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날 며칠이 지나도 몸은 계속 그 때를 기억하고 있다. 한 마디로 뒹구녕이 존나 쑤신다는 거다. 일주일 째 계속 그 상태다. 좋다는 약도 먹이고 좋다는 찜질도 해주는 태종이의 노력에도 뒹구녕 때문에 똥도 제대로 못 싸고 있다. 태종이는 직장에서 엄청 놀림을 받는다고 한다. 집에 여자 숨겨놨냐고, 칼퇴근 하는 걸 보면서 엄청들 놀린다고 한다.
여자가 아니라 남잔 줄 알면 기절하게 놀라겠다.
하여튼, 난 평소처럼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할 것도 없고, 늘 하는 거라곤 잠자는 일 뿐이라 이제 심심하고 안 하고를 구분 못 하게 되었다. 게임도 지겹고, 티비 보는 것도 귀찮다. 누운 채로 태종이가 충전해준 핸드폰을 가지고 놀고 있으니 노크소리가 들린다. 태종이네 집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이렇게 누가 찾아오면 놀랄 수밖에 없다. 옆집인가?
어기적거리며 간신히 자리에서 기어 나왔다. 당연히 빤쓰 바람이라 뭔가를 걸쳐야 하지만 귀찮다. 현관까지 기어간 다음 겨우 잠금을 풀었더니 문이 알아서 열린다. 엎드려 있는 상태로 아무리 올려다봐도 다리 밖에 안 보이는 키가 큰 남자가 빤쓰바람으로 기어 나오는 나를 보고 있다. 좀 쪽팔려서 일어나려다가 귀찮아서 대충 물어봤다.
“무슨 일인데요?”
대답이 없는 덕분에 겨우 자리에서 느리게 일어나 제대로 얼굴도 안 보면서 하품을 하고 있으니까 내 꼴을 가만히 구경하던 남자가 식 웃는 게 들린다. 내 꼴이 그렇게 웃긴가 보다. 그래서 눈을 비빈 다음 남자를 살펴보려 했더니 그 남자가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온다. 석희였다.
정장 차림의 석희는 이상하게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그 꽃을 나한테 건넸고, 빤쓰 바람으로 똥꼬를 긁던 나는 노인네처럼 허리를 굽혀가며 엉성하게 꽃다발을 받았다. 내용물은 장미였다. 먹지도 못하는 거 왜 사오는지 몰라.
장미에 코 박고 킁킁거리는데 집안을 둘러보던 석희는 성큼성큼 방 쪽으로 들어갔다. 뭔가를 확인하고 찾는 눈치다. 난 혹시나 싶어 말했다.
“태종이 일 갔는데.”
내 얼굴을 바로 돌아보는 석희는 정말 이 집에 어울리지 않는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부잣집 아들놈 특유의 고깃국이 흐르는 느낌이다. 태종이도 생긴 건 참 곱상하고 잘생겼지만 워낙 이 집에 살면서 집 치우는 짓을 많이 봐 와서 그런지 태종이 하면 청소나 빨래가 생각난다. 하지만 석희는 청소나 빨래라는 단어를 옆에 붙여 놨다간 그냥 총살당할 분위기다. 너무 고귀한 몸이라 옆에 양말만 벗어놔도 싸대기 맞을 것 같다.
가만히 서서 코를 파고 있다가 심한 똥내에 눈을 찌푸렸다. 똥꼬 긁던 손이구나, 짜증나서 더 열심히 파고 있으니 그런 나를 석희가 구경한다.
“돈은 입금했어.”
“그래, 고마워.”
“결정은 했어?”
“뭔 결정?”
“사귀자는 거.”
“응.”
손에 눌러 붙은 코딱지를 말아서 어딘가로 튕겼지만 그게 안 튕겨지고 손톱에 붙었다. 그래서 그냥 내 등에 바르고 코에 손가락을 꼽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로?”
“태종이로.”
“싫어.”
아득한 저 너머에 잡힐 듯 말 듯 꼬리만 내밀고 있는 놈을 열심히 공략하던 내가 그 개소리 듣고 잘못 찌를 뻔했다. 손가락을 코에서 빼낸 다음 인상을 썼다.
“뭘 싫어, 내가 좋다는데.”
“누가?”
“태종이가 좋다고.”
