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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311)화 (311/317)

“후작님…….”

미아블레 후작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하는 카밀루스의 유일한 혈육인 그 역시 앞자리에 서 있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온은 그나마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그가 제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괜찮습니까?”

“네, 다행히.”

하지만 이온의 안색이 좋지 못한 것을 확인한 후작은 이온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건넸다.

작게 접은 종이를 받고 보니 안에 흰 가루가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

“제가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마법 가루예요. 소공작의 몸에 마나를 주입하면 증상이 완화된다는 얘기를 듣고 챙겨 왔습니다.”

“마나를 이렇게 가루 형태로 만들 수 있는 거였나요?”

“제가 연구한 방법이니 비밀입니다.”

“…….”

이온은 왜인지 뿌듯해하는 듯 보이는 미아블레 후작을 수상히 바라보았다.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그는 생긋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원래 마법을 쓸 줄 알면 별별 호기심이 다 생기는 법입니다.”

“……카밀루스는 안 그래요.”

이온은 마법사인데도 괴짜의 성향이 전혀 없는 카밀루스를 떠올리며 대꾸했다. 그러자 과연 그럴까, 하는 표정으로 미아블레 후작이 반박했다.

“전하, 아니 폐하께서도 시간이 없었던 것일 뿐일 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어떤 인간이 남이 만든 황성 결계 같은 걸 몇 년이나 연구해서 제 걸로 바꿔 놓겠다는 생각을 하겠습니까.”

“…….”

이온으로서는 별로 납득 못 할 말인 터라 우리 카밀루스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뚱하게 바라보았다.

미아블레 후작은 이런 이온의 반응을 예상하긴 했었던지 어깨만 한 번 으쓱한 뒤 가루를 먹으라고 눈짓했다.

일단 그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여 이온은 예의 가루를 입 안에 쏟았다.

그러자 가루가 달콤한 맛을 내며 녹아들었다.

마나를 제형한 게 맞는지 확실히 몸에 마나가 들어올 때와 비슷한 느낌이 났다.

‘신기해.’

이건 만들어서 팔아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느낌이 좋았다.

게다가 오로지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이 안 좋았던 게 맞긴 했던지 가슴을 압박하던 기묘한 조임이 사라졌다.

그렇게 안정이 될 무렵, 본격적으로 대관식이 시작될 모양인지 열린 대관식장의 문을 통해 황궁 시종들이 들어왔다.

오늘의 대관식 때 쓸 왕관과 레갈리아를 들고 대관식장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모습에 조금 소란했던 장내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엄숙해졌다.

황궁의 시종장이 단 앞에서 멈추어 큰소리로 이야기했다.

“모두는 비렌시움 대공 전하를 향해 예를 갖추십시오.”

머리에 관을 쓰기 전까지 카밀루스의 공식적인 직함은 비렌시움 대공이기 때문에 관례에 맞추어 그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모두의 시선이 붉은 카펫이 시작되는 곳으로 향했다.

마침 임시 황궁에서 나온 카밀루스가 의전을 하는 이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길고 두꺼운 망토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이곳까지 그 끝을 들고서 쫓아온 시녀들이 옷을 내려놓았다.

이온은 눈부신 빛을 등지며 연회장의 길을 가로지르는 그를 보면서 숨을 삼켰다.

또각, 또각.

고요한 가운데 장내에 그의 구두 굽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이미 키가 충분히 큰데 높은 굽의 구두를 신은 그는 더욱 눈에 띄었다. 굳이 중앙에 있지 않았어도 분명 어디서든 시선을 사로잡았을 그는, 중앙에 있으니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온은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황궁의 시녀와 시종들을 이끌고 들어오는 이온은 그제야 그가 황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기나긴 시간을 지나, 그야말로 시공을 뛰어넘어서 드디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온은 카밀루스가 제 앞을 지나, 단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자 드디어 그 순간을 가슴 벅차오름을 느꼈다.

카밀루스가 이내 단 위에 있는 크레이거 공작의 앞에 우뚝 서서 그를 가만히 마주 바라보았다.

그러자 황궁 시종의 설명이 이어졌다.

“태후의 자리가 비어 있는 관계로 이번의 대관식은 오브라이언의 위대한 4대 공작 중에서도 가장 황실에 헌신해 왔던 크레이거 공작이 주도할 예정입니다.”

크레이거 공작이 그에 흰 장갑을 낀 손을 가슴 위에 올리고 연회장을 가득 메운 귀족들을 향해 인사한 뒤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크레이거 공작은 모든 귀족들의 대표로서 새로운 오브라이언의 태양 앞에 진심 어린 예를 갖추고, 모든 이들의 염원을 담아 영광의 관을 바치십시오.”

그 말과 함께 크레이거 공작의 앞에 카밀루스의 머리 위에 씌워질 왕관이 내밀어졌다.

오브라이언의 모든 황제들이 썼던 그 영광의 관을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집어 든 크레이거 공작이 카밀루스에게로 한 걸음 걸어갔다.

