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인지 이 새끼는 시도 때도 없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말 걸면서 나를 끌고 갔다. 그래봐야 애들 가는 곳은 사실 거기서 거기다. 교복 입은 채로 갈 수 있는 곳은 한정 되어 있고 나도 고등학교 시절 반애들이 자꾸만 이런 곳으로 끌고 오려고 했다. 노래방 주인은 얘네들을 너무 잘 안다는 식으로 친근하게 대해줬다. 아니, 학교 빼먹고 오는 놈들을 이렇게 당연하게 받아주다니, 아무리 돈 때문이라지만……. 하다가 내 입에 박아준 사이다 한 병으로 닥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음식 중에 깍두기를 제일 좋아하는 동시에 마시는 것 중에는 사이다 이상으로 좋아하는 게 없다. 깍두기 국물은 좋아해도 간식으로 먹진 않는다.
방으로 들어와서는 괴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애들은 서로 자기가 먼저 부른다고들 난리다. 나는 일주와 나란히 앉아서 사이다만 줄창 빨았다. 그리고 내 옆으로 석현이가 앉았다. 석현이는 일주와 얘기하면서 중간 중간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내 허벅지를 열심히 주무르고 있는 일주가 엄청 신경 쓰였나 보다. 하긴, 나도 신경 쓰인다. 달달한 사이다 마시는 와중 계속 다리를 치워가며 손길을 피하자 일주가 웃었다.
“어쭈, 반항이야? 나한테 감히 반항을 해?”
“응.”
굉장히 장난스럽게 말하는 일주는 한참 더 나를 놀려가며 허벅지를 공략했다. 이제는 대놓고 나와 일주를 빤히 보고 있는 석현이를 돌아봐가며 입에 사이다병 박고 계속 손길을 피하자 역시 애는 애라고, 그 장난이 그렇게 재밌는지 키나 외모와 달리 생각보다 유치한 일주는 결국 내 배를 간질였다.
당시 내 입에는 사이다병이 물려 있었다. 아무리 손으로 잡고 있었다고 해도 갑작스러운 간지러움에 힘 조절이 안 되어 그만 사이다가 내 입에서 발사 되어 버렸다. 동시에 입안으로 들이닥친 사이다는 공기의 흐름에 따라 내 코를 강타했다. 기도로 들어갔는지 괴로운 목 때문에 기침을 하며 바닥으로 쓰러지자 일주가 놀란 얼굴로 나한테 달려든다. 고딩 앞에서 이게 뭔 꼴이냐.
“어, 야, 두기야! 괜찮냐?”
두기는 또 누구야, 아 나구나.
하여튼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지금 죽을 것 같다. 멈추지 않는 기침에 눈물까지 펑펑 쏟으니 날 일으킨 일주가 다시 날 소파에 앉혀서 휴지를 가져다준다.
눈물을 닦아주는 줄 알았던 그 휴지로 내 코를 쥐면서 의외로 자상하게 ‘야, 미안미안, 흥 해’라고 말한다. 음, 역시 애들 위에 있는 놈이라 석현이보다는 훨씬 나은 거 같다. 흥, 했더니 정말 정성스럽게 코를 닦아주면서 나한테 저가 먹던 물병을 내민다.
“물 마셔.”
“응.”
사이다의 단 맛과 탄산의 아릿함으로 코가 마비 될 지경이다. 겨우 물을 넘기고 멍청하게 넋 나간 정신으로 앉아 있자 석현이와 둘이서 내 여기저기 묻은 사이다를 닦아준다. 참 자상도 하다. 마이크 갖고 싸우던 애들 중 한 명이 드디어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요즘 노래인지 처음 들어보는 그 노래를 제 나름대로 귀엽다고 몸부림을 쳐가면서 부른다. 애들은 좋다고 옆에서 소리 지르고 같이 몸을 흔들거나 남자놈들 주제에 둘이서 브루스를 춘다.
아, 생각해보니 브루스를 추는 사람은 나랑 일주였다. 다짜고짜 나를 일으키더니 갑자기 브루스 추자고 나랑 딱 붙어서 빙빙 돈다. 얼굴 보니까 진짜로 좋아서 추는 것 같아 냅뒀다. 보기보다 좀 병신 같다.
내 옷 속으로 들어오는 손은 내 허리를 주무른다. 원래 이런 춤 아니었던 거 같은데, 생각이 들면서도 귀찮아서 그냥 가만히 있다가 밑에 굴러다니는 사이다병을 괜히 차봤다.
“근데 일주야, 너 진짜 괜찮은 거냐?”
가만히 나와 일주가 하는 짓을 구경하던 석현이가 물었다. 일주는 한참 내 머리에 제 볼을 대가면서 빙빙 돌다가 석현이가 하는 말에 약간 엇박이 났다. 그래도 금방 박자에 맞춰 마저 돈다. 춤을 추는 건지 그냥 도는 건지 모르겠다.
왠지 석현이가 나와 있을 때와 다른 분위기인 것 같아 그 쪽을 보니 석현이는 내가 뿜어냈던 사이다병을 발로 건드리고 있다.
