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통화음 끝에 연결 되어 들리는 태종이의 목소리에 목이 울컥거렸다. 막상 통화해 본적은 몇 번 없어서 태종이의 목소리가 조금 생소하게 들리긴 하지만 어쨌든 태종이의 목소리가 맞다. 여보세요, 라고 말하는 태종이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기운이 없어 보인다. 평소에 들었으면 상당히 짜증났을 목소리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목소리라도 좋아서 목구멍이 계속 울컥거린다.
여보세요만 연달아 하면서 약간 짜증을 내던 태종이는 결국 전화를 끊어버렸다. 당연히 난 줄 모르는 거다. 그 목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도로 번호를 눌러 걸자 이번에는 10초도 안 되어서 받는다. 다시 여보세요만 반복하던 태종이는 또 끊었고, 나는 또 걸었다. 인내심이 그리 끝내주지 않는 태종이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내가 지금 몇 데시벨로 소리를 질러야 그 씨발 같이 막힌 귓구멍을 뚫어줄 수 있을까?”
여보세요 하기도 지쳤는지 이를 부득부득 가는 태종이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쌍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얼마 만에 듣는 쌍욕들인지 모른다. 너무 정겨워서 눈물이 날 지경에 이르러 한 쪽 벤치에 자리 잡고 앉자 옆에 석희가 따라 앉으며 내 얼굴을 살핀다.
“태종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나갔다. 석희까지 놀라서 내 눈가를 살필 정도였다. 2주 밖에 안 떨어져 있었는데 목소리 들으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솔직히 2주라 이 정도지, 2달이었으면 이 자리에서 펑펑 울었을 거다.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 했는데 눈물이 안 나올 이유가 없다. 그런 내 심정에 비해 태종이의 목소리는 의외로 금방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뚝 끊기는 쌍욕은 그 너머로 누가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아무런 소리를 안 낸다. 이상해서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내려는 차에 다급한 태종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행히 내 목소릴 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 일수야? 일수 맞아?”
“어어, 태종아.”
“너 어디야, 거기 어디야!”
쌍욕할 때보다 더 커진 목소리에 놀라서 뒤로 조금 물러났다.
“씨발, 왜 안 들어오고 지랄이야, 내가 얼마나……. 에이, 씨발……. 내가 계속 스트레스 쌓여서 너한테 괜히 성질부리고 화풀이한 것 때문에 계속 미안한 생각 들다가 너 좋아하는 거 잔뜩 사가지고 들어갔는데 집에 없잖아, 그래도 하루 지나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는 데도 씨발, 개새끼…….”
“아, 미, 미안해, 내가 진짜 죽일 놈이다, 내가 어떻게 되었었나봐.”
“씨발 새끼, 됐다. 일단 지금 어딘데, 거기 어디야, 내가 갈게.”
“어, 그게…….”
“화 안 낼게, 정말 너만 다시 돌아온다면 나 다 용서하고 참을 수 있어. 너만 다시 볼 수 있으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 목소리가 떨려서 들렸다는 것 때문이다. 갑자기 뭔가 좀 이상하다. 항상 내게 위협적이었던 태종이가 굉장히 연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다 나한테 있는 것 같다. 속이 울컥하고 머릿속이 답답해지는 느낌이다. 분명 내가 어디 있는지 말하면 화낼 게 뻔해서 말도 못하고 속만 끓어오른다.
말라가는 입술을 계속 적셔가면서 대답할 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한다. 이수한테 끌려갔다고 할까, 그러면 분명 집에 전화해보거나 찾아갈 게 뻔하다. 좀 더 그럴 듯한 변명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마땅한 게 없다. 원래 잘 돌아다니질 않으니 어딜 갔다고 핑계 댈 만한 것이 안 떠오른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자, 그래야 납득을 하던가 하지. 그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쥐고 있던 석희의 손을 내려놓고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개 모집 하는데 붙었고 지금 거기서 키워지는 중이야.”
