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1.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빙의했다
서준에게 익숙한 독립 기념일이 7월 4일이 아니라 8월 15일이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성은 달랐으나 공교롭게도 그때의 이름도 서준이었다.
청년은 건널목 앞에서 서 있었다. 보행자 신호등이 아직 빨간불이라 그는 손가락에 걸친 검은색 비닐봉지를 설렁설렁 흔들었다. 속에 든 비디오테이프가 덜걱덜걱 소리를 냈다. 청년은 빈손이 하도 심심해 담배를 꺼내 들었다. 라이터를 가지고 오지 않은 터라 불도 붙이지 못했지만 아쉬운 대로 이갈이나 할 요량이었다.
이 서준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이른바 공포 영화 마니아였다. 다만 그는 세련되고 값비싼 CG로 실제와 같은 영상에는 흥미가 일지 않았다. 무던한 심장을 뛰게 만드는 건 가짜 티가 여실히 드러나는 피와 뼈, 어수룩한 배우의 비명이었다.
이렇듯 난해한 취향은 서준을 비디오 대여점의 단골로 만들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구석진 자리의 비디오는 그에게 만족스러운 두어 시간을 선사했다.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도 영락없이 그런 부류였다.
비디오 갑의 뒷면에는 새빨간 글씨로 난잡한 문구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예산만이 아니라 미적 감각도 부족할 게 분명했다.
하기야 무성 영화 시대도 아니건만 굳이 흑백 화면을 고집한 감독이었다. 명작을 찍었다면 훌륭한 연출의 일환으로 보였겠으나 조잡한 화면, 난해한 연기, 끔찍한 분장과 어색한 대사는 그야말로 하품下品 중의 하품이었다. 줄거리는 말하면 입이 아팠다.
주인공 ‘크리스티나’는 예쁘지만 수수하게 차려입는 학생으로, 같은 학교의 잘생긴 쿼터백과 사귈 듯 말 듯 은근한 기류를 풍기는 사이였다. 그녀에게는 관능적인 치어리더인 단짝이 있고, 이 단짝에게는 머리를 바짝 깎은 몸 좋은 운동부 남자 친구가 있다. 그리고 쿼터백과 치어리더의 남자 친구 뒤에는 빈약한 똘마니가 따라다닌다. 다섯 명의 젊은 남녀는 캠프장으로 놀러 간다. 그들에게는 불행스럽게도 이 캠프장의 호수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괴수가 살았다.
제목에도 나오지 않는 식인 괴수가 떡하니 등장한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는 그걸 해냈다. 슬래셔 호러물처럼 분위기를 잔뜩 잡아 놓고는 뜬금없이 식인 괴수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잘 만들었으면 몰라, 어설픈 인형 탈이 허우적거리는 장면은 실소만 자아냈다. 거기에 더해 감독이 잊지 않고 호수의 살인마를 투입했으나 이미 식인 괴수가 산통 깬 상황에서 살인마가 날뛰어 봐야 얼마나 큰 임팩트가 나오겠는가. 죽었어야 할 시체가 카메라가 다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슬며시 팔을 움직이는 것 정도는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에서 대단한 흠도 아니었다.
제일 끔찍한 건 영화의 제작진 소개 자막이 끝난 후에 삽입된 인터뷰였다.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의 감독은 어설프게나마 영화의 여운에 잠길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이 영화를 왜 찍었는지,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실제 배경이 된 고향의 레드 레이크 캠프장이 어떤 곳인지 시청자에게 모든 걸 알려 주고 싶어 했다.
물론 서준은 머나먼 미국의 어딘가에 있는 캠프장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으므로 중간에 꺼 버렸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볼만했던 건 감독이 인맥으로 데려왔다는 여자 주인공으로, 그녀는 무명 배우였으나 굉장히 어여뻤다. 비록 연기는 보잘것없었지만 진한 색의 머리카락이 뺨과 이마에 가닥가닥 들러붙어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던 여자 주인공 ‘크리스티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서준은 발을 옮겼다.
어찌 되었건 영화는 쫄딱 망했다. 감독의 포부 하나만큼은 장대했으나 극장에 고작 일주일 걸리고 안방 비디오행이 되어 버린 영화는 이제 대여점 구석에서 서준처럼 취미 이상한 사람이나 건드는 폐물이 되어 버렸다. 어지간히 괴악한 사건이라도 벌어지지 않는 한 이대로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고 매장될 게 뻔했다.
