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35)

  

내 앞에는 늘 나와 함께 하려고 했던 이수가 있다. 꿈인 모양이다. 나는 고등학생이고, 태종이가 나와 손잡고 있는 걸 이수에게 들켰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거나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면 굉장히 화를 내던 이수는 태종이를 밀치면서 먼저 시비를 걸었다. 태종이도 화가 나서 이수를 밀치고, 둘은 어느새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서로를 향해 욕설을 갈긴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나는 아무래도 내가 이수 형이기 때문에 이수부터 진정시키고 집으로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모두들 수업 끝나고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 집으로 향하는데 태종이를 설득시켜 돌려보낸 나와 함께 걷는 이수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요즘 집에 자꾸 늦게 들어오는 이유가 저 새끼냐며 그래도 형의 친구인데 막말을 한다.

  

저런 놈 뭐가 좋으냐고 툴툴대는 이수를 보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를 이수도 좋아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냉큼 태종이의 장점에 관해 얘기를 했다.

  

“태종이는 힘이 좋거든.”

  

매일 무거운 물건을 들어주고 내 가방도 가끔 들어줬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가끔은 나를 번쩍 번쩍 들어올리기도 하고 자주 엎어지는 나를 땅바닥에 코 박기 전에 잡아준 게 한두 번이 아니라 그 부분에 관해선 이미 증명이 되어 있었다.

  

좋아할 줄 알았던 내 예상과 달리 이수는 굉장히 무서울 정도로 놀란 표정이 되어 있었다. 얼굴은 캐스퍼가 되었다 스머프가 되었다 한다. 그 뒤로 이수의 감시는 더 심해졌다. 매일 같이 우리 반에 와서 나와 함께 있었고, 태종이와도 자주 시비가 붙었다. 그런 이수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졸업하고 바로 태종이 집으로 기어들어갔을 땐 난리도 아니었다. 매일 몇 십 통씩 전화를 하고 길 가다 마주치면 귀신처럼 날아 와서 나를 낚아 갔다.

  

그러면 나는 또 새벽에 몰래 도망쳐 나오고, 이수는 나를 찾아다녔다. 결국 밖에 나가기 싫어진 나는 움직이지 않으면 않을수록 뭐든 다 귀찮아지고 하기 싫어져서 이 모양이 되어 버렸다.

  

한 번 다치고 나니 자리에서 일어나기 귀찮아 거의 누워서만 지냈다. 거기다 내 목에 목줄은 말끔하게 제거 되었다. 내게 함부로 목줄을 달면 위험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석현이는 내가 깨어나자마자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지가 다 잘못했으니 앞으로는 절대 목줄 같은 걸 달지 않고 방에다 가둬두지 않는다며 이렇게 만든 놈이 누구냐고 불라고 했지만 그냥 말 안 했다. 눈치 보는 석훈이가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깍두기 떠다 준 은혜도 있으니 그냥 잊어버려야겠다. 고추 좀 만졌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석희는 석현이를 엄청 혼냈다. 그리고 한동안 내게 접근을 못 하게 했다. 지금도 그렇다. 내 옆에는 석희와 석훈이가 있고, 석현이는 밖에서 나를 훔쳐보거나 아무도 없을 때 몰래 몰래 들어와 뽀뽀를 하거나 껴안는 게 전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고 말한다.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진지하게 구니까 괜히 유치하고 웃겨서 콧방귀 끼다가 콧속에서 뭔가가 숭하고 날아간 적도 있다. 뭔지 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신비로운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었다.

  

내 밥 먹이는 건 석훈이가, 날 씻기는 건 석희가 맡게 되었다. 석희는 아무래도 석훈이를 의심하는 것 같다. 생각이 많아 보일 수밖에 없는 목석같은 얼굴 때문인지 눈치는 빠르다. 나이도 더 많고 집안 문제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석훈이는 이상할 정도로 석희 눈치를 보면서 눈길을 피해 다녔다.

  

그래서 그런가, 잘 때는 자연스럽게 석희와 자게 된다. 저녁에 씻고 나서 자연스럽게 바로 잠 잘 시간이 되니 알아서 나를 제 방에서 계속 재우고 지내게 한다. 난 석현이 거 아니었나,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일부러 석현이 앞에서 더욱 날 병자 취급하는 석희의 속내를 모르겠다. 머리 찧은 거야 진 작에 다 나았지만 내 입에 깍두기를 물려놓고 발언 기회를 없애버린다.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입을 것으로 제공되는 옷은 속옷뿐이다. 한 마디로 빤쓰, 나는 늘 빤쓰만 입고 돌아다닌다. 한 번 입혀놓고 감탄하면서 보더니 그 뒤로 다른 옷은 안 주고 빤쓰만 준다. 보면 개뼉다구 무늬가 들어있거나 개모양의 그림이 있는 걸 주로 준다. 색은 거의 빨간색이다. 그걸 입고 있으면 셋은 두 팔 벌려 나를 껴안으려고 한다. 껴안는 것까진 좋아서 안기면 빤쓰 속으로 손이 들어온다. 그 땐 팔을 물어뜯고 도망가거나 발로 불알을 까버린다.