“도망쳤었잖아.”
“뭐를?”
“우리 집으로 도망쳤었잖아.”
뭔 소린지 몰라 멍청하게 있다가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런 다음 이불을 딱 목까지만 덮고 누워 있자 온 세상이 다 내 것인 양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포근하다. 이게 바로 이부자리만의 매력이다. 두껍고 푹신한 이불에 싸여서 엄청 편안한 기분을 맛보고 있는데 병든 어머니 간호하는 아들처럼 석희가 내 옆에 앉아서 머리를 쓸어 넘겨준다.
근데 석희를 보면 참 석희네 부모님들이 엄청 이쁘고 잘생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나서 좋겠다. 멍청하게 그 얼굴 보고 있으니 내 머리를 계속 쓸어주면서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혹시 석현이 때문에 그래?”
“석현이가 왜?”
“변태 짓 하잖아.”
방금 존나 웃긴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듣는 순간 까먹어버렸다. 콧구멍에 손가락을 꽂고 돌리면서 석희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있으니 석희가 또 입을 연다.
“깍두기 가져 왔어.”
코의 속살을 찌르는 바람에 다시 코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르며 벌떡 일어났다. 놀란 석희가 내 손을 치우고 코 안을 살펴본 다음 한 숨을 놓고 다시 나를 제 자리에 눕혀서 이불을 덮어준다. 피는 안 난 모양이다. 금방의 얼얼함을 달래기 위해 다시 손가락을 꼽아서 빙빙 돌렸다. 그 손가락을 유심히 보던 석희가 자신의 손을 보여준다.
손도 이쁘다.
“니 그 구멍에…….”
“뭔 구멍?”
“항문.”
“똥꼬?”
“응.”
석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손가락을 넣었었잖아.”
“응.”
“어느 손가락이게.”
손가락도 손바닥도 손등도 손목도 다 이쁜 석희의 손이 내 눈앞으로 다가온다. 보나마나 집게 아니면 뻑큐손가락이겠지, 별로 궁금한 적도 없는 나한테 금방 석현이가 변태 짓해서 싫으냐고 말했던 석희가 손가락을 자꾸 흔들어 가며 고르길 재촉한다. 몸을 돌려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니 한참 움직임이 없는 석희가 그 조용하고 잘생긴 목소리를 냈다.
“맞추면 깍두기.”
“집게!”
집게손가락을 막 손가락으로 때리면서 말하자 석희가 멍청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깍두기 앞에서 자존심이고 존엄성이고 다 갖다 깍두기와 바꿔먹는 나는 석희 앞에서 유독 심하게 개 행세를 한다.
또 목석같은 얼굴로 날 가만히 바라보던 석희는 이 집에 들어오고 수 분이 지난 지금, 드디어 한 쪽 입가를 올리는데 성공한다.
“땡, 여기지롱.”
별 의욕은 없지만 꽤 날카로운 눈과 곧게 뻗은 코, 꾹 다문 입은 늘 목석같은 얼굴을 유지하는 그에게 알 수 없는 남자다움을 품게 해줬다. 만일 그 얼굴로 여자들 앞에서 저 말을 했다가 그 일대 여자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기가 무섭다. 난 어차피 뭔 짓을 해도 여자들이 싫어해서 결국 남자랑 붙어먹었지만 석희는 생긴 걸로 봐서 나와 달리 장래 아녀자가 촉망 된다.
그런 새끼가 왜 남자 똥구멍을 후볐는지 아직까지 미스테리다. 나야 태종이와 붙어먹으면서 그딴 일은 기억의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 여자도 아니고, 순결을 잃은 것도 아니고, 거기 좀 쑤셨다고 닳진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난 정말 사나이다.
답을 못 맞춘 바람에 깍두기 역시 저편으로 날아가게 생겼다. 이제 와서 불쌍한 척 할까, 고추라도 만져줘야 되나 나름대로 조금 고민을 해봤다. 그 매콤새콤한 깍두기를 놓치기는 너무 아깝고 아쉽다. 그 때 집으로 들고 오면서 쏟는 바람에 못 먹은 거 생각하면 아직까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엉엉 운다. 태종이는 내가 굉장히 큰 상처를 그 집에서 안고 나왔다고 생각하고 다 잊어버리라며 입을 맞춰오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깍두기를 쏟아버렸다는 사실을 그만 잊고 싶다는 거다.
