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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병약한 도련님이 되었습니다 (314)화 (314/317)

장난스러운 물음에 이온은 손을 휘저어 그의 팔을 털어 내며 약간의 투덜거림을 섞어 말했다.

“계획을 짠 놈은 넌데 왜 나한테 물어? 그보다 여긴 왜 온 거야?”

말하면서 뒤돈 이온은 뒤늦게야 카밀루스가 시종 차림으로 변복했음을 알아차렸다.

시종 차림이라도 키도, 덩치도 커서 눈에 띌 거 같은데 잘도 빠져나온 모양이다.

대단하신 황제 폐하였다.

“……이런 짓까지 하고 황궁을 탈출하셨으니 이유는 있으시겠지?”

“네가 보고 싶어서.”

“거짓말 말고. 네가 그런 이유로 황궁 탈출을 감행했을 리는 없어.”

이온이 딱 잘라 말하자 카밀루스가 못 말리겠다는 양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곧 진지한 눈으로 이온을 바라보았다.

“맞아, 사실 용건이 있어서 왔어.”

“중요한 일이야?”

용건이 있으면 차라리 자신을 황궁으로 부르면 되는 일인데, 왜 시종의 옷으로 갈아입으면서까지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카밀루스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중요한 일이지. 그렇지만 남들은 알면 안 되는 거.”

“……뭔데?”

이온은 혹시 큰일이 생긴 건가 싶어 조금 긴장하며 카밀루스에게 물었다.

카밀루스는 쉽게 농담 따위를 입에 올리지는 않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카밀루스의 입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얼마 전의 황성에 나타났던 괴물을 기억하나? 파란 눈의 몬스터 말이야.”

“……멀리서밖에 보지는 못했지만 얘기 들었었어.”

대충은 알고 있다는 이온의 말에 카밀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해 봤는데 그건 아무래도 선선대 황제인 듯해.”

이온이 어깨를 움찔했다.

그 괴물은 다름 아닌 카밀루스의 손에 죽었다. 지금의 말이 사실이라면 카밀루스는 할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되는 거였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였다.

혹시나 카밀루스가 이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아닐지 염려되었던 이온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왜…… 그런 결론이 난 거야?”

감정을 일부러 자제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카밀루스는 감정을 절제한 어투로 말을 이어 갔다.

“괴물의 특징 중에 황실에 남아 있는 선선대 황제의 모습과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있거든. 예를 들어 흉터의 자리가 어디인지, 이가 어디가 빠졌는지…… 이런 부분들.”

“그래서?”

왜 그것을 지금 굳이 이 시점에 자신을 찾아와 이야기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은 이온이 그리 반응했다.

그에 카밀루스는 턱을 쓰다듬으며 약간 섬뜩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선선대 황제의 시신은 황실의 봉안당에 안치되어 있어. 그 시신은 가짜라는 소리인 거지.”

“…….”

“보러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선선대 황제가 죽은 것은 30년 가까이 된 일이다.

그를 기억하는 자도 많지 않은 상황인데, 그의 시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아는 자가 얼마나 될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기 위해서는 확실히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긴 할 터였다.

“같이 가자는 소리야?”

“배 속의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갈 거 같다면 동행하지는 않아도 돼. 그렇지만, 네게 아무 말도 안 하고 가기에는 마음이 걸리더군.”

“……왜.”

“어쨌든 너도 마리엘의 일에 휘말린 피해자이니까?”

꽤 합당한 카밀루스의 말에 이온은 잠시 침묵했다.

배 속의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

지금은 썩어 없어졌어야 하는 시신을 보러 가는 일이니 확실히 무서운 일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온은 카밀루스가 왜 자신에게 가자고 했는지 이해했다.

그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싶은 거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황실의 잔혹사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에 대해서.

지금은 그 굴레를 겨우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선선대 황제부터 카밀루스까지, 아니 어쩌면 이온의 배 속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친 이 일의 시작과 끝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온은 이 제안을 한 카밀루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카밀루스는 더 이상의 강요는 하지 않고 그저 이온의 선택을 기다리기만 했다.

두려운 일이지만, 이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나도 갈래. 확인하고 싶어.”

“그래, 그럼 내 손을 잡아.”

