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덕분에 여자 손님이 늘었다고 만두집 사장이 알바생인 나한테 보너스까지 얹어주었다. 통장정리를 하면서 굉장히 흐뭇한 마음에 기분이 날아갈 듯 했다. 확실히 단골 여자 손님이 는 것이 느껴지긴 했다. 이수를 다시 만난 건 바로 월급을 받는 그 날이었다. 나는 그 날 은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 반 놈을 만났다. 그 새끼는 다짜고짜 내 팔을 잡으면서 학원까지만 같이 가자고 했다. 사실 그 날 가게 사정으로 하루 쉬는 바람에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은행에 들려 통장정리나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평상복 차림의 날 보고 그 새끼는 굉장히 재밌어하는 눈치였다. 하긴, 수련회에도 가질 않았으니 평상복 차림은 아마 처음 볼 거다. 나보다 키가 좀 작은 그 새끼는 안 불편한가, 계속 옆에 날 올려다보면서 걸었다.
“웬일로 이 시간에 돌아다녀?”
“오늘 갑자기 쉬래서.”
“와, 진짜? 그럼 애들 모아다가 노래방 갈까?”
“학원 간다며.”
“야, 니가 쉬는 날이 어디 좀 귀하냐? 오늘 같은 날은 좀 제껴 줘도 되는 거야.”
비싼 돈 내고 다니는 학원을 그딴 이유로 제낀다는 것에 나는 조금 불쾌해졌었다. 내가 범생이마냥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하는 생각은 아니었고, 그냥 배울 기회가 있을 땐 얼마든지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어딘가로 연락하는 그 새끼는 정말 순식간에 애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학원 빠지고 오는 길일 거다. ‘나 하나 때문에 니들 인생에 차질 생겨도 뭐라 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고 노래방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늙어 보이는 놈 둘은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다가 애들 가방에 몰래 숨겼다. 내 허리나 어깨로 둘러오는 끈적거리는 팔들도 평소처럼 내치지 않고 가만히 받아주었다. 노래방 입구에서 주변을 보다가 누구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지만 그냥 들어가 버렸다.
몇 시간을 넣었는지도 모르고 돈을 걷지도 않았다. 난 노래 한 곡만 불렀다. 나머진 애들에게 맡기고 애들이 내미는 대로 받아 마시기만 했다. 사실 술 별로 못 했다. 그래도 마셔야만 하는 분위기라 어쩔 수 없이 마셨더니 애들이 좋아했다.
저번에 화장실에서 내게 노래방 같이 가자고 했던 놈은 나와 덩달아 제일 많이 마셨다. 결국 내가 소파 위로 드러누웠더니 그 새끼가 내 머리 당겨다가 제 허벅지 위로 얹었다.
“너 알바 하는데 여자 존나 많이 오지, 솔직히 말해 봐.”
“어, 존나 많이 와.”
“내 그럴 줄 알았어, 그게 왜 그러는지 알아? 왜 그러느냐면…….”
“응, 왜 그러는데?”
“니가 존나게 잘생겨서 그래.”
“지랄한다, 개새끼야.”
“뭘 지랄을 한데, 넌 거울도 안 보고 사냐? 너 존나 잘생겨서 부러워 죽겠어.”
“내가 뭐가 잘생겨.”
“너 모르지, 우리 학교에서 니가 제일 유명해, 다른 학교 여자애들도 내가 영지 고등학교 다닌다 그러면, 거기 김종태라고 존나 잘생긴 애 있는 그 학교 맞지, 그런다!”
“진짜냐, 근데 그럼 뭐하냐. 돈이 있어야지.”
“왜, 넌 잘생겼으니까 기회가 많잖아, 연예인 같은 거.”
“그거 아무나 하냐, 뭐 하나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그리고 빽 있어야 하지.”
“하긴, 내가 아는 놈은 노래 지지리도 못하는데 지 아빠가 어디 방송국 PD라고 오디션 다 통과하고 음반도 낸다더라.”
