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나무가 우거진 길을 빠져나왔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냄새였다. 지독한 비린내가 서준의 코를 찔렀다.
‘뭐지?’
손에 든 도끼를 꼬옥 쥐며 서준은 맹렬하게 뛰던 다리를 잠시 멈췄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선 눈에 들어온 것은 3층짜리 목조 건물이었다. 야영지와 비교하면 좁은 공터에 쓸쓸하게 서 있는 건물은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이곳, 하몽 캠프장이야 대개 낡아 빠진 인상이었으나 이 목조 건물만큼 곰팡내 나고 삭은 느낌은 또 없었다.
외관부터가 썩기 시작한 건물 앞에는 검푸른 물과 진흙이 섞여 괴여 있었다. 제법 규모가 큰 늪이었다. 서준의 안색이 침침하게 가라앉았다. 호수가 아닌 늪이다. 그는 자신이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달았다. 이곳은 C 구역이었다.
‘그런데 여기 2층 건물 아니었나?’
눈살을 찌푸린 서준이 제 기억보다 한층 더 높은 산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스무 해도 전에 본 영화, 심지어 전생에서 봤던 기억에 절대적인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그보다 문제는 이 끔찍한 냄새였다. 도끼를 한 손으로 자유롭게 들지 못하니 코를 막지도 못하고 서준은 반반한 낯짝만 구겼다.
그는 산장과 늪지 사이의 공터로 걸어갔다. 주변을 신경 쓰려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심한 냄새가 후각을 제외한 감각을 마비시켰다.
“이 냄새는….”
냄새는 건물보다는 늪에 가까운 곳에서 났다. 오늘따라 서준에게 익숙해진 냄새였다. 흙바닥에서 피비린내와 지린내가 섞여 올라왔다.
서준은 가스마스크가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지 않는지 살핀 다음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흙의 색이 진했다. 달은 다시 구름 뒤로 숨어 버렸으나 알 수 있었다. 검붉은색이었다.
늪 주위의 땅에 피가 난잡하게 튀어 바닥을 적셨다. 심지어 칼자국이 마구잡이로 난 납작한 돌덩이는 숫제 핏물로 푹 젖었다. 칼자국 사이로 피가 스며든 모습은 어지간히 흉했다.
차마 맨손으로 만져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도끼의 날을 슬쩍 갖다 댔다. 날에 피가 묻어나는 걸 보아하니 흘린 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섬세한 도자기로 빚은 듯한 얼굴에 언뜻 공포가 서렸다.
하몽 캠프장에 올 사람이 누구겠는가. 크리스티나와 요한, 윌리엄과 에어리, 보비. 이곳에 뿌려진 피는 그들의 것일까? 가스마스크와 처음 만난 건 자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 상대는 이미 햄 손질을 끝냈단 말인가.
서준은 이를 부딪치며 몸을 떨었다.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고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이 전신을 지배했다. 헛된 염원을 껴안고 죽을 자리에 찾아왔다 믿고 싶지 않았다. 굳세게 쥐었던 도끼마저 떨어뜨릴 뻔했다. 그리고 서준이 불안에 완전히 잠식되기 전, 그것이 날아왔다.
쇅,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화살이 서준의 발치에 박혔다.
“큭!”
갑작스러운 공격에 몸이 굳었다. 하지만 그 덕에 서준은 도끼를 손에서 놓치지 않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는 서둘러 화살이 날아온 곳을 확인했다. 진원지는 산장의 3층 창문이었다.
활짝 열린 창문에는 석궁의 모습이 얼핏 드러났다. 서준은 황급히 제 발치를 보았다. 화살이 아니라 볼트였다. 3층의 사수가 공격한 게 틀림없었다. 석궁이 다시 창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저건 또 뭐야!”
서준이 당황하는 사이, 다시 석궁이 빠끔히 나타났다. 당연히 장전된 상태였다. 사수는 망설임 없이 공격을 재개했다. 콱! 볼트가 무작스럽게 날아왔다.
“으, 악!”
발을 피하지 않았다면 그의 피부와 근육을 관통해 발등뼈가 부러졌을 위력이었다. 간신히 발을 지켜 낸 서준은 정신없이 뛰었다. 가스마스크는 석궁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둥 생각을 이어 나갈 시간도 부족했다. 그에게는 3층 높이까지 도끼를 멋지게 던져 명중시킬 재주 따위 없었다.
