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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운 감에 몸을 조금 비틀자 땀이 묻어나는 소리가 난다. 이상할 정도로 푹신한 이불이 팔 다리와 목에 기분 좋게 쓸린다. 하지만 너무 덥다. 머리를 움직였더니 머리카락이 전부 땀으로 젖어 있다. 그런 머리엔 손도 대기 싫어서 눈만 겨우 뜨고 상황을 살펴보았다. 어제 자라고 안내해준 그 방이 맞다. 벽지가 파란색이라 잘 기억한다. 이상할 정도로 침대가 컸지만 부잣집이라 당연히 그런 거라고 판단했다.
나는 설마하니 그 침대에 주인이 따로 있을 줄은 몰랐다. 내 옆에 누워있는 남자애는 나와 머리를 맞댄 채로 자고 있다. 내 허리 위로 팔을 걸치고, 내 다리 위로 제 다리를 걸치면서 자고 있다. 겉보기에 조금 개구쟁이처럼 생겨서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 그 쯤 되었을 것 같다.
음, 이제야 또 깨달은 게 있다. 몸이 너무 붙어 있어서 몰랐던 부분을 몸을 일으키다 이제 발견했다. 내 바지 속에 이 남자애 손이 들어가 있다. 남자이기 때문에 겪는 내 아침의 영광을 그 남자애가 쥐고 있다. 나를 제 형으로 착각했나, 제 아빠로 착각했나, 이상해서 손을 빼다가 죽이는 기분에 잠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몸을 일으키고 본 남자애는 생각보다 재밌다. 팬티바람으로 손목에는 비싼 시계를 차고 있다. 팬티와 시계라니, 아무리 잘 때는 지 편한 데로 입고 자는 거라지만 너무 병신 같다. 그 찌질함을 비웃으면서 내 몸을 내려다봤다. 씨발, 맞다. 몰래 가져온 태종이 옷을 입고 자고 있었다. 다 구겨져서 흉하게 변한 태종이의 옷을 보니 또 귓방망이 맞게 생겼다.
일단 널찍한 침대에서 겨우 내려와 옷부터 벗어던졌다. 그리고 염치라곤 키운 적이 없는 난 그냥 앞에 있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얼추 사이즈도 맞고 부자니까 막 집어가도 상관없을 것 같다. 게다가 옷 입는 건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모양인지 옷방이 따로 있을 줄 알았던 내 생각과 달리 널찍한 방에 티비와 2인용 소파, 침대와 보통사이즈의 옷장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이 방은 내가 금방까지 누워 퍼잔 침대 위에 팬티바람으로 누워 있는 저 새끼 것일 거다.
일단 신나라 화장실부터 들어갔다. 내 예상대로 화장실은 때깔부터가 달랐다. 부잣집에 가면 일단 화장실을 봐야 한다. 욕조 크기가 얼만지, 타일 색은 어떤지 하나하나 따져가며 이 집이 진짜 비싼 집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확실히 화장실은 태종이네 집 전체를 다 합친 것보다 백배는 더 좋았다. 여기로 이사 오고 싶다.
2시간을 화장실에서 보내다 나왔다. 씻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기 때문에 물만 발라 눈곱 떼고 머리 정돈한 뒤 남은 시간동안은 똥만 쌌다. 변기도 앉기 편해서 평소보다 똥이 잘 나온다. 태종이네 집은 물이 잘 안내려가서 자주 끊어가며 싸야하지만 이 집은 그렇게 많이 쌌는데도 한 번에 내려간다.
방으로 다시 오니까 침대 위에서 자던 놈이 부스스 일어나는 게 보인다. 아, 움직이는 꼴 보니까 화장실 가려나보다. 히히히, 내가 2시간 동안 배출하면서 중간에 한 번도 안 내려 봤기 때문에 냄새가 많이 묵혀져 있을 거다.
그 새끼는 소파에 있던 제 반 바지와 난닝구를 걸치면서 나를 발견하고는 잠깐 놀라 가만히 서 있다가 비실비실 웃으며 다가와 내 머릴 쓰다듬는다. 나보다 조금 작은 녀석이 내 머리를 만지니까 기분 더럽다.
난 일부러 비몽사몽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꼴을 본 뒤에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다. 그런 다음 닫히자마자 얼른 그 앞을 막아서서 못 나오게 문을 힘껏 밀었다. 예상과 달리 3초 정도 늦게 반응한 그 남자애는 비명을 지르며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내 덕분에 나오질 못하고 있다. 나는 밖에서 큰 소리로 웃으며 놀려댔고, 안에서 그 남자애는 곧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며 문을 발로 차고 난리다.
나중에는 니코틴에 중독된 지렁이처럼 발광하는 게 느껴져서 안타까움에 문을 열어 줬다. 마치 해일이 덮쳐오듯 순식간에 문 안에서 발사된 남자애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급한 숨을 몰아쉬는 게 보였다. 재밌다.
“야, 너 뭐야! 씨발, 존나 죽는 줄 알았잖아!”
“안 죽었잖아.”
“죽을 뻔 했다고!”
