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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76)화 (276/317)

아이가 여전히 이온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전부 다 빨아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거라면…….

끔찍한 가정을 떠올린 카밀루스는 팔 안쪽의 욤뇽이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너, 혹시 내 부탁 들어줄 수 있겠나?”

“끼?”

“이온의 안위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거야.

그렇게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바깥에서 천둥과 같은 소리가 들려와 귀를 가로질렀다. 안 그래도 인간의 상태일 때보다 훨씬 예민해진 상태였던 카밀루스는 고막을 찢어 놓을 듯한 그 소리를 듣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

북부에서 자주 듣던, 몬스터의 소리…….

카밀루스는 듣자마자 본능적인 위협을 감지하고는 저에게 엉겨 있는 드래곤들 사이를 빠져나와 창문가로 다가갔다.

어렸을 적 언제나 매달려서 바깥을 바라보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 거부감이 일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상황 확인이 먼저였다.

에렌스트 경이 이온을 데리고 내려간 직후였기 때문에.

그리고 카밀루스는 창문 밖으로 펼쳐진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한 박자 느렸다.

마법으로 지른 불인지 빗속에서도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는 황궁. 심지의 그 앞의 중정에서마저 불이 붙어 꽃들을 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온 황성 안의 기사들이 전부 동원된 상태에서, 그들이 잡고 있는 건 단 한 마리의 몬스터였다.

멀리서도 선명히 보일 만큼 몬스터의 몸체는 몹시 거대했다.

크허어어어억.

굉음이 다시 한번 울렸다. 그리고 그것이 하늘을 보며 우는 것을 보는 순간, 카밀루스는 속의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마기가 오르락내리락하던 그의 눈이, 흰자가 조금씩 붉게 물들고 선명한 파란색을 띠고 있던 홍채 역시 자줏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카밀루스는 제 눈앞이 다시 붉은색으로 물드는 것을 억제해 보려 했으나 순간 알 수 없는 본능이 그의 머릿속에 어떤 관념을 집어넣었다.

저것을 죽이라고.

때마침 뛰어난 몬스터의 시야에 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제 배다른 형제가 그 앞에서 기력을 다해 비틀거리는 모습.

그것을 보는 순간 카밀루스의 손이 얹어져 있던 창문틀이 부서졌다. 툭, 툭, 탑의 벽에 부딪치며 부스러진 돌덩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밀루스의 등 뒤에 남아 있던 날개가 다시 뿌득거리며 펼쳐지는 소리가 나자 뒤에서 드래곤이 불안한 듯 우는 소리가 났다.

“끼이…….”

가지 말라는 듯 그의 옷깃을 붙잡는다.

그러나 카밀루스는 그보다 더 강한 끌림을, 바깥의 몬스터에게서 느꼈다.

저것을 죽여야 한다.

비단 이온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제 본능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플레이어의 목표가 새롭게 세워집니다.]

[플레이어가 목표 달성을 할 확률을 계산 중…….]

[플레이어가 새롭게 수립된 목표를 달성할 확률은 70%입니다.]

제게 기울어진 추.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그 즉시 카밀루스의 몸은 탑 밖으로 빠져나가 불길에 휩싸인 황성의 중앙 정원에 떨어졌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버니언 앞이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작게 신음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그러나 카밀루스는 그에 대꾸해 줄 여력이 없었다. 제가 나타나자 곧장 저를 목표로 눈을 부라리는 파란 눈의 괴물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카밀루스는 눈앞의 거대한 몬스터 역시 저를 보며 피가 끓고 있음을, 저를 씹어먹고 싶어 하는 욕구를 느끼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카밀루스의 시야가 검붉게 물들었다.

거친 빗소리 가운데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것이, 카밀루스의 입에서 울려 퍼졌다.

* * *

고통도 없고, 타격도 받지 않는 검은 괴물.

아무리 칼로 찌르고 불태워도 눈앞의 몬스터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크기가 커지는 것도 같았다.

버니언은 다른 이들이 아무리 공격해도 마치 무언가 잡아 끌어당기는 것처럼 저에게만 달려드는 파란 눈의 괴물을 보며, 기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이대로라면 자신이 지쳐 쓰러지지 않을까 위기감 또한 몰려왔다.

기사들도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헤매는 것 같았다.

괴물을 포위했으나, 버니언만 집요하게 쫓는 데나 불사가 아닌가 싶을 만큼 날뛰니 대처가 어려운 듯싶었다.

