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35)

  

  

분명 잠은 석희 방에서 잤지만 깨어난 곳은 석현이 방이었다. 파란 벽지가 있는 방 안에 커다란 침대, 그리고 내 빤쓰 속에 손을 넣고 자는 석현이가 눈앞을 딱 보인다. 내가 자면서 순간이동을 한 것인지 자는 새 나를 갖고 온 건지 모르겠다. 석현이 손목을 끌어다 손목에 차여진 시계를 보자 낮 2시다. 너무 일찍 깼다. 일찍 잤으니 일찍 깰 수밖에 없다.

  

뻑뻑한 눈을 비비고 있자 석현이가 눈을 뜬 채로 나를 보고 있다. 거기다 웃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

  

“머리부터 감자.”

  

석현이도 내 머리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일어나자마자 냅다 화장실로 끌려들어가 머리부터 감겨졌다. 어제 실패한 목욕 때문인지, 석희가 내린 벌의 영향인지 목욕하자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남의 손으로 씻어져 몹시 개운하고 깨끗한 머리가 되었다는 거다. 거기다 세수도 시켜주고, 귀찮은 면도도 알아서 다 해줬다.

  

문제는 밥을 먹자면서 내려가지 않고 쟁반에 밥을 들고 올라왔다는 거다. 식탁에서 먹고 싶었던 나는 소파에 앉아 탁자에서 불편하게 먹었다. 왜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지 모르지만 석현이는 자신의 형들도 제 방에 못 들어오게 하려고 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아주 끔찍한 것을 내민다.

  

아무리 봐도 빨간색의 목걸이는 멋으로 달라고 있는 게 아니었다. 거기에 달린 줄이 굉장히 튼튼한 쇠줄이라는 것 때문이다. 자물쇠까지 달린 끔찍한 목걸이를 들고 있는 석현이는 아주 자비롭게 웃고 있다.

  

“개용 아니야, 사람용이야. 특별 주문한 거라 나만 풀 수 있어. 자물쇠 보이지?”

  

멍청하게 내가 좋아하는 깍두기를 씹으며 보고 있었더니 알아서 다가와 그걸 내 목에 찬다. 그리고 그 끝은 침대 맡 기둥에 달려 있다. 딱 봐도 공구 없이 풀 수 없게 되어 있다.

  

“묶어 두는 게 아니라 형들이 못 데려가게 막기 위해서 다는 거야.”

“왜?”

“왜긴, 지금 왜 소리가 나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가보니까 아주 가관이더만, 빤쓰바람으로 안겨 있고 손은 엉덩이로 가 있고! 뭐야, 씨발, 둘 다 게이 아니잖아! 남자 싫다면서 왜 남의 걸 넘봐! 하여튼, 넌 이제 내 허락 없이 밖으로 못 나가.”

“오줌 마려우면?”

“나한테 말해.”

“너 학교 안 다니냐?”

“학교?”

  

눈을 꿈뻑이던 석현이는 한참 가만히 내 얼굴을 보다가 제 머리에 손을 가져가서 쥐어뜯는다.

  

“맞다, 학교! 내가 학교 가 있는 동안 방이 비잖아!”

“그것 보다 나 오줌 마려울 때 어떡하냐니깐.”

“씨발, 그래, 카메라 달아야지! 카메라랑 녹음기!”

“야, 나 오줌…….”

“씨발, 그냥 싸면 될 거 아니야!”

“방에다?”

“아니……. 에이, 씨!”

  

또 지 머리를 쥐어뜯는다. 저러다 대머리 되겠네, 혀를 차면서 깍두기 국물을 들이키고 있었더니 갑자기 신들린 솜씨로 방 안을 마구 뒤지기 시작한다. 그래봐야 가구 몇 점 되지도 않아서 뒤질 것도 없다. 결국 밖으로 나가고, 아직 닫히지 않는 문 사이를 내다보면서 계속 밥을 씹었다. 오늘은 밥이 좀 질게 되었네.

  

다 먹은 밥그릇에 물을 담은 다음 눌러 붙은 밥알들을 처리하고 있자 누가 방 안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밥그릇에 담긴 물을 열심히 들이 마시면서 본 그 얼굴은 까불거리게 생긴 석현이의 형이다. 이름이 뭔지는 기억 안 나고 지금 뭔가 눈치를 살피는 건 알겠다.

  

조심스럽게 들어온 남자는 내 여기저기를 보면서 실실거린다.

  

“멍멍이 밥 먹니?”

“응.”

  

먹는 거 뻔히 보면서 묻는다. 게다가 더 말을 하지 않고 이상하게 좋아라 웃는 얼굴을 보면서 숟가락을 빨고 있었더니 내가 먹은 그릇을 내려다본다.

  

“깍두기 좋아해?”

“응.”

“국물까지 다 먹더라.”

“응.”

“석현이가 잠깐 나가 있는 동안 나도 한 번 만져보자. 아주 지 꺼라고 손도 못 대게 해.”

“응.”

