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35)

  

  

살 게 많다며 나가려는 태종이를 붙잡아 억지로 같이 나온 지 30분 만에 또 머리를 맞고 혼났다.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만두집 앞에서 내가 발을 못 떼고 있으니까 태종이가 모처럼 착하게 웃으면서 먹고 싶어서 그러느냐고 물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기분이 좋아서 사달라고 졸랐다. 최대한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면서 태종이가 들고 있는 짐까지 들어주고 만두 먹고 싶다고 말했다.

  

가게엔 사람이 많아서 밖에서 만두만 먹기로 했다. 우리 외에도 여러 사람이 서서 먹고 있었다. 커플도 있고, 학생들도 있었다. 가끔씩 그 사람들이 나를 구경하는 느낌이 나서 이상해 태종이를 돌아보면 태종이가 고개를 팍 숙여가며 먹는 게 보인다. 이상하게 다른 쪽을 보면서 먹는 느낌이 난다.

  

기분 탓으로 여기고 한 번 더 간장을 들이킨 다음 만두를 집어 먹었다. 간장에 뭘 탔는지 몰라도 약간 맛이 떨떠름하다.

  

옆에 커플이 만두를 다 먹지 않고 계산했다. 뒤 돌아 나가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이 때다 싶어서 얼른 그 커플들이 남기고 간 만두 두 개를 집어 먹었다. 그와 동시에 태종이가 내 머리를 세게 때렸다.

  

“남이 먹던 걸 왜 먹어, 병신새끼야!”

  

너무 억울하고 이상해서 말도 못 하고 올려다만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다 먹지도 않았는데 그냥 계산해버리고 가버렸다. 아니, 거기다 침을 뱉은 것도 아니고 똥을 묻힌 것도 아닌데 아까우니 먹을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가지고 그렇게까지 화를 내? 머리까지 세게 때리고!

  

남은 만두를 다 입에 쑤셔 넣고 태종이를 겨우 쫓아갔다. 태종이는 계속 나보고 저리 가라고 했고, 10분을 더 쫓아가다가 화를 풀어주지 않아 마트에 들어설 때쯤 결국 쫓는 걸 포기하고 돌아서야했다.

  

그 때쯤 되니까 화나는 것보다 슬픔이 앞섰다. 이러다 집에서 쫓겨나는 거 아니야, 나 그러면 도로 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이수한테 계속 시달리면서 살아야 한다니, 토할 것 같다. 근데 태종이는 최근 들어 더 화를 자주 내는 것 같다. 그 날인가, 남자도 그런 비슷한 게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이유 없이 우울해질 때도 있고, 괜히 짜증날 때가 있다.

  

문제는 내가 지금 우울한 데에 제대로 된 이유가 있다는 거다. 난 역시 태종이의 마음을 이해 못 한다.

  

생각해보니 여기 길을 잘 모른다. 무조건 나오기는 했는데 금방 나온 마트도 언제부터인지 안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때문에 다시 태종이에게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거다. 한 때 그래도 개 행세를 했던 놈이 제 집도 못 찾아간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태종이 냄새를 맡아서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도대체 난 뭐하는 놈이지?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사람 다니는 길 가에 아무데나 걸터앉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결코 누군가를 기다린다고 하는 행동이 아니다.

  

너무 억울하게도 누군가가 나타나버렸다. 현재 내가 가장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도망간다고 열심히 뛰다가 결국 따라잡혀서 팔을 잡혀 끌려간다, 정말 힘으로 어떻게 이겨본다고 되는 새끼가 아니다. 내가 진짜 개라면 이 새끼는 개장수다. 나를 지지고 볶아 먹으려는 게 틀림 없다.

  

“나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봐줘, 이수야!”

“아빠가 어떻게 한 번을 집에 안 와 보냐고, 너무 보고 싶다고 언제 한 번 좀 데려와 달라고 부탁을 했거든, 나한테.”

“난 싫어, 아빠 안 볼 거야!”

“나도 지금 많이 참은 거야, 마음 같으면 지금 여기서 니 다리 한 개는 분질러 놓고 끌고 갔어,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도와줘라, 응? 우리 일수대출아.”

“아, 진짜 싫다고, 싫다고, 존나 싫어! 다신 안 볼 거야, 이거 놔!”

“집에 오면 얼마나 좋고 편하냐, 엄마가 밥 해주지, 아빠가 놀아주지, 내가 이뻐해주지. 그렇게 생각 안 하냐, 남대출?”

“여기서 혀 깨물고 죽어버릴 거야,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진짜 죽어버린다!”

“혀 깨물기 전에 뽑아버릴까? 씨발, 말로 할 때 조용히 알아 처먹으라고, 병신새끼야! 종태인지 태종인지 그 씨발새끼랑 붙어먹고 기만 세졌어, 응? 이참에 여기서 한 번 고분고분하게 만들어 봐?”

