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300)화 (300/317)

“카밀루스, 잘 들어. 지금 바깥에선…… 다들 널 기다리고 있어.”

“……날 기다리고 있다니,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카밀루스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이온을 바라보았다.

설마설마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머릿속으로 어떤 짐작을 하는지 이온은 대략 알 만했고, 아마 그것이 정답에 근접하리라는 사실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별건 아니야. 네가 이렇게 된 후로 피에트로 후작이 북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기에 불러서 손을 잡자고 했을 뿐이니까.”

“……이온, 설마.”

피에트로 후작이라는 말에 카밀루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자못 심각해하는 안색이었으나 이온은 역시나 잘 알아들었구나 싶어 오히려 안심했다.

“그리고 기억나? 아스타틴이 처음에 우리에게 협력해서 버니언을 붙잡고 있었지. 그거 때문에 이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칼 단장이 날 찾아와서 꺼내는 데 협조해 달라고 하더군.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그러자고 했지.”

솔직히 말하면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든 게 너무 매끄럽게 흘러갔다. 급한 만큼 뭐 하나 어긋나기라도 했으면 머리가 많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귀가 전부 잘 들어맞아서 제가 손댈 구석도 얼마 없었다.

그 때문에 이온은 과연 이게 전부 제 공일까 싶었다.

사실은 이 판을 준비한 건 카밀루스 스스로가 아니었을까.

“페드로야 네가 지금 이러고 있는데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아버지는, 원래 내 편이니까.”

“그럼, 지금 버니언은……?”

“그에겐 지금 돌아갈 황궁이 없지.”

어차피 황궁은 불타올랐다.

새로 지어질 곳엔 새로운 주인이 들어가면 그만이다.

카밀루스는 이온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직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의 눈이 동요로 선명히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이온, 대체 넌…….”

“애초에 세웠던 우리의 원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을 뿐이야. 바뀐 건 네가 이 감옥에 묶여 있다는 것에 불과하고.”

이온이 눈으로 카밀루스의 모습을 꼼꼼히 훑었다. 역시 제가 정답을 찾아냈던 것이 분명했다.

카밀루스의 목덜미를 뒤덮었던 기괴한 촉수들이 사그라들어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흩어진 것이 보였고, 등 뒤로 올라왔던 날개 역시 힘을 잃는 중이었다.

마기를 밀어 내며 몬스터화되었던 몸속 역시 재구성이 되고 있는 모양인지 카밀루스가 밭은 숨을 뱉다가 검은 피를 잇새로 울컥 흘리는 것이 보였다.

이온이 그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으나 카밀루스가 신음 같은 소리를 중얼거렸다.

“괜찮아, 회복되는 과정이니까…….”

불안했지만 이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변형된 신체가 되돌아오는 와중에도 심각한 고통이 따르는 탓에 카밀루스가 몸을 뒤트는 것이 보였다.

이 순간엔 오히려 그의 사지를 묶고 있는 것들이 도움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이온은 역시 그 모습을 두 눈에 모두 담기엔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떨구었다.

허억, 헉. 크윽.

고통이 가득한 목소리가 길게 이어지는 동안 욤뇽이가 철창 사이로 뛰어나와 이온의 품에 안겼다.

이온은 기특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인간의 모습을 거의 되찾은 카밀루스를 보며 이온이 철문을 살며시 열자 기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카밀루스가 뭔가 하고 이온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온……?”

어디 가느냐는 물음이 담긴 부름이었다.

이온이 무거운 철문을 몸을 기대어 지탱하며 카밀루스를 바라보았다.

“카밀루스, 밖으로 나가면 페드로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마 알렉도 같이. 너와 대화하는 동안 밖을 지켜 달라고 했거든.”

설명을 듣는 카밀루스의 표정이 서늘히 가라앉았다. 아마 그라면 첫마디를 듣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을 터였다.

이온은 그가 천천히 알아채기를 바랐지만, 역시나 카밀루스가 바로 그 부분을 지적해 왔다.

“우리, 같이 나가는 거 아닌가, 이온?”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이온은 다른 질문을 되돌려줄 뿐이었다. 이온이 고갯짓으로 카밀루스의 몸을 속박하고 있는 것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금제, 네 힘으로 못 풀지?”

“이온,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카밀루스의 물음에 이온이 작게 웃었다.

그리고 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딴소리라고는 하지만 아마 카밀루스도 내내 알고 싶어 했을 어떤 진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카밀루스, 탑에서 빠져나왔을 당시…… 내가 네 금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궁금했던 적 없어?”

