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35)

  

석현이는 하는 짓이나 게임기 양만 봐도 딱 막내아들 삘이다. 구석에는 어릴 때 가지고 놀았을 법한 거대한 로봇장난감들이 있다. 이른바, 이 방은 공부방이라는 이름의 놀이방 같은 거다. 컴퓨터도 세대나 되고, 그 컴퓨터로 형들과 스타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몹시 부러워진다. 나도 이만 한 집까진 아니라도 최소 컴퓨터가 두 대 이상만 되면 매일 태종이와 스타를 했을 텐데.

  

또 내가 져버려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머리를 쥐어뜯고 열불 나 절규를 해댔다.

  

“안 해, 이거 사기야!”

“뭐가 사기야, 졌으니까 빨리 뽀뽀 해.”

“싫어, 안 해.”

“뭐야, 남자가 한 입 갖고 두 말 하냐?”

“그럼 나 여자 할게.”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

“에이, 씨. 알았어.”

  

내 대답에 기분이 좋아진 석현이는 얼른 제 입술을 내밀었다. 하지만 난 볼에다 쪽 소리 나게 해줬고, 약간 불만스러워 보이는 표정의 석현이는 다시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아냐, 입술에다 해야지.”

“남자끼리 무슨 입술로 뽀뽀해?”

“빨리, 그래야 벌칙 같지.”

“에라이.”

  

석현이 이마를 때리고 난 다음 하는 수 없이 입술에다 내 입술을 댔다. 일부러 쪽 소리까지 내자 완전히 기분이 좋아진 석현이는 괜히 내 팔을 잡아끌면서 흔든다. 남자가 해준 뽀뽀가 좋다니, 진짜 문제 있는 놈이다.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이 지경이 된 거야?

  

급기야 내 머리를 끌어안고 온몸을 비틀며 좋아라 한다. 선물 받은 강아지가 저한테 재롱 한번 부렸을 때 나오는 초딩의 반응이다.

  

찜찜함에 입을 닦자 기습적으로 석현이가 내 입에다 또 뽀뽀 한다.

  

“히히히, 닦지 마.”

“드러워.”

“뭐가 드러워, 나 이 닦았어.”

“난 안 닦았어.”

“어쩐지 이상한 냄새 나더라.”

“심하냐?”

“좀 닦어, 칫솔 없어서 그래? 따라와 봐.”

“아니, 난 있어도 안 하는데.”

“왜?”

“귀찮아.”

  

내 말에 잠깐 멍청한 표정이 되던 석현이는 갑자기 신나게 웃더니 화장실로 냉큼 달려 들어가 저가 태종이라도 되는지 치약을 짜놓은 칫솔을 들고 다가와서 내 이를 닦아준다. 나는 게임하고 있고, 석현이는 내 이를 좋다고 닦아준다. 하여튼, 일단 석현이는 좋은 애다. 그건 알겠다.

  

입까지 헹군 다음 깨끗해진 내 입안을 검사하고 또 뽀뽀해대는 거 내버려두고 게임질 하는데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차, 하는 순간 얼른 뒤를 돌아보자 어제 면접 때 봤던 어두운 인상의 남자였다.

  

그 남자는 한참 내 입에 쪽쪽대는 석현이를 보고 있다가 물었다.

  

“선물 마음에 드냐?”

  

뭔지 몰라도 선물을 준 모양이다. 근데 갑자기 석현이가 나를 끌어안고 큰 소리로 대답한다.

  

“어, 완전 마음에 들어! 형 땡큐, 이제부터 진짜 말 안 까고 형이라고 부를게!”

“이름은 지었어?”

“아니, 아직. 좀 생각 해봐야할 것 같아.”

“그럼, 목욕 자주 시키고 밥 제때 챙겨주고 산책도 꼬박 꼬박 시켜주는 거 잊지 마, 제대로 안 하면 도로 물릴 거니까.”

“알아, 내가 완전 이뻐할 거야.”

  

강아지를 사줬나보다. 말하는 투를 보니 밥 주고, 목욕 시키고, 산책 시키고……. 생일 선물로 준 건가, 잘 보니 천장에 풍선이 둥둥 떠다니고 폭죽이 굴러다니면서 고깔모자도 보인다.

  

방을 나가는 남자를 잠깐 돌아보고 게임에 열중하려고 했더니 갑자기 내 얼굴을 잡고 석현이가 나를 뚫어져라 본다. 왜 그러는지 몰라 가만히 두자 나를 한참 보면서 식 웃는 석현이는 뭔가 생각난 투로 말한다.

  

“이름 생각났다.”

“무슨 이름?”

“이제부터 넌 뽀뽀야.”

