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엿보기 전에 이왕 뚫린 거 끝장을 봐야겠다는 생각과 아쉬움에 변기를 못 떠나고 있는데 화장실 밖에서 아주 익숙하고 끔찍한 목소리가 들린다. 학교 갔다 왔다고 말을 하는 석현이의 목소리다. 서둘러 똥부터 닦고 얼른 변기 물을 내리는 동안 물소리에 뭐라는 대화 소리가 잘 안 들린다. 석희라면 분명 석현이에게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릴 거다. 그래야 내가 이 집을 쉽게 못 떠나기 때문이다.
숨을 곳부터 찾아가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얼른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너무 티난다. 그럼 욕실에서 마땅히 숨을 곳이란 어딜까,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겠다. 우선 커다란 대야부터 찾아서 머리에 쓴 다음 수건으로 그시기를 가리고 계속 뭔가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정말 이렇다 할 게 없다. 나를 숨길 수 있는 커다란 무언가가 필요하다. 난생 처음으로 내 큰 몸을 탓해가며 계속 궁시렁거렸다.
그러고 계속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문이 확 열리는 통에 놀라서 얼른 엎드렸다. 큰 대야라고 해봐야 내 머리와 등의 절반 정도만 가려지고 나머지 중요한 부분은 전부 노출되어 버린다. 그것도 하필 문과 반대방향 쪽으로 엎드리는 바람에 내 똥꼬가 적나라하게 보여 지고 있을 거다. 난 왜 이렇게 머리가 금방 금방 안 돌아갈까?
분명 어릴 때 무슨 큰 사고라도 겪었을 거다. 지금은 기억 못할 만큼의 엄청난 사고를 당해서 뇌가 반은 날아가고 없는 게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멍청하게 무릎걸음으로 방향을 틀어 똥꼬를 가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거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대놓고 폭소했을 멍청한 짓에도 별 말이 없는 석현이는 한참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서 있다가 나한테 조금씩 다가온다. 걸음이 아주 느리지만 분명 나로 향해 있다. 반사적으로 주변에 있는 것을 집어서 석현이 쪽으로 집어 던졌다. 비누나 샴푸, 오일 같은 것들이 주 무기가 되었다.
“오지 마, 저리 가! 나 보내달란 말이야, 나 집에 보내 줘! 나 이제 니네 개 아니잖아, 돈만 주고 그만 보내 달라고!”
실컷 던지던 물건들 중 몇 개는 명중 시켰을 거다. 그만한 소리가 들리는 걸 미루어 볼 때 꽤 큰 타격을 받은 게 틀림없다. 아픈 신음소리를 흘려가며 나한테 다가오던 석현이는 바로 코앞에 제 발을 보이고 섰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무릎이 보이고, 그 다음으로 손이 보인다. 그 손이 내 머리에 얹어진 대야를 걷어 내 얼굴을 확인하려고 든다. 걷어진 대야 뒤로 보인 석현이는 표정이 말이 아니다. 금방 울음을 터뜨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우울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갑자기 그런 얼굴을 보이니 내가 이것저것 던져댄 게 엄청 미안해진다. 맞아서 아파 우는 거라면 그럴 만한 나이기도 해서 혹시 다친 건가 우선 석현이의 어깨를 끌어다 살폈다.
“뭐야, 왜 그래? 어디 다쳤어? 봐봐, 어디 다쳤어?”
“뽀뽀야아!”
나를 냅다 끌어안은 석현이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울음소리를 낸다. 내게 매달려서 엉엉 우는 석현이에 경악해서 멍청하게 입을 떡 벌리는 내 앞에 석희가 가만히 서서 구경 중이다.
“내가 다 잘못 했어, 제발 다른 데 가지 마, 나 진짜 다 잘못한 거 알아! 나 이제 알았단 말이야, 나 니가 너무 좋아, 진짜 좋아 죽을 거 같애…….”
“아니, 석현아, 잠깐 일단 뚝 그치고…….”
“아니야, 아니야, 가지 마, 내가 진짜 다 잘못한 거 알아! 제발 가지 마, 뽀뽀야아…….”
나는 알몸에 욕실 안은 내 똥냄새가 가득하다. 그 가운데 나를 끌어안고 펑펑 우는 석현이는 분명 되게 웃긴 상황일 텐데 전혀 웃질 않는다. 여기서 더 무슨 웃긴 짓을 해야 석현이가 뚝 그칠까, 잠깐 주변을 둘러보다가 내 뽕알을 들춰보였다.