왔던 길에는 가스마스크가 있고, 왼쪽에는 의문의 사수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늪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에는 어느 길을 고를까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서준은 그저 앞으로 달렸다. 새까만 숲을 향해 내달렸다. 그는 망연하게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선택조차 사치였다.
“허억, 헉, 으흑, 흐….”
숨을 쉴 때마다 목이 따갑고 눈물이 고였다. 폐가 터질 듯 괴로웠다. 서준은 생리적인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도끼를 버리지 못하고 숲을 헤맸다. 그의 눈에 아까 지나쳤던 나무와 비슷한 나무가 나타났다. 삼나무의 짙푸른 내음이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애초에 벗어난 적이나 있던가?
갓 C 구역을 벗어났을 때는 서준도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가 간 길은 얄궂게도 폐자재로 막혀 있었다. 순간 어찌나 허탈하던지 서준은 제 상황도 잊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까 하몽 캠프장에 도착하기 전 그가 걸어오지 못한 맞은편이 C 구역을 향하는 길목이었다. 서준은 이를 악물고 길을 벗어났다.
그러나 나침반도 손전등도 없이 달빛에 의존하는 산행이 수월하지 못한 건 불 보듯 뻔했다. 평소에 산과 숲을 사랑하는 등산인이었어도 어려울 판에 서준의 얄팍한 손목이며 발목은 영 쓸모없었다.
파업을 주장하는 몸뚱이를 열심히 굴려 보아도 체력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뚝뚝 떨어졌다. 이러다가 가스마스크에게 살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조난당해 죽을 지경이었다.
‘안 돼. 정신 차리자.’
흐릿한 눈가를 문지르며 서준이 큰 보폭으로 발을 뻗었다. 그리고 턱, 걸렸다.
“어?”
기우뚱 기울어지는 몸을 멈출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서준은 나무줄기에 걸린 발등을 보고 팔을 허우적거렸다. 소용없었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고 방비하지 못한 손도 바닥의 돌에 내리치듯 떨어졌다.
충격과 함께 손목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서준의 눈에 9시 20분에 멈춰 깜빡이는 손목시계가 보였다. 숫자는 박제된 양 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오른손에 도끼를 야무지게 쥔 남자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방정맞은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렸다.
“다들 날 무시하지만, 내가 이래 봬도 모델도 한 남자란 말이야. 어쩌면 필리 에프도 곧 나한테 친구 신청을 할지도 모른다고.”
안락한 수면은 머리가 쪼개질 듯한 고통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며 끝났다. 마치 안구를 통해 뇌를 찌르는 듯한 격통이었다. 눈알이 터져 나간다면 이렇게 아플까?
뼈를 부수어 파헤쳐지는 착각에 서준은 뭍 위로 떨어진 망둥이처럼 몸을 펄떡 떨었다. 순간적인 통증이 그의 목구멍을 조였다.
“…헉!”
심장이 크게 뛰며 눈꺼풀이 와락 올라갔다. 서준은 눈을 부릅뜬 채 마른 입술 사이로 밭은 숨을 내쉬었다. 차게 식은 피부 위에서 더운 땀이 흘렀다. 스스로 뱉는 호흡이 한 박자 느리게 귀로 전달되었다. 오감이 어긋나는 불쾌감이 육체를 선득하게 만들었다. 이어 귓가의 풀이 싸르륵싸르륵 흔들렸다. 여름 날씨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유 모를 통증은 짙은 풀 내음과 피비린내 섞인 더운 바람과 함께 흩날리듯 사라졌다. 서준은 눈을 깜빡거리며 손끝을 움찔 떨었다. 뒤늦게 돌아온 통각이 현실의 고통을 호소했다.
“으….”
순간 눈이 멀어 버린 줄로만 알았다. 다행히 깜깜하던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져 사물의 어렴풋한 윤곽이 점차 구분이 갔다.
서준은 삐걱거리는 팔다리를 움직여 가까운 나무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여전히 오른손에는 도끼가 꽉 잡혀 있었다. 기절한 와중에도 구명줄을 놓지 않은 제 정신머리가 한순간이나마 자랑스러웠다.
따끔거리는 손바닥을 무시한 채 서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운수가 영 나쁘지 않았는지 사지가 멀쩡한 게, 가스마스크가 따라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안도하지 않고 욱신거리는 이마를 왼손으로 문지르며 이를 악물었다.
‘석궁…. 그건 누가 쏜 거지? 영화에 석궁 쓰는 놈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다. 있었나?’
