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답을 달라는 의미로 그를 부르니 크레이거 공작의 눈이 드물게 떨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온.”
그가 별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이온이 공작에게 잡힌 제 손을 살며시 빼냈다.
그리고 뻣뻣한 몸을 움직여 상체를 겨우 조금 일으켰다. 어쩐지 배가 뭉쳐 있는 느낌이라 더 운신하기가 힘들었다.
하아, 하…….
아주 조금 움직인 것이었으나 가빠진 숨소리가 입술 사이로 빠져나왔다.
“대공을 진짜로 쫓아내셨어요?”
“이온, 잠시 진정하고 내 말을 듣거라.”
“…….”
급격히 흥분할 뻔한 이온을 크레이거 공작의 간절한 목소리가 진정시켰다.
“페드로 경은 아직 저택에 있단다.”
부관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카밀루스를 쫓아내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온은 안도할 수 없었다. 어째서 페드로만 언급하지? 그런 당연한 의문이 따라왔으므로.
이온이 다시 한번 물었다.
이번엔 추궁하듯이.
“대공은 어디 있나요, 아버지.”
“…….”
“대답해 주세요.”
크레이거 공작이 이온을 긴장한 표정으로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서 이온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카밀루스가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곳에 가 있다는 것을.
말을 기다리는 이온의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 * *
크레이거 공작도, 에렌스트 경도 안 된다고 이온을 말렸다. 지금 카밀루스를 만나러 가면 안 된다고.
하지만 황성으로 방문 예고장을 보내고 이온은 휘청거리는 몸에 기어이 옷을 걸쳤다. 그러고 같은 층에 있는 페드로의 방 문을 열었다.
“페드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을 때 페드로는 품에 강보에 싸인 작은 아이를 안으며 방을 서성이고 있었다.
이온이 일으킨 소란에 순식간에 아이가 깨어나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지만 이온에게 중요한 건 예의 따위가 아니었으므로 성큼성큼 걸어 페드로 앞으로 갔다.
제 방에서 여기까지, 백 걸음도 안 되는 걸음이지만 이온이 숨을 몰아쉬며 페드로 앞에 섰다.
“여기서 대체 뭐 해요, 페드로. 카밀루스 안 찾으러 갈 거예요?”
페드로는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어딘지 수척해져 있었다. 카밀루스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이리라.
한데 이온의 질책 어린 말에 그가 품에 안은 아이를 추슬러 안으며 힘없이 답했다.
“……황성 출입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페드로라면 그럴 수 있다.
지금은 대공의 부관 신분이 아무짝에 쓸모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온은 버니언에게 분노를 느꼈다. 그 자식이 페드로의 출입을 막은 게 틀림없다. 정신을 못 차린 건지, 인정머리가 없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높은 확률로 둘 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설마 자신을 막지는 않을 터였다.
“따라와요.”
어차피 다들 자신을 말리고 있으니 호위 겸 해서 페드로를 데리고 가면 된다.
이온이 밖으로 나오자 뒤쫓아 나온 그가 옆방의 다른 기사들에게 품의 아이를 맡겼다.
페드로가 아니면 싫은 모양인지 공작가에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가득 찼다.
1층으로 내려가는 와중에도 페드로는 울음소리가 신경이 쓰이는 듯 연신 동료들의 방을 뒤돌아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를 도로 데리고 나왔다.
‘혈육도 아닌데…… 잘 챙기네.’
이온은 좀 황당했지만 워낙 착한 아저씨라 어쩔 수 없겠거니 하면서 저택 밖으로 나갔다.
서둘러 마차를 준비시키고 그와 나란히 올라탔다.
“어서 황성으로 가. 최대한 빨리!”
이온이 재촉하는 소리에 마부가 마차를 빠르게 몰았다.
* * *
황성 출입을 하는 데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렸다.
현재 황궁이 전소하고 중정 역시 엉망이 된 탓에 긴급히 보수하고, 황궁을 새로 세우는 와중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대부분이 출입을 허락받지 못해 결국 마차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제 차례가 다가왔을 때 이온도 설마 자신마저 거부당할까 싶었으나 다행히 출입 허가가 떨어졌다.
버니언에게 급하게라도 편지를 쓴 덕분인 듯했다.
버니언은 전소한 황궁에서 생활할 수 없으니 대신 이전에 쓰던 황태자궁으로 잠시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온은 바쁘게 공사를 진행 중인 중앙 정원과 멀리 기초부터 다시 닦고 있는 황궁 터를 한번 힐끗한 뒤 서둘러 마중 나온 시종을 따라 버니언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페드로가 쫓아오면서도 걱정이 되는지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않으면요? 이 방법이 아니면 카밀루스를 볼 수 없어요.”
그러고 저를 기다리는 듯이 활짝 열린 문을 통과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마자 중앙의 계단 위에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와, 이온.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
이곳까지 오던 중에 이를 지그시 악물고 있었던 이온은 표정을 풀고, 가슴에 손을 올리며 제대로 예를 갖추었다.
“위대한 오브라이언의 태양을 뵙습니다.”
그런 뒤 위를 올려다보는 이온의 초록빛 눈에는 다짐이 새겨져 있었다.
저 새끼를 반드시 끌어내겠다는.
* * *
응애애…….
마차에서는 내내 잘 자고 있던 아이가 버니언 앞에 오니 낯선 환경 때문인지 달래지지 않고 연신 울었다.
그 모습에 버니언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뭐야, 그 아이는.”
낮은 목소리로 하는 질문에 이온은 슬쩍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글쎄요.”
네 이부동생?
그런 생각을 하는데, 버니언이 취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버럭 화를 냈다.
“설마 네 애야? 카밀루스 그 새끼의 아이?”
“안심하세요, 이 아이의 눈은 밝은 갈색이니까요.”
황실 핏줄이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이 시점에 굳이 그런 말을 하는 것에 모종의 의도가 다분하다는 사실을 느낀 버니언이 또 이온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너 왜 찾아왔냐?”
한번 뒤통수를 맞아서 그런지 버니언이 이온을 보는 눈빛과 태도가 은근히 달라져 있었다.하지만 이온은 그가 여전히 제 몸을 훑는 시선에 짜증이 났다.
설마 자신을 황후로 올리겠다는 계획, 아직도 못 포기했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이온은 돌려 말할 것 없이 바로 직격으로 말했다.
“카밀루스 클로델 대공을 뵈러 왔습니다. 면회를 허락해 주세요.”
“싫다면? 그리고 아마 그 새끼도 그걸 원하진 않을 거야.”
카밀루스가 자신을 보길 원하지 않을 거라니 희대의 개소리였다.
이온은 실소를 뱉었다.
도대체 카밀루스를 어떻게 잡아서 가둬 둔 건지, 그리고 카밀루스가 왜 탈출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레나 기사단 건물 근처의 지하 감옥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옥이라고요?〉
크레이거 공작에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살이 다 떨렸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없어 그때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대신 숨을 거칠게 뱉으며 이온이 물었다.
〈죄목은요?〉
크레이거 공작은 대답하기 싫은 듯 이온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아버지.〉
〈황성 내에서 허락되지 않은 자가 마법을 썼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번에도 공작은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