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참 식탁 앞에 서 있으니 아무런 표정이 없는 남자가 이상할 정도로 재밌어 하며 웃고 있다. 처음 보는 웃는 얼굴이지만 저걸 반대로 뒤집어 놔도 비웃는 얼굴인 줄은 3살짜리 애도 알겠다. 바닥에 놓인 그릇을 쳐보기도 하고 멍청하고 불편하게 서 있다가 다시 식탁을 바라봤다. 식탁에 앉아 있는 남자는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나만 보고 있다.
배에선 천둥이 치고 눈은 자꾸만 바닥에 있는 그릇으로 간다. 그릇은 아무리 이쁘게 봐도 사람 먹는 그릇이 아니다. 거기에 담겨진 밥은 맛있어 보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담겨진 모양새가 사람 먹으라고 담아둔 것 같지 않다.
내가 개를 못 구해서 이 집에 개로 고용되긴 했지만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몰랐다. 조금 슬프기도 하고, 또 언제 이런 집에서 살아보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일단, 배는 고프니 먹기는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엎드려 그나마 최소한의 자비로 제공된 숟가락으로 퍼먹기 시작했다.
예쁘고 비싸 보이는 개밥그릇에 담긴 국밥은 맛있었다. 배는 고프고, 어떤 식으로 먹든 나오는 건 같으니 상관없다고 생각 된다.
먹다보니 진짜 맛있어져서 신난다고 먹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손 하나가 나타나 밥그릇을 쑥 빼간다. 울상을 지으며 올려다본 거기에는 그 표정 없고 비웃기만 잘 하는 남자가 서 있다. 그대로 그 그릇을 싱크대에 던져놓고는 갑자기 밥그릇에 밥을 퍼서 식탁에 둔다. 먹던 거 빼앗긴 서러움에 계속 아무것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식탁으로 가던 발이 도로 내 쪽으로 와 나를 일으킨다.
“장난 좀 쳐 본 건데 진짜로 먹냐?”
퉁퉁거리는 남자는 나를 의자에 앉힌 다음 제 자리를 찾아가 마저 밥을 먹는다.
어쨌든 새로 담겨진 밥은 더 맛있게 보여 열심히 먹었다. 역시 사람은 먹어야 해. 사실 나도 지금은 내가 사람인지 개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개처럼 다뤄졌다가 사람처럼 다뤄졌다가 이젠 또 뭐로 다뤄지는 지도 모르겠다.
다시 숟가락으로 깍두기 잘라 먹고 밥 한 가득 퍼서 입안에 우겨넣어가며 먹어댔다. 태종이는 늘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참 복스럽다고 했었다. 지금의 남자 표정도 그렇다. 밥 먹다 말고 나 먹는 걸 구경하는 남자는 내가 숟가락으로 잡채를 못 집어 먹고 있자 알아서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준다. 그걸 냅다 밥그릇 위에 얹어서 밥과 비빈 다음 한 가득 떠서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젠 제 입이 벌어져 있는 줄도 모르고 나를 보던 남자가 또 비웃었다.
“그지냐.”
충격으로 먹던 입을 벌린 채 돌아봤더니 제 입을 가려가며 웃는다. 내가 복스럽게 먹는단 소리는 들었어도 그지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 진짜 충격적이다. 내가 너무 열심히 먹었나?
“내 이름은 알아?”
밥 먹으면서 뭔 할 얘기가 많은지, 밥 먹을 때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던 태종이네 밥상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된다. 고개를 갸웃거린 다음 다시 깍두기를 입안에 넣자 그게 뭐가 재밌는지 내 얼굴을 개콘 보듯이 본다. 딱히 웃긴 짓을 한 것도 아닌데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다.
“이름은 이 석희.”
“응.”
“나이는 스물넷.”
“응.”
“생일은 10월 12일.”
“응.”
“키 185.”
“응.”
“취미는 요리.”
“응.”
“싫어하는 건 털 있는 동물.”
“응.”
“외워.”
“워메.”
먹던 숟가락을 떨어뜨리자 또 비웃음을 단다. 이름이 석희라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 왠지 이름에서부터 뭔가 딱딱하고 단단할 것 같다. 석자만 들어가면 돌 같은 거 생각나는데 희자가 옆에 붙으니까 네모난 돌이 생각난다. 또 희석이라는 단어도 생각나고 하여튼 뭔가 별명을 지으면 많이 지어질 것 같은 이름이다. 그래봐야 나만 할까, 초등학교 때야 그렇다 치고 중학교 때부터 쭉 일수대출로 불려 와서 내 이름이 일수인지 대출인지도 헷갈린다.
아, 남대출은 좀 이름이 너무 웃긴데. 부모님은 내 이름을 일수로 할지 한수로 할지 고민 많이 했다고 했다. 일수도 그렇지만 한수 또한 뭔가 별명이 굉장히 많이 지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삼각함수도 있고…….
