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35)

  

지금이 몇 시인지 잘 모르겠다.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벌써 주위가 어두컴컴하고 슬슬 피로가 몰려온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온다. 분명 익숙한 길이 나와서 좋다고 따라 갔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태종이의 집 근처는 얼씬도 못했다. 태종이의 집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이사가버리지 않는 이상은 그 정도 했을 때 안 나오는 게 비정상이다.

  

어딘지 감도 안 잡히는 하천 다리 밑에 쭈그리고 앉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모르겠다. 혹시 이대로 영영 집도, 태종이도 못 찾으면 굶어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팍하고 든다. 깍두기를 못 먹는 나, 깍두기 국물을 못 마시는 나, 깍두기 접시를 핥지 못하는 내가 머릿속에 가득 떠올라서 무서운 속도로 돌기 시작한다. 손발이 다 떨리고 오줌을 지릴 것만 같은 무서운 상상이었다. 등 뒤에서 갑자기 귀신이 덮쳐도 이보단 무섭지 않을 거다.

  

특히 엄마가 담근 깍두기를 못 먹는 나를 상상하는 순간 고등학교 성교육시간에 받은 콘돔에 물 채워서 물풍선 만들어 터뜨리고 놀았을 때처럼 눈물이 펑펑 터졌다. 하지만 난 너무 졸렸다. 엉엉 울면서 신발로 베개를 만든 다음 거기에 머릴 대고 잠이 들었다.

  

근데 밖에서 자는 것도 기분이 괜찮다. 벌레 소리도 듣기 좋고 바람도 솔솔 부는 게 장난 아니게 잠이 잘 온다. 다음에 태종이도 데리고 나와서 밖에서 자야겠다.

  

거기까지 생각한 다음 눈을 번쩍 떴다. 생각해보니 계속 태종이를 만나지 못하면 데리고 나와서 같이 잘 수도 없는 거다. 근데 이젠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다. 내가 계속 이러고 있으면 태종이가 날 찾으러 다닐 거고, 저번처럼 ‘사람 찾습니다’ 광고를 내면 사람들이 알아서 나를 태종이에게 신고해줄 것 같다. 그럼 그 때까지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나다녀야지.

  

살살 눈을 감고 쏟아지는 잠을 청하다가 다시 눈이 번쩍 떠졌다. 나 태종이 핸드폰 번호 외웠었지!

  

일단 자고 내일 연락하자, 그 생각이 드는 순간 곧바로 곯아 떨어졌다. 금방까지만 해도 시원시원하다고 생각했던 밤바람에 조금 으슬으슬 춥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