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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304)화 (304/317)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벌써부터 이온은 골이 아프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카밀루스가 무언가 설명하기 전에 이온은 얼른 침대 밖으로 나오더니 팔을 휘적거리면서 복도로 나갔다.

카밀루스가 혹시 이온이 넘어질세라 안절부절못하며 따라오는 가운데, 바깥을 살필 수 있는 창문 앞으로 가 섰다.

그러자 진짜로 공작 저 앞에 에밀리의 말대로 황궁 시종들의 옷차림을 한 이들이 와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온이 뒤따라온 카밀루스를 곁눈으로 살짝 노려보자, 카밀루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끌어안았다.

“네가 쓰러져 있는데 대관식 따위 할 정신이 어디 있겠어.”

“대관식이 문제가 아니라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방치한 게 문제라는 생각은 안 들어? 게다가 네가 대관식을 한다고 해도 어떤 잡음이 일지 모르는 상황인데.”

이온의 그 말에 문득 기존의 구성원과 다른, 새로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잡음이라. 그건 그렇게 걱정은 안 하셔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놀란 이온이 옆을 돌아보자 낯익은 얼굴이 보여 왔다.

미아블레 후작이었다.

그 존재를 확인한 이온이 서둘러 카밀루스의 팔을 털고서 몸을 틀었다.

“후작님께서 어떻게 여기에……?”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소공작. 저도 잠시 대공 전하를 따라서 공작가에 머물고 있었는데, 소공작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아블레 후작의 멀쩡한 집이 황도에 있는데 공작가에 의탁하고 있었다는 말에 이온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물론 그에게도 도움을 청하기는 했었지만…… 본격적인 도움은 황위에 오른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아해하는 이온의 반응에 뒤에서 카밀루스가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대신 설명을 했다.

“에밀리 양이 말한 것처럼 내가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거든, 이온…….”

아무리 그래도 제 할 일은 했다는 카밀루스의 항변에, 이온이 그와 미아블레 후작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카밀루스가 펄쩍 뛸 만한 한마디를 했다.

“후작께서 대공이 정신 차리도록 해 주신 모양이네요. 감사합니다.”

“예? 그것은 아닌…….”

미아블레 후작이 손을 흔들면서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는 사이 뒤에서 또 자기를 봐 달라는 듯이 흠흠,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에 이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뒤늦게 따라 나온 크레이거 공작이 서 있었다.

아까부터 있었던 모양인데, 그는 아들이 자기를 언제 봐 주나 하는 자세로 서 있었다.

이온은 아버지가 연신 제 눈치를 살피는 것에,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멀뚱히 보다가 이내 물었다.

“아버지가 도와주신 거예요?”

“흠, 흠, 그런 게 아니면?”

살며시 반문하는 크레이거 공작의 분위기가 묘했다.

이온이 그를 빤히 바라보자, 갑자기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상태 이상: 호의]

[제멜 드루실라 크레이거가 플레이어에게 극도의 호의를 느낍니다.]

“…….”

그동안 내내 무시했었지만 시스템은 꽤 똑똑한 편이다.

제 나름대로 판단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오면 창을 띄워 주고는 했는데 지금 저 메시지를 보인다는 것은…….

어쩐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아들의 말을 기다리는 공작의 눈에서 이온은 그런 말을 읽었다.

‘빨리 날 칭찬하렴, 이온.’

크레이거 공작이 죽어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을 만한 말이기는 했다…….

아무래도 공작은 아들이 스스로 알아차리고 마구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줬다는 거지?’

그러나 아무리 이온이 똑똑하다고 해도 진짜로 모든 걸 꿰뚫어 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온은 부담스러움에 저절로 목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일단 제일 쉬운 문제풀이부터 해결했다.

“……아버지께서 후작을 집으로 초대하신 건가요?”

일단은 그런 거 같아서 묻자 미아블레 후작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예. 공작께서 일이 있기 전에 저를 포함해서 많은 귀족들에게 이미 초대장을 보내셨었습니다.”

“초대장을요?”

크레이거 공작이 이온이 준비한 계획 외에 좀 더 무언가를 준비하던 기색이긴 했다.

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던 터다.