“다 그런 거야, 빽 없는 놈은 나가 죽어야 돼.”
“그래, 나가 죽어야 돼! 근데 넌 죽지 마, 아까워.”
“뭐가.”
“얼굴이.”
얼핏 들은 것도 같다. 여자 손님이 늘었다고 좋아하는 사장님은 내게 ‘잘생긴 알바생 둬서 내가 다 호강 하네’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나나 일수나, 처지는 같다.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지만 인기는 많다. 그게 다 외모 때문이다.
토할 것 같고 메슥거려서 붙잡는 애들 뿌리치고 노래방을 나왔다. 차가운 바람 쐬니 좀 낫다. 비실비실 걸으면서 어떻게 집 쪽으로 향하고 있다. 벌써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저녁이다. 걸어서 한 시간 이상은 될 텐데, 속이 안 좋다. 발을 헛디뎌서 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동시에 울렁거리던 속이 뒤집혀 버렸다. 바닥으로 싸지르는 토사물 때문에 사람들이 날 피해 간다. 아무리 잘생겨도 토하는 사람은 혐오스럽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려준다. 그 손에 맞춰 열심히 위와 식도를 역운동 시켰더니 정말 잘도 나온다. 이 정도면 내장이 섞여 나와도 눈치 못 깐다.
다 토하고 숨을 고르자 티슈까지 내밀어준다. 그거 받아서 입 주변 청소하고 일어났더니 바로 이수 얼굴이 보인다. 중학교 교복을 뒤집어쓰던 덩치가 이번엔 평상복을 입고 있다.
“보통 사이들 아니지?”
“뭘.”
“딱 보면 알아, 너 게이지.”
“어느 부분이.”
“너 게이잖아, 생긴 것도 존나 기생오라비 같은 게……. 남자들하고 술 퍼마시면 좋냐?”
“그럼 남자랑 먹지 뭐랑 먹어.”
“존나 드러워, 개새끼.”
왠지 이 새끼한테 토한 모습을 보여준 게 굉장히 쪽팔리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런 말까지 들었다.
“너 일수 따먹고 싶어서 따라다니는 거지? 개새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는 금방 내가 토한 것을 한웅큼 집어 들어 그 새끼한테 던졌다. 거의 뿌리는 거나 다름없지만 그 역겨운 행동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피해 다녔다. 그 새끼도 제 옷에 묻은 걸 보고 눈이 돌아가 내 토사물을 집어던졌다. 우리는 토 싸움을 했다. 눈처럼 말아서 던지기도 했다. 결국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이 말려서 그쯤에서 끝났고, 게다가 미성년자인 내가 술에 취해서 그 짓거리를 했었다는 게 많은 의심을 사게 했다.
신나게 설교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 깨끗이 목욕을 했다. 토사물을 뒤집어 쓴 내 모습에 고모가 욕을 한 바가지 했던 것으로 바로 술이 깨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참 초딩같은 짓이었다. 하지만 술이 깬 상태였어도 난 똑같은 짓을 했을 거다. 하여튼 난 그 새끼가 마음에 안 든다. 개새끼.
그이후로 나는 일부러 더욱 일수와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자주 같이 다녔다. 일부러 이수 그 새끼 눈에 띄라고 하교 할 때도 가능한 곳까지 쭉 같이 갔고, 이수와 마주쳤을 땐 그 새끼 속을 긁기 위해서라면 메롱도 서슴지 않았다.
이수 때문도 때문이지만 내 자신도 일수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정말로 일수와 뽀뽀하고 싶거나 뭐든 다 해주고 싶은 감정이 생겨갔다. 그 감정이 3학년이 될 때까지도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욱 짙어져 갔다. 어떻게 하면 더욱 가까이 붙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일수와 오래 있을 수 있을까 그 생각만 계속 들어 학교생활은 거의 흐지부지하게 지냈다. 숙제도 몇 번 빼먹고, 수업도 몇 번 빼먹은 거다.