“뽀……. 아니, 두기야. 요즘 일주 기분 완전 엉망이거든, 그러니까 니가 좀 옆에서 잘 해줘. 우리도 일주 기분 풀어준다고 필사적으로 일주 짝 찾아보고 해봤는데 설마 니가 걸려들 줄은……. 어쨌든, 그냥 오늘만 좀 참고 놀아줘. 일주 며칠 전에…….”
“야.”
일주가 당황해서 석현이 입을 막으려고 멈췄다. 하지만 석현이는 별로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좋아하던 사람한테 차였거든, 그 사람은 나름대로 직업정신 살려서 잘 타일러보려고 한 거겠지만 일주 그걸로 완전 망가져서…….”
“야야!”
“그 좋아하던 사람이 하필이면 선생이었어, 얘 1학년 때 담임…….”
“그, 그만 않냐?”
“것도 남자다? 1학년 초부터 만만하다고 괴롭혀오다가 이번에 진짜 좋아졌다고 고백했는데 완전 차였어, 진짜 그 쪽에선 완전 그냥 애 다루듯이 나와 버리니까 일주가 상처 받아서…….”
“아, 쪽팔리게 그 얘긴 왜 해?”
“게다가 지금 그 선생 다른 사람 사귀고 있어, 그것도 남자. 한 마디로 일주는 어린애다 이거야, 그냥…….”
“야, 그만 좀 하라고, 아무리 너라도 맞는 수가 있다.”
“말하면 좀 어때, 니가 불쌍해 보이고 좋잖아.”
“그게 좋은 거냐?”
“그냥 개양아치로 보이는 것보다 나아.”
“남자선생한테 눈 돌아간 개양아치보다 낫진 않아.”
“그것도 그러네.”
비실비실 웃는 석현이는 전화를 핑계로 대화를 끊었다. 한 마디로 실연당한 개양아를 나보고 위로해주라는 말이 된다. 확실히 그런 얘기를 들으니 일주가 되게 순진해보이고 안 되어 보인다. 그 사람에 대해 불쌍한 얘기를 들으면 왠지 이미지가 더 좋게 느껴진다. 성격이 훨씬 좋을 것 같고 그리 나쁜 놈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미쳤다고 진짜 놀아주기로 했다.
마이크를 건네기에 가만히 멍청하게 있다가 번호를 눌렀다. 내 18번이지만 난 노래 지지리도 못 부르기 때문에 내 친구들은 웬만하면 내게 노래는 안 시킨다. 그냥 옆에서 춤추게 하거나 놀아준다. 태종이 말로는 내가 그 정도로 못 부르진 않는데 분위기 파악을 못 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좋게 말 하려고 말 돌리는 것 같았다.
“야 이거 뭐야?”
“뭔 노래야?”
반주를 듣고 신나 있던 애들이 갑자기 점점 목소리를 줄여가며 얌전히 모니터를 지켜본다.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글자가 뜨는 동시에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심지어 날 그렇게 이뻐해주고 있던 일주마저도 손을 멈췄다. 내가 이 명곡을 망칠까봐 그러는 것 같다.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음…….”
나는 그 노래를 아주 간만에 완곡할 수 있었다. 중간에 어떤 애가 화를 내면서 노래를 끄려 했을 때 일주가 말려줬기 때문이다. 일주는 웃으면서 내가 노래하는데 호응해주고 좋아해줬다. 너도 나도, 심지어 석현이마저 끄려는 것을 혼자 다 막아주면서 귀여우니까 놔두자는 말을 했다. 내 노래가 그렇게 웃긴가 보다. 잘 부른다는 말도 없이 그냥 귀엽다고만 하니 내가 얼마나 못 부르는지 잘 알겠다.
하지만 점수는 예상 외로 95점이 나와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석현이는 별로 놀라진 않고 일주가 한 곡 더하라는 바람에 번호를 또 누르는 나를 보면서 혀를 찼다.
“욕실에서 도라지타령이랑 무궁화 부를 때부터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이번엔 조용필의 친구여를 부르자 일주가 좋다고 옆에서 춤 춰줬다. 그리고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 일주는 내게 귀엽다고 했다. 마이크를 목구멍에 박아버리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아 주어서 고마웠다. 내가 마이크를 내려놓자마자 냅다 그 마이크를 집어든 애들은 이제 절대 내게 마이크를 양보해선 안 되겠다는 다짐들을 하는 눈빛으로 나를 본다. 거기에 답하기 위해 딴청 하면서 코를 팠다.
전화가 또 왔다고 다시 나가는 석현이를 뒤로 하고 이제 노래할 기회가 없어진 나를 데려다가 일주는 끝말잇기를 하자고 했다. 지는 사람은 양말 제외하고 옷 하나씩 벗기, 참고로 자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고 개뻥을 까고 앉았다.
애들 중 몇 명은 우리가 뭘 하는지 구경하고, 첫 시작은 내가 했다.
“해질녘.”
“야, 잠깐.”
잠깐 멍청해진 얼굴로 일주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냥 나부터 할래.”
“그래.”
“매미.”
너무 뜬금없는 단어라서 잠깐 주춤하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네마인.”
“뭐야?”
