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내내 태종이와 뒹구느라고 귀찮아서 안 나왔다가 드디어 날이 밝자마자 태종이 나가는 거 확인하고 몰래 나왔다. 가능한 한 멀리로 다니지 말라며, 이수와 또 먼저 말을 걸어오는 다른 사람들을 절대 따라가지도, 상대도 하지 말고 곧장 도망치라고는 했지만 나도 일을 구해야만 하기 때문에 지금은 이게 우선이다. 한 번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이수가 나타난다 해도 별로 무섭지 않을 것 같다.
인터넷만으로는 성에 안 차서 좀 발로 직접 뛰어 찾는 게 뭔가 더 성과가 있을 것 같다. 가능한 한 집에서 가깝고 일이 늦게 시작해서 일찍 끝나는 게 좋겠다. 그래야 태종이에게 들키지 않고 일을 하지.
여기 저기 가게들을 기웃거렸다. 직원 구함, 아르바이트 구함 등 여러 가지 종이들이 붙어 있다. 왜 가게 중에 깍두기 전문식당은 없는 걸까, 크기별, 맛별로 깍두기들을 팔았으면 좋겠다. 그럼 난 거기서 일을 하고, 매일 같이 깍두기를 먹는 거다. 그럼 진짜 행복할 텐데.
그래도 깍두기를 많이 먹는 법한 곳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삼계탕 파는 곳은 유난히 깍두기를 많이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치도 종류별로 많았고, 태종이와 몇 번 복날에 삼계탕 먹으러 다녔었는데 깍두기들이 하나같이 정말 맛있었다.
막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누가 나를 부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멀리서 부르는 것 같다. 혹시 이수인가 싶어서 계속 무시하고 걸었더니 결국 어깨를 잡힌다. 그래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나쁜 짓은 하지 않겠지, 그 생각으로 돌아본 거기에는 이수가 아닌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모처럼 하고 나왔던 목걸이를 건드리고 있다. 간만에 내 손으로 세수도 했고, 머리고 감고, 면도도 해가면서 깔끔하게 하고 나왔다. 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이 목걸이를 한 내 모습으로 칭찬을 받아봤기 때문에 일부러 목걸이도 하고 나왔다.
“내가 준 거…….”
역시 언제 봐도 키가 큰 석희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내 목에 둘러진 목걸이를 만지작거린다. 그럴 때마다 딸랑딸랑 소리가 난다. 꼭 개목걸이 같아서 처음엔 그랬는데 계속 보니까 또 나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악세사리 같다.
“뭐해?”
“응?”
여전히 목석같지만 은근히 기분 좋아 보이는 목소리로 나한테 묻는다. 뭔지 몰라서 내 몸을 내려다보다가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파악이 되었다. 지금 여기를 돌아다니는 목적에 대해 묻는 것 같다. 간만에 만난 사이끼리 이 정도 묻는 건 당연했다.
“일자리 구해.”
“왜?”
“돈 필요해.”
왠지 말해놓고도 멋쩍어서 내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더니 딸랑거리는 내 목걸이를 한참 내려다보던 석희가 드디어 그 얼굴로 식 웃었다.
“아직 보수 안 줬는데.”
“응?”
“일 한 만큼 돈 안 줬다고, 2주분.”
“어, 그거 주는 거야?”
“당연하지, 일 한 게 있는데.”
“일 안 했는데.”
“개 행세 해줬으면 그게 일이지.”
석희 말을 다 이해 못 하겠다. 이젠 나랑 상종도 안 할 줄 알았다. 근데 일한 만큼 돈을 주겠다니, 진짜 석희가 무슨 보살처럼 느껴진다. 석희는 죽을 때도 곱게 늙어 죽을 거다. 기분이 좋아서 얼른 석희 팔을 잡으며 실실 쪼갰더니 석희가 내 어깨에 팔을 둘러가며 가자고 한다. 현금으로 주나보다. 계좌이체도 상관없는데, 하지만 현금이 더 좋긴 하다. 그래야지 태종이에게 짠하고 줄 수 있다.
복잡한 사거리를 지나 인적이 드문 길가에 차가 세워져 있다. 저번에 봤던 석희의 차였다. 내가 입을 틀어막고 석희를 올려다보자 석희가 품에서 뭔가를 꺼낸다.
“멀미약.”
뭐냐고 묻기도 전에 내게 병을 건넨다. 그냥 음료수로 보이는데 멀미약이라니, 일단 마셔야겠다.
차에 타자마자 얼른 신나게 마셨다. 석희는 이상할 정도로 나를 한참 바라보면서 내가 음료수를 마시는 걸 구경한다. 멀미약 먹는 모습을 다 확인하고 출발할 건가보다. 역시 석희는 착하다.
약이 좀 독한 건지 먹자마자 갑자기 잠이 쏟아진다. 몸도 뜨끈뜨끈한 게 눈만 감으면 금방 잘 수 있을 것 같다. 석희가 괜히 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통에 딸랑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그리고 내 볼에 석희 입이 닿는 순간 눈이 감겼다. 일단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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