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모집합니다]
내가 늘 지나는 곳에 컴퓨터 세탁이라는 데가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궁금했다. 컴퓨터를 세탁한다는 의미일까, 컴퓨터로 세탁한다는 의미일까, 컴퓨터가 세탁한다는 의미일까, 컴퓨터와 세탁한다는 의미일까……. 너무 궁금해서 친구한테 물어봤다가 귓방망이 맞고 닥칠 수밖에 없었다. 아, 존나, 내가 뭘 어쨌다고.
그리고 우리 학교 뒷산에는 정말 엄청 이쁜 집이 있었다. 나는 늘 그 집을 보면서 침을 흘렸다. 저기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저기에서 내려다보는 이곳은 얼마나 촌스러울까, 저 산에 올라가면 우리 학교 뒤에 논이나 밭 같은 것도 다 보이던데 풍경이 얼마나 좋을까, 산 속에 있으니까 공기도 맑겠지. 게다가 내 자리에서 직빵으로 보이는 집이라 매일 보는 내내 행복했다. 하얗고 커다랗고 이쁜 그 집은 유난히 평평하게 깔린 잔디밭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옆 산에 계곡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산으로 놀러 다니는 것도 재밌겠지 싶었다.
하루는 그 집에 누가 사는지 너무 궁금해서 친구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새끼는 저번처럼 귓방망이 대신 한숨을 동반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거기 골프장이야…….”
아, 어쩐지……. 이상하게 집주변으로 모기장 같은 게 쳐져 있다 했다. 산 속이라 벌레가 많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 친구와 사이좋게 졸업한 나는 그 친구 집에 기어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 친구는 밤까지 일하고 늦게 들어와 꼭 밥을 챙겨먹고 컴퓨터를 했다. 나는 낮 내내 놀다가 밤에 그 친구 기어들어 와서 차려 먹는 밥 옆에서 얻어먹고 잤다. 왜냐면 난 밥 할 줄도 모르고 밖에 전혀 나가질 않으니 움직일 일이 없어서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날 보고 그 친구는 독한 건지 그냥 병신인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제발 좀 일 좀 하라고,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냐고 닦달하는 친구가 미울 때도 많다. 그러나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밥 먹을 땐 닥치고 3일 굶은 사람처럼 후딱 해치우고 이불 속에 기어들어가려는 내게 억지로 칫솔을 쥐어준다. 그거 닦고 그냥 자버리면 그 잔소리 들을 새도 없어진다.
이상할 정도로 아주 편하게 그 친구와 동거를 하면서 나의 하루하루는 편하고 아늑했다. 한 번도 갠 적 없는 이불에서 거의 하루의 반 이상은 지내면서 잠깐 게임 좀 하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려운 곳만 골라 씻었다.
거시기가 가려우면 거시기만……. 등이 가려우면 등만……. 똥꼬가 가려운 똥꼬만…….
어느 날 나는 아주 재밌는 걸 발견했다. 그 전단지는 정말 우연치 않게 친구가 한 번이라도 산책 하라고 떠밀 던 그 때 집 앞에서 주웠다. 20초 만에 끝난 산책을 뒤로하고 집안으로 들어가 친구에게 전단지를 보여주었다.
“요즘에는 개도 고용하나봐.”
너무 재밌어서 웃으면서 보여주자 그 친구가 또 귓방망이를 날렸다.
“그 개가 아니라……. 성노예 같은 걸 말하는 거야, 병신아.”
“아하, 근데 그걸 이렇게 전단지로 뿌려도 돼?”
“몰라, 그러니까 개라고 표현한 거지, 띨빡아. 요즘 이거 은근 유행이야.”
확실히 개 고용한다면서 전단지 어디에도 고용할 개에 관한 세부적인 설명이 수컷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키 180에 20대 초반 환영……. 뭐 이런 소리 밖에 없다. 개가 수명이 10년 안팎인 걸로 아는데 20살이면 조상급이네……. 키 180은 몸길이 말하는 거야, 높이를 말하는 거야? 근데 요즘은 개를 성노예로도 쓰나, 세상 참 특이해졌다.
