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35)

  

  

배가 아파서 눈이 떠졌다. 지금 몇 시지, 하고 시계를 보자 벌써 12시다. 어제 밤에 그 짓을 하고 방에서 태종이와 서로 껴안고 잔 것은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낮 12시가 되어 있다. 당연히 태종이는 출근하고 없고, 그 자리에는 대신 약과 물컵이 놓여 있다. 쪽지에는 ‘아프면 이거 꼭 먹어! 옆에서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오늘 일찍 들어올게! 사랑해!’라고 쓰여 있다. 천하의 태종이가 이딴 식으로 변할 줄이야, 사랑해라니…….

  

진짜 미치도록 아파오는 통에 얼른 약을 집어 먹고 물을 마셨다. 어차피 평소에도 이불 밖으로 잘 움직이지 않는 나라 태종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다시 자면 되는 거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그 자세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원래 많던 나는 아주 당연하게 잠에 빠져든다. 닭살 돋을 정도로 나를 정성껏 씻기고 안아서 이불까지 이동한 태종이가 생각난다. 매일 내게 귓방망이를 날리던 그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근데 나 이러고 살아도 되는 건가, 내가 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혼을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살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처럼도 될 수가 없다.

  

코 팔 기운도 없어서 그냥 긴장을 풀었다. 도대체 내 어느 부분이 태종이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런 태종이의 인생에 제대로 된 도움이나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옆에 있는 건 좋고, 옆에 있으면 근심도 다 사라지고 생각이란 걸 안 하게 되지만 이렇게 옆에 없으면 또 억눌렀던 걱정거리가 올라온다.

  

근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기가 없는 태종이네 집이니 당연히 얼마 전부터 종적을 감췄던 내 핸드폰이다. 당연히 배터리도 다 되었을 거고, 당연히 울릴 일도 없었을 그 핸드폰이 태종이 배게 밑으로 들어가 있다. 새끼, 내 핸드폰을 일부러 찾아다 충전을 해놨나 보다. 뜨는 번호 역시 태종이다. 전화하고 싶어서 그랬나 보다.

  

“왜?”

“어, 몸 괜찮아?”

“죽겠어.”

“어, 어느 정도 아픈데, 약 먹었어? 아직도 아파? 병원 갈까?”

“뭔 병원이야, 앞으로도 계속 할 건데 그 때마다 병원 찾게? 냅둬, 이러다 말겠지.”

“히히히, 그렇지……. 그래도 나 오늘 일찍 끝낼 거야, 나 병원 가야 한다고 구라 쳤더니 일찍 보내준데. 2시쯤에 갈 테니까 그 때까지 그냥 푹 자고 있어, 괜히 일어나고 그러지 마!”

“굳이 말 안 해도 나 원래 그러잖아…….”

“아, 그렇지. 근데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가는 길에 사갈게.”

“누가 보면 니 마누라 임신한 줄 알겠다.”

“하하, 병신!”

  

태종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나도 웃었다. 금방까지 걱정했던 것들이 정말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인생에 도움이 되든 안 되든, 지금의 내가 태종이와 함께 있고 싶은 거다.

  

푹 자라는 태종이의 목소리를 끝으로 전화를 끊고 눈을 감았다. 괜히 들떠서 잠이 안 올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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