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거대한 몸집에 눌리는 바람에 잠깐 정신을 잃었던 나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수를 발견했다. 아빠의 갑옷 같은 근육질 몸에 압사 당할 뻔했다. 다음부턴 절대 아빠 손가락을 깨물지 말아야겠다. 그거 조금 깨물었다고 샌드위치 공격을 할 줄은 몰랐다. 가만히 서서 나를 보던 이수가 눈 뜨고 멍청하게 저를 보는 나 때문에 내 옆에 앉아서 다시 나를 본다.
그 손은 평소와 다르게 내 볼을 만지작거린다. 머리나 팔뚝을 때리던 손이 내 얼굴을 만지니 조금 겁난다. 불에 달궈진 쇠꼬챙이로 코를 쑤시기 위해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무서워서 손을 피하려고 들자 볼을 꽉 꼬집어 버린다. 역시 내게 고통을 주려는 거였다.
이상하게 굳은 얼굴로 한숨을 쉬는 이수는 이번엔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 그것도 피하려고 들자 이번에도 역시 만지던 머리카락을 확 잡아당겨버린다. 너무 아파서 신음소리를 냈더니 잠깐 식 웃고 만다.
“집이 왜 싫어?”
그렇게 심각한 얼굴도 아니고 심각한 상황도 아니다. 멍청하게 가만히 있는 나한테 이수가 물었다. 구체적으로 뭐가 싫어, 라고 물어보려는 의도도 없다. 그냥 묻는 것 같다. 이수의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지한 눈을 피해 천장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콧속에 찔러 넣었다. 그런 다음 눈을 감으니 편안해진다. 코에 손가락이 들어 있으면 긴장이 사라진다.
이수는 그게 그렇게 꼴 보기 싫은지 내 손가락을 코에서 빼놓는다.
“다들 너만 좋아하잖아.”
“아빠 하는 거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난 학원도 안 보내줬어, 내가 그렇게 공부한다는데도 안 보내줬지, 심지어 아르바이트 한 번을 허락 안 해줬잖아! 용돈도 거의 안 주고, 놀러 나가는 것도 못 나가게 하고, 비싼 건 절대 안 사주고……. 특히 7살 때, 난 아직도 기억 나! 너한테만 골드런 사주고 나는 안 사줬잖아! 내가 먼저 갖고 싶다고 말했는데도 난 안 주고 너한테만 사주고, 운동화도 너만 골드런 운동화 사주고 나는 그림도 안 들어간 까만 싸구려 운동화 사줬었어! 내가 가오가이거 보고 있을 때 니가 빨간 망토 차차 보고 싶다고 말하면 엄마가 바로 빨간 망토 차차 틀어줬었잖아!”
“그래서, 그게 억울해서 그런 거야?”
“아빠도 날 장난감 취급 해. 거의 그냥 장식용이야, 제대로 된 아들은 너 하나뿐이고 난 그냥…….”
그냥, 이라는 말에 에코가 붙어버렸다. 그냥이라는 말을 크기만 다르게 해서 몇 번이나 중얼거리다가 말았다. 내 위로 올라타는 이수는 정말 장난이 아닌 것 같다. 내가 한 말에 화라도 났나 보다. 올라타서 두들겨 패려는 게 틀림없다.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자 아무도 없는지 정적이 흐른다. 생각해보니 아까부터 이수와 내 목소리만 들렸었다.
“아빠는?”
“니 약 사러 나갔어.”
“왜, 왜 안와?”
“알잖아, 아빠 한 번 나갔다 하면 기본 한 시간 이상은 쇼핑 하는 거.”
“너 내려가.”
“왜?”
“내려가, 무서워.”
“무서워?”
이수의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다. 덜덜 떨리는 입으로 겨우 말을 고쳤다.
“아니, 무거워.”
무거워가 아니라 무겁, 이라고만 말했다. 이수의 입이 내 입을 열심히 핥고 있다. 이상하고 뭔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다가 내 옷 안으로 들어오는 손이 가슴을 주무르는 게 느껴져서 얼른 그 몸을 밀쳤다. 이수가 너무 이상하고 징그럽다. 석현이한테 옮은 게 아닐까, 그 때 그 집에서 둥둥 떠다니는 석현이의 변태세균 같은 게 이수한테 붙어 버렸나 보다.
내가 하는 몸부림이 그렇게나 웃기다고 훅하며 웃는 바람에 내 입안으로 이수의 입바람에 숭숭 들어왔다. 너무 이상해서 토할 것 같다. 기침이 막 나오려는 순간 이번엔 바람이 아니라 진짜로 뭐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들어올 수 있는 건 혀뿐이고 느낌도 벌레마냥 휘젓고 다니는 게 너무 구리다. 온 힘을 다해 팔꿈치로 그 가슴팍을 밀어내지만 내 힘만 빠질 뿐이다. 역시 이수는 농구를 했어야했어.
이수의 손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내 그시기를 확 물었다. 그 순간 나는 냅다 이수의 혀를 깨물고 말았다. 그리고 들리는 이수의 비명소리, 더불어 그 곳에서 빠져나와 현관까지 달린 다음 내 신발을 껴안고 집을 뛰쳐나왔다. 이 세상 모든 사탄들을 다 갖다 놔도 이수에겐 게임이 안 될 거다. 난 이제 태종이한테 가서 꽉 붙어 있을 거다. 아무도 안 믿을 거다.
내 눈에서 넘쳐나는 눈물을 닦으며 내 기억력을 총 동원해 태종이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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