전화를 주거나 우편으로 이력서랑 프로필이랑 사진 보내라고 되어 있다. 존나 재밌겠다. 나는 얼른 친구가 쓰다 남은 이력서를 찾아서 바닥에 놓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볼펜을 들었다. 월 오백이래, 오백……. 개인차가 있다고 하네, 그럼 오백이든 천이든 준다는 거 아니야? 그냥 개만 보내놓고 주인은 돈만 받을 수 있잖아.
동네에 똥개 많이 돌아다니는데 그거 주워다 한번 해봐야겠다.
이력서는 아무래도 나에 대해서 쓰는 거니까 일단 쓸 수 있는 것부터 쓰고 A4용지 한 장 프린터기에서 빼다 놓고 다시 전단지를 찬찬히 읽었다. 이름과 나이, 주민등록번호, 키, 몸무게……. 주민등록번호 들어간 거 보니까 이것도 주인 거 쓰는 건가 보네. 근데 나 몸무게 몇인지 모르는데…….
그리고 사진 동봉, 나 사진 찍은 거 없는데. 일단 쓸 수 있는 것부터 써야겠다. 이름과 나이, 하다가 나이에서 막혔다. 당장 친구한테 또 물어본다.
“야, 나 몇 살이냐?”
“병신아, 스물한 살! 나랑 갑이잖아.”
“옳거니, 그럼 나 키 몇이야?”
“너 나보다 3센치인가 작잖아, 178인가.”
“아, 나 왜 이렇게 작냐…….”
“뭐가 작냐, 씨발놈아. 내 주변에 170도 안 되는 새끼들 많다.”
“서울 평균이 174라고 저번에 봤었어.”
“그러냐, 그럼 평균 이상이잖아, 뭐가 작데?”
“너보다 작으면 작은 거지……. 근데 몸무게는 몇이지?”
“몰라.”
“그럼 대충 얼마일 것 같아?”
신나게 게임하던 친구는 잠깐 정지시키고 헤드폰을 낀 채 나를 돌아보았다. 엎드려 진 채였던 나는 조금 몸을 틀어서 내 전체를 보여주었고, 나를 훑어보던 친구는 갑자기 인상을 쓰면서 전단지를 가리켰다.
“너 뭐하냐?”
“응, 나도 보내보게.”
“미쳤어?”
“월 5백 이상이래.”
“씨발, 이 새끼가 아주 하다하다 별 지랄을 다 떤다!”
이력서니 A4용지니 전단지니 갑자기 달려들어 박박 찢은 친구는 나를 팍 째려봤다. 너무 무서워서 얼른 이불 쪽으로 기어가 베개를 머리에 썼다. 제발 발로는 차지 마, 하고 중얼거리면서 엎드려 떨고 있는 나를 한참 가만히 두던 친구는 드디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귓방망이까진 참을 수 있어도 발로 차는 건 도저히 못 참겠어!
결국 내 쪽에서 선제공격을 하기 위해 친구의 다리를 물어버렸다. 뜻밖의 공격에 당황한 친구는 그대로 나를 걷어 차버려 우려했던 결과와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문다고 덤비는 바람에 얼굴을 차여서 평소의 배는 고통스러웠다. 존나, 아주 날 죽여라, 죽여.
“가, 갑자기 물면 어떡해, 놀랐잖아! 야, 괜찮냐?”
“아, 씨발, 존나 아퍼 죽겠어!”
“봐봐, 코는 어때?”
“광대뼈 맞았어.”
“봐봐.”
목을 그냥 잡아 뜯어도 이거보단 덜 아플 거다. 얼굴을 있는 힘껏 들어 올리는 바람에 엉성하게 반 정도 앉아 있는 자세가 되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그 새끼는 괜히 내 광대뼈를 꾹 꾹 누른다.
