고 드는 마기를 겨우겨우 억눌러 그의 손가락 하나도 사람의 것처럼 돌아왔고, 시야도 조금씩 붉은색이 걷히려 했다.

한데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때였다. 에렌스트 경이 거친 목소리로 그를 제지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카밀루스의 앞에 칼을 바짝 들이댔다.

카밀루스가 에렌스트 경을 올려다보자, 그가 인상을 쓰며 그와 이온 사이를 완전히 가로막아 버렸다.

그리고 카밀루스는 몬스터의 뛰어난 시력으로 그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선명히 확인했다.

기괴하게 굴곡을 그리고 있는 등, 그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작은 촉수 몇 가닥과 날개 하나, 그리고 사람의 것 같지 않게 근육이 부풀어 오른 오른쪽 어깨와 팔까지.

예상대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카밀루스는 상황을 확인하고는 더욱 강하게 제 몸의 마기를 밀어 냈다. 대체 마리엘은 이것을 어떻게 했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정신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덕분에 더듬거리면서도 일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온을, 크, 크으…… 이온을 내가…… 돌봐 줘야…….”

그렇지만 에렌스트 경은 칼을 거두지도, 이온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주지도 않았다. 대신 냉정하게 상황을 읊었다.

“이미 몬스터화가 진행 중이신 것 같은데, 아직 이성이 남아 있는 거라면 저희를 조용히 보내 주시지요. 어차피 그런 몸으로는 소공작을 돌보는 건 불가능할 텐데.”

그러면서 에렌스트 경이 이온의 쪽으로 걸음을 한 걸음 물리며 말을 이었다.

“설마 저희 도련님까지 몬스터로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요?”

에렌스트 경의 발언을 들은 카밀루스는 충격에 몸을 굳혔다. 마치 저를 이온의 걸림돌로 여기는 듯한 태도. 그렇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상대방의 저 반응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이온에게 뻗어 나가던 카밀루스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에렌스트 경이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카밀루스에게 검을 겨눈 채로 쓰러진 이온의 팔을 제 어깨에 걸쳤다. 그에 옆에 있던 새하얀 드래곤이 이온을 완전히 업을 수 있도록 도왔다.

에렌스트 경은 카밀루스에게 일정한 거리를 둔 채로 계단 쪽을 향했다.

“……대공의 상황은 부관께 즉시 알리도록 하지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진 사이 카밀루스는 제 몸 어딘가가 다시 뿌득거리는 것을 느끼며 신음을 흘렸다.

“크, 크으…….”

손이 돌바닥을 쫙 긁자 손톱이 갈리는 대신 바닥에 패는 것이 보였다. 에렌스트 경은 그에 바짝 긴장하며 거리를 완전히 벌렸다.

이온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양.

카밀루스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었으나 결국 인정해 버렸다.

“어, 어서, 크…….”

다시 눈앞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카밀루스는 허억 숨을 삼키며 심장을 덜컥 움켜쥐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얼룩덜룩한 색의 드래곤이 그를 응원하듯이 입으로 뺨을 쓰다듬었다.

“끼이이.”

카밀루스는 그런 드래곤을 더듬어 안았다.

그러고 보니 페드로는 왜 여기 없을까.

이온의 곁을, 지키라고 했었는데.

그러나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양, 이온을 업은 채로 계단을 내려가는 에렌스트 경에게 그것을 차마 묻지 못했다.

카밀루스는 일련의 과정을 도울 새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에렌스트 경의 등에 업혀 늘어진 이온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므로.

에렌스트 경이 급하게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카밀루스는 여전히 신음을 흘리며 드래곤 두 마리에게 감싸였다.

“끼이, 끼.”

그중 새하얀 한 마리가 품 안에 파고들어 물빛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발견한 그는 그게 이온이 욤뇽이라고 부르던 화이트 드래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너…….”

“끼이.”

그리고 저를 위로해 주던 얼룩덜룩한 녀석은, 마리엘과 사라질 때만 해도 멀쩡하던 몸이 찢어진 게 보였다.

카밀루스는 왜 다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목 아래에서 끓는 기운에 입을 다시 다물었다.

그러고는 그저 그곳에 떨리는 손을 가져다 대고 치유 마법을 썼다. 다행히 푸른빛이 그곳을 감싸며 상처가 서서히 봉합되었다.

“끼이…….”

그러고 나니 욤뇽이가 구석으로 갔다가 무언가를 입으로 물고 나타났다.

카밀루스는 녀석이 가져온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커졌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있는 손으로 겨우 받아 들었다.

미아블레 가문의 가보인 푸른 왕관이었다. 카밀루스는 그것에서 뿜어내는 강한 마나의 기운에 손이 따가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그것을 놓쳐 바닥에 떨어뜨리자 욤뇽이가 그것을 다시 주웠다.

“끼이.”

“크, 그걸로…… 뭘 할 수, 으, 크윽…….”

“끼이이.”

말이 안 통하니 답이 없었다.

카밀루스는 포기하고 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하는 데 애썼다. 그러나 아무리 마나 운용을 해도 손 하나와 팔 조금만 겨우 건사할 수 있을 뿐, 뒤에 돋은 날개가 뿌드덕거리며 움직이고 등이 휘어 있는 것은 여전했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이대로 평생 살아야 한다면 역시 돌아오지 않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행히 저에게 호의적인 드래곤들 사이에 껴서 눈을 감은 채 바깥의 빗소리를 들었다.

“욤뇽이, 너.”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카밀루스가 제 겨드랑이에 껴 있는 욤뇽이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녀석이 끼, 하고 울며 입가를 훑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조금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녀석이 기운을 내라고 제 마나 일부를 건네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카밀루스는 제 안의 심장이 이미 마기에 점령되었음을 깨달았다. 두쿵두쿵 울리는 심장 소리는 제 것이 아니었다.

지금 버티는 건 아마 탑에 가득 차 있는 마나의 기운도 한몫할 터였다. 이 탑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카밀루스는 남은 이성으로 냉정하게 상황을 짚으며, 한결 말하기 편해진 혀를 움직여 욤뇽이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괴물이 되면…… 큽, 나를, 죽여 줄 수 있지.”

“끼이……?”

드래곤 녀석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묻는 것 같았다. 눈을 뜨면 눈물이 가득한 녀석의 물빛 눈을 마주할 것 같아 카밀루스는 여전히 눈을 꽉 감은 채 중얼거렸다.

“할 수 있는 거 알아. 그렇게, 해.”

그런데 말하고 나니 벌어진 입술 사이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매끈하고 동그란 무언가.

처음엔 뭔가 싶었던 카밀루스는 그게 욤뇽이의 마나 구슬임을 알아차렸다.

“…….”

성체가 되기 이전엔 저에게 절대 안 빼앗기려고 용을 쓰던 것이었는데, 같이 오래 살았다고 정이라도 들었는지 위기 상황이 오니 이런 걸 알아서 내주기도 했다.

카밀루스가 어처구니없어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녀석의 호의를 받아들여 목으로 넘기자 다행히 몸의 일부가 되돌아오는 느낌이기는 했다.

허리가 다소간 펴지는 것을 느끼며 카밀루스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그런 뒤에야 다른 생각을 떠올리자 가늘게 뜬 그의 눈 앞에 시스템창이 올라왔다.

[‘이온 크레이거’의 상태 이상 ‘마나 소실’은 현재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온 크레이거’의 최종 생존 확률을 조회 중…….]

[본 시스템이 열람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마나 소실이 대체 왜 아직도 걸려 있는 것이지.

‘설마 아이를 못 낳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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