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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309)화 (309/317)

“……꾸?”

이온은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며 계속 자라는 의미로 머리를 더욱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귀여운 욤뇽이는 가만히만 있으면 다 해결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입가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배어 있는 것을 보며 욤뇽이는 어떤 불안감을 느꼈는지 물빛 눈을 흔들었다.

그야, 이온은 지금껏 욤뇽이를 배신하는 일을 꽤 많이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기 드래곤에게도 눈치는 있었다.

* * *

크레이거 공작과 미리 약속된 내용이 있었던지, 카밀루스는 이온이 깨어난 날 저녁에 바로 기사들과 함께 공작 저를 떠났다.

그날 잠자리에 들기 전, 손님이 빠져 고요해진 2층의 분위기에 이온은 어울리지 않게 약간의 허전함마저 느꼈다.

그렇게 이틀.

카밀루스가 말한 대로 대관식이 진행되는 날이 찾아왔다.

이미 귀족들에게는 날을 그렇게 통보한 터라 그에 맞추어 황도의 귀족들이 자연스럽게 황성으로 향했고, 그것은 크레이거 공작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크레이거 공작은 이번 대관식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이미 임시 황궁으로 향했다.

지난 버니언의 대관식 때 태후가 행했던 역할을 크레이거 공작이 맡기로 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 * *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소공작.”

다행히 날씨는 무척 쾌청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에, 눈이 부실 정도로 내리쬐는 햇빛.

맑은 날씨 덕분에 괜스레 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 이온이 진동하던 마차가 멈추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임시 황궁 앞에 마차의 문이 열리자 마중을 나온 황궁 시종장이 허리를 숙이며 그를 맞았다.

몸이 약한 이온을 위해서 시종장이 직접 이온의 팔을 부축해 내리게 해 주었다.

이 시종장은 이전의 버니언과 함께했던 시종장이었다.

이전에 버니언을 찾아왔을 때는 직접 부축해 주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이온은 이것이 카밀루스의 배려임을 알아챘다.

또한 카밀루스가 버니언의 사람이라고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괜찮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쓰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안심도 했고.

이온은 임시 황궁으로 들어가는 동안 시종들과 기사들의 면면을 세세히 살피며 카밀루스가 대기하고 있다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문 앞으로 완전히 다가가기도 전에 방에서는 크레이거 공작과 카밀루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그래도 그들은 붙잡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뜬 사람들을 굳이 주저앉혀야 하나? 시간을 충분히 들이고서 새로운 사람을 찾으면 되는 일이야.”

“……본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신 건 아니시고요?”

“물론 그것도 없지 않겠지.”

누구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온은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리는 것을 들으면서 지금 들어가도 되는가 싶어 잠시 주저했다.

그런데 그렇게 눈치를 살핀 게 무색하게 그를 데리고 온 시종장이 태연하게 안쪽에 말소리를 전했다.

“소공작께서 오셨습니다.”

그러자 크레이거 공작과 이야기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목소리가 밝아진 카밀루스가 얼른 대답했다.

“아, 그래. 들라고 해.”

크레이거 공작과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누구 얘기를 했었길래.’

경험상 카밀루스가 그래도 잔소리를 귀찮아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거 같아 더 궁금해졌다.

들어가서 물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안쪽을 보는 순간 이온은 할 말을 잃었다.

뒤의 창을 통해 밝은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가운데, 카밀루스가 이온을 향해 돌아서며 활짝 웃는 모습이 두 눈 가득히 보였다.

“이온, 왔구나.”

머리를 넘기고, 화려하게 차려 입은 카밀루스를 발견하자마자 이온은 저도 모르게 굳어 버렸다.

매일 보는 얼굴이었는데, 순간 평소에도 이렇게 생겼었나 싶을 정도였다.

이온은 주변의 시녀들이 마지막으로 그의 어깨에 기나긴 망토를 걸쳐 주는 것을 보며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원래도 잘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빛이 나는 모습을 보니 스스로도 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밀루스가 이온을 발견하자마자 발을 떼어 다가오려고 하자 옆의 시녀가 그를 말렸다.

“전하, 옷이 흐트러지니 기다려 주십시오.”

“……아, 알겠다.”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온이 그에게 먼저 다가갔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카밀루스.”

“오는 데 힘들지는 않았어?”

카밀루스의 말에 이온은 그저 웃기만 했다.