아무리 눈이 낮은 서준이라도 안구를 깨끗이 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비디오테이프를 반납한 뒤, 가장 평가가 좋은 영화를 두어 개 빌릴 작정이었다.
신호등의 색이 바뀌었다. 서준은 느긋한 태도로 걸음을 옮겼다.
씹을수록 매캐하게 혀 위로 녹아드는 담배의 맛을 음미할 때였다. 아스팔트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환한 전조등이 그를 비췄다. 경악스러운 표정의 트럭 운전자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아!
짧은 비명은 목구멍에 고여 입 바깥으로 터져 나오지 못했다. 허공에 뜬 몸이 아무렇게나 굴렀다. 귀에서는 진동이 느껴질 뿐, 이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뜨거운 격통이 전신을 내리눌렀다.
붉게 물드는 시야 구석으로 검은 비닐봉지에서 비죽 튀어나온 비디오가 보였다. 망가진 테이프에 피가 스며들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서준이 죽음을 이해하기도 전에, 죽음이 먼저 그를 찾아왔다.
***
그리고 서준은 아메리카 드림을 꿈꾼 이민자 3세 가정에서 태어났다.
***
‘처음에는 환생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서준은 보비가 날쌔게 돌려놓은 파운드 밀크를 정리하며 투덜거렸다. 상식적으로, 누구라도 그의 상황이라면 빙의를 먼저 떠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새 삶을 부여받은 장소는 무려 뉴욕이었다. 선망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서준의 탯줄이 잘렸다. 하지만 그의 작은 머리에는 전생의 무엇 하나 기억이 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자아가 정립되는 시기는 각각 다르며 적어도 서준이 자신을 깨달았을 때는 대략 6살 무렵이었다.
말하자면, 그의 가족이 톰팃톳으로 이사 온 후라는 뜻이다. 이전의 인생에 관한 추억을 뇌간 언저리에 잘 수납하고 어영부영 부모 손에 이끌려 가르륵가르륵 침 흘리던 행복한 아기는 ‘어서 오세요, 톰-팃-톳’이라는 간판을 보면서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어딘가 익숙한 지명은 무른 두개골 속 말랑한 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베이비 시트에 감싸여 옴짝달싹 못 하던 서준이 손에 든 곰 인형을 좌석 아래로 떨어뜨렸다. 도톰하게 튀어나온 볼이 부들부들 떨렸다.
서준의 부모는 그것을 으레 아이가 부리는 변덕, 혹은 낯선 장소를 향한 호기심 따위로 일축했다. 그때쯤 어쩔 수 없이 전생의 기억을 고이 꺼내기 시작한 여섯 살 서준도 제가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속으로 옹알거렸다.
하지만 새롭게 이사한 집의 건너편 주택에 사는 소녀와 마주치며 그는 경악에 질렸다. 그 아이는 서준보다 두 살 어린 예쁘장한 아이였다. 새로운 이웃을 향해 교류를 시작한 부모에게 이끌려 아장아장 걸어온 서준은 온몸으로 절망했다.
아이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툴박스.
두말할 것도 없이,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 속 여자 주인공이었다.
‘벌써 14년이나 흘렀군.’
서준은 최선을 다했다. 집이 가까워 어쩔 수 없이 어울릴 때도 있었지만 늘 거리를 두려 노력했다. 애를 쓴 보람이 있었는지 다행스럽게도 크리스티나와 서준은 데면데면한 사이로 발전했다. 그는 크리스티나가 기억 속 배우와 똑 닮은 얼굴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공포에 질렸다. 진정한 호러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가끔 눈앞에서 번뜩이는 정체 모를 환상! 눈꺼풀에 달라붙은 강렬한 원색의 환상은 서준을 심각한 불면증 환자로 몰아갔다. 환상과 환청의 정체를 깨달은 건 이제 십 대라는 명칭을 써도 부끄럽지 않을 때였다.
깨트린 찻잔, 도둑맞은 편지, 넘어진 자전거….
서준은 자신에게 보이는 환상이 단순히 정신 이상자의 시야가 아닌 예지임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자신의 ‘배역’ 또한 이해했다.