  

역시 협박이 안 통하는 이수를 달랠 방법이 없다. 돈으로도 대화가 안 통하는 이수한테 한 번 걸리면 적어도 하루 이틀정도는 집에 갇혀있게 된다. 남들이야 아무리 아빠가 싫다지만 하루도 같이 있는 걸 두려워할까, 하는데 정말 그건 우리 아빠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아빠와 함께하는 하루는 지옥이다. 한 시간도 같이 있을 수가 없다. 내가 뭐 하러 멀쩡한 집 놔두고 도망치듯 태종이 집으로 숨어들었겠어.

  

가뜩이나 태종이 못 찾아서 서러워 죽겠는데 이수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결국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수 팔을 껴안고 뜨거워진 눈으로 그 얼굴을 올려다봤다. 이수는 조금 동요하는 것 같았다.

  

“나 아빠랑 5분도 같이 있기 싫어, 이수야……. 나 살려줘, 제발, 하라는 데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집에는 가지 말자, 응?”

  

약간 눈동자가 흔들린 것 같아서 팔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줬다. 이수는 약간 벌게진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다가 괜히 헛기침을 한다.

  

“씨, 씨발, 귀, 귀여운 척하고 지랄이야, 재수 없게…….”

“귀여운 척이 아니라 불쌍한 척인데.”

“토 달지 마, 뭘 잘했다고……. 근데, 진짜 해달라는 거 다 해줄 거야?”

“돈 드는 거 빼고.”

  

왠지 진짜로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아서 관대한 척 말을 붙였다. 역시 그냥 넘길 수 없는 조건인 모양이다. 이수는 다시 생각하는 얼굴로 나를 가만히 보기 시작한다. 뭘 해달라고 하면 손해 보지 않는지에 관해 생각하는 중일 거다. 그래도 몸으로 대충 때우고 집에 안 들어가는 거면 정말 괜찮은 조건이다. 이수라면 뭘 시킬까, 딱히 뭔가 확 떠오르는 게 없다. 뭐든 혼자서 잘만 해치우는 이수가 시키는 일이라니 상상이 안 된다.

  

혹시 알몸으로 동네 한 바퀴 돌거나 여고 앞에서 바지 까기, 그런 거 시키는 게 아닌가 순간 눈앞이 아찔해진다. 이수라면 그런 거 시키고도 남는 새낀데, 내가 너무 앞 뒤 생각 않고 말을 꺼내버렸다. 개 노릇 하느라 아이큐도 고만 고만 해졌나 보다.

  

불안함에 벌벌벌 떠는 나를 한참 내려다본 이수는 식식 웃었다.

  

“자, 내 손 잡고 산책하자.”

“산책? 뭐, 그거면 돼?”

“아님, 뭐 또 시킬까?”

“아냐, 아냐, 이게 좋아.”

  

곰발바닥만한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이수가 향하는 곳으로 걸었다. 말 그대로 진짜 산책을 할 모양인 거다. 이수가 좀 어른이 된 건지 심한 걸 안 시키고 웬일로 관대하게 군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이수의 손은 생각보다 땀이 많이 난다. 가다가 서서 땀 닦고를 계속 반복하느라 걷는데 차질이 생기게 한다. 그래도 무섭게만 보이던 이수가 그런 부분을 보여주니 괜히 귀엽게도 느껴지고 진짜 사람답게 보인다. 가끔씩 내가 우스운 장면을 가리키면 무방비하게 웃기도 했다. 한참 웃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곧바로 얼굴을 굳히고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중간 중간 내가 코를 팔 때는 자꾸만 내 팔꿈치를 치는 시늉을 하며 못 파게 했다. 어릴 때부터 봐와서 그런지 확실히 이수는 나를 너무 잘 알았다.

  

오른쪽, 왼쪽, 또 왼쪽, 오른쪽 하는 사이에 도착한 곳은 굉장히 친숙한 건물 앞이었다. 당연하긴 했지만 이수는 내 손을 잡고 우리 집까지 왔다. 입이 떡 벌어져서 멍청하게 서 있는 내 옆에서 이수는 6살 때 그랬던 것처럼 아주 해맑게 웃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키가 똑같았던 이수가 저렇게 곧잘 웃었었다. 그 때는 이수가 나를 따라다니며 내가 다른 친구와 노는 것을 질투하는 게 그저 귀엽기만 했는데 지금은 끔찍하기만 하다.

  

그건 그렇고, 곧장 도망치려는 나를 공주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데 가볍게 안아든 이수가 4층까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올라갔다.

  

누군가에게 안겨서 계단을 오르는 게 너무 무서웠던 나는 이수의 목에 매달려 있는 수밖에 없었다.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힘이 드는지 숨이 거칠어지는 이수는 목과 얼굴이 점점 더 벌겋게 열이 올라갔다.

  

“남대출.”

“왜.”

“너 의외로 무겁다?”

“그럼, 남잔데.”