언제 둘러졌는지 내 어깨에는 석희의 손이 있다. 그 손은 내 어깨를 문질러주면서 겁을 내지 말라고 안심시켜주고 있다. 그래도 그건 별 효과를 못 본다. 미처 뭐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온 몸이 펄쩍 뛰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핸드폰 너머로 들린 악마의 목소리가 원인이다.
엑소시스트에 나오는 사탄의 목소리도 이렇게 위협적이지 못했다. 예전에 이수와 나란히 봤었는데 사탄에 놀란 나와 이수는 비명을 지르면서 서로를 끌어안았었다. 그 때 이수는 내 입가에서 흐르는 깍두기 국물을 보고 기절하고, 나는 이수를 기절시킨 무언가가 내 뒤에 있는 줄 알고 기절했었다. 그런 무서운 기억이 있는 엑소시스트에서의 사탄 목소리조차도 굴복시킬 만한 대단한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 삼킬 것 같다.
“이 씨발 좆병신 지진아 새끼야! 어디야, 거기! 사지를 다 찢어발겨 버릴 거야!”
너무 놀라서 혀까지 깨문 나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 진짜로 내 고추가 병신인지 확인할 뻔 했다. 전화를 얼른 끊어버리자 놀란 석희가 내 턱을 끌어당기면서 ‘피를 토할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야?’라고 물었다.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먹은 나는 최대한 석희의 팔을 끌어 당겨가며 일어나기를 재촉했다.
뭔지도 모르고 집으로 향하는 석희는 무슨 일이냐고 내게 자꾸 물어봤다. 문제는 내가 대답해줄 수 있을 만큼의 이성이 남아있지 않다는 거다. 도착하자마자 문부터 얼른 잠그라고 소리 지르고 난리쳐서 뭔지도 모르고 석훈이와 석희가 얼른 문을 잠갔다. 그리고 누가 나 찾으면 없다고 해달라고 부탁하고, 석희와 석훈이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무시했다.
1층은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해 우선 2층 석현이 방부터 찾았다. 막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바닥에 던지던 석현이는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뽀뽀야, 어디 갔었어? 완전 보고 싶었는데!”
입술부터 내밀어 내 입에 쪽쪽대는 석현이는 ‘왜 이렇게 많이 입고 있어?’라며 간만에 입혀진 내 옷들을 벗기기 시작한다. 뭔가 말할 타이밍을 놓친 나는 우선 석현이가 하자는 대로부터 따르기로 했다. 계속 안 입고 지내서 그런가, 나도 옷 입고 있는 게 좀 불편하긴 했다.
결국 목걸이와 빤쓰를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벗은 나를 침대에 눕혀놓고 열심히 쪽쪽대는 석현이에게 얼른 말을 꺼냈다.
“누가 나 찾으면 없다고 해!”
“응, 누가 찾아오는데?”
“있어, 그러니까 오면 나 숨겨줘.”
“혹시 빚 있어?”
“아니, 태종이가 찾아올 지도 몰라.”
이름이 너무 위대한 태종이라는 말에 내 빤쓰 위로 입을 문대던 석현이가 열심히 움직이는 중인 몸을 완전히 멈췄다.
분명 저번에 한 번 얘기를 꺼냈다가 욕실에서 험한 꼴 당할 뻔했던 것을 망각한 내 잘못이 크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금방까지 기분이 그렇게 좋던 석현이가 왜 이렇게까지 인격이 변하는지 이유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 석현이가 한 때 유행했던 그 다중이 같은 건가?
몸을 냅다 돌려놓고 빤쓰부터 끌어내리는 바람에 놀라서 얼른 내려가는 빤쓰를 잡아 올렸다. 그러자 너무 당연하게 내 손목을 잡아 올리면서 다시 빤쓰를 내린다. 나는 빤쓰를 벗는 시기가 딱 정해져 있다. 똥 쌀 때와 씻을 때, 그 때를 제외하곤 빤쓰를 벗을 이유가 없다. 지금은 똥도 안 마렵고 침대 위에서 씻는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도 없다.
