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럼 그 열쇠를 나에게 주고 모두 물러났으면 하는데.”
이온이 간수가 가지고 있는 열쇠 꾸러미 앞으로 손을 내밀며 말하자, 갑작스러운 그 발언에 옆에 있던 에렌스트 경과 페드로가 거의 동시에 반응했다.
“도련님?”
“저도 함께할 겁니다, 소공작.”
에렌스트 경은 늘 그렇듯이 이온 혼자 두면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고, 페드로는 카밀루스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온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는 간수에게서 반쯤 빼앗듯이 열쇠를 건네받은 뒤 두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물러나 줘, 알렉. 대공과 따로 둘만 할 이야기가 있어요, 페드로.”
“지금 이런 때요?”
페드로가 얼른 반문해 온다.
밖에서 기사들끼리 유혈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이 시기에 무슨 할 말 타령을 하느냐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온은 제 뜻을 꺾지 않았다.
“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카밀루스를 무사히 꺼낼 방법도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이 조용해야 해요. 밖에서 두 사람이 막아 줘야 한다는 뜻이죠.”
“도련님, 아무리 그래도…….”
카밀루스가 마기에 잠식되어 반쯤 몬스터가 됐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에렌스트 경이 난색을 표했다.
이온이 마음 아파 할까 차마 뒷말을 잇지는 못했으나.
이온은 그런 에렌스트 경에게 물었다.
“알렉, 내가 언제 틀린 판단 하는 걸 본 적 있어?”
“…….”
에렌스트 경이 그에 미간만 확 찌푸릴 뿐이었다. 이온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는 늘 할 말이 없었다.
입이 다물리는 것을 본 이온이 고갯짓으로 감옥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를 데리고 나가.”
“소공작!”
페드로로가 반발하는 모양새였으나 이온은 얼른 제 앞의 철문에 열쇠를 꽂아 넣으며 말했다.
“곧 대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정말 염려하지 말아요, 페드로.”
“그게 대체 무슨……!”
이온은 결국 제 의도를 따라서, 에렌스트 경이 페드로의 팔을 붙잡고 만류해 주는 틈을 타 서둘러 철문을 조금 열어 낸 뒤 그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뒤에서 황당해하며 놓으라고 화를 내는 페드로의 음성이 들려왔으나 신경 쓰지 않고 이온은 등 뒤로 문을 쿵, 닫았다.
그러고 이온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작게, 제가 아닌 다른 존재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한참이나 듣고 난 뒤에야 어둠에 빠진 철문 안쪽의 공간에서 고개를 들었다.
횃불을 들고 오지 않아 빛 한 조각 없이 사위가 어두컴컴했으나 눈을 감고 있었던 덕인지 어느 정도 암순응된 눈이 철창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꿈틀대고 있는 존재도.
이온은 그 익숙한 기척을 느끼며, 벌써부터 찡해져 오는 코끝을 움찔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철창 앞으로 다가갔다.
이온이 두 무릎을 꿇고 앉으며 손으로 철창을 꼭 붙들었다. 그러고 안쪽에서 꿈틀대는 것을 유심히 보면서 상대를 불렀다.
“카밀루스, 나 왔어. 이온. 이미 알고 있지?”
“…….”
아무래도 카밀루스가 일부러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
이온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뭘 그렇게 놀란 것처럼 그래? 또 온다고 했잖아. 포기 안 한다고. 약속대로 널 구하러 왔어.”
“…….”
또 카밀루스에게서 대답이 없자 이온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혼잣말엔 딱히 자신이 없는데 얼마나 주절거려야 하나 싶어 벌써부터 막막했다.
그러나 카밀루스와 할 말이 있는 것은 진짜였으므로, 이온은 어떻게든 말을 쥐어짰다.
“버니언 그 자식이 널 3일 뒤에 처형하겠다고 공표했어. 그 전에 이곳을 나가자, 카밀루스. 걱정하지 마. 모든 준비는 내가 다 했으니까…….”
지금 밖에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는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카밀루스가 불안해할까 봐.
이온은 그와 단둘이 있는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제 저주를 풀고 열심히 살아갈 이유를 잃은 그에게, 이유를 만들어 줄 그런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행히 그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카밀루스가 반응을 해 왔다.
“……버니언이 이곳에 네가 오는 걸 허락했나?”
허락 따위 받으려고 시도도 안 했지만 어차피 그 부분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온은 태연히 거짓을 입에 올렸다.
“그래, 그게 아니면 내가 여길 어떻게 와.”
“페드로의 목소리도…… 잠깐 들렸던 거 같은데.”
카밀루스는 혹시 괴물의 목소리가 흘러나올까 유의하는 것인지 평소보다 느릿하게 말했다. 이온은 그것을 느끼며 그도 노력하고 있음에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역시 아직 희망이 있다.