“하도 지진아같이 굴어서 몸무게도 초딩일 줄 알았지.”

“무거우면 내려줘.”

“싫어.”

“이러고 집에 들어가게?”

“어.”

  

이수 웃는 얼굴이 진짜 무서웠다. 지옥에서 악마를 끄집어내서 옆에 대놓아도 못 이길 얼굴이다.

  

힘자랑이라도 하려는 모양인지 그대로 비번까지 누른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내 몸을 한 번 튕겨가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 때는 좀 재밌었다. 그 때문에 웃었다가 일수 잡아왔다는 이수 목소리에 뛰쳐나오는 아빠 보고 울 뻔했다.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괴력을 발휘한다고, 무시무시한 이수까지 단박에 뿌리친 나는 그대로 방까지 뛰어 들어가려다가 결국 아빠 손에 붙잡힌다.

  

덩치가 이수 만한 아빠는 까맣게 기른 콧수염이 흡사 김흥국을 떠올리게 한다. 배도 나왔고, 온 몸이 우락부락하다. 어릴 땐 특히 아빠가 너무 무서워서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내가 앵앵 울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나를 껴안은 아빠는 고릴라 같은 얼굴과 아주 대조되는 목소리를 꺼낸다.

  

“우리 일쭈 왔쪄요?”

  

얼굴이 스머프가 되었을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아빠를 마구 밀어냈다. 하지만 아빠의 힘을 이겨내지 못해 계속 안긴 채로 발버둥만 열심히 쳤다. 눈은 열이 나고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혼절하기 직전이다.

  

“빠빠는 우리 일쭈 보고 싶었는뎅, 일쭈는 빠빠 안 보고 싶었쪙?”

“싫어, 놔! 아빠 싫어, 저리 가! 저리 가!”

“일쭈야, 빠빠한테 자꾸 그러면 때찌야, 때찌! 빠빠가 때지하면 일쭈, 아야, 아야 해, 그러니까 빠빠 말 잘 들어야 되용?”

“아빠 싫어, 제발 저리 가! 아빠 말 듣기 싫어, 짜증나! 아빠랑 1초도 같이 있기 싫어, 나 좀 놔줘!”

  

내 허리만한 팔뚝으로 온 몸을 꽉 붙들어 매놓고 한다는 소리가 저거다. 그 팔에 맞으면 아야아야가 아니라 그냥 세상 하직인데 본인은 모르다 보다. 이래서 난 아빠가 너무 싫다, 옆에 있으면 토할 것 같고 짜증나고 스트레스 쌓여서 머리털이 다 빠지는 느낌이 난다. 아빠랑 살다간 대머리가 될 거다.

  

줄줄 흐르는 눈물로 온 얼굴을 적시도록 아빠는 계속 내게 제 털투성이 볼을 내민다. 콧수염까지는 봐줄만 한데 도저히 저 정글 같은 턱수염은 정이 가질 않는다. 너무 야만적으로 자라서 얼굴만 보면 진짜 무서워 간만에 보면 오줌을 다 지릴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말투가 생긴 것과 다르게 저 따위라는 거다. 가느다랗게 내는 목소리로 저런 말투를 사용하는 아빠는 정말 자신이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차멀미 심한 것도 다 아빠 탓이다. 아빠와 같이 차를 타는 족족 5분도 안 되어 마구 멀미를 해댔으니 그게 버릇으로 안 남는 게 이상한 거다.

  

“그럼 안되요, 일쭈야! 오랜만에 봤는데 뽀뽀해야지, 뽀뽀! 빠빠 볼에 쮸, 해봐, 일쭈야.”

“아빠랑 살닿는 것도 싫어, 아빠 목소리 듣는 것도 싫어! 이수야, 나 살려줘, 이수야! 으흐어어어어……. 이수야…….”

“후후, 일쭈는 부끄럼쟁이! 그럼 빠빠가 먼저 쮸, 할껭?”

“싫어, 살려줘!”

  

내 볼에 닿는 아빠의 두툼한 입술에 비명을 지르며 밀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기운만 쪽쪽 빠져서 정신이 절반 나간 상태로 아빠에게 계속 안겨 있었더니 지옥 같은 악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쭈야, 오늘 맘마 못 온뎅, 그러니까 우리 일쭈는 빠빠랑 같이 자는 거당? 빠빠 혼자 자는 거 외롭고, 무섭고, 막 호랑이 나타나서 어흥, 할 거 같고 해서 싫어, 일쭈 꼭 껴안고 잘 꺼양, 후후! 일쭈야, 이제 우리 목욕하러 가장, 빠빠랑 목욕!”

“이수야…….”

  

욕실로 끌려가는 와중, 마지막 힘을 다 해 이수를 불렀지만 이수는 멀찍이 서서 우는 나를 지켜보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엑소시스트든 어디든 곧잘 나오던 사탄들 다 데려다 붙여놔도 게임이 안 될 것 같은 얼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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