“안 죽었으니까 됐잖아.”
“씨발, 지금 그게 중요해? 도대체 뭘 처먹어서 냄새가 저러냐?”
“몰라, 너무 많은데……. 최근에 변을 본 게 저번 주 금요일이었나…….”
“씨발, 거의 일주일 됐네, 미친새끼!”
“나 너무 사랑스럽지?”
“사랑스럽데!”
어이없어 하는 얼굴의 남자애는 곧장 내게 달려들어 레슬링을 하자고 몸으로 덤빈다. 나도 태종이에게 배운 기술을 남자애에게 걸면서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안지도 몇 초 안 되는 놈하고 계속 뒹굴었다.
한참 뒤에 숨을 몰아쉬며 나를 일으켜 앉히는 남자애는 실실 쪼개면서 제 소개를 해왔다.
“난 이석현이야, 석현이. 너 이름 뭐야?”
“남일수.”
“와, 이름 되게 촌시렵다. 야, 일어나 봐, 옆방 가자. 여긴 냄새나서 못 씻겠네.”
“옆방은 누구 방인데?”
“공부방이야.”
공부방이라면서 뭐가 그렇게 보여줄 게 많은지, 바닥에 가득 깔린 게임기들을 본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자기가 씻고 나올 동안 가지고 놀라며 게임기란 게임기는 죄다 켜놓고 갔다. 전기세 많이 나오겠다.
대충 골라서 아무거나 가지고 노는데 초스피드로 씻은 석현이는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나를 끌어안고 뭐하냐고 묻는다.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인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로 강아지를 선물 받은 초딩 같다.
게임 삼매경에 빠져 지금 급하다는 소리 하고 몸부림을 쳐가며 열중하고 있자 나를 뒤에서 열심히 끌어안은 석현이는 같이 화면을 보며 여기로 가, 저기로 가, 저기 봐, 여기 봐 해가며 축구감독 마냥 지시를 잘한다. 그리고 내가 한 차, 한 차 깰 때마다 같이 환호성을 쳐가며 좋아한다. 생각보다 훨씬 순진하고 착한 녀석 같다.
석현이는 신기한 것을 보여주려고 할 때마다 내 손을 잡아끈다. 어릴 때부터 풍족하게 논 적이 없는 나는 집 앞 놀이터가 놀이 대상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 게임들이 전부 신기했다. 게임 하는 방법 가르쳐준답시고 내 바로 뒤에 붙어 앉아서 내 손에 제 손을 겹치고 버튼 하나하나를 눌러가며 설명한다. 그리고 자주 내 머리에 제 얼굴을 비비고 기분 좋다는 소리를 하거나 히히거리며 웃었다. 머리 안 감은 지 삼일 됐는데.
그리고 나란히 앉아 게임하면서 물었다.
“석현아, 너 몇 살이야?”
“어, 나 열 일곱.”
“뭐야, 완전 어리네?”
“너는?”
“너는이라니, 형이하고 해야지. 나……. 너보단 많아.”
“몇 살인데?”
“몰라.”
태종이가 분명 내 나이를 가르쳐줬지만 까먹었다. 잠깐 내가 몇 년생인지 부터 곰곰이 따져보며 계산에 몰두했다.
“내가 몇 년도에 태어났지?”
“지가 언제 태어났는지도 몰라?”
“잠깐, 생일도 기억 안나.”
“너 기억상실증이야?”
“아니, 치매인 가봐.”
“뭔 벌써부터 치매야, 내 머릿속에 지우개도 아니고.”
“하여튼 난 형이야.”
“싫어, 일수라고 부를 거야.”
“안 돼.”
나는 아주 크게 고개를 저어가며 게임을 했다. 석현이는 ‘돼, 돼, 돼!’라며 게임을 하고, 나는 ‘안 돼, 안 돼, 안 돼!’하면서 게임을 한다. 결국 또 져서 바닥으로 쓰러져가며 절규했더니 그 위로 석현이가 덮쳐들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근데 솔직히 좀 무거웠다.
“야, 비켜!”
“우리 이제부터 진 사람이 이긴 사람한테 뽀뽀하기 할까?”
“아, 무슨 남자끼리 뽀뽀 해?”
“왜?”
“이상하잖아.”
“그러니까 하자는 거야.”
“그래, 하자!”
이번엔 절대 질 수 없다며 다시 붙어 앉아 게임에 집중했다. 비명소리를 내고, 발을 울리면서 몇 번이나 절규를 하는데도 아무도 안 올라온다. 분명 시끄럽다고 뭐라 해야 할 상황인데 집에 아무도 없는지 뭐라 하는 인간이 없다. 내가 있는 방이 2층인데도.
보아하니 석현이라는 놈이 이 집 막내아들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난 무슨 이유로 지금 석현이와 붙어 앉아서 데려오라는 개는 안 데려오고 5시간 동안 게임만 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 태종이가 날 찾을 거다. 문제는 여기 게임들이 다 재밌고 아직 못 해본 게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르겠다는 거다. 석현이도 내가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기고 있지 않았다.
태종이가 보고 싶긴 하지만 게임부터 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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