내 똥구멍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소름 돋는 느낌이 들어서 몸집은 나보다 작은 주제에 힘은 돌쇠인 석현이를 최대한 등으로 밀어내려고 노력했다.
“야, 싫어, 하지 마.”
“좋게 말할 때 가만히 있어라, 응?”
“뭐야, 뭐하는데?”
“내 앞에서 그 새끼 이름 꺼내면 어떻게 되는지 교육 좀 시켜놓으려고.”
“아 꺼져, 하지 마!”
이럴 때마다 정말 정 떨어진다. 평소엔 정말 잘해주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인격이 변해서 또라이처럼 된다. 짜증스러움에 세게 밀쳤더니 뭐가 눈앞으로 번쩍하고 큰 충격을 느끼게 한다. 석현이의 손바닥이 내 뺨을 쳤다.
“뭐, 꺼져? 하, 개새끼 주제에 주인한테 하는 말버릇 봐라?”
잠깐 동안이었지만 내가 가만히 있는 틈을 타 빤쓰를 완전히 벗겨낸 석현이는 내 고추를 건드리며 다시 똥구멍으로 손가락을 전진시키기 시작한다. 정말 거지같은 기분이다. 거기서 더 기다리지 않고 덩달아 뺨을 쳤더니 놀란 얼굴로 나를 본다. 꽤 세게 쳐서 고개가 심하게 돌아갔는데도 그리 아픈 표정은 아니다.
내가 비록 개로 길러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석현이와 함께 지내면 재밌고 좋다. 친구처럼, 혹은 강아지를 선물 받고 좋아하는 동생처럼 느껴져서 같이 있는 내내 정말 편하고 즐겁다. 그렇지만 이럴 때, 내게 성적인 욕망을 품고 다가와 정말 나를 개로 대할 때는 수치심과 배신감이 크게 든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모든 행동들이 가식이었다는 것, 나를 한 번도 친구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울렁거리는 눈앞에 석현이는 계속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왜 개 주제에 사람처럼 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같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나 간다."
줄줄 흐르는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걸 보고도 훔치지 않고 그냥 일어서서 방문 쪽으로 향했다.
밖에 무슨 소란이 이는 데도 신경도 안 쓰고 그냥 문을 열고 나가면서 엉엉 울었다. 모르고 자다가 쉬한 유딩처럼 펑펑 울고 있으니 시끄럽던 거실도 소란이 뚝 끊기고 모든 시선이 나로 향한다. 거기에는 분명히 네 명이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석희와 석훈이가 순식간에 애를 두 명 낳아서 저만큼 길렀을 것 같진 않다. 키가 큰 네 명이 동시에 나를 보고 있고, 쪽팔림보다는 서러움에 내 울음소리는 잦아들질 않았다.
가장 먼저 내 몸에 손 댄 사람은 목소리를 들어봤을 때 석훈이가 분명했다. 석훈이는 내 어깨를 잡은 채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뭐라고 말을 걸었다.
“뭐, 뭐야? 멍멍아, 무슨 일이야? 설마 또 석현이가 뭔 짓 한 거야?”
“아, 싫어, 건드리지 마! 나 갈 거야, 보내 줘!”
“멍멍…….”
“그 손 안 놔, 씨발놈의 새끼야!”
누가 석훈이를 세게 밀치는 바람에 덩달아 나도 딸려가 엎어질 뻔했다. 목소리는 분명 이수와 비슷했다. 다행히 그걸 누가 잡아줬고, 나는 단박에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맞힐 수 있었다. 그 품은 아무리 봐도 태종이가 분명했다. 세상에, 태종이와 이렇게 비슷한 사람이 있다니, 너무 신기하다. 일단 알몸의 날 잡아줬고 오히려 제 품을 끌어당기는 걸로 봐서 내가 그를 껴안는다고 내칠 것 같지도 않다. 마침 태종이의 품이 그리웠는데 잘 되었다.