  

개로 살고 있는 사람이 신기하긴 신기한가 보다. 나라도 신기하긴 하겠다. 사람이면서 빤쓰차림에 개목걸이를 하고 있는데다가 그 목줄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다. 게다가 보기보다 좀 무거워서 돌아다니기도 싫다.

  

내 옆으로 앉는 남자는 내 몸을 제 쪽으로 당긴다. 그래서 나도 당연하게 그 몸에 내 몸을 거의 누워가며 기대고 있으니 알아서 여기저기 철떡철떡 만져댄다. 사람인지 개인지 분간하려는 봉사마냥 의외로 손길이 터프하다. 깍두기 그릇을 핥고 있는 나를 열심히 보고 만지던 남자는 제 얼굴을 바싹 들이댄다.

  

“내 이름은 알아?”

“몰라.”

“석훈이야, 석훈이. 석훈이 형아, 하고 불러, 알았지?”

“응.”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응.”

  

다 핥았는데도 미련이 남아 계속 그릇을 빠는 나를 석훈이는 한참 내려다본다. 눈빛이 조금 느끼해서 마주치기가 싫다. 근데 이 집은 깍두기가 정말 맛있다. 어디서 담근 건지는 몰라도 맛있어서 계속 미련이 남는다. 더 달라고 해볼까, 막상 또 먹으려니 좀 귀찮은데. 더 먹고 싶기는 하고, 먹는 건 귀찮고.

  

갈팡질팡하며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석훈이는 그토록 원하던 물음을 던져준다.

  

“깍두기 더 줄까?”

“어, 어, 더 줘!”

  

먹긴 귀찮지만 막상 준다니까 또 먹고 싶어진다.

  

냅다 밖으로 나가더니 정말 빨리도 깍두기를 담아온 석훈이가 내게 그릇을 내민다. 그걸 받아들고 숟가락으로 잘라가며 퍼먹자 그 모습을 좋다고 지켜본다. 뭐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인데 내 여기저기를 만지느라고 아주 신이 나 있다. 귀찮지만 먹는 중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일단은 깍두기 값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닥치고 있었더니 대놓고 웃는다.

  

“거 참,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귀엽네. 그렇게 귀엽게 생기지도 않았는데.”

“응.”

  

예의상 대답은 해줬다. 사실 혼자 말하는 게 좀 안 돼서 대답한 거였지만 어쨌든 내 대답을 들은 석훈이는 꽤 좋아하는 눈치다. 외로웠나 보다.

  

“멍멍아, 어제 석희 방에서 잤다며?”

“응.”

“오늘은 내 방에서 잘래?”

“응.”

“오, 정말? 꼭 약속이다, 내가 석현한테 잘 말해볼 테니까 오늘은 내 방에서 자는 거야.”

“응.”

“근데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지?”

“응.”

  

입 안 가득 들어있는 깍두기의 새콤한 향이 나를 돌게 만든다. 이래서 내가 밥상에 깍두기 없으면 못 먹는 거야, 이렇게 맛있으니까 깍두기 없으면 밥을 아예 못 먹지! 이럴 때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큰 감사를 느낀다. 우리 부모님이 한국인이라는 것, 그래서 내가 깍두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깊은 감사와 감동을 느낀다.

  

나를 어디로 끌어당기던, 어디에 손을 대던 참견도 않고 깍두기만 먹다가 그릇을 다 비웠을 무렵 어느새 내가 석훈이 무릎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열심히 내 뒷목에 쪽쪽대는 입도 느꼈다. 이상해서 돌아보려고 하니 그나마 입고 있던 빤스 속으로 손이 들어온다. 깍두기에 정신이 팔려 이런 걸 모르고 있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몸을 일으키려고 비틀자 힘을 줘가며 다시 앉히려는 게 느껴진다. ‘잠깐 있어 봐.’라고 말하는 것도 들린다.

  

음, 내가 잠깐 착각 했었나 보다. 잠깐이나마 가족같이 느끼고 친구처럼 느껴져서 편안하게 아무런 긴장도 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면 나는 이 집에 개 대신에 들어왔고, 이 사람들은 개를 성욕 푸는데 쓰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게다가 나는 개를 못 구해서 그 개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바람에 석현이는 틈만 나면 내 고추를 노리고 있다. 때문에 마찬가지로 이 석훈이라는 사람도 내 고추를 노리고 있는 거다.

  

얼른 그릇으로 얼굴을 후려친 다음 방문 쪽으로 달려갔다. 일단 이 사람한테서 도망쳐야겠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앞서 석현이는 나가기 전에 내 목에 목줄이라는 것을 달아 놨다. 그 때문인지 나는 방문에 닿기도 전에 뒤로 넘어가 머리를 찧고 만다. 아, 아무리 머리가 돌인 나도 이 정도의 충격은 제대로 견디질 못 하겠다. 놀라서 달려오는 석훈이,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도 방문 너머로 들린다.

  

그릇으로 석훈이 얼굴을 후려치기 전에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두었던 새콤한 깍두기 국물을 떠올리다 쏟아지는 눈물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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