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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291)화 (291/317)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버니언은 헐렁한 잠옷 차림 그대로 방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밤에 그를 보좌하는 시종장이 서둘러 다가와 물었다.

“폐하, 어디로 걸음하시나이까. 혹 옷을 갈아입으시지는…….”

“됐다. 편한 차림으로 가려고 하니까. 지하 감옥으로 가야겠다.”

“지하 감옥이라 하심은…….”

“대공을 보러 가야겠다는 소리다.”

귀찮다는 듯이 답하는 버니언의 말에 시종은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버니언은 카밀루스를 몹시도 싫어했다. 잠시 앞에 두는 것만으로도, 혹은 그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진저리를 치던 사람이다.

단순히 싫어하는 감정을 넘어서 혐오하는 거 아닐까 싶을 만큼 그랬다.

그런데 최근 행보가 이상하다.

카밀루스를 지하 감옥에 처넣고도 바로 처형의 명을 내리지 않고, 한없이 내버려 두고 있었다.

거기에 갑자기 이 야밤에 찾아가겠다니…….

시종이 그가 혹시 간다고 했다고 안 간다고 하는 식의 변덕을 부리거나, 혹은 간다는 것을 안내했더니 왜 자길 말리지 않았느냐며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을지 눈치를 살폈다.

평소 버니언이 하던 짓이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어딘지 넋이 빠진 듯 보이는 버니언은 심지어 시종이 굳이 안내를 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임시 황궁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그는 지하 감옥에 도착해, 카밀루스가 격리되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그러자마자 사람으로 치면 가래가 들끓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르륵…….”

그것을 들으며 버니언은 짧게 평했다.

“진짜로 괴물이 다 됐구나, 너?”

카밀루스는, 일전보다 좀 더 사람다움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사람의 것보다 훨씬 날카로운 손에, 일전에는 멀쩡했던 어깨나 오른쪽 발 같은 곳이 몬스터의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버니언은 카밀루스가 제 나름대로 저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천재라고 불리는 그조차도 마기를 쉽게 이겨 내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따지면 마리엘이 얼마나 강한 존재였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대체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눈앞의 녀석이 그녀를 처리한 모양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과정에서 이 녀석도 괴물이 된 듯하나, 어찌 되었든 버니언의 관심사는 그런 게 아니었다.

바닥의 족쇄에 손과 발, 그리고 목이 매여 있는 카밀루스를 내려다보다가 버니언이 주변의 시종들에게 그만 물러나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시종장이 걱정하는 어조로 그를 말려 온다.

“폐하, 이곳에 혼자 계시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되었다. 대공과 둘만 나누어야 하는 말이 있으니.”

“…….”

버니언이 한번 결심한 것은 절대 물리지 않는 데다, 명령을 거부하면 어떤 히스테리를 부리는지 잘 아는 시종은 결국 발을 뒤로 물렸다.

잠시 뒤 철컹, 하고 철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목이 속박되어 불편할 텐데 카밀루스가 몸을 틀어 곁눈으로라도 버니언을 올려다보는 자세를 만들었다.

“크륵, 크…….”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는데 카밀루스는 쉽게 사람의 언어를 내뱉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버니언은 주저없이 그를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 버니언은 비웃기보다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카밀루스를 가두어 둔 철창에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기댄 버니언이 카밀루스가 대략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뭘지 추측하여 입에 담았다.

“왜 여기 왔냐고 묻는 거겠지?”

침묵으로 긍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앞에 있어서 좀 더 힘을 내게 되는 것인지, 카밀루스의 어깨나 발이 조금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그래 봤자 여전히 완전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버니언은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제 말을 알아들을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얼마 전에 네가 처리한 그 괴물, 그게 뭔지 알아냈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그거 때문에 왔다.”

카밀루스는 여전히 말을 하기 어려운 듯 신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바깥 사정을 잘 모르지? 대략 설명해 주자면, 마탑에서 마탑주를 새로 선출했어. 재니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좀 이상한 놈이더군. 마도공학이라나 뭐라나 하는 걸 설파하겠다는데, 그나마 사이비 교주 같은 타입은 아니라 다행이지.”

“…….”

“그래, 이게 중요한 게 아니긴 하네. 여하튼 그놈이 하는 말이, 그 괴물의 파란 눈동자 말이야.”

버니언이 입가를 슬쩍 비틀었다. 조소보다는 허탈함이 담긴 웃음소리가 내뱉어졌다.

“……사람의 것이 틀림없다고 하더군. 그게 무슨 뜻인지 너도 알고 있겠지. 그 괴물의 본체가, 사실은 황실 사람이라는 거야.”

“크륵…….”

무언가 말하는 걸 참을 수 없었는지 카밀루스가 목을 울렸다. 버니언이 그를 흘끗했다. 벽에 걸린 횃불에 비친 카밀루스의 모습이 들어왔을 때보다 썩 개선되어 있었다.

버니언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무릎 위에 올려 두었던 손을 뒤집어 들어 올렸다.

그 괴물을 처리하려 버니언도 무지막지한 마나를 쏟아부은 터라 현재도 몸이 썩 정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카밀루스에게 일정 정도의 도움을 주는 건 가능할 터였다.