“씨발, 됐으니까 저런 거 하지 마. 이제 일 하라고 구박 안 할 테니까.”
“싫어, 할 거야.”
“뭐, 설마 돈 때문에? 너 혹시 빚 있냐?”
“아니, 그냥 돈 많으면 좋잖아.”
“개새끼, 씨발 니가 뭘 모르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지? 너 그냥 여기 짱 박혀 있어, 여기서 한 발짝이라도 나오면 성대 도려내고 거세시켜버릴 거야.”
“아, 그런 게 어딨어, 그럼 나 뭐하면서 살라고.”
“원래 나가지도 않잖아!”
“아, 싫어! 그럼 나 산책 시켜줘.”
“니가 개냐?”
“그래, 나 니 개 할 거니까 산책 시켜주고 밖에서 맛있는 것도 사줘!”
“씨발, 알았으니까 그 대신 저딴 짓 한 번만 더 해봐, 숟가락으로 눈알 떠먹어버릴 거니까.”
“알았어, 주인님.”
내 옷을 잡아끌면서 억지로 화장실에 처박은 다음 열심히 머릴 감겨주는 친구에게 괜히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일 하라고 구박도 안 하고 맛있는 것도 사준다고 약속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완전 극락이 따로 없다.
2주 동안 안 감은 머리를 거의 빨래하듯 감겨준 친구는 간만에 한 세수와 면도를 통해 내 얼굴에서 광나는 걸 보고 감탄을 해댔다. 이렇게 깔끔하게만 하고 다니면 정말 봐줄만 한 얼굴인데 내 자신이 너무 자각이 없다는 거다. 자각이 없기는 무슨, 원래부터 나 잘나고 멋있는 거 알고 있었는데.
한 번만 더 나한테 섭섭하게 굴면 개 모집한다는 곳에 이력서 보내버린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친구와 닭 먹으러 갔다. 간만에 먹는 고기는 정말 예술이었다.
***
몇 년을 같이 사는 친구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 내가 그 전단지 아까운 건 알아서 며칠 동안 꿈자리가 사나웠다. 너무 아까운 기회야, 길가는 똥개 잡아다 보내놓고 돈만 받아먹을 수 있는 기회인데, 결국 화병 나서 시름시름 앓는 나 때문에 일을 하루 쉬기까지 하는 친구는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아픈 거냐고 속상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계속 전복죽 사줘, 전복죽 사줘 해놓고 귓방망이 맞을 까봐 방어하는 내게 진짜로 죽을 사주기까지 했다.
오늘따라 너무 친절한 친구가 좋아서 절로 멍청한 웃음이 났다. 이는 닦았냐고 코 쥐는 친구 면전에 대고 계속 웃다가 계속 누워만 있었더니 여기저기가 마구 가려워왔다. 잠깐 컴퓨터로 뭘 실컷 하는 친구 뒤통수 보면서 엉덩이 벅벅, 등 벅벅, 목 벅벅, 고추 벅벅 하다가 그 소리가 좀 요란했는지 갑자기 친구가 도끼눈을 하고 팍 째려본다. 진짜 잠결에 봤으면 세상 하직할 뻔했다.
“그만 긁고 잠 안자?”
“몸에 지렁이 기어다니는 느낌 알아?”
“너 목욕한지 며칠 됐냐?”
“몰라, 작년 추석 때 하고…….”
아, 친구가 알면 안 되는 사실을 모르고 말해버렸다. 유난히 깔끔 떠는 친구는 늘 내게 ‘너무 더러우니까 절대 그 이불 밖으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 라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했다. 약속대로 이불 밖으로는 거의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나는 당연히 때가 꼬질꼬질하고 냄새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저번에 내 머리를 감겨주는 통에 얼굴에 기름기와 머리의 기름이 가시긴 했지만 그것도 다음 주 즘 되면 원상복구 될 거다.
