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카…… 카밀루스?”
검은 머리에 낯익은 뒷모습을 보면 분명하다.
그렇지만 날개와 등에 조금 돋아 있는 이상한 촉수 같은 털들이 나 있었다.
게다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크허어어어어어억!”
괴물의 타깃이, 그가 나타난 순간 바뀌었음을 버니언은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방금 전까지 어떤 장해물이 있어도 오로지 저만 집요하게 눈으로 좇고 몸으로 달려들었던 파란 눈의 괴물이, 카밀루스가 나타나자마자 그를 바라보았다.
아스타틴도 그것을 느꼈는지 버니언의 몸을 뒤로 끌어당겼다.
“폐하, 이 틈에 피신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버니언은 제 앞에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 카밀루스의 모습을 두 눈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저거 대체 뭐야……?”
말하는 동안 카밀루스의 손이 괴물처럼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의 등 뒤에 또 하나의 날개가 뿌드득거리며 올라왔다.
주변의 기사들도 사람이 몬스터로 변화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
천재 마법사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자가 몬스터가 된다면 가히 재앙이라 할 만큼의 엄청난 것이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조금 전까지 거칠게 버니언에게 달려들던 파란 눈의 몬스터가 카밀루스에게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그르렁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등 뒤의 날개가 완성된 카밀루스 역시 똑같이 몬스터의 목소리로 사나운 고함을 질렀다.
위험을 감지한 아스타틴이 버니언을 데리고 더욱 뒤로 물러나자마자 두 괴물이 맞부딪첬다.
여파만으로도 일대를 초토화할 만큼 강한 충돌이었다. 정원의 흙이 뒤집히고, 돌바닥이 깨져 날아갔다.
검은 괴물이 카밀루스의 머리를 부수려 휘두른 팔을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면서 피한 카밀루스가 이내 괴물의 몸체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쏟아부었다.
얼음 송곳이 사방에서 날아가 박히고 몸 안에서부터 가시들이 온몸을 해체해 버릴 듯이 손아 나왔다.
버니언의 공격에는 반응도 하지 않았던 검은 괴물이 차가운 고통에 거칠게 울부짖었다.
카밀루스는 그러나 봐주지 않았다. 휘청거리는 괴물의 뒤로 다가가더니, 단단하고 뾰족한 손톱이 튀어나온 제 오른손으로 그대로 괴물의 등을 뚫어 버렸다.
끔찍한 고통에 괴물이 몸부림치는 소리와 함께 카밀루스의 손이 질기디질긴 몬스터의 살가죽을 찢고 가슴 앞으로 튀어나왔다.
버니언은 튀어나온 그의 커다란 손에 몬스터의 심장이 펄떡거리는 것을 보며 경악했다. 아스타틴도 그 거친 방식에 입을 벌렸다.
게다가 그의 손이 통과한 자리가 한기에 하얗게 얼어붙는 것이 보였다.
펄떡거리는 몬스터의 새빨간 심장 역시.
버니언은 더는 제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꽉 감았고, 아스타틴 역시 그의 몸을 돌려주었다.
그 순간 퍽 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주저앉은 버니언의 바로 앞까지 액체가 후드득 떨어졌다.
끄어, 꺼…….
검은 괴물의 신음이 힘을 잃고 스러졌다.
눈을 떴을 때, 몬스터의 영핵이 부스러져 검은 꽃을 피워 내며 연기로 화하는 장면이 보였다.
거대한 몬스터가 쓰러지는 모습 뒤로 반인반수와 같은 모습을 한 카밀루스가 서 있었다.
붉은 눈, 검은 날개, 괴물의 손을 한 채로.
“…….”
제가 고전했던 검은 괴물을 순식간에 종말로 이끈, 더한 괴물의 등장에 버니언의 눈이 두려움으로 흔들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소리가 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카밀루스가 부드득 날개를 떨며 버니언에게 걸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버니언이 그에 아스타틴의 어깨를 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카밀루스가 자신을 죽일 거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우뚝 선 카밀루스가 다음 순간 입에 낸 말은.
“버니언.”
“…….”
“나를…… 붙잡아.”
본인을 구류해 달라는 말이었다.
* * *
[플레이어의 기억을 재생 중입니다…….]