나는 이 감정을 조용히 고모에게만 상담했다. 내 자식 아니면 장땡, 이 생각이 들었는지 몰라도 고모는 진지하게 상담에 응해줬다.
내가 여자를 안 사귀어 봐서 그런 게 아니냐는 것이 첫 번째 대답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우리 가게에도 엄청 온다. 그래서 여자한테는 별로 끌리지 않는다고 했고, 아이돌 가수 같은 것도 별로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을 모르겠다고 했더니 여러 가지 대답을 더 하다가 혹시 그 애와 사귀고 싶으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했다. 결국 고모는 내게 자신의 친구 딸을 소개시켜주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 여자애는 놀라울 정도로 남자 같은 여자였다. 배구부라 키도 컸고, 몸이 까무잡잡해서 근육이 붙었으며 머리도 스포츠형이었다. 고모가 일부러 내게 남자 같은 외모 때문에 남친이 없어 고민하는 여자애를 소개시켜준 것 같았다.
이름은 윤지였다. 멀리서부터 계속 지켜봤는데 핸드폰에 대고 계속 불만스러운 얼굴로 남자 싫다고 쌍욕을 해댔다. 만나서 생긴 게 병신이면 목을 뽑아버린 다음 그 자리에 젓가락을 꽂아버린다는 소리까지 했다.
괜히 앞에 나갔다가 한 대 맞는 거 아닌가 싶어서 못 다가가고 있다가 용기를 내어 말을 붙여보았다. 윤지는 굉장히 짜증스러운 얼굴로 ‘뭐야!’라면서 확 돌아봤고, 나와 눈이 마주치는 동시에 놀라는 표정으로 뒤바뀌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렸다. 옷도 굉장히 스포티하게 입었다.
“박윤지 맞지?”
“아, 예? 예, 그런데요?”
“오늘 보기로 한 김종태인데.”
“아, 아, 그래? 어, 거기 앉아…….”
이상할 정도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기에 금방과 다른 태도로 혼란스럽다. 꽤 수줍어 보이는 폼이 여자긴 여자인가 보다. 생긴 건 우리 반 축구부 애랑 맞먹으면서 핸드폰 고리는 꽤 귀여운 걸로 달았다.
“뭐 마실래?”
“어, 벌써 마시고 있는데…….”
“그래.”
노란 물을 빨대로 빨아올리는 윤지는 자꾸 고개를 못 들고 있다. 난 어차피 데이트비용이라고 고모가 준 5만원이 있기 때문에 사줄 수 있는 만큼은 사줄 생각이다. 원래는 그냥 처음부터 싫다고 하고 나와서 그 돈을 저금할까 했지만 생긴 거 보고 그냥 오늘 하루는 같이 있기로 했다. 동정심 때문에 그런 거라면 뭐, 나도 잘은 모른다. 그냥 보통 여자애들 같이 생겼으면 바로 퇴짜를 놨을 텐데 너무 의외라 거절하기가 그렇다.
게다가 또 여자를 처음 대해보는 나한테는 오히려 훨씬 편해 보이는 상대일 수 있다. 이걸 계기로 여자에게 좀 익숙해질 수 있다면 내 성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뒷머리를 긁으며 계속 쑥스러워하고 있는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윤지 때문에 더 혼란스럽지만 일단 내가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 뭔가를, 그런데 그 뭔가도 뭔지 모르겠다. 그래서 대뜸 허기진 배를 만져봤다. 쟤도 여기 나오는데 굳이 밥을 먹고 나오진 않았을 거야.
“밥 먹으러 나가자, 어디 갈까?”
“어, 밥?”
“왜, 별로 안 고파?”
“어, 아니…….”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창 쪽을 바라보면서 우물거리던 윤지는 내 눈을 돌아본 다음 벌건 얼굴로 말했다.
“갈비…….”
갈비…….