코에 손가락 꽂고 흥흥거리다 꽤 만족스러운 크기를 가진 놈이 손톱에 꼽혀 나오는 것을 보고 실실 쪼개면서 그걸 이불에 바르는 동시에 친구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간만에 집에서 쉬게 되니 내가 낮만 되면 늘 하는 짓거리를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게 되어 나오는 반응이다. 그 면전에 대고 또 히히 웃어보이자 그 친구는 결국 못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근처로 쿵쿵거리며 온 그 친구는 나를 손가락으로 딱 가리켰다.
왜 친구한테 삿대질이야, 못마땅한 내 얼굴은 씰룩이며 또 콧속으로 돌진하는 손가락을 보고는 눈이 좀 커지다 악 하고 소리 지른다.
“멈춰!”
막 코 입구에 걸쳐진 손가락을 멈추고 이상해서 올려다본 그 곳에는 친구의 손가락이 천천히 어디로 향한다. 딱 보니 화장실 쪽이다. 에잉, 일어나기 귀찮은데. 열도 아직 안 내렸고, 졸려서 몸도 안 움직이는데 웬 화장실이야?
“들어 가.”
발로 위협하면서 몰길래 하는 수 없이 일어나서 겨우 화장실로 기어들어갔다. 손가락은 코에 박은 채로 이도 저도 못하고 들어가서 가만히 서 있었더니 친구가 또 내 꼴에 눈을 찌푸리며 옷 벗으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삭 다 벗고 코 청소에 돌입하는 중에 내가 사랑하는 이불들을 나르는 친구는 죄다 세탁기 안으로 집어넣어 버린다. 아, 내 냄새가 가득 베인 그 사랑스러운 것들을 왜!
근데 따지는 것도 귀찮아 변기 위에 앉아서 파다 나온 코들을 대충 세면대에 발랐다. 친구가 깔끔쟁이란 건 정말 좋은 거다. 지가 알아서 다 치워준다.
그리고 멍 때리고 있으니 식식거리며 들어오는 친구는 샤워기를 틀더니 내게 다가오라고 손짓한다. 내가 개냐, 씹고 가만히 있으니까 내 팔을 잡아끈다. 그러다 발견한 세면대 위의 녹색 이물질을 보고 온 인상을 다 쓰면서 샤워기로 공격해 하수구로 전부 밀어 넣는다. 이래서 친구가 깔끔하면 좋지.
내 면전으로 날아오는 샤워기 공격에 놀라서 뒤로 자빠지자 놀란 친구는 내 팔을 다시 잡아끌며 괜찮으냐고 한다. 넘어가면서 벽에 머리를 부딪쳐 버렸다. 근데 난 그냥 다시 밑에 굴러다니던 화장실 의자 하나 꺼내다 앉았다.
“괘, 괜찮아?”
“어, 뭐?”
“벽에 부딪치면서 소리 엄청 크게 났어.”
“그래?”
“어……. 머리가 돌이지, 넌?”
“응.”
“후…….”
타올에 거품 내던 친구는 드디어 내 몸을 벅벅 닦기 시작했다. 내 팔을 북하고 미끄러져갈 때 나는 숨이 헉하고 막혔다. 또 한 번 미끄러질 땐 신음소리가 났다. 세 번째 미끄러질 땐 진짜 울음소리가 났다. 그리고 팔에 이어 등을 할 땐 비명을 지르며 굴러야했다. 바닥에 널부러져 경련하는 내 몸을 온 힘을 다해 북북 밀며 닦는 친구는 내가 비명을 지르면 지를수록 쾌락을 느끼는 것 같았다.
등에 이어 앞판을 할 때는 더욱 신이 나 있었다. 제발 봐 달라고 기어 다니는 나를 끌어다 눕혀놓고 시원하게 두 손이 내 몸 위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했다. 그 속도에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면서 비명과 신음소리를 내야 했다.