“유부초밥.”
짱구가 잘 쓰는 수법이고 애들도 보면 잘 웃기 때문에 한 번 해봤는데 석현이는 별 반응이 없다. 초등학생처럼 콧물 펑펑 쏟으며 우는 통에 일단 닦아줘야 할 것 같아서 내 그시기를 가리던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줬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내 유부초밥으로 효과를 못 보던 석현이가 뚝 그쳤다. 아, 닦아달라는 거였구나. 괜히 유부를 보인 게 쪽팔리다.
눈물 콧물, 침까지 다 닦은 다음 딸꾹질을 하던 석현이는 나한테 안긴 채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무겁고 불편해서 옆으로 치우려고 했더니 성질을 내가며 계속 붙어있겠다고 한다. 울 때만큼은 약간이나마 귀여워 보였던 놈이 지금은 그냥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다.
욕실에서 나오자 나오길 기다린 석희가 벽에 기대어 서서 우리 꼴을 쭉 훑어보고 식 웃는다. 비웃었다.
“왜 웃어?”
“웃겨서.”
하긴…….
나는 일단 하는 수 없이 석현이 방까지 올라갔다. 옷은 입어야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옷장 한 구석으로 당연하게 자리 잡은 내 빨깐 빤쓰들 중 하나를 골라 입고 게임을 켜는 석현을 돌아봤다. 석현이는 얼른 같이 하자며 나를 밥 주는 주인 기다리는 개처럼 보고 있다. 내가 아예 다시 들어온 줄 아는 거다. 그래서 옆에 석현이 옷을 꺼내 입었더니 표정이 구려진다.
지 옷 좀 입었다고 저 지랄이다. 당장에 내가 입은 제 옷들을 벗기려고 해서 그 손을 다 쳐내고 석현이를 똑바로 바라봤다.
“갈 거야.”
“왜?”
“왜긴 왜야, 집에 가야지.”
“그 태종인지 종태인지 그 새끼 집?”
“석현아.”
진짜 얄밉게 날 노려보는 석현이 눈알을 확 뽑아버리고 싶다.
“태종이가 니 친구냐? 형 자 붙여라?”
“뭐?”
“그 전에는 내가 이 집에 고용되어 있는 몸이고 해서 참아줬지만 지금은 그런 관계도 끝났잖아.”
지금까지 봐온 석현이에 관한 기억 중에 저렇게 눈을 크게 뜬 적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다. 멍청하게 나를 보는 얼굴에 손가락을 튕겨 보다가 도저히 반응이 없어서 그만 그 방을 나가려고 했다.
갑자기 내 팔을 붙잡은 석현이는 오기가 가득한 얼굴이다.
“그럼 정식으로 사귀는 건 어때?”
“뭐?”
“그 전에는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 행세를 했다지만, 이제는 정식으로 사람 대 사람, 진짜 남자친구로 받아들이는 게 어떠냐고.”
“내가 왜?”
“그 태종이라는 사람도 니 주인이라며, 혹시 빚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내가 다 해결해줄게. 그러니까 나랑 사귀자, 내가 진짜 잘 해줄게.”
이 병신새끼가 뭐라고 개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머리에 총 맞은 것도 아니고 고딩새끼랑, 그것도 남자새끼랑 사귀겠나, 진짜 머리 안 돌아가는 새끼다. 처음 볼 때부터 그랬지만 석현이는 진짜 단순하고 멍청하다. 나도 남 말할 처지 아니라도 정도가 지나친 석현이가 이런 집구석에서 아무렇게나 방치 되어 자라고 있다는 게 참 가엽다. 부모들은 뭐 하는 놈들이길래 변태새끼 둘한테 덜 자란 막둥이 던져놓고 코빼기도 안 보인데?
방문 옆에 놓인 화분을 들어 머리를 한 대 패고 바닥으로 쓰러지는 석현이를 발로 민 다음 1층으로 내려왔다. 날 병신 취급해도 정도가 있지, 왜 다들 날 가볍게 보는 거야, 내가 그렇게 돈에 환장하게 생겼나?
“나 간다.”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 석희에게 한 마디 던지고 현관 쪽으로 걸었다. 역시 그냥 날 내버려둘 리 없는 석희는 금방 쫓아와서 내 팔을 잡아끈다.
“어딜 가.”