“집이 너무 작아.”
목석같은 얼굴로 태종이가 들으면 화병으로 3일은 시름시름 앓을 소리를 한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
“옆집에는 이런 방에서 다섯 식구가 사는데 존나 잘 살아.”
“침대도 못 놓잖아.”
“베개만 있으면 돼.”
“하지 마.”
“뭘?”
“그 태종인지 그 사람 편들어 주는 거잖아.”
“아니, 모든 서민들을 대표해서 하는 말인데…….”
“내기 하자.”
목석같은 얼굴로 약간 불만스러운 눈을 하고 있다. 난 저 한 표정으로 잘만 살아가는 석희가 가끔은 정말 신기하다. 안 답답할까, 얼굴 위에 뭘 쓰고 다니는 느낌이다. 최소한 나처럼 깍두기 앞에서만이라도 표정이 다양해지면 상대하기 편할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니 난 이 새끼가 뭔 생각을 하고 다니는지 몰라 어렵다.
뜬금없이 내기 얘기를 지껄이고 앉은 석희가 못마땅해서 구린 얼굴로 보고 있었다.
“너 없이 못 살아.”
“나 없는 20여년을 어떻게 지냈데?”
“그건 널 몰랐을 때고, 이젠 알았잖아. 너 없으니까 견디기가 힘들어.”
“알았어, 근데 뭔 내기?”
“내가 그 태종인지 뭔지를 일주일 안에 꼬실 거야.”
그 얼굴로 꼬신다는 말을 입에 담으니 진짜 이질감 든다. 생긴 건 저렇게 귀티나게 생겨서 말 하는 건 완전 중딩 수준이다. 분명 친구 없을 거다.
“우리 태종이를 니가 왜 꼬셔?”
석희가 드디어 내 말에 인상을 좀 썼다. 저렇게 석희 얼굴이 변할 때마다 어떤 성과를 이룬 것처럼 신이 난다.
“나한테 완전히 빠져들게 할 거야.”
“왜?”
“그럼 니가 혼자가 되잖아.”
“그래서?”
“그럼 넌 나한테 올 수밖에 없어지는 거지.”
“미친.”
“만일 내가 일주일 안에 못 꼬시면 포기하고 깍두기도 다달이 지급해줄게. 하지만, 성공하면 넌 내 것이 되는 거야. 어차피 그 정도 기간 안에 꼬셔지면 그 새끼는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놈인 거고, 그렇게 되면 어차피 너도 그 새끼한테 정 떨어지고도 남겠지.”
“알았으니까…….”
빤쓰 안으로 손을 넣어 아까부터 간지러웠던 똥꼬를 긁었다.
“이 지랄 끝나면 사람 가지고 노는 짓거린 그만 둬라, 응?
결코 깍두기가 달려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이 목석같은 새끼한테 백날 사람의 마음이 어떻고 존엄이 어떻고 해봐야 알아먹지도 못하니 그냥 경험으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알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종이를 잘 아는 내가 봤을 때 이 새낀 딱 태종이가 기겁하게 싫어하는 타입이다. 돈 많고, 한 푼이라도 더 아껴 쓰려는 서민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게다가 제 스스로 꼬신다는 표현을 쓰는 걸 보면 그렇게 나쁜 짓을 해서 사로잡으려는 것 같지 않다. 완전히 나한테 과시하려고 중딩마냥 허세 부리는 게 분명하다. 보나마나 방법이라 봐야 태종이에게 좋은 옷이나 신발, 또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며 잘해주려는 게 뻔하다. 그러니 태종이에게 별로 해가 가진 않고 오히려 호의호식 할 것 같다.
순간 번쩍 하고 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주면 어떡하지? 내 앞에서 석희를 좋아한다고 말을 하게 시키면 어떡하지?
아니, 태종이는 그럴 놈이 아니다. 그런 짓을 시키면 반드시 석희를 두들겨 패서 발에 돌을 매달아 한강 다리 아래로 밀어 떨어뜨릴 새끼다. 난 태종이가 석희에게 뭔가를 톡톡히 가르쳐 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저 머리에 든 것도 없는 빈 깡통 같은 놈한테 개념이란 것을 심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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