바로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에서 잠깐 등장해 주인공 일행이 캠프장에 도착하기 전 예언을 빙자한 저주를 쏟아부어 찝찝함과 복선을 남기는 예언자였다. 서준의 머릿속에 천둥 번개가 꽝꽝 내리쳤다.
환생이 아니었다. 빙의였다!
하필이면 공포 영화 속 선지자로 다시 태어나 버린 것이다. 제 역할을 알게 된 서준은 겸허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생각해 보라. 이제 막 이사 온 동네가 별 해괴한 살육이 예정된 장소라면 누구라도 탈출하고 싶어 발바닥이 근질거릴 터였다.
‘아예 톰팃톳을 벗어나려고 한 적도 있었지.’
그러나 공포 영화의 억제력은 대단했다.
톰팃톳의 정체를 깨달은 서준은 당장 이사를 가자 부모를 졸랐다. 가히 경기를 일으키듯 발작에 가까운 태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자식을 몹시 아끼던 부모는 돌변해 그가 톰팃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성탄절마다 선물을 주던 외숙부가 보고 싶다고 졸라도 소용없었다. 서준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들의 눈에서 번들거리던 공포와 붉게 달아오른 광기를.
그 시선은 일종의 지표였다. 그가 자신의 배역을 제대로 수행하기 전까지는 결코 톰팃톳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암시였다. 팔뚝을 날카롭게 파고들던 어머니의 손톱과 방에 자물쇠를 달던 아버지의 달군 쇠처럼 뜨거운 눈빛은 억센 밧줄처럼 서준을 옭아맸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지.”
얇은 입술이 움직였다. 성마른 목소리가 적막한 편의점에 나직하게 울렸다. 오늘은 7월 4일. 공포 영화에서 흔히 사건이 벌어지는 독립 기념일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티나와 그녀의 친구들은 지금 막 캠프장으로 떠났다.
앞으로 그들에게는 참혹한 하루가 기다릴 터이다. 그러나 그것이 서준과 무슨 상관이랴? 그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친구라기에는 미흡하지만, 지인이라 부르기 충분한 이들에게 예비된 고통을 방관했다. 헛소리나 진배없는 예언을 경고랍시고 던졌다.
서준의 입꼬리가 덜덜 떨리고 장갑 안쪽으로 땀이 고여 축축해졌다. 그는 공포 영화라는 생존자가 지극히 적은 환경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그 나름대로 소꿉친구라면 소꿉친구인 크리스티나와 요한을 외면한 이유였다.
크리스티나를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에 관해서는 기억이 모호하지만 놀랍게도 오늘 목격한 일행 다섯 명은 영화와 구성이 일치했다.
쿼터백 요한, 치어리더 에어리와 그녀의 남자 친구 윌리엄, 마지막으로 있으나 마나 한 보비.
크리스티나와 친구들의 앞날은 뻔했다. 우선 캠프장에서 보비가 경박한 소리로 웃음을 끌어내고,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거나 바비큐를 해 먹으며 즐길 것이다. 그 호수 속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에어리와 윌리엄. 이들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연인이었다. 주로 으슥한 숲에서 거사를 치르다 봉변을 당하는 역할 말이다.
“음….”
우울한 낯짝을 숨기지 못한 서준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가 흐느적거리자 새까맣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슬렁슬렁 이마를 때렸다. 어차피 바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들이 하필이면 독립 기념일에 캠프장을 찾은 걸 보라. 영화의 억지력은 강력했다. 세상은 규칙대로 돌아갈 것이며 주연들은 앞으로 끔찍한 하루를 보내리라.
‘불쌍하지만 어쩌겠어.’
동정은 동정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서준은 괜스레 계산대 위 바구니에 쌓인 레몬을 뻑뻑 문질렀다. 사소하기 짝이 없는 제 역할이야말로 끝난 걸 기뻐해야 할 때였다. 그렇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미래를 꿈꾸었다. 평소 난잡하게 시야를 가리던 환시가 아닌 순정한 열망이었다.
트럭을 사야지. 그는 번듯한 사륜차를 떠올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트럭을 사서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날 심산이었다. 트럭에 치인 트라우마는 진작 떨쳐 냈다. 사람이 살다가 공포 영화 세상에서 불쑥 태어나는 마당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 정도는 받아들여야 마음이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