“있잖아, 물…….”
“어, 그래……. 그럼, 어어……. 인플루엔자.”
“뭐야?”
“요즘 난리잖아.”
“그래? 그럼……. 자연은.”
“뭐야?”
“음료수.”
“음, 그럼……. 은단.”
“은단?”
“편의점 같은 데서 팔잖아, 고려은단 해가지고…….”
“어……. 단호박크림리조뜨.”
“넌 처먹는 거 이름 밖에 모르지?”
“응. 그러니까 빨리 해, 뜨.”
“뜨? 뜨……. 뜨으……. 레주르…….”
“너도 먹는 거 하네.”
“이, 이게 먹는 거냐? 가게 이름이지. 하여튼 빨리 해, 르.”
“르? 르…….”
르, 하고 떠오르는 게 없다. 대체 뭐가 있더라, 르…….
결국 10초를 세기 시작하는 애들 때문에 대답을 못 해서 와이셔츠를 벗었다. 겉옷을 미리 벗어놓은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진다. 내가 와이셔츠를 벗자마자 애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환호한다. 집에서도 남 앞에서도 잘만 벗는 나라도 이런 상황이면 쪽팔린 건 알아서 절로 몸을 슬슬 가린다. 이상하게 오기가 생긴다. 내가 이깟 고딩들 앞에서 이런 망신을 받다니, 이상하게 참을 수 없어진다.
“이제 너부터 해. 아, 해질녘 이런 단박에 끝나는 거 빼고.”
“그라탕.”
“탕약.”
“뭐야?”
“한약 같은 거, 나도 잘 몰라.”
“그럼 약……. 약과.”
“진짜 먹는 것 밖에 안 하네.”
“너도 먹는 거 하잖아.”
“아, 알았어, 알았어. 과산화효소.”
“뭐야?”
“몰라, 그냥 해.”
“소……. 소……. 소시지.”
“아, 존나 귀엽다. 또 먹을 거네.”
“빨리 지해, 지!”
“알았어, 새끼……. 지질학.”
“학?”
“어, 학.”
“학…….”
이상하게 또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학으로 시작하는 게 굉장히 많은데 애들이 10초를 세기 시작하니 머릿속이 텅텅 비어가는 것 같다. 일부러 그걸 노리는 건지 몰라도 하여튼 난 지금 뇌가 태종이가 말한 것처럼 모기한테 뇌수를 쪽 빨려서 쪼그라든 느낌이다. 이럴 때 진짜 태종이가 너무 보고 싶다. 태종이라면 이딴 놀이 못 하게 하겠지만 어쨌든 옆에서 도와줬으면 한다.
덜덜 떨어가며 주변을 봤더니 다들 잔뜩 기대하는 눈초리로 하라는 노래는 안 하고 내 주변을 빙 둘러 쌌다. 계속 우물거리고 있으니 벗으라고들 뭐라 한다. 너무 쪽팔리고 화가 났지만 게임은 게임이니 하는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바지를 벗었다. 그러자 일주가 실실 웃는다.
“와, 두기 몸 진짜 이쁜데?”
“빨리 다시 해, 깍두기로!”
“하하하, 그거 니 별명이야?”
“빨리, 깍두기 했으니까 기해, 기!”
“기승전결.”
또 머릿속에 텅텅텅 빈다. 뇌수가 모자라 마른 뇌가 극심한 가뭄으로 금이 잔뜩 가다가 결국 완전히 쪼개지는 느낌이다. 왜 날 이렇게 멍청하게 낳아줬는지 순간 엄마와 아빠의 원망스러운 얼굴들이 떠올랐다.
남은 건 빤쓰 한 장뿐, 거기로 덜덜 떨리는 손을 가져가자 모두가 침을 크게 한 번 삼킨다. 지들 하고 똑같이 달린 건데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알 수가 없다.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아가며 빤쓰를 슬슬 내리니 일주의 숨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다. 불쌍한 얘기를 들으면 사람이 착해 보인다는 거 다 취소다. 이 새끼들은 그냥 개양아치일 뿐이다. 학교 빼먹고 노래방 와서 나 이 꼬라지로 만든 씹새끼들 일 뿐이다.
막 빤쓰가 그시기 보일 정도로 내려가려는 찰나에 갑자기 방문이 냅다 열렸다. 모두가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깜짝 놀라서 문 쪽을 돌아보니 거기에는 엥엥 울면서 멱살을 잡힌 석현이와 그 멱살을 쥐고 있는 태종이, 그리고 옆에 이수와 석희가 보인다. 일단 그 둘이 여기까지 왜 왔는지에 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태종이의 얼굴이 제일 먼저 들어와서 잠시나마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태종이는 한 손에 자신이 제일 아끼고 애용하는 연장으로 내 쪽을 가리켰다.
“개씨발, 좆고딩새끼들, 뭐하는 거야!”
그 말을 이수도 같이 외쳤다. 좀 신기해서 우는 걸 멈췄다가 다시 울면서 태종이 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중에 혼날 걸 생각하면 우선 도망부터 쳐야했지만 지금의 서러운 상태로는 나중에 처맞더라도 태종이 품부터 찾는 게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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