  

다행히 그런 변태 짓을 석희만이 유일하게 하지 않아준다. 덕분에 나는 그런 다음 바로 석희에게로 도망갈 수 있다. 만일 석희 마저 그랬다면 도망갈 곳이 없는 나는 그대로 붙잡혀 끔찍한 짓을 당했을 거다. 가뜩이나 요즘 변을 못 봐 몸도 무거워서 얼마 도망가지도 못하는데.

  

“산책 가자.”

  

오늘 제공된 개발바닥 무늬가 들어간 빨간 빤쓰를 입은 채 바닥에서 슬라이딩 놀이를 즐기고 있는 나한테 석희가 말했다. 웬일로 차려입나 했더니 내 몫으로 보이는 옷을 들고 서 있다. 집이 하도 넓고 카펫의 감촉도 좋아서 바닥에서 자주 슬라이딩을 하는 나를 늘 석희는 재밌게 구경한다.

  

거기다 석희가 노란 형광색 고무공을 던져놓으면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걸 갖고 논다. 석현이의 게임기 많은 방은 위층에 있어서 올라가기 귀찮아 그나마 할 거라곤 이것뿐이다. 석희 앞에서 공 가지고 놀기. 그리고 석희가 던지는 공 받아오기. 받아오면 석희는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 던져주며 계속 놀아준다. 그런 석희가 갑자기 나가자고 하니 조금 놀랍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선 옷부터 입혀준다. 잘 보니 티셔츠엔 강아지 그림이 있고 내 목에 뭐를 두른다. 가죽으로 되어 목에 두르는 목걸이다. 목걸이에 동그랗고 금색으로 빛나는 동전 같은 게 달려 있어서 거울을 통해 보자 거기에는 내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아, 이거 개목걸이 아닌가?

  

“주인 있다는 표시.”

  

내 이름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이름 뒤에 달린 하트도 본인이 원해서 새긴 건가, 생긴 거랑 딴 판으로 노는 것 같다.

  

뒤로 뒤집어보자 거기엔 예상대로 석희의 이름과 하트가 새겨져 있다. 본인이 원해서 새긴 거 맞네, 생각보다 유치해서 웃기다. 내가 거울을 통해 목걸이를 보며 웃고 있자 석희가 뒤에서 열심히 지켜보고 있다. 눈은 평소보다 풀려있는 것 같다. 너무 멍청하게 웃었나, 좀 무안해서 거울에서 나와 석희와 나란히 방문을 나섰다. 밖에는 당연히 석훈이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석현이는 학교에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내가 아픈 동안 계속 학교 안 가겠다고 매일 땡깡 부리더니 계속 심심해하다가 결국 다시 다니기 시작한다. 돌아오면 놀아줘야겠다.

  

“우와, 목걸이 뭐야? 멍멍이가 그거 차니까 대박 귀엽다, 이석희 너 이런 취미도 있었어?”

“시끄러.”

“이거 어디서 난 거야? 야, 나도!”

  

심심해서 바지 속에 손을 넣고 똥꼬를 긁다가 갑자기 팔이 당겨지는 바람에 손톱으로 똥꼬를 쑤시고 말았다. 고통의 비명을 질렀지만 아랑곳 않고 집을 나선 석희는 우선 나를 차에 태웠다. 간만에 타는 차라 그런지 냄새가 싫다. 차를 거의 타 본 적이 없던 터라 내게 있어 차는 멀미약 없으면 절대 맨 정신으로 지낼 수 없는 곳, 잠 없이 맨 정신으로 남과 대화할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내가 버스로 30분 동안 타고 오면서 멀미약과 귀 밑에 붙이는 멀미약까지 챙긴 다음 껌도 씹었다. 그리고 앞사람 보고 어디에서 깨워달라고 부탁하고 잤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차 안에서 절대 견딜 수가 없다. 멀미가 심해 수학여행 때도 담임의 위염을 재발시켰다. 왜냐면 꼭 멀미를 할 땐 코로도 나왔기 때문이다.