약간의 붉은빛이 감도는 마나 구슬이 그의 손바닥 위에서 만들어졌다.

곧 그것은 성의 없이 던졌으나 다행히 카밀루스가 그것을 입으로 잘 받아먹었다.

버니언은 어처구니가 없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덕분에 조금 회복된 카밀루스를 보고 있자니 역시나 속이 뒤틀린다.

현재이 혼란함이나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사람이 카밀루스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향한 미움이, 습관이 된 증오가 버니언의 마음 한구석을 꼬이게 한다.

그러나 조금씩 들려오는 카밀루스의 목소리에 버니언은 이상하게 안도하기도 했다.

“황실, 사람이라고…….”

“그래.”

“선황은, 끅, 내 눈앞에서 죽었다.”

행여나 저희들의 ‘아버지’가 그 괴물이 아닐까 의심했던 버니언의 추측에 카밀루스가 찬물을 뿌렸다.

이미 생명력을 소진한 것에 마기를 넣어 영핵을 생성해 봤자 생명력이 되돌아 오는 것은 아니다.

좀비 같은 상태는 될 수 있어도, 그 파란 눈의 괴물처럼 명확한 생명력을 지닐 수는 없다.

그러니까 카밀루스의 앞에서, 다섯 명의 증인 앞에서 확실히 눈을 감았던 선황은 그 괴물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관 속에서 잠든 다른 황제들도 마찬가지다.

버니언을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나도 설마 선황일 거라고 생각은 안 했다.”

“…….”

그러면서 대꾸 없는 카밀루스를 슬쩍 돌아보았다. 황실의 핏줄임을 알려 주는 파란 눈이 그의 얼굴에서도 빛이 나고 있었다.

혹여나 카밀루스가 결국 마기를 이겨 내지 못한다면, 그 역시 예의 파란 눈의 괴물처럼 사람 눈을 한 몬스터가 되리란 짐작을 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즉……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시야가 꽤 넓어질 수 있다.

카밀루스를 괴물로 만든 것은 마리엘이다. 그러니 그 괴물 역시 마리엘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의 본체가 누구인지 추측할 수 있는 범위가 확연히 줄어든다.

마리엘이 살아온 시간은 100년 내외.

그 와중에 태어난 황족은 소수다. 특히나 핏줄이 귀한 클로델 황가이기에 대대로 형제가 많지 않았다.

선황인 레이어먼의 형제는 둘이었으며, 둘 모두 레이어먼이 황제가 되기 전에 죽여 버렸다. 철저한 성격의 그이니 설마 목숨이 끊겼는지 안 끊겼는지 확인도 안 하고 마무리를 했을 리는 없다.

선선황의 형제는 하나였고, 그 역시 10대에 횡사했다고 전해진다. 선선황이 황위에 오르기 전에 독살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3대 전으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때는 재니스가 마탑주가 되기 전이니 열 외로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니 마리엘이 접촉할 만한 이 중에서 생사 여부가 모호한 황실 사람은 딱 하나.

선선황이었다.

“넌 선선대 황제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들은 바가 있어?”

레이어먼의 즉위했을 때는 버니언이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선황의 즉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당시를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들은 사실 많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전날까지도 정정하던 선선황이 갑자기 서거했다고 한다. 사인은 심장마비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황제였던 만큼 당연히 국가장을 치러 화려하게 마지막을 장식했겠으나, 사실 그의 죽음을 직접 목도한 이는 선황뿐이니 충분히 의심이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마리엘이 재니스와 같이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더더욱.

선황은 재니스와 마리엘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선선황은 그보다 더 증오하였으므로 그를 ‘처리’하기 위해 손을 잡았을 수도 있다.

카밀루스도 버니언의 짧은 말에 든 무수한 의문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날 이후. 감옥에 갇힌 카밀루스나 다시 황태자궁으로 돌아가 처박혀 있던 버니언이나 고민했던 것들은 매한가지였다.

서로 불쾌해할 만한 일이었으나 그게 사실이다.

카밀루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몸속 사투를 방증하는 듯, 거친 숨소리도 함께였다.

“선선대 황제는, 마리엘과도 연관이 있었으니…… 아마 네 추측이 맞을 거다.”

“……그럼 선선대 황제의 관에 누워 있는 건.”

“가짜, 시체일 수도, 있겠지.”

버니언의 눈에서 초점이 흐릿해졌다. 이어 그의 입가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결국 결론은 하나군. 마리엘이 우리 황실 전체를 휘두르고 있었어.”

“…….”

“제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우리 꼴을 보면서 굉장한 쾌감을 느꼈겠지?”

버니언 자신도, 선황도, 선선황도.

모두가 마리엘이라는 인물 하나에게 뒤흔들렸었다.

마리엘은 물레에서 비극이라는 실을 자아낸 사람이었다. 그녀가 남기고 간 것 중에서 희망 찬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눈앞에 있는 카밀루스다.

그는 존재 자체가, 마리엘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그뿐인가. 어렸을 때는 그녀의 의도대로 이용당하며 학대당했고, 지금은 결국 그녀 때문에 괴물이 되기까지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존재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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