특히 허벅지 안쪽 살을 빛의 속도로 마구 문질러댈 때는 눈앞이 하얘지면서 그 부분이 전부 찢겨나가 너덜너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공포의 목욕시간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반쯤 정신 놓고 숨을 고르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내 몸을 샤워기로 전부 씻기더니 초록색의 흉물스러운 것을 손에 끼우기 시작했다. 얼른 몸을 가누고 벽 쪽으로 붙어 마구 고개를 저었지만 친구의 미소는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일수야, 착하지? 형아가 깨끗하게 씻겨줄게.”
내 이름은 일수다. 별명은 일수대출, 사채 등등 뭐 그런 쪽이고 본명은 남일수다. 이름은 남자답고 왠지 수학을 잘할 것 같은데 실제론 이렇게 산다.
초록색 때타올을 피해서 화장실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다가 결국 비누거품 가득한 바닥 때문에 미끄러져 또 머리를 박았다.
잠시 주춤한 틈을 타서 얼른 일어나 화장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더니 그대로 내 팔을 잡아끌어 바닥으로 패대기친다. 이젠 내가 웬만한 충격에도 끄떡없다는 걸 안 이상 거칠게 다루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기어서 도망가려고 개처럼 엎드린 내 허리를 뒤에서 껴안고 내 등을 박박 민다. 정말 민망한 자세지만 내게는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도 없어서 발버둥 치기 바쁘다. 결국 바닥으로 무너지는 어깨 때문에 남들이 보면 오해하기 딱 좋은 자세가 되어 사정없이 등이 밀어졌다. 보나마나 면발 뽑듯 줄줄이 나올 게 뻔하다.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그 양은 어느 정도 측정이 가능하다.
“크헉, 허억, 씨발, 허억……. 잠자리표 지우개도 너보단 덜 나와, 아주 옷을 한 겹 더 입고 살았구만?”
“으, 흐윽, 흑, 제, 제발……. 나, 나 죽어, 죽어!”
“헉, 허억, 이웃 사람들 오해할 만한 신음소리는 그만 내라, 응?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허억…….”
“니, 니도 만만치 않, 않잖……. 흐윽, 아퍼…….”
“씨발, 니가 밀어 봐, 팔 아퍼 죽겠네, 왜 밀어도 밀어도 계속 나와, 허억, 헉!”
결국 전신을 밀린 나는 도저히 처리 불가능한 때더미 때문에 난감해하는 친구 대신 눈치 보며 내 몸을 내가 씻었다. 확실히 몸무게도 5킬로는 줄었을 거다. 결국 봉다리 하나 가져다 담아서 버리는 친구를 보고 조금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머리도 시원하게 감겨준 친구는 세수뿐만 아니라 또 면도에 이까지 닦아줬다. 갈수록 깔끔해지는 내 용모에 기분이 좋아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화장실을 들어온 지 두 시간, 겨우 목욕을 마친 우리 둘은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바로 바닥에 쓰러졌다. 친구는 때를 미느라, 나는 때를 밀리면서 비명을 지르느라 진이 다 빠져 목까지 쉬고 말았다. 그래도 부지런한 친구는 서둘러 새 이불을 꺼내고 내게 새 옷을 입혀 주었다. 음, 내 손으로 목욕한 게 아니라 그런지 상쾌하고 기분은 좋다.
새 이불 위에 바로 뒹구는 나를 보고 놀란 친구는 또 나를 일으켜 앉힌다.
“아, 왜.”
“머리 말려야지, 그냥 누워?”
“뭘 따져, 기냥 기냥 살지.”
“안 돼, 머리 대.”
피곤하고 귀찮아서 대충 고개를 팍 숙여 머리를 보이자 드라이기를 가져다 말려준다. 음, 그래도 남의 손이 내 머리를 만져주는 건 좋다. 기분 죽이네. 거의 다 말렸을 땐 아예 그 친구 품으로 돌진해 버렸다.
