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소공작.”
“저게…… 카밀루스가 맞아요?”
질문에 페드로가 마땅한 대꾸를 내놓지 못했다. 대신 품 안의 아이가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에게서 들리는 거라고 믿기 어려운 소리가 앞에서 울렸다.
“크륵…….”
그에 이온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옆에서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울 페드로가 이온이 혹시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었다.
앞에 있는 존재는 벌써 사람보다는 괴물에 가까웠다. 이미 얼굴은 마기에 잠식되어 시커멓고, 몸의 일부는 사람이 것이 아니었다.
등 뒤에는 돋아난 두 개의 날개가 뿌드득거리는 중이었다. 날개의 가운데를 관통하여 연결된, 약간의 빛이 흐르는 사슬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픈지 날개를 파들파들 떠는 모습이 아마 그가 괴물이 아니라 작은 새였다면 애처롭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커다란 손만 보아도 누군가는 공포를 느낄 수도 있었다. 무엇이든 꿰뚫어 버릴 거 같은 날카로운 손톱 쪽의 바닥은 실제로도 그 손톱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움푹 파여 있었다.
게다가 그가 무척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듯 온몸이 사슬에 묶인 채였다.
사슬은 마법을 걸어 둔 듯했다. 날개 쪽의 사슬과 마찬가지로 미세한 빛을 발하는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손과 발은, 목은 바닥에 단단히 박혀 있는 족쇄에 채워져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손과 발에 말뚝이 박혔다.
그 때문에 조금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이온은 그것이 카밀루스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검은 머리.
묶인 채로 겨우 자신을 향한 눈동자는 일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흰자위는 붉은색으로 뒤덮였지만.
늘 가까이에서 카밀루스를 봐 왔으니 이 상황이 이해는 안 되어도 가슴으로 느낄 수는 있었다.
저건 카밀루스가 맞았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이온이 발을 앞으로 옮겼다. 금세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그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격자로 돼 있는 철창살 앞에서야 이온은 털썩 바닥에 두 무릎을 꿇었다. 창살을 붙잡은 이온이 안에 있는 것의 이름을 불렀다.
“카밀루스.”
“…….”
그러자 대답은 없었으나 아까부터 마주쳤던 눈이 저를 더욱 깊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벌겠던 눈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색깔을 회복한 눈동자는 제가 기억하는 그대로의 것이었다.
깊은 바다처럼 푸른빛의 눈.
언제나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던 카밀루스의 그 눈이었다.
그것을 확인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저 꼴을 하고 있는 존재가 진짜로 카밀루스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와닿아서…….
그래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니 아직 사람으로서의 의식은 있는 모양이었다.
“카밀루스.”
이온은 용기를 가지고 창살 안으로 손을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새 옆으로 온 페드로가 그런 이온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지는 마십시오. 위험, 할 수도 있습니다.”
페드로가 주저하며 말했다. 이온은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저를 보고 있잖아요.”
“소공작.”
“저를, 알아본 거예요. 그렇지? 대답해 봐, 카밀루스…….”
이온이 말끝을 조금 흐렸다. 숫제 애원하는 듯한 그 목소리에 작게 크, 하는 소리가 카밀루스에게서 흘러나왔다.
그 반응에 이온의 초록빛 눈이 흔들렸다. 조금씩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에, 이온은 재빨리 눈을 깜빡였다.
쉽게 시야가 복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온은 제 눈물을 닦기보다는 떨리는 손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카밀루스와 창살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렇지만 손끝이 그의 머리에 닿을락 말락 했다.
이럴 땐 제 작은 몸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이온은 자세를 낮추고 더 낮은 격자 사이로 다시 손을 넣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그 직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 마.”
숨소리가 유난히 많이 섞여 있어 힘겨워한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이온은 그에 코끝이 찡해지는 걸 느끼며 단호히 대답했다.
“싫어.”
“…….”
“너, 왜 그러고 있어?”
여기까지는 제대로 말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계속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만용이었다.
눈앞이 순식간에 뿌예지면서 목소리에 조금씩 울먹거림이 섞이기 시작했다. 콧숨이 들이켜졌다.