  

뭔지 몰라서 인상을 썼다.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제부터 니 이름은 뽀뽀라고.”

“설마 별명 짓는 거냐?”

“아니, 니 이름. 내 강아지 이름.”

“니 강아지 이름으로 왜 나를 불러?”

“니가 이제부터 내 강아지잖아, 몰랐어?”

“응?”

  

잠깐 나와 석현이는 서로를 바라봤다. 나는 멍청하게, 석현이는 놀라움으로 나를 보다가 더 생각하는 게 귀찮은 나와 별로 문제될 게 없다는 석현이의 표정을 끝으로 5초만 멍해졌었다. 우리는 은근히 서로가 닮았다. 강아지를 못 구한 채로 면접 본 내 잘못이지, 강아지 구할 때까진 주인이 대신 강아지 행세하는 모양이다. 사실 난 상관없다. 계속 이런 식으로 게임 할 수 있고 넓은 집에서 생활할 수 있으니 오히려 잘 됐다.

  

보아하니 강아지 주인이 될 녀석은 석현이인 것 같고, 석현이라면 이상한 짓은 안할 것 같다. 강아지를 모집한 형이라는 사람도 이상한 생각으로 모집한 것 같지 않다. 단지 조건에 맞는 강아지를 찾기 위해 일부러 모집광고를 낸 것 같다.

  

석현이는 내가 신나게 하던 게임을 마음대로 끄더니 울상이 된 내 팔을 끌면서 방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뽀뽀야, 목욕하러 가자!”

“목욕?”

  

방 안에 딸린 화장실을 흘겨봤더니 석현이는 고개를 젓는다.

  

“거긴 좁아서 불편해, 큰 욕실로 가자.”

  

태종이 집보다 큰 화장실을 외면하고 방 밖으로 나가자마자 어제 면접 때 봤던 까불거리게 생긴 남자와 마주쳤다. 한 손에 쟁반을 든 채 문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석현이가 문을 세게 여는 바람에 부딪칠 뻔했다.

  

나는 멍청하게 서 있다가 그 남자 손에 들린 쟁반에 담긴 쿠키를 보고 눈이 돌아가서 얼른 쟁반을 빼앗아 쿠키부터 입에 넣었다. 벌써 해가 막 넘어가는 시간대라 배가 어지간히 고프다. 쟁반을 빼앗겨서 놀란 남자는 내가 쿠키를 먹는 꼴을 보고는 석현이한테 말을 건다.

  

“멍멍이 밥 안 줬어?”

“어, 맞다. 별로 배 안 고파서 계속 게임 하느라고. 그래도 이름은 정했어, 이제부터 뽀뽀라고 불러.”

“아냐, 멍멍이로 해.”

“뭐? 무슨 멍멍이야, 센스 없어.”

“표정 봐봐, 멍멍하잖아.”

“뭐, 멍해서 멍멍이?”

“지금도 우리가 이렇게 지 얘기 하는데 계속 과자만 먹고 있는 거 보니까 딱 멍멍이다.”

  

쿠키 맛있네.

  

“근데 이름이 뽀뽀가 뭐냐? 유치하게.”

“왜, 딱 보니까 떠오르던데, 뽀뽀하고 싶게 생겼잖아.”

“이름도 꼭 지 같이 지어, 개변태새끼. 조건이 무슨, 여자도 아니고 남자여야 된다니, 하도 이상한 사람들 많이 몰려와서 석희랑 나랑 심사할 때 얼마나 애먹었는지 아냐? 이상한 게이새끼들만 잔뜩 와서 우리한테 별 놈의 짓거리를 다 했었어! 그래서 유일하게 우리한테 안 들이댄 요 멍멍이로 바로 뽑아버렸잖아.”

“히히히, 잘했어, 석훈이 형. 이제 안 대들고 꼬박꼬박 형이라고 불러줄게.”

“뭐, 그래도 이 녀석으로 뽑길 잘한 거 같네, 천하의 이석현이 이렇게 고분고분하고 차분해진 거 보니까…….”

“진짜 개과천선 한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이제 형들 말 잘 듣고……. 근데 지금 어디 가냐?”

“목욕하러.”

“그럼 그렇지, 그 이석현이 어디 가냐.”

  

다 먹은 쟁반을 내밀자 받아든 남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 변태 때문에 고생 엄청 하겠구나.’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일단 쿠키는 맛있었다. 옆에 우유 두 잔까지 말끔하게 비워서 배가 든든하다. 하지만 너무 달았다고 충고를 해주려고 하자 석현이가 빨리 오라며 내 손을 잡아끈다.

  

그 때 석현이가 말하는 그 욕실이 내게 있어서 곧 지옥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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