이온을 앞에 둔 카밀루스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미안해, 이온.”
발개진 코끝과 눈시울이, 이온의 얼굴을 쓰다듬는 떨리는 손끝이.
그가 얼마나 이 상황을 당황스럽게 느끼는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제 어린 시절을 모두 보내야 했던 탑, 그리고 그 안에 갇혀 이온의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금제.
카밀루스는 감히 이런 모습의 이온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오딘에서 8년을 지내는 동안 카밀루스는 그저 이온이 죽을 줄로만 알았다.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하기에 그저 제 어린 구원자가 다른 세상에 가 버린 것에 괴로워했고, 제 탓인 것 같아 자책했었다.
하지만 이면의 현실이 이토록 끔찍할 줄은 몰랐다.
카밀루스는 이온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나는,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왜 이렇게 멍청했을까.
왜 이렇게 세상을 바보같이 살아온 걸까.
참회의 눈물이 그의 눈에서 연신 흘러내렸다. 이온은 저를 품에 안아 꽉 끌어당기는 카밀루스의 두 팔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날 꺼내 줘…….”
생기 없는 두 눈만큼이나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그 말엔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는 원망과 질책도 담겨 있었다.
카밀루스는, 하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이온의 금제를 풀지 못했다.
* * *
조금 어두운 새벽녘.
눈을 뜬 이온이 제일 먼저 본 것은 익숙한 천장과 어린 시절과 똑같이 고개 숙인 채 제 곁을 지키고 있는 아버지, 크레이거 공작이었다.
시야가 흐릿해 눈을 연신 깜빡였다. 그러자 어쩐지 조금 아릿한 느낌과 함께 눈물이 귀 쪽으로 흘러내렸다.
그것을 느끼며 이온은 제 꽤 긴 시간, 울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꿈을 꾸면서…… 아니, 기억을 되찾으면서 그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도 함께 쏟아져 저절로 눈물을 만들어 낸 것이 틀림없었다.
이온은 힘이 없어 떨리는 손을 올려 눈가를 닦아 보려 했으나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하여 입술을 열었다. 잠긴 목을 긁으며 음성이 흘러나갔다. 단 한 마디만 내뱉는 것인데도 힘이 부쳤다.
“아, 버지……?”
기억 속에선 저를 외면했던 크레이거 공작.
그가 이온이 낸 그 작은 소리에 벌떡 고개를 들었다.
“이온!”
그러고 정신없이 이온의 얼굴을 살폈다. 잠든 동안 입이 마르지 않도록 조금씩 물을 흘려 주고, 입술을 닦아 주는 등 그는 제 나름의 최선을 다했지만 이온의 안색이 좋지 못한 것에 금세 눈을 안타까움으로 물들였다.
“왜 이제야 깨어난 게냐. 아, 아니다…… 이제라도 깨어나서 다행이다. 정말, 정말 다행이야.”
이온은 이불 아래의 제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기도하듯이 고개 숙이는 그를 보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빛을 보고 있는 것조차 지금은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아야 하는 것이 있었기에, 이온은 꽤 여러 번 침을 모아 넘겼다.
“카밀루스는…… 대공은요?”
탑에 올라간 뒤 저주가 풀리고, 그 이후로는 쭉 기억이 밀려들어 오는 바람에 카밀루스가 무사한지 확인하지 못했다.
돌아왔을까.
틀림없이 그랬을 거라고 예상했다.
마리엘도 처치했으니 그러지 못했을 이유가 없으니까.
이온이 궁금한 건 이 크레이거 공작가에 되돌아왔느냐였다. 제가 이렇게 정신을 잃은 걸 혹시 트집 잡아 그를 내쫓진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카밀루스가 제 곁에 없는 말이 안 되니까.
다시 만난 이후 쓰러진 제 곁에 있었던 건 언제나 그였다.
‘물어볼 게 많은데…….’
아침이 밝자마자, 에렌스트 경의 등에 업혀서라도 찾아갈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크레이거 공작에게서 좀처럼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끼고 이온이 도로 눈을 떴다.
그러자 크레이거 공작이 저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마치 아들의 앞에서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온은 그때부터 어쩐지 머리가 싸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