“……왜 그 얘기를 지금 하는 거야, 이온.”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금제에 속박되어 있는 카밀루스. 둘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금제. 그렇지만 빠져나가야만 하는 상황.

묘하게 그때와 그림이 일치한다는 걸, 카밀루스도 이온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온이 설명하려는 것은 그때,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 어떤 해답에 관한 것이었다.

“나한테 네 금제를 풀 수 있게 해답을 준 사람이 있었어. 그게 누군지 짐작이 돼, 카밀루스?”

묻는 말에 카밀루스는 이온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온은 답을 선뜻 내뱉지 못하는 그의 굳어 있는 입술을 내려다보다가 “응?” 하고 작게 채근했다.

카밀루스의 목울대가 한 번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이온이 원하던 답을 내놓았다.

“설마, 마리엘이었나?”

이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밀루스의 입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제 입에서 토해질 어떤 진실이 카밀루스에게 어떤 상처를 남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온은 예전 자신의 그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어느 날엔가 마리엘이 나에게 두 가지 선물을 내밀었었어.”

선물.

사실은 그렇게 예쁜 단어로 포장하기엔 상내의 의도가 음습하기 짝이 없었으나, 당시의 이온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두 개면 도련님께서 저 아이의 금제를 풀 힘을 잠시나마 발휘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시 마리엘이 내민 것은 두 개의 작은 크리스털 병이었다.

각각의 안에는 서로 다른 색깔의 약물이 들어 있었다.

보랏빛과 분홍빛을 띠는 것으로, 그중 보랏빛의 약물은 딱히 뜨겁지도 않은데 병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어린 이온은 마리엘이 내민 그것을 받아 들고는 신기하게 병 안의 약물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뭐야?〉

그러자 마리엘이 보랏빛의 약물과 분홍빛의 약물을 차례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순서대로 드시면 잠시간이지만 아주 강한 마법사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가령, 저 금제를 깰 수 있을 만큼의.〉

〈…….〉

〈대신 부작용은 따르겠지만요.〉

그렇게 묻는 마리엘의 앞에서 이온은 제 손에 들어온 두 개의 물약을 움켜쥐었다.

이온은 어렸지만, 아니 어려서 그때 이미 느끼고 있었다.

이 두 개의 물약을 제 안에 삼키고 나면, 스스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질 거라는 짙은 불길함을.

그렇지만 탑에 갇혀 사는 카밀루스를, 자신의 손으로 구하고 싶었다.

거대한 불행 속에 사는 그 아이를.

의협심이든, 동정심이든.

자신이 카밀루스를 구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그 순간 이온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카밀루스만 탑에서 꺼내 줄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한 거라면 이온은 작은 가능성에라도 매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온은 기꺼이 선택했다.

〈마실래요.〉

눈앞의 마리엘이 저를 이용해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 내길 원한다는 것을 모르는 채로.

이온은 마시고 난 뒤 마리엘에게 금제를 어떻게 깨는지 설명을 들었고, 그 구체적인 방법 안에 적어도 거짓은 없었다.

마리엘은 진짜로 카밀루스의 금제를 깨는 밥법을 알려 준 것이다.

이온은 곧장 카밀루스에게 달려가기보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침착하게 다음 기회를 노렸다.

카밀루스를 탑에서 빼내고 모두에게 그의 존재를 알릴 더 적절한 때를 기다린 것이었다.

그렇게 이온은, 카밀루스의 앞으로 가기 전에 스스로 마리엘이 건넨 저주 물약을 들이켰다.

저주를 시전한 이는 마리엘이 분명했으나, 그 저주를 몸에 받아들인 이는 다름 아닌 이온 스스로였다.

“그 약물을…… 마리엘은 마시라고 강요한 적이 없었어, 카밀루스.”

전말을 들은 카밀루스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온, 이온…….”

그리고 왜 하필 그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 ‘지금’이어야 하는지 의아해했다.

자신 때문에 거대한 불행을 온몸으로 받아 낸 이유에 대해서 어째서 자신이 지금 알아야 하는 건지.

카밀루스는 이온이 때때로 아주 무모해진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자신보다도 더.

그 때문에 불길함을 느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이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안 돼. 하지 마.”

이온이 자신을 이 감옥에서 꺼내기 위해 또다시 무슨 짓인가를 감행할 것이다.

어떤 방법인지, 카밀루스는 이미 반쯤 눈치채고 있었다.

몸이 약한 그가 그러한 짓을 하면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 저주가 풀린 지금은 저주에 따른 절대 행운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밀루스의 애원에 이온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난 네가 최선을 다해 줄 거라고 믿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