그래도 여자애니까 그렇게 많이 먹진 않을 거다, 생각을 하고 갈비집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2인분을 시킨 다음 이것저것 챙겨 놔주려고 했더니 윤지 혼자 알아서 다 했다. 고깃집을 엄청 자주 와본 것 같았다. 막상 할 게 없어서 어색하게 앉아 젓가락으로 상만 두드리고 있으니 윤지는 잠깐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놓고 물수건으로 여기저기를 닦았다. 본인도 어색해서 하는 행동이다.
뭔가 화제 거리를 꺼내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문자가 왔다. 그냥 문자면 무시하겠지만 일수의 문자였다. 어지간해서 문자 같은 건 전혀 안 하는 일수의 반가운 문자를 들여다보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빨리 내일이 됐으면 좋겠다.’
혹시나 싶어 날짜를 아무리 살펴봐도 별 거 없는 평일이다. 뭔 소린지 몰라 그냥 나도 그렇다고 대충 답장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윤지가 입을 열었다.
“나 너무 남자 같이 생겼지.”
아까 목을 뽑느니 어쩌니 했던 것과 차원이 다른 모습이다. 이것도 나를 시험하는 건가 싶어 대답 잘못 했다가 목이 뽑힐라 조금 겁을 먹었다. 윤지는 내 대답을 기다리면서 남자처럼 투박하고 큰 손으로 제 손목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나는 맞을 각오를 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
“그, 그래, 그렇지?”
나는 서둘러 바닥에 엎드렸다. 이제 발길질이 날아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꽉 감고 가만히 있자 이상하게 아무 소식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더니 다 날 보고 있다. 이번엔 윤지 쪽을 보니 윤지 역시 나를 어리둥절한 눈으로 본다. 무슨 바보짓인가 해서 다시 일어나 앉으니 윤지는 웃음을 참는 표정이 되었다.
“뭐했어?”
“왜 안 때려?”
“처음 본 사람을 어떻게 때려?”
“목을 뽑아버린다며?”
난 정말 진지하게 한 얘긴데 잠깐 놀라던 윤지는 곧 웃음을 터뜨렸다.
“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랬으면 그랬을 거라는 거지…….”
“왜?”
“그건…….”
결국 윤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갈비를 먹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잠깐 카페에 앉아서 얘기를 하고 헤어졌다. 별로 나쁘진 않았지만 몸이 뻐근하고 피곤했다. 알바 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솔직히 생긴 것만 남자지 그냥 말 그대로 보통 여자애들과 다를 게 없다. 예쁜 물건이 보이면 걷는 걸 멈추고 구경하고, 뭘 고르든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여자 앞이라 나 자신도 절로 말조심을 약간씩 하게 되면서 최소한 욕 같은 건 자제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 어땠냐는 고모의 말에 그냥 그렇다고 대답하고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서른이 다 되어 가는 친척 형은 여자랑 데이트를 다 한다고 놀려댔다.
잠깐 핸드폰을 확인하자 문자 두 통이 와 있었다. 모두 일수에게 온 것들이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도무지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두 문자를 가지고 곰곰이 따져보다가 못 참고 전화를 걸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들리는 일수의 목소리가 조금 반가웠다.
“어, 아니, 문자 내용이 조금 이해가 안 되어서.”
“어떤 거?”
“니가 그랬잖아, 내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내일 무슨 날이라도 돼?”“아니, 아닌데.”
“그럼 뭐 때문에 그러는데?”
“뭐 때문이긴, 내일 빨리 학교 가고 싶다는 거지.”
“왜?”
“그냥.”
그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일수는 전화를 끊었다. 진짜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다. 학교에서 뭔가를 하나? 아니, 정말 미칠 노릇이다. 머리를 마구 긁어가며 정신을 가다듬고 내일이 되면 알겠다 싶어 그냥 대충 이만 닦고 자버렸다. 너무 피곤해서 깔끔한 걸로 소문난 내가 다 저녁에 씻는 걸 걸러버렸다. 나도 이젠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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