이온의 눈에서 순식간에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설명을 듣지는 않았지만, 이런 걸 이전에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상황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고 있다.
분명 마기에 잠식되어서 몬스터가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마리엘은 억누르고 있었지만, 카밀루스는 그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설마 포기한 걸까.
그는 제가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가.
“너 세상에서 제일 센 척했었잖아……. 그런데 대체 왜 그러고 있어?”
“…….”
이온은 창살을 쾅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그거 풀고 나올 수 있잖아!”
이온은 세상에서 카밀루스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뻔히 보였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하나도 지켜보지 못했지만 왠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마기에 잠식된 건 마리엘 때문일 것이다. 제 저주를 풀기 위해서 싸우다가 이렇게 된 것이 뻔했다.
그리고 과업을 마친 그는 괴물이 되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고 알아서 가둬 달라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오브라이언의 땅에 카밀루스를 다시 가둘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진심으로 저항했다면 버니언 따위가 그를 감옥에 처넣을 수 있었을 리 없다.
제 앞에서 이런 모습으로 도저히 함께 살아갈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최악의 선택을 하다니.
이런 괴물 꼴이 되어도 같이 살아 달라고 말했다면 이온은 기꺼이 그렇게 했을 텐데. 그에게 언젠가 몸이 먹히더라도 당연히 카밀루스의 옆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온에게 카밀루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카밀루스는 이런 선택을 했다. 몇 번을 물었어도, 수십 번 시간을 돌려도…… 같았을 것이다.
왜 사람이 이렇게 한결같은지.
미련해도 이렇게 미련할 수가 없다.
이기적으로 행동해 줬으면 하고 바라는데도, 그는 단 한 번도 그러지를 않았다.
이온이 창살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최대한 울음소리를 억제하려고 노력하면서.
“나 이제 저주 풀렸어, 카밀루스.”
이온을 향한 눈빛이 동요했다.
부자유한 목 때문에 이쪽을 바라보기 힘들 텐데도 그는 이온을 똑바로 쳐다보며 살짝 웃었다.
“……다행, 이야.”
바보인가?
솔직히 말하면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이온에게 이 저주는 어차피 조금 불편한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으므로. 죽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창살을 붙잡은 이온의 손이 하얗게 불거졌다. 그에게 현실을 알려 줘야, 의지가 생길 거 같았다.
삶을 향한 의지.
그리고 다시 저를 지켜 줘야겠다는 의지가.
“그런데 아직 몸에 마나가 안 돌아.”
“…….”
“내가 쓰러진 지 벌써 닷새나 지났었대. 여기까지 오는 데도 너무 힘들었다고……. 처음엔 다리가 안 움직여져서 한참이나 풀어야 했어. 옷을 갈아입는데 몸이 무거워서 앉아서 시중을 받았어. 그리고 페드로가 부축을 안 해 줬으면 마차에서도 못 내릴 뻔했어.”
엄살이 아니었다. 모두 다 진짜다.
지금까지 이보다 더 심하게 아픈 적도 많이 있었지만, 이온은 한 번도 남에게 제 몸이 아프다고 이렇게 징징거려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 순간의 카밀루스에게는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책임 안 질 거야?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이온.”
“나와서 네가 마저 치료해 줘야지. 손잡아 줘야지. 이딴 마나석 하나만 주면 땡이야?”
이온이 옷 안쪽에서 목걸이를 잡아 빼서 흔들었다. 그러자 카밀루스가 입술을 꾹 다물고, 손을 움켜쥐는 게 보였다.
대답 없는 그를 보면서 이온이 이를 꽉 물었다. 그리고 카밀루스가 무시할 수 없을 한마디를 흘렸다.
“나, 기억 다 돌아왔어.”
“나, 기억 다 돌아왔어.”
순간 카밀루스의 목덜미에서부터 돋아난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이온은 그 모습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으나 자리를 지켰다.
카밀루스가 자신을 다치게 할 리 없다.
그렇지만 카밀루스를 어째서 이렇게 감옥 중에서도 더 깊은 곳에 격리해 가두었는지 이해되었다.
언제 몬스터화가 다 진행되어서 폭주할지 모르니까 그런 것이다.
이온도 그게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