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35)

  

광고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예상 외로 단박에 붙어 면접 보러 오라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도 동네를 쏘다니며 떠도는 개들을 찾았지만 다가오는 복날 때문인지 거리 어디에도 똥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긴, 하루 5분 이상 바깥에 있어본 적이 없으니 그 짧은 시간 동안 못 찾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태종이 몰래 태종이 옷까지 꺼내 입고 일단 배째라 식으로 면접 본다는 곳을 찾았다. 개야 나중에 보여준다고 치고 지금은 개장수한테 끌려갈까봐 무서워서 못 데리고 나왔다고 구라쳐야겠다.

  

일단 존나 큰 집이었다. 그 큰 집에서 산다니 존나 부러웠다. 좋아, 여기서 붙으면 내가 태종이한테 이런 집도 하나 사주고 호강시켜줘야겠다. 그럼 태종이도 이제 귓방망이 안 때리고 나 이뻐해주겠지.

  

안내 되는 곳으로 향하자 거실로 추정되는 널따란 허허벌판 한 가운데 있는 소파에서 두 명이 일어난다. 둘 다 상당히 깔끔해 보이고 외모도 기집애들 한 트럭씩 끼고 살 만 하다. 저렇게 멀쩡하게 생겨서 개를 성욕 푸는데 모집을 다 해? 혹시 남모를 고민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좀 불쌍해 보였다. 손까지 들며 아는 척 하고 다가가자 나보고 맞은편에 앉으라고 말한다. 딱히 예의 차리지도 않는다.

  

그냥 내 얼굴 보고 좀 놀라더니 앉으라는 말만 하고 표정은 진품명품 심사의원 저리 가라다. 근데 왜 개에 대해서 안 묻지, 궁금할 텐데.

  

“사진하고 좀 많이 다른데?”

  

처음부터 반말한다. 편하게 하자는 거구나, 소파에 거의 반은 누운 상태로 앉아있던 나는 한 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척 올려서 덜덜덜 떨었다.

  

“친구사진.”

  

내 사진 없고 찍기 귀찮아서 태종이 사진 중에 제일 멋있게 나온 거 넣었다. 어차피 중요한 건 개지 주인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두 명은 좀 당황한 눈초리였다.

  

“왜 댁 걸 안 넣고 친구 걸 넣었지? 이런 식으로 사기 치면 곤란한데.”

  

다리 덜덜 떨면서 앞에 남자가 내놓은 태종이 사진을 보았다. 설마 이 사람들 태종이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뽑은 건가, 그럼 좀 상황이 웃기다. 남자 주제에 왜 남자 사진에 뻑가고 그래, 어이가 없어서 그 사진 내려다보고 식 웃었다. 태종이가 좀 생기긴 했지.

  

내 앞으로 놓아지는 커피잔을 가져다 들이켰다. 빈속에 먹으면 안 좋다지만 지금 든 게 없어서 배고프다. 이거라도 마시고 가자.

  

“귀찮아서.”

  

한 번에 원샷한 잔을 내 머리 위로 털면서 확인하고 다시 탁자에 내려놨다. 둘은 벙벙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왜, 안 돼? 안 되면 말고.”

  

잘 보니 한 쪽은 그래도 크게 표정 변화가 없다. 다른 한 쪽은 좀 더 까불거리게 생겼다. 근데 이젠 별로 신경 쓸 것도 없다. 사진 잘못 넣었다고 떨어뜨리다니, 나쁜 새끼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내가 들어왔던 쪽으로 향했다. 둘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좀 착하네, 배웅은 해주려나 보다. 태종이 호강은 시켜주고 싶었는데. 이런 집은 나중에 로또라도 질러서 사줘야겠다.

  

주머니 속에 집 열쇠를 쥐고 꼼지락 대면서 걷는 도중 갑자기 내 어깨를 잡아서 확 돌린다. 좀 까불게 생긴 쪽이다. 남의 집 냄새 이렇게 오래 맡아본 적이 처음이라 그런가, 좀 피곤하다. 그래서 아까부터 눈은 반만 뜨고 다녔었다. 이 기운 없는 얼굴 보면 보는 사람도 기운이 딸려지던데 그런 건 없나보다. 이 사람 참 눈이 맑다.

  

“어딜 가?”

“집.”

“면접 안 끝났어.”

“부정행위한 거라며, 그럼 게임 끝이지, 뭐.”

“이게 무슨 수능 같은 건 줄 아냐?”

“밥 줘?”

“뭐?”

“면접 다 보면 밥은 줘? 버스 타고 여기까지 30분이나 걸렸어, 밥은 줘야지. 뭐, 안 주면 말고.”

  

집에 가서 태종이 올 때까지 누워 있다가 오면 차리는 거 먹어야지, 그 생각하면서 다시 나가려고 하니까 지겹게도 또 잡는다. 왜냐고 막 돌아볼 참에 본 놈은 방금 그 까불거리게 생긴 남자가 아니라 좀 표정이 없고 어둡게 생긴 남자다. 그 남자는 이상하게 날 쏘아보면서 말했다.

  

“밥 준다.”

  

아, 착한 놈이다.

  

“그렇지, 이런 큰 집에서 사람 굶긴다는 게 말이나 되냐.”

  

기뻐서 한 말인데 어둡게 생긴 남자는 별 말 없이 그냥 돌아서 어디 쪽으로 가고 까불거리게 생긴 남자는 잠깐 나와 그 남자를 계속 번갈아보다가 내게 그 쪽으로 따라가라고 말한다. 왠지 거기로 가면 이태리 식당이 있을 것 같다. 가는 길에 횡단보도도 있을 것 같고 약국도 있을 것 같다. 이리 큰 집에 보아하니 둘이 사는 모양인데, 개들 한 20마리 풀어놔도 모를 것 같다.

  

만약 이런 집을 사게 되면 제일 먼저 집안에다가 식당을 만들 거다. 그러면 거기서 밥이 딱딱 나오고, 그런 다음 때밀이도 고용해서 목욕탕을 만들 거다. 그리고 영화관도 만들고, 침대만 잔뜩 있는 침대방도 만들 거다. 아마 침대방 생기고 난 다음부터는 식당이니 목욕탕이니 갈 일이 없어지겠다.

  

난 그 날 한 일이 없었다. 면접이라 해놓고 밥을 먹고 조금 얘기 하다 안내해주는 방에서 잠을 잤을 뿐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면접에 합격해 내 개가 아닌 나 자신이 바로 그 집에서 길러지는 개로서 눌러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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