그렇게 황궁 및 그 후원을 모조리 불태우고, 어이없게도 황성은 중정까지 쫓겨왔다.

파란 눈의 괴물을 향한 버니언의 칼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비도 와 체력 소모가 극심한 상태였다.

괴물은 집요했다.

오로지 버니언 하나만을 타깃으로 잡고 돌진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마 도망치는 데 집중했다면, 진작에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버니언은 그러지 못했다.

저 사람의 것같이 보이는 파란 눈 때문이었다. 버니언은 그것이 기묘하게 블랑셰의 축복이라 불리는, 오브라이언 황가의 파란 눈처럼 보였다.

‘설마 황가의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었나.’

몹시 불경했으나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잡념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괴물이 뛰어오르더니 또다시 버니언의 머리를 부숴 버릴 듯이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끄허어억.

어느 순간부터는 움직이는 것마저 고통이라는 듯, 괴물은 공격하면서도 끔찍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을 ‘먹고’ 싶어 하는 것처럼 자꾸만 검은 침이 흐르는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버니언은 그런 놈의 입을 향해 다시 한번 칼을 뻗으며 검에 불의 기운을 덧씌웠다.

그러면서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으나 괴물을 화마에 감싸며 외쳤다.

“아스타틴! 저놈의 다리를……!”

명이 완성되지 않았으나 버니언의 옆에서 엄호를 하고 있던 아스타틴이 바로 알아듣고 녀석의 다리에 깊숙이 칼을 박아 넣으며 벅어 냈다.

괴물은 목표물인 버니언에게도 잘 당해 주었으나 다른 이들에게는 더 무방비했다.

아스타틴에 이어 노아기사단 기사들 역시 합심해 괴물의 사지를 마법 끈으로 묶어 잡아당기며 움직임을 제한했다.

덕분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기는 했으나 괴물이 곧 크게 울며 근육을 키웠다.

크허어어어억!

귀청이 찢어질 듯한 그 굉음과 함께 그것에 걸려 있던 모든 마법도 풀려 버렸다.

“……!”

심지어 불길조차도.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아스타틴도 버니언도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몬스터 중에서 마법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오우거 메이지조차도 이렇게 쉽게 마법을 파훼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눈이 커진 버니언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아스타틴 역시 괴물이 다시금 그에게 뛰어들 것을 알아차리고는 외쳤다.

“폐하, 제 쪽으로……!”

그러면서 손을 뻗는 것을 보고 버니언이 괴물이 다시 도약함과 동시에 그의 손을 잡았다.

정원의 꽃밭 위를 버니언의 몸을 안은 채 아스타틴이 굴렀다. 간발의 차로 괴물의 공격을 피한 버니언이 중얼거렸다.

“저건, 도저히 못 이기겠다.”

“역시 도망치셔야 옳습니다. 시간을 끌어 볼 테니…….”

“저놈의 목표는 나 하나야. 게다가 마법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물리적 고통도 못 느끼는 놈인데 대체 어떻게 시간을 끈다는 거냐.”

“…….”

“빌어먹을.”

버니언이 욕설을 뱉으며 아스타틴을 옆으로 밀었다. 지친 몸을 일으키려 검을 땅에 박으며 몸을 세우자 목표를 다시 찾은 파란 눈의 괴물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이 마주쳤을 때.

쿵, 쿵. 심장이 뛰었다.

버니언은 이번에야말로 제가 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쿵.

괴물이 바닥을 디딘 발에 힘을 주었다. 다니금 도약하기 위한 그 간단한 행위에도 중정에 타일로 깔아 둔 돌들이 쩌적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괴물이 다시 저를 향해 뛰어들 때였다.

버니언은 제 눈앞을 뒤덮는 그림자에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았다.

“폐하!”

아스타틴의 비명 같은 소리가 울리고, 버니언의 몸도 휘청거리며 뒤로 끌어당겨졌다.

그리고.

콰과광, 하고 무언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정원의 바닥을 뒹굴게 된 버니언이 눈을 떴을 때, 그는 거대한 보호막이 제 앞을 가로막고 있음을 느꼈다.

그에 가로막힌 괴물이 주춤한 순간, 괴물과 버니언 사이에 갑자기 나타나 끼어든 무언가가 보였다.

“……!”

언뜻 보이는 검은 날개를 보고, 또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생각한 버니언이 흠칫했다.

그러나 그는 곧 기묘하게 허리가 휘어 있는 그것이 아직은 사람임을 알아차렸다.

그것도 제가 아주 잘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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