그야 이온은 자신의 계획을 세우는 데만 해도 충분히 바빴고, 시스템이 크레이거 공작이 확실히 제 편으로 돌아섰다고 못을 박아 주었으니 그가 계획을 방해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크레이거 공작이 그 이후의 일까지 고려해서 무언가를 준비했었던 모양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카밀루스가 설명해 주었다.

“황도에 있는 주요 귀족들이 전부 모이는 자리였어, 이온. 이곳 루미에르 홀이 가득 찰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었지.”

설명을 시작함과 동시에 카밀루스가 이온의 손을 잡고서 복도를 걷자며 이끌었다.

이온은 그에 1층의 홀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함께 걸어갔다.

얼마 안 가 크레이거 공작가의 너른 홀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공작가의 위세에 알맞게 그 어떤 연회 홀보다도 훌륭한 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 위에 카밀루스의 설명이 덧붙여졌다.

크레이거 공작이 뒤에서 계속 겸연쩍어하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이온은 카밀루스의 음성을 따라서 머릿속에서 상상을 시작했다.

* * *

버니언에 대한 처분을 결정한 뒤 카밀루스는 마침 임시 황궁에 도착한 크레이거 공작과 마주쳤다.

당연히 이 계획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기도 했던 크레이거 공작은 이후의 일에 대해서 카밀루스에게 많은 조언을 했다.

우선 황궁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의미로 임시 황궁의 꼭대기에 커다란 깃발을 세웠다.

그렇게 오브라이언의 상징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올리고, 황성의 문을 열었다.

밧줄로 포박된 버니언은 그대로 노아 기사단에 둘러싸여 즉시 황성 밖으로 내쳐졌다.

카밀루스의 처분에 따라서 버니언은 즉시 아이오딘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렇게 빠르게 아이오딘행에 오르게 된 이유도 크레이거 공작의 준비 덕분이었다.

〈전하께서라면 죽이지는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가……?〉

자신을 잘 모르는 크레이거 공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카밀루스는 진심으로 의외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크레이거 공작도 자세히 따져 보면 황실파의 수장으로서 오랜 기간 귀족들의 위에 군림해 온 귀족 중의 귀족이었다.

일선에서 오래 물러난 데다가 아들 바보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그에게 노련함이 없었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 귀족들 사이에서 권력을 휘두르지 못했을 터였다.

처분을 내리면서도 단순히 며칠 감옥에 가두었다가 아이오딘으로 보내려고 했던 카밀루스는, 버니언이 순식간에 밖으로 내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크레이거 공작의 무서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적으로 두면 안 되는 인물이었다.

이후의 일 역시 크레이거 공작의 지휘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카밀루스는 그의 조언에 따라서 빠르게 어수선한 황성 내의 분위기를 수습했다.

그러나 임시 황궁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의미의 깃발을 내걸었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현재 태후 자리는 공석.

그리고 카밀루스는 선황의 사생아로 알려진 사람이다.

카밀루스가 황위에 바로 오른다고 해서 그를 인정해 줄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카밀루스는 이온이 없이 이 모든 일을 정리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대관식을 준비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 그사이에 할 일들을 찾으면 되었다.

그리고 그사이의 일들을 정해 준 것도 바로 크레이거 공작이었다.

〈일단은 전하께서 황실의 정통한 핏줄이라는 사실부터 알리시는 편이 나으실 겁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겠나?〉

〈미아블레 후작이 그것을 도울 수 있다고 제 아들 녀석에게서 들었습니다. 하여 제가 준비한 것이 있으니, 저희 공작 저로 일단 돌아가시지요.〉

카밀루스는 그의 태도 변화가 익숙하지 않았으나, 의심하지는 않았다.

이온이 이 계획에 크레이거 공작을 끌어들였다는 것은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온이 신뢰한다면 카밀루스 역시 그를 신뢰할 수 있었다.

카밀루스는 그의 조언에 따랐다. 귀족 사회가 돌아가는 규칙에 대해서는 어차피 저보다 크레이거 공작이 훨씬 잘 알 터이다.

그가 조언을 하겠다는데 카밀루스로서는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안 그래도 황성의 난리에 대해서 듣고 혼란스러워하던 귀족들이 모두 크레이거 공작 저택으로 몰려들었다.

이미 일주일 전에 크레이거 공작이 그들에게 초대장을 보내 놓은 상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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