이온은 제 슬픔을 속으로 억지로 삼기며 답했다.
“너랑 둘만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자리를 피해 달라고 했어.”
그러고 이온의 눈이 철창 안을 열심히 살폈다.
주변이 너무 어두워서 카밀루스의 정확한 상태가 어떤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다가 이온이 문득 잊고 있었던 것을 상기해 내고 제 목 근처의 단추를 툭 풀었다.
그러자 옷깃 사이에 생긴 허술한 틈으로 무언가 뽁 하고 튀어나왔다.
“뀨!”
욤뇽이였다.
한창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시절만큼이나 작아진 욤뇽이가 옷깃 바깥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나와 바닥에 착지했다.
그것을 보고 이온이 작게 웃다가 카밀루스를 향해 말했다.
“사실 완전히 나 혼자는 아니야, 욤뇽이도 데려왔어.”
“……?”
이온이 아기 드래곤의 통통한 엉덩이를 치자 녀석이 얼른 좁은 철창 사이를 통과해 카밀루스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러고 얼굴 앞으로 달려가 기웃거리자 카밀루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어투로 말소리를 내뱉었다.
“……왜, 크, 이 녀석 왜 다시 작아졌……지?”
탑에서 성체가 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었던 그이기에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이온은 아직 상황 파악이 덜된 그를 위해서 이야기했다.
“그게, 내가 부탁했거든.”
“부탁이라니.”
“꾸우, 꾸.”
이전에는 이온을 더 좋아하는 듯 보였던 욤뇽이지만 오랜만에 주인을 보니 울컥했는지 카밀루스의 앞에서 애달픈 울음소리를 냈다.
그것을 들으며 이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몸속에서 마기를 다 몰아낼 수 있게 힘을 달라고.”
“…….”
“그래서, 녀석이 이걸 만들어 줬어.”
이온은 욤뇽이가 빠져나간 품속에서 동그란 구슬 하나를 꺼냈다.
어두운 공간 안에서도 자체적으로 영롱히 푸른빛을 발하는 신비한 구슬이었다.
이온이 그것을 주먹 안으로 한 번 꽉 쥐었다가 철창 안으로 굴려 넣었다. 그러자 욤뇽이가 기겁하고 얼른 달려와 그것을 짧은 두 팔로 끌어당겨 품에 넣었다.
“꾸우우!”
자신의 마나를 응축한 그 소중한 구슬을 함부로 하는 이온에게 녀석이 화를 냈다.
어차피 남 줄 거면서 끝까지 소중히 하는 녀석의 모습이 웃기기도 해서, 이온이 슬쩍 웃음 짓자 욤뇽이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다시 카밀루스에게로 다가갔다.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빛 덕분에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카밀루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후 이온은 눈을 질끈 감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묶여 있는 모습이야 이전에 봤던 것이라 충격이 덜했지만, 카밀루스의 몸은 그렇지 못했다.
속이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손과 신체 일부만 몬스터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온은 그의 발이며 팔과 다리, 어깨 등 대부분이 사람의 것 같지 않게 변모되었다. 얼굴 일부도 예전 마리엘이 그랬던 것처럼 검어진 것이 보였다.
이온은 입술이 하얘지도록 지그시 깨물었다가 이내 놓았다. 그리고 갈라지려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 구슬을 먹어, 카밀루스.”
이온은 마법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카밀루스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뿐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에 카밀루스 정도로 마법적 경지에 이른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데, 그조차 극복해 내지 못하는 마기라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겨 내기 어렵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욤뇽이의 어미가 마기에 잠식되고 난 뒤 도로 회복이 된 모습을 보고서, 이온은 그들에게 답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욤뇽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성체가 되기 위해 긴 세월 기다려 온 아이이지만 착한 녀석은 자신을 오래간 돌봐 준 카밀루스를 위해 저 구슬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보지 않았겠지만 아마도 짐작하고 있을 카밀루스는 놀라 굳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욤뇽이가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구슬을 내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온.”
“카밀루스, 눈앞에 정답이 있는데 그마저 회피할 셈이야?”
“……몸은 회복될지 모르지만 금제에서는 벗어나기 어려울 거야.”
금제 마법은 상대적으로 아주 단순한 마법인 만큼 제대로만 시전이 되었다면, 시전자와의 격차와 상관없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다.
이온이 그 부분에 한해서만큼은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사실도 자명하고.
물론 아직 버니언이 멀쩡한 줄 알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겠지만, 이온은 이미 결론이 정해진 듯이 구는 그가 싫었다.
“그래서? 처형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리라고? 그게 네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의 전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