참고로 내 동생 이름은 이수다. 이수는 내 이름이 일수인 것에 굉장히 큰 감사를 느끼고 있다. 만일 부모님이 내 이름을 한수로 지었다면 내 동생 이름이 두수가 되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 밑의 동생은 아마 삼수나 석수가 되었을 거다. 삼수도 재수 없지만 석수는 물 이름 아닌가, 그나마 동생이 한 명 뿐이라 다행히 우리 가족 중에 삼수나 석수라는 이름으로 고통 받을 놈은 없다.
이수하니 지금 이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조금 보고 싶어진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놈인데 막상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니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개.”
“응?”
아, 모르고 대답해버렸다. 뭐, 개인 건 맞으니까 상관없긴 하다.
“이름은 남일수.”
“응.”
“나이는 스물하나.”
“응.”
“생일은 8월 1일.”
“응.”
“키 178.”
“응.”
“몸무게는 최근에 재어 본 적이 없지만 배는 안 나왔음.”
“응.”
“취미는 잠.”
“응.”
“싫어하는 것은 전화통화 소리.”
“응.”
다 먹은 밥그릇에 눌러 붙은 밥풀을 숟가락으로 열심히 긁어 먹고 있는 내가 고개를 끄덕여가며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얼른 큰 소리로 말했다.
“나 알아.”
“뭐?”
“특기는 암기지?”
“틀렸어.”
순간적으로 웃겼는지 짧게 웃었다. 웃는 모습은 괜찮은데 왜 저렇게 표정이 어두울까, 어릴 때 뭔 짓을 당하면 저렇게 표정이 없어지는지 궁금하다.
늘씬하고 큰 키도 그렇고, 얼굴도 상당한 미남이다. 그런데 왠지 가까이 다가가면 욕먹고 한 대 맞을 것 같은 분위기가 얼굴에서부터 풍겨져 나와 친구도 없을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많진 않지만 그래도 석희는 그렇게 가까이 두고 사귀는 친구 하나 정도도 없을 것 같다. 가족들한테도 마음을 안 터놓을 거다.
“왜?”
“응?”
깍두기 국물 들이 마시고 있는데 물어본다. 왜 먹느냐고 묻는 건줄 알고 내려놨더니 그 그릇을 뻔히 본 석희는 다시 깍두기 그릇을 들어서 내게 내민다. 마셔도 된다는 거다. 다행이다, 태종이었으면 그걸 왜 먹느냐고 머리 한 대 쥐어 박혔을 텐데.
“전화통화 소리.”
“응?”
“왜 싫어?”
“아.”
국물 마시느라고 벌게진 입 주변을 석희가 닦아준다. 표정이 없기에 몸속도 돌멩이 같을 줄 알았지만 의외로 물렁하고 착하다.
“내 앞에서 전화통화 안 하는 게 좋아.”
“왜?”
“싫어하니까.”
“하면 어떻게 되는데?”
“그냥 하지 마.”
자리에서 일어나자 석희가 따라 일어난다. 그리고 거실 어딘가에 돌아다니고 있을 까불거리게 생긴 남자에게 식탁 치우라고 한 다음 나를 데리고 제 방으로 데려가 이를 닦아주었다.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손으로 씻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원래 내 손으로 안 씻긴 하지만 이 사람들은 말 안 해도 알아서 딱딱 해준다.
나를 개 취급 하느라고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개는 혼자서 이를 못 닦으니까 내가 개라고 치면 이 닦아주는 게 당연한 거다.
근데 개로 사는 것도 편하고 오히려 더 좋다. 내 손으로 잡일 안 해도 되고 놀면서 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가 나보고 돈 쓰라고 하지도 않고, 원래 쓰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뒹굴 거리면서 돈도 나오고. 하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잠을 자야 할 때다.
빤스만 입고 누운 나를 석희가 냉큼 껴안고 잠을 잔다. 보통 개들을 안고 자나? 개는 안고 자지 않는 걸로 아는데, 이게 개와 나 사이의 큰 차이점인 것 같다.
그래도 스킨십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괜찮은 기분이다. 특히 누군가에게 안겨 있다는 게 좋다. 학교 다닐 때 자주 태종이에게 매달리고 엉겨 붙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 싫은 눈치가 아니어서 더 자주 기댔던 것 같다. 그런데 졸업하고 태종이 집에 눌러 살면서 잘 씻질 않으니 태종이가 절로 날 멀리 했다.
우울한 기분이 들어 더 바싹 붙어 들어가자 석희 몸이 움칙움칙 거린다. 그리고 뭐라고 혼자 말한다.
“개새끼.”
또 충격에 입을 떡 벌리고 올려다보자 바로 비웃는다.
“개.”
“왜.”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부터 감자.”
“응.”
냄새가 그렇게 심한가, 그래도 내치지 않는 걸 보니 견딜 만한가 보다. 어차피 내 손으로 감는 것도 아니니 감으라면 감아야겠다. 내일은 태종이한테 연락해보고, 간만에 이수한테도 안부 전해야겠다. 엄마, 아빠보다 감시가 심한 이수 몰래 나오느라고 새벽에 도망치듯이 집을 나왔는데, 쫓아와서 죽이진 않겠지?
왠지 이수한테 연락 했다간 당장에 집으로 끌려들어갈 것 같지만 살아있다는 소식은 전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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