“내가 친구 하나는 진짜 잘 뒀지? 니가 나 그냥 키워라, 평생 동안 나 키워, 내가 니 집 개 한다, 개.”
“늙으면 돈 벌어서 나가야지 내가 왜 키워? 여자도 아니고 냄새 나는 남자새끼를.”
“냄새라니, 지금 냄새 나? 안 나잖아, 그러니까 키워.”
“병신새끼.”
나 병신이라는 놈 좋다고 웃어보이자 마주 웃는다. 새끼, 이쁜 것. 다시 그 목을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에잉, 아깝다. 내가 여자였으면 시집갔을 텐데.”
“밥도 못하고 냄새나는 너 같은 년 필요 없어, 줘도 안 가져.”
“그래도 시집갈래요.”
“지랄.”
근데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친구 이름이 생각 안 날까?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다.
“근데 니 이름이 뭐였지?”
“개새끼.”
“어, 진짜?”
“야.”
인상을 쓰는 그 친구는 지금 장난하는 거냐며 역시 또 귓방망이를 날린다. 맞아도 생각 안 나고, 얼굴을 아무리 오래 바라봐도 생각이 안 난다. 이름을 불러본 지 너무 한참 돼서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그렇지, 친구 이름이 왜 생각 안 나지?
기억하는 게 귀찮아서 기억하다가 포기한 것 같다. 그게 아니면 답이 없다.
“진짜 모르는 거야?”
“어.”
“왜?”
“몰라, 나 가끔 내 이름도 가물가물해.”
“병신새끼, 머리를 그 따위로 다루는데 속이 멀쩡하겠냐?”
“아, 이름 뭐냐고.”
“김종태!”
화가 잔뜩 난 친구는 씩씩댄다. 그래서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맞다, 니 별명이 태종이었지!”
“씨발, 지금 장난 하냐고.”
“왜, 까먹을 수도 있지, 일찍일찍 좀 들어와 봐라, 내가 안 까먹어주고 매일 이름 불러준다.”
“뭐야, 내가 늦게 들어오는 게 섭해서 그러는 거야?”
약간 태종이 얼굴이 누그러진다. 솔직히 그렇게 친했던 친구인데 매일 얼굴 제대로 못 보고 살면 짜증나고 싫은 게 당연하지. 얘기 나눈 지도 한참 됐고, 이제는 고등학교 때의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지는 것 같다. 괘씸함에 그 새끼 가슴팍에 머리를 한 대 쿵 박아보자 아야, 하고 맞은 데를 문지른다.
상당히 억울해하는 표정이 된 태종이는 한참 맞은 데를 문지르면서 작은 목소리를 낸다.
“내가 너까지 먹여 살리는데 당연히 바쁘지, 돈이 땅 파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결론은 나도 일하라?”
“아니, 늦게 들어와도 참아라.”
“아이구, 난 잠이나 자야겠다.”
한참이나 태종이 목 뒤로 두르고 있던 팔을 풀고 이불 속에 기어들어갔다. 그러자 삐쳤냐며 나를 건드리는 손이 있었지만 계속 무시하고 잠을 청했다. 목욕한 뒤라 그런지 솔솔 오는 잠 속에서 내 몸을 끌어안고 머리에 코를 박는 태종이의 체온이 느껴졌다.
징그러운 새끼, 하지만 이미 내가 먼저 시작했던 짓이기 때문에 몸을 돌려 마주 끌어안았다. 남이 보면 흉하다고 욕이 튀어나오는 이상한 짓이지만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으니 태종이의 가슴에 얼굴을 쑤셔 넣었다. 그 광고지 찾아서 이력서랑 보내봐야겠다. 몰래 넣어놓고 나중에 돈 나올 때 짠, 하고 돈을 보여주면 태종이도 절로 일찍 들어오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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