마차를 타고 오는데 힘들 일이 있나. 황성과 크레이거 공작 저는 거리가 그렇게 먼 편도 아니었다. 괜한 염려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 앞에서 면박을 줄 수 없는 입장이 되어 버린 터라 말없이 얼버무리자 카밀루스도 이온이 왜 그러는지 알아챘는지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방 안에 있는 시녀들에게 명령했다.

“다들 자리를 비워 주겠나? 공작은 남아도 될 거 같군.”

카밀루스의 명령에 시녀들 중 가장 높아 보이는 이가, 아마도 시녀장일 여인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전하, 대관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너무 길게 기다리지는 않게 할 테니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옷도 흐트러지지 않게 이 자세로 가만히 있도록 하지. 그럼 됐겠지?”

카밀루스가 예상하는 반박을 미리 차단해 버리자 시녀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걸음을 뒤로 물렸다.

금세 시녀들 모두를 이끌고 드레스룸을 빠져나가 문을 닫는다.

밖에서 이미 말소리가 새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물리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기는 했으나, 이온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세 사람이 남은 방 안에서 카밀루스가 먼저 말문을 텄다.

“저기 소파에 앉아, 이온. 몸도 힘들 텐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니까.”

카밀루스가 계속해서 제 몸 상태를 강조하는 것에 이온이 투덜거리며 근처의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크레이거 공작도 눈치를 보다가 이온이 앉는 것을 돕고는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에 이온은 방 안에 들어오기 전, 두 사람이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고 일단 가볍게 말문을 텄다.

“아까 누굴 붙잡니 마니 하던데 뭐야?”

질문을 카밀루스에게 했지만 말끝에 이온은 크레이거 공작을 돌아보면서 어떤 이야기였냐고 눈으로 물었다.

그러자 크레이거 공작이 안 그래도 이 부분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던지 얼른 답했다.

“노아 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 자리 때문에 그랬단다, 이온.”

“칼과 아스타틴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대략 들렸던 대화를 종합해 보면 칼과 아스타틴이 기사단을 떠나겠다고 했고, 카밀루스는 잡지 않겠다는 입장인 모양이었다. 크레이거 공작은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이온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지, 크레이거 공작은 카밀루스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소공작, 생각해 보거라. 칼과 아스타틴은 노아 기사단을 벌써 10년 넘게 이끌어 왔어. 게다가 칼 단장이 없었다면 이번 일이 성공할 수 있었겠니?”

“성공은 어려웠겠죠. 내부에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긴 했으니까요. 그레나 기사단을 설득한 것도 그였고요.”

“그래, 게다가 선황이 특별히 아꼈던 이들이다. 알다시피 선황이 사람은 잘 고르지 않았더냐.”

이온은 크레이거 공작과 카밀루스가 왜 언쟁을 했는지 단숨에 이해했다.

크레이거 공작은 아직도 선황의 사람 보는 눈을 신뢰하고 있었다. 물론 이온도 그 부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카밀루스와 선황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사고 방식이 다르다.

이온은 카밀루스와 두 사람, 특히 칼 단장과의 상성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떠나겠다는 사람들을 잡을 이유가 있나요?”

“이온…….”

“어차피 마음이 떴으면 더 이상의 충성을 요구하기는 힘들어요. 게다가 이전에 잘했다고 해서 지금도 잘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죠.”

아마 이 말은 카밀루스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래도 역시 아들이 말을 해 줘야 하는 부분인가 보다.

크레이거 공작이 카밀루스와 이온을 번갈아 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카밀루스가 슬쩍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칼 단장이 유능하다는 건 인정하겠어. 하지만 난 칼 단장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공작. 아마 그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고.”

“……칼 단장과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카밀루스는 이전에 태후의 일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그때 이미 불쾌하니까 자신을 돕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렇지만 칼은 역시나 자신이 방식으로 다시금 카밀루스를 도왔다.

결과적으로야 좋게 됐지만, 카밀루스는 칼가 끝까지 함께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게다가 칼도 그만 황도를 떠나기를 원했다.

〈조용한 시골에 가서 잘 살 테니, 평생 먹고살 돈만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도는 가능하시겠지요?〉

아스타틴을 데리고 조용한 데 가서 살겠다는 소리였다. 다시는 황도의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근본이야 이곳 생활에 환멸이 나서 그런 거겠지만, 카밀루스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의 모습은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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