잊었던 울음소리를 내며 등 뒤로 팔을 두르자 내 등을 쓰다듬는 그 남자는 내 머리에 코를 박고 세게 끌어안았다. 이상하게 그 품은 아주 익숙한 냄새를 맡게 한다. 아무리 봐도 태종이고, 아무리 들어도 태종이의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나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만 했다.
“일수야, 미안해,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써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매일 화만 내고 늦게 들어와서 신경도 못 써주고…….”
“이 씨팔 놈 새끼는 또 뭐야? 야, 신파 찍냐? 니가 뭔가 착각하나 본데, 너도 이 새끼들하고 다를 거 하나도 없는 새끼야, 이 씨발놈아! 사람이 개냐, 짐승이냐? 왜 멀쩡한 짐승들 놔두고 사람을 데려가 개처럼 길러?”
“엄마 젖도 안 뗀 꼬꼬마 새끼 입에서 나올 말이냐, 씨발 새끼야? 그리고 누가 개처럼 기른데, 지 형 고추에 눈 돌아간 미친 새끼보다는 낫거든, 좆병신아. 너 솔직히 말해봐, 너 뽕알 한 개지? 그래서 여자 만나기 존나 쪽팔려서 니 형 고추에 매달리는 거지?”
“오냐, 이 씨팔 놈아, 나 불알 한 개다! 근데 씨발, 뭐 보태준 거 있냐고 씨발! 그러는 니는, 니 거시기는 존 만해서 여자한테 보이기 조온나 쪽팔려서 게이짓 하는 거지? 솔직히 말해봐, 니 좆은 하이샤파 연필 깎기에 꽂히지, 응?”
“넌 섹스할 때 콘돔 대신 골무 끼잖아, 씨발 새끼야!”
“넌 낄 거나 있냐, 개새끼야! 니 엄마는 아직도 니가 딸인 줄 안다며?”
“그만 해, 좀! 나 그냥 갈 거야, 니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
“일수야!”
나는 내가 어떤 상황인 줄도 모르고 그대로 태종이 품을 빠져나와 현관 쪽으로 향했다. 아랫도리가 시원시원한 것도 금방 눈치 못 챈 내가 병신이긴 했다. 막 나가려고 하는 내게 둘은 동시에 ‘옷은 입어야지!’라고 외쳤고, 나는 도로 문을 닫았다. 그대로 나갔으면 또라이 될 뻔했다.
석희가 석훈이보고 옷을 가져오라고 하자 석훈이가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생각해보니 내 행동이 조금 창피하다. 나도 사람이긴 사람이라 창피한 건 알아서 가려야겠다는 생각에 마땅한 것이 없는 허허벌판 한 가운데서 우선 태종이의 손부터 찾았다.
내게 무슨 짓 안 당했냐, 아픈 데는 없냐 하고 묻는 태종이의 손을 끌어서 일단 고추부터 가렸다. 태종이 손이 큰 건지 내 것이 작은 건지, 다 덮고도 남는 태종이 손에 의지해서 옆에 붙어 서자 이수가 입을 크게 벌리면서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 툭하면 삿대질부터 하는 버릇을 아직도 못 버린 거다. 근데 잘 보니 손가락 방향이 내 아랫도리와 태종이 얼굴로 간다.
뭔지 몰라서 태종이 얼굴을 올려다봤더니 피날 것처럼 벌겋게 익어 있다. 찌르면 큰일 날 것 같다.
“씨발, 어디다 손을 대! 소, 손 안 치워? 손 치우라고, 씨발 개새끼야!”
“시, 시끄럽고 옷이나 받아 와!”
“씨발, 야, 일수대출! 내 손도 있는데 왜, 왜 그 새끼 손을 써? 진짜,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너는 높이가 안 맞잖아.”