본래 차기 황제는 태후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관을 쓰고 레갈리아를 받는 것이 예법에 맞지만, 크레이거 공작은 황제의 신하인 터라 무릎을 꿇는 의식은 없었다.

크레이거 공작은 카밀루스의 검은 머리 위에 빛나는 왕관을 올려 두고, 다음으로 화려한 레갈리아를 두 손으로 쥐었다.

이내 크레이거 공작이 한쪽 무릎을 꿇고 팔을 위로 올려 새로운 황제 앞에 레갈리아를 바치는 자세를 취했다.

“모든 귀족들을 대표하여 새로운 오브라이언의 태양 앞에 경의를 표하나니 받들어 주십시오.”

크레이거 공작의 그 말에 카밀루스도 긴장을 했던지 깊게 한숨을 들이켜는 모습을 보이더니, 장내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를 비롯한 귀족들이 원하는 이 오브라이언의 영원한 번영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

“황공하옵니다.”

적당한 이야기가 오간 뒤 카밀루스가 이내 한 손으로 레갈리아를 들었다.

크레이거 공작이 시종들의 안내에 따라 단 위에서 물러나고, 곧 카밀루스가 빛이 들어오는 뒤의 창을 등지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연회장의 천장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 눈에 띄는 변화에 모두가 뭔가 싶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온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날이 이렇게 급격하게 흐려지는 건가 싶어 천장으로 시선을 올린 이온이 그 뒤 처음 발견한 것은 맑은 물빛 눈이었다.

연회장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어떤 거대 생명체의 존재에 다들 놀라 탄성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온 역시 그 눈에서 시작해서 넓은 날개를 펼친 하얀 드래곤의 몸체를 발견하고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이 광경은 미리 이야기된 것이 아니었던지 시종들도 당황해 입을 벌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화이트 드래곤, 블랑셰가 대관식장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도 녀석의 손에는 미아블레 가문의 가보라고 알려진 파란 레갈리아가 들려 있었다.

사람보다 몇 배는 큰 용이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기묘한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숨을 삼켰다.

카밀루스도 녀석이 올 줄은 몰랐던지 잠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용은 명확히 카밀루스를 마주 보고 있는 채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귀족들이 모두 굳어서 있는데, 카밀루스가 문득 옆의 시종장에게 속삭였다.

“정원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어라.”

“예, 폐하.”

곧 시종장이 누군가에게 손짓을 해 뒤의 정원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게 했다.

물론 드래곤이 들어오기에는 틈이 턱없이 작았으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드래곤이 그곳으로 몸을 옮겼다.

긴 꼬리를 출렁이며 그 앞으로 날아가 얌전히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밑으로 내려온 뒤에야 어미 드래곤이 파란 왕관도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카밀루스가 나오길 바라는 모양이었지만, 대관식 중에 움직이기는 어려운 터라 난감해하던 차였다.

이온은 제 옷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얼굴을 쏙 내밀어 기웃거리고 있던 욤뇽이가 주머니에서 튀어나와 바닥에 뛰어내렸다.

그에 당황한 이온이 작게 녀석을 불렀다.

“욤뇽아……!”

“꾸!”

한데 힘차게 대꾸하면서 아기 드래곤이 날아와 작은 입으로 이온의 팔소매를 물고 끌어당겼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아직 눈치채지는 못했으나 옆에 있는 미아블레 후작이 욤뇽이를 발견하고는 뭐냐는 눈빛을 보냈다.

그는 이렇게 작은 드래곤을 아직 보지 못한 터라 상황 파악이 안 된 것이다.

다만 설명을 할 시간 없이 아기 드래곤에게 끌려가 커다란 드래곤 앞에 다가갔다.

순간적으로 앞으로 나선 이온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쏠렸다.

하지만 이온은 일단 등이 따끔한 것을 애써 무시하며 어미 드래곤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욤뇽이가 왜 저를 여기다 데려다 놨는지 몰라 긴장하는데, 녀석이 먼저 어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어미 드래곤이 들고 있던 레갈리아와 왕관을 적당한 크기로 축소해서 자신의 아이에게 건네었다.

여전히 욤뇽이가 쓰기에는 너무 컸으나 녀석은 어미에게 그것을 건네받아 이온의 앞으로 도로 날아왔다.

이온은 욤뇽이가 그것을 저에게 건네려 하자 선뜻 받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성물들은 미아블레 가문의 사람이 아닌 제삼자가 만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고개를 돌려 미아블레 후작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내는데,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을 풀어 놨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

귀로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히 아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명확히 인식되는 그 소리에 이온은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도로 고개를 돌리니 어미 드래곤이 물빛 눈으로 이온을 빤히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 앞에서 욤뇽이가 얼른 받아 달라는 양 역시 눈을 깜빡이는 중이었다.

모자(母子)가 똑같은 표정으로 저를 보고 있는 것에 이온이 약간의 부담마저 느끼며 왕관과 레갈리아를 받았다.

마법을 풀어 놓은 게 정말인지, 이전처럼 손을 댔을 때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받아 들고 나자 드래곤이 이걸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 저절로 알게 된 이온이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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