  

코로 한 번 뿜고 나면 한동안 숨쉬기 괴로워진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콧속의 이물질 탓에 아리고 몸 안으로 냄새가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따라 타버려서 말할 기회를 놓친 나는 일단 입부터 닫았다. 입을 열고 있으면 위험하다. 그래도 먼 곳은 가지 않을 거야, 부자들은 가까운 거리도 차타고 다니잖아, 그 생각으로 위로하면서 일단 졸음이 오는지도 확인 한다.

  

금방까지 뛰 놀아서 그런지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진다.

  

“졸려?”

  

몸을 의자에 깊숙이 누이고 눈을 감은 채로 잠을 청하는 도중에 들린 말이다. 고개를 아주 약간씩 천천히 저었다. 세게 저면 바로 토사물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나에겐 멀미 주머니라는 게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차 안에서 조금이라도 입을 열거나 공기를 크게 마시면 바로 입구를 열어 밖으로 배출하는 것 같다.

  

혹시 먹은 게 다 장으로 안 가고 멀미주머니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똥이 안 나오고 멀미만 나오지.

  

똥 하니까 아까 손톱으로 찍어버린 똥꼬가 생각 나 괜히 아프다. 정말 푹하고 들어갔는데 괜찮을라나, 나중에 똥 싸려고 힘주다 찢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 힘준다는 단어를 생각했더니 또 뭐가 올라올 것 같다. 배에 힘주면 바로 뿜어지니 조심해야 한다.

  

나는 살살 배 위에 손을 얹으며 속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어느 정도 가야 도착하는 지도 모르고, 목적지도 몰라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 줄을 모르니 속은 점점 더 답답해져 온다. 그나마 바깥 공기를 쐬기 위해 창문 좀 열어달라고 창문을 계속 두드리자 아주 약간만 열어준다. 아, 그나마 살 것 같다. 바람은 아주 약하게 들어왔다. 앞머리를 간지럼 태울 만큼의 바람은 자꾸 눈가를 시큰거리게 한다. 창밖을 보다가도 죽 이어지는 건물집단에 실망해서 그냥 눈을 감아버린다.

  

꼼짝도 하기 싫고 잠은 자야 한다. 목까지 뭐가 올라온 느낌이 들어 기분이 안 좋다. 트림을 하면 그대로 뭔가가 뿜어질 것 같다.

  

귀 근처로 뭐가 느껴진다 했더니 귓전에 머리카락을 옆에서 석희가 쓸어주고 있다. 제발 건드리지 말라며 손을 밀치는데도 석희는 차를 세워놓은 틈을 타서 내 머리를 쓸어준다. 날 죽이려고 환장했나 보다. 차라리 배를 칼로 확 찔러버리는 게 덜 고통스러울 거다. 멀미할 때의 느낌이 그렇다. 차라리 총이나 칼침 맞고 죽는 게 낮지, 차가 서 있느라 바람마저 안 느껴져서 목구멍이 울컥울컥거린다. 차의 진동이 너무 크게 느껴져 머리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서 억지로 침을 삼키며 참고 있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내 입 앞으로 느껴지는 석희의 뜨거운 숨에 그만 목구멍이 열려버렸다. 입술에 뭐가 닿는 순간이 신호탄이 되어 뿜어진다. 그것의 색은 오렌지색이었다. 매일 같이 죽과 깍두기를 먹었으니 그런 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석희의 온 얼굴을 뒤덮는 오렌지색의 토사물은 내 입과 코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눈물도 터져 나오고 구역질하는 소리도 내 귓가를 때려댄다.

  

“우웨에에엑!”

  

석희 얼굴에 이어 내 무릎과 바닥을 적시는 토사물은 양도 양이지만 색이 정말 이뻤다. 콧속에 그것들이 가득 찬 느낌에 조금이라도 숨을 쉴라치면 고통이 뇌 속까지 전해진다. 창피함과 고통에 울음이 터진 나는 엉엉 울었다. 눈물 사이로 보인 석희는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었고 어디쯤에 눈과 코와 입이 있었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내 토사물로 팩을 해 놨다.

  

한참 뒤에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가 어딘가를 뒤져 나온 티슈로 제 얼굴을 닦아낸 석희는 내 코를 풀어주고 입과 옷을 닦아주다가 ‘그대로 있어, 움직이지 마.’라고 짤막하게 말한 다음 불법유턴을 해서 집으로 향했다.

  

시간을 보니 출발한 지 10분 정도 되었을 때였다. 난 멀미약 없이 차 안에서 10분도 못 참나 보다. 새삼 수학여행 때 나를 따라다니며 내 토사물의 원형 조준판이 되어 주었던 담임 얼굴이 떠오른다. 그 때도 내 그것의 색은 오렌지색이었다. 엄마가 도시락에 깍두기를 잔뜩 싸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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