곰곰이 기억을 뒤져 봤지만 어설프게 방독면을 뒤집어쓴 살인마와 별 잡스러운 분장을 한 괴물이 전부였다. 생각을 정리해 봐도 영 잡히는 게 없었다.
결국 서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도끼를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이며 신발이며 할 것 없이 아주 엉망이었다. 늪 근처에서 얼쩡거린 덕택에 운동화에 더러운 물 자국이 생겼다. 서준은 오늘만 지나면 신발이고 옷이고 죄 버리겠노라 다짐했다.
그때 경박하고, 경망스럽고, 호들갑스럽고, 방정맞고, 가벼운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가스마스크가 다가오는 줄 알고 팔에 힘이 들어갔으나 곧 그것이 어딘가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서준은 다소 당황스러운 기분으로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걸어갔다. 비척비척 느리게 발을 끌고 간 곳에는 주저앉은 채 혼자 꿍얼거리는 보비가 있었다.
***
보비의 안내를 받으며 움직이니 한결 편했다. 산막으로 이동하는 동안 서준은 보비의 손에서 잠시 지도를 빌렸다. 서준은 어디까지나 정중하게 부탁하였으나 보비의 눈빛은 마치 강도에게 당했다는 듯 억울한 기미가 서려 있었다. 물론 서준은 무시했다.
랜턴을 끈 상태에서 지도를 살펴야 했기에 여러모로 불편했지만, 그간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는지 분간하기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서준은 자신이 지나갔으리라 여겨지는 행적을 손으로 훑으며 낮게 탄식했다.
‘C 구역에서 산장의 뒤편으로 갔으면 바로 호수와 산막이 나오잖아. 나는 엉뚱한 길로 빠져서 숲을 헤맨 거군.’
제대로 된 길로 한정한다면 C 구역에서 B 구역으로 바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야영지인 A 구역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도상에 없는 길이어도 잡목을 헤친다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었다. 거리도 무척 가까웠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서준은 하몽 캠프장을 벗어나 변두리 숲에서 한참을 헤매다 우연히 호수 근처까지 도달한 것이다. 심지어 보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아직도 조난자 신세를 면치 못했을 터이다.
‘아니, 숲 근처에는 늪지가 뭐 이리 많아? 까딱 잘못했으면 가스마스크가 아니어도 요단강 건넜겠는걸.’
서준은 힐끔힐끔 기웃거리다가 후다닥 고개를 돌리는 보비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생명의 은인으로 삼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정수리였다. 괜히 눈살을 찌푸린 서준이 다시 지도를 살펴보았다.
‘하몽 생산지…. 그러니까 가스마스크의 ‘작업장’도 표시되지 않았어. ’
그야 당연했다. 하몽 캠프장에서 정식으로 나누어 준 지도였으니 살인마의 작업장을 대놓고 드러낼 리가 없었다. 알면서도 아쉬움을 느끼던 서준의 눈에 빨간 동그라미 세 개가 띄었다. B 구역 호수의 옆 숲, C 구역의 산장, 마지막으로 야영지 아래의 숲 늪지였다.
그나마 B 구역과 C 구역은 하몽 캠프장 내부이기라도 하지 마지막 동그라미는 그저 늪지였기에 이렇다 할 건물도 볼거리도 없었다. 이상한 표식이었다.
서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낏자루 아래쪽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물론 팔이 저려서 금방 내렸다.
“어이, 보비.”
“나한테 해코지를 하면 내 친구들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서준의 부름에 보비가 무언가 엉뚱한 착각을 했는지 제자리에 우뚝 멈춰 날카롭게 외쳤다. 비명 같은 소리를 내는 와중에도 서준의 경고를 잊지 않았는지 숨죽인 목소리였다.
충고를 새겨들은 갸륵한 행동에 감동한 서준은 친구 운운하는 소리에 겁먹는 대신 한껏 간드러진 목소리로 보비의 쪼그라든 간을 달래 주었다.
“보비, 불을 끄고 걷다 보면 사람이 넘어질 수도 있지? 그런데 내 손에는 마침 도끼가 있네? 내가 넘어지면 내 앞사람은 어떻게 될까? 난 우리가 그 결과를 영영 몰랐으면 해.”
“히익!”
상대를 위하는 상냥한 마음은 언제든 효과가 좋았다. 서준의 친절함이 전달되었는지 보비는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고 딸꾹질이나 하며 발을 재게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