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온?”
“다 열었어? 별거 없어?”
“죽은 사람이 누워 있다는 것만 제외하고 말이야.”
“구, 구더기가 있지는 않지?”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아.”
카밀루스의 성실한 대답을 듣고 이온은 겨우 용기를 내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다행히 악취도, 구더기도 없었다. 대신 카밀루스의 말대로 사람이 검은 관 안에 누워 있었다.
카밀루스가 빛을 비춘 그곳을 내려다보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개체의 정보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처음 무언가를 대면할 때는 으레 나오는 그 메시지를 이온이 무심코 넘기려고 할 때였다.
“역시 사람은 아니군. 재니스와 같이 마리엘이 만든 거야.”
“……그걸 어떻게 한눈에 알아?”
이온이 묻자 카밀루스가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개체의 정보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이온은 방금 제 눈앞에 떴던 메시지를 그대로 읊는 카밀루스의 말에 더욱 의아해했다.
“그 메시지에 문제가 있어?”
“처음 보는 사람인데 정보가 없으면 ‘상대방의 정보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라고 뜨니까. 하지만 이건 ‘개체’라고 언급하고 있으니 사람이 아닌 거야.”
“…….”
이온은 지금까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그 차이를 이제야 알아차리고는 입술을 움찔했다.
그리고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재니스를 처음 봤을 때도 그렇게 나왔던 거 같아.”
“……그랬군.”
제 앞의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보며 이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먼저 알았으면 헤매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네.”
“이제 와서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지.”
이온을 안심키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카밀루스가 그렇게 잘라 말하며 관 앞으로 다가갔다.
이온은 아직 그곳과는 거리를 둔 채로 물었다.
“그럼 여긴 왜 온 거야?”
“마리엘이 선선대 황제를 그렇게 괴물을 만든 데는 분명 선황의 묵인이 있었을 거야. 실제로 선선대 황제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명확히 적힌 황실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더군.”
카밀루스의 설명에 이온은 크레이거 공작이 들려주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황으로서는 자신의 아버지를 좋아할 이유가 없었겠지.”
사실상 선선대 황제는 로제니아를 이용하려 한 자이니 말이다.
단지 그를 도운 크레이거 공작이나 그녀의 태를 빌려 태어난 카밀루스를 평생 미워했던 선황이다.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는 제 아비를 증오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심한 모순이다.
생각하는 사이 카밀루스가 의문을 더했다.
“선선대 황제는 왜 마리엘을 이용해야 했을까. 그는 클로델 황가를 영원히 보존해 줄 강한 힘을 원했던 것이 분명해. 하지만 이상한 일이지.”
“뭐가?”
“인간이라면 보통 자기가 강해지는 길을 찾게 마련이야. 아무리 가문이 먼저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도 결국 제 자신이 제일 중요하지. 그다음에야 가까운 사람을 챙기는 것이지. 사실 후대 따위 알 게 뭔가 하는 사람들도 있고.”
말을 들으면서 이온은 저와 가장 가까운 사례를 떠올렸다.
크레이거 공작 말이다.
가문의 신념보다 결국은 아들을 중시했던 그를 상기하니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걸 보고서 뭔가 알아낼 수 있어?”
“한 번이라도 움직인 적이 있다면…… 남아 있는 기억을 볼 수도 있겠지. 마리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미친 인간이었거든.”
“무슨 뜻이야?”
“재니스를 진짜 사람처럼 만들었지 않나. 재니스에 대한 기록은 이미 30년 전에도 있었어. 그런데 그간 한 번도 들키지 않은 거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든 거지?”
“……그건 그래.”
카밀루스가 지적하는 부분은 이온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듣고 나니 확실히 정상적인 상황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마법으로 만든 거지.”
“그럼 마법으로 이 안의 기억을 볼 수 있는 거야?”
“이론상으로는.”
카밀루스의 말을 듣고 이온은 마른침을 삼켰다.
생각보다 용건이 길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공작 저에 이미 황궁의 시종들이 들이닥쳤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 두 번 오는 일은 사양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온은 돌아가자고 채근하지 않고 카밀루스가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카밀루스는 관 안의 가짜 시신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살피다가 그것의 이마에 손을 대고 어떤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법에는 문외한인 이온은 몇 걸음을 떨어져 지켜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온과 카밀루스의 눈앞에 푸른빛의 마나가 흩어지는가 싶더니, 곧 어떤 광경이 펼쳐졌다.
[개체의 기억을 재생 중입니다.]
“……!”
카밀루스의 마법이 성공한 모양이었다.
이온과 카밀루스의 눈이 모두 그곳에 모였다.
펼쳐진 기억의 첫 번째 장면엔 한 남자가 등장했다.
관 속에 누워 있는 가짜 시신과 얼굴이 같은 것으로 보아, 그가 선선대 황제임을 알아차렸다.
이온은 이것이 눈앞의 ‘개체’가 탄생한 순간이자 선선대 황제가 죽은 그때의 기억임을 눈치챘다.
그리고.
[시스템의 비밀 파헤치기]
[조건을 충족하여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본 시스템의 적용이 종료됩니다.]
[시스템 소멸 시간까지 앞으로 0시간 59분 59초…….]
[시스템의 정리를 하기 전 조회할 수 있는 정보들을 조회하여 보여 드립니다.]
[현재 플레이어가 사망할 확률은 2%입니다.]
[플레이어의 최종 생존 확률을 계산하는 중…….]
[‘카밀루스 발데라스 클로델’의 목표 달성 확률을 계산하는 중…….]
이온과 카밀루스는 다시 눈을 뜬 뒤부터 그들의 머리를 지배하여 오던 시스템의 마지막을 마주했다.
그들이 염원하던 순간이었다.
* * *
과거를 선선대 황제의 행각을 들여다보며, 시스템의 근원을 알게 된 이후 정말로 매일같이 눈을 뜨면 제 사망 확률을 띄우던 시스템이 소멸했다.
이온은 그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데다, 8년간 익숙해진 탓인지 오히려 허전함을 느끼기도 했다.
사실 저의 생존을 위한 가이드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라 몸의 변화를 훨씬 예민하게 받아들게 되었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이온, 이온! 준비가 아직인 게냐?”
거울 앞에 서서 꽤 볼록해져 이제 옷을 입어도 조금씩 티가 나기 시작한 몸에 심란해져 있을 때였다.
밑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이온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나가요!”
그러고 나니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에렌스트 경이 문을 열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도련님, 그만 나오셔야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채근을 하는 것을 보니 밖에 이미 황실에서 보낸 마차가 도착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