“집.”
“돈은?”
“계좌번호 알려줄 테니까 거기로 넣어줘.”
“대답은?”
“또 뭐?”
간만에 인상이란 것을 잔뜩 써가며 돌아봤다. 석희는 내 표정에 큰 불만 없이 목석같은 얼굴로 내려다본다. 다시 한 번 불알을 까서 그 때 그 표정을 또 보고 싶다. 이놈의 목석같은 얼굴은 어떻게 마지막 날까지 그냥은 변하지를 않을까, 진짜 부모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잡은 팔을 주물럭거리는 게 소름 돋아서 확 빼자 생각보다 잘 빠진다. 나를 내려다본 채로 제 목을 주무르던 석희는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다.
“내가 먼저 말했잖아.”
“뭘?”
“내 얼굴에 토를 하던 똥을 싸던 좋다고.”
“무슨 고백이 그래?”
언제 내려왔는지 석희 옆으로 다가오는 석현이는 못마땅한 얼굴로 석희를 올려다보다가 내 옆에 삭 붙는다. 떨어지라고 발로 찼더니 또 내 옆으로 붙는다. 그 동안 돈 때문에 정말 많이 참아왔다. 내가 이 새끼한테 얼마나 많은 한이 쌓여있는지 아마 본인은 모를 거다. 그래서 한 번 더 세게 걷어차자 바닥으로 구르던 석현이가 성질을 있는 대로 내면서 일어난다.
그래봐야 17살 쬐끄만 꼬맹이 주제에 지가 뭐 대단한 거라고 바락바락 대든다. 이마에는 나한테 금방 화분으로 얻어맞은 덕에 혹이 나 있다. 쌤통이다.
별 대꾸 없이 가만히 있는 나 때문에 대드는 걸 포기한 석현이는 괜히 석희한테 궁시렁거린다.
“어떤 미친년이 그런 고백 받고 좋아하냐? 차라리 그냥 나처럼 빚 갚아준다고 하던가.”
“시끄러.”
내가 보기엔 둘 다 병신이다.
“자, 그럼 빨리 선택해. 나야, 석희 형이야?”
석현이를 돌아보는 석희는 그 얼굴에서 약간의 인상을 썼다가 다시 나를 돌아본다. 그 목석같은 얼굴에서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지는 게 느껴진다. 지도 기대하고 있는 거다. 내가 석현이를 선택할지, 저를 선택할지 궁금해 한다. 만일 내가 보통 남자가 아니라 보통 여자였다면 아무래도 석희를 택하겠지 싶다. 일단 석희는 그래도 날 꽤 잘 챙겨주고 비신사적인 행동은 별로 하지 않는다.
아, 아니지, 금방 내 똥꼬를 막 쑤셔댔잖아. 생각해보니 석희나 석현이나 거기서 거기다. 여기에 들어온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석희가 막무가내로 무슨 수를 써서 끌고 왔었을 거다. 결국 둘이 하는 짓은 똑같다는 거다.
피곤해서 머릴 감싸자 갑자기 호들갑을 떠는 석현이가 내 머리를 붙잡고 난리다.
“뭐야, 어디 아퍼? 봐봐, 이 형이 봐줄게.”
“씨발, 누가 누구 형이야? 나한테 형 소리 안 붙여?”
“우리 이쁜이, 삐쳤어요? 뭐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 해봐, 형이 다 사줄게.”
질리지도 않고 내 팔에 매달려서 앵앵거리는 석현이는 제 딴엔 애교 있는 얼굴이라고 계속 들이댄다. 완전히 혼자 착각하고 앉은 석현이를 어떻게 설득할지 생각하는 중인데 옆에 약간 자신이 없어 보이던 석희는 한참 석현이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저도 뭐가 생각났는지 입을 연다.
“갖고 싶은 거라면 나도 사줄 수 있어.”
목석같은 얼굴 어디에선가 약간 자신감 넘치는 기분이 느껴졌다.
결국 둘의 성화에 못 이겨 내가 지금 가장 갖고 싶은 것에 대해 털어놓기로 했다. 그 것에 대해 들을 석희와 석현이 반응이 어떨지는 이미 예상을 다 해 놨고, 마음 단단히 먹어 놨으므로 그 반응들에 상처 받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 배를 꼬집으면서 말했다.
“밥 먹자.”
둘은 1초라도 먼저 듣기 위해 귀를 활짝 열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인상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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