카밀루스가 손을 내미는 것에 이온이 그 위에 제 것을 얹었다.

손을 타고 흐르는 이온의 긴장감을 알아차렸는지 카밀루스가 다정히 달래는 소리를 했다.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널 지켜 줄 테니.”

“당연하지. 빨리 다녀오자, 황궁 시종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특히 시종장은 좀 무섭더라고 이야기하자 카밀루스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들의 모습이 그 즉시 이온의 방 안에서 사라졌다.

* * *

오브라이언의 영광을 함께했던 황제도 이제는 한둘은 아닌 터라, 왕조가 바뀔 때마다 이전 왕조의 황제들을 봉안해 둔 관들은 모두 황성 밖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현재 황성 안의 봉안당에 잠들어 있는 이들은 이번 클로델 황가의 황제와 그 황후뿐.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수가 꽤 되는 터라 봉안당은 허전하지 않을 정도로 채워져 있었다.

이온은 약간 으스스한 그곳을 카밀루스가 띄우는 빛을 따라 걸어가다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카밀루스.”

그러자 카밀루스가 곧장 제 팔을 붙든 이온의 손을 덮어 주며 달래는 소리를 했다.

“괜찮아, 별일은 없을 거야.”

이온은 봉안당의 내부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중간 배치되어 있는 촛대에 불을 일으키며 둘은 안쪽으로 들어섰다.

봉안당은 중앙의 홀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앞에 적힌 이름을 살피던 카밀루스가 그중 한 방의 문을 열었다.

“이곳이군.”

이온은 얼른 카밀루스의 뒤를 따랐다.

“관을 열어 보려고?”

“안으로 확인하려면 그 수밖에는 없지.”

“관을 훼손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모르는 일이야. 괜찮은 거 맞아? 게다가 관의 무게도 만만치 않고…….”

“원래대로 돌려 두면 그만이야. 꺼내는 것도 쉬운 일이고.”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이온을 한번 힐끗한 카밀루스가 이내 선선대 황제의 명패가 보이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작게 중얼거린다.

“넌 가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어버리는 모양이군.”

“뭐?”

잠시 뒤 덜컹거리며 봉안당의 벽에 세워져 있던 관이 움직였다.

이온이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소스라치게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움직인 관이 봉안당의 중앙에 고이 내려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온은 뒤늦게야 카밀루스의 마법에 의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스펠을 외우지도 않고, 마법진도 없이 발동한 탓에 귀신이라도 나오는 줄 알았다.

카밀루스는 제가 장담한 대로 금세 잘 봉인된 관의 뚜껑까지 열었다.

기이익, 관이 열리는 그 소름 끼치는 소리에 이온은 눈을 질끈 감고 카밀루스의 뒤로 숨었다.

그러자 관 뚜껑이 완전히 젖혀지기 전에 멈춘 카밀루스가 이온을 돌아보며 웃었다.

“무서워?”

“내가 아무리 간이 커도, 이건 너무 오컬트한데……?”

“겁먹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내 추측이 맞는다면 이 안에 있는 건 아마 사람이 아닐 거야.”

관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문제지만,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이 봉안당이라는 점도 문제라는 사실을 그는 잘 모르는 모양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탓에 겁 대가리가 없는 카밀루스를 이온이 살짝 흘겼다.

“그래서, 열어도 돼? 안 돼?”

“잠깐만, 심호흡 좀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온다고 할 걸 그랬다.

이온은 봉안당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때문에 뒷골이 수시로 오싹해지는 것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허락의 말을 읊었다.

“……여, 열어.”

겨우 마음의 준비를 한 건데 카밀루스가 제 팔을 끌어안은 채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고 있는 이온을 내려다보며 재차 물었다.

“진짜로?”

“진짜로! 빨리 좀 해.”

약간의 신경질까지 담아 이온이 외치는 소리에 카밀루스가 장난기가 가득한 웃음을 짓더니 이내 관의 뚜껑을 열었다.

이온은 다시 그의 뒤에 숨었다. 카밀루스가 다 됐다고 할 때까지 이러고 있을 작정이었다.

마침내 뚜껑을 완전히 열어젖힌 카밀루스가 그의 이름을 불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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