제크와 콩나무에서 콩나무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을 법한 인간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이수다. 키가 굉장히 큰 이수는 일찍부터 농구를 했어야 했다. 엄마는 그게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남달리 좋아했던 이수를 공부 시킨다고 학원만 여러 군데를 보내다보니 제 의사와 상관없이 커지는 몸은 운동으로 갔어야 했다고 외치고 있다.
솔직히 성적도 그저 그랬고, 대학도 그저 그런 데 갔다. 이럴 바엔 그냥 운동 시키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중학교 때도 농구로 전국에서 놀던 놈이 고등학교 때 진로를 잘못 결정해서 이 지경이 되었다.
내 머리가 돌인 걸 알고 일찍 공부를 포기시킨 엄마가 욕심이 과했던 거다.
그건 그렇고, 그 때문인지 나는 똑똑한 태종이한테 특히 심하게 의지하고 있다. 이것저것 매일 물어보고 귀찮게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다 맡기고……. 그 때문에 태종이가 내게 일찍 질린 줄 알았더니 아까 하는 말들을 들어보자 그렇지도 않나 보다. 그럼 나 혼자 쌩쇼 했다는 거잖아?
“태종아, 너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싫어하기는 누가, 너 또 뭔 생각으로 이딴 짓을 벌인 거야?”
“나 싫어해서 늦게 들어오는 거였잖아, 말도 안 하고.”
“말 했잖아, 너 먹여 살리느라 그렇다고! 말 안 한건 니가 잘 안 씻으니까…….”
“어쨌든 계속 늦게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거네?”
“아냐, 이젠 일찍일찍 들어올게, 들어가서 너 매일 씻겨주고 밥도 제때 주고 놀아주고 다 할게, 그러니까 이젠 갑자기 어디로 사라지지 마, 내가 다 잘못 했어.”
“아냐, 내가 더 미안하지, 말도 안 하고 나와 버려서 찾게 만들고.”
“이것들이, 진짜…….”
이수가 태종이를 확 밀치자 태종이도 이수를 밀쳐가며 신경전을 벌인다. 나는 우선, 그 동안 신세지고 고생해준 돌멩이 삼형제에게 다가갔다. 그 중 석현이는 아직 방에서 나오지 않은 것 같고 옷을 들고 온 석훈이는 내게 옷을 입혀주며 몹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평소에 그렇게 까불거리던 얼굴이 이렇게 변해 있으니 내가 다 속상하고 미안하다.
특히 석희에게 더 미안한 마음에 아무 말도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으니 석희는 목석같은 얼굴로 다가와서 내 목 근처를 만진다. 그러자 거기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아직도 그 목걸이가 차져 있는 거다.
“뺏을 거야.”
“응?”
“주인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어, 빼앗을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목걸이는 가지라는 것 같다. 굳이 풀어주지 않는 걸 보니 기념으로 주는 분위기다. 너무 고마워서 웃어보였더니 석희도 마주 웃어 보인다. 이상하게 평소와 다른 아주 여유로운 웃음이다.
잠깐 2층 방 쪽을 보다가 그 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눈에 벌게져서 울먹거리는 석훈이는 놀러오라고 난리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몰라도 석현이에게는 내가 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 만일 알렸다가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수는 또 한 번 이딴 짓 하면 날 죽여 버린다면서 내 머리를 세게 때렸다. 너무 세게 맞아 바닥을 구를 정도였다. 그 때문에 집 앞에서 태종이와 이수는 한참을 싸웠다.
나는 계속 몰랐다. 이수 손에 왜 신나가 들려 있었는지, 태종이 품에 쇠막대가 왜 숨겨져 있었는지, 석희가 내 목에서 목걸이를 빼지 않았는지 그 이유도 전혀 몰랐다. 설사 알았다고 해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난 개의 신분을 계속 버리질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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