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17)화 (17/156)

#017

경비 초소, 즉 D 구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A 구역인 캠프파이어장과 야영지를 지나야 했다.

캠프파이어장에 발을 들인 서준은 떨리는 팔을 붙잡았다. 그가 가스마스크에게 습격을 당한 것이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괴물과 맞닥뜨리느라 제 턱을 꿰뚫으려 한 하몽 나이프의 살기를 잊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여전히 높이 쌓인 장작더미를 향해 가능한 한 시선을 돌리던 서준에게 요한이 말을 걸었다. 그는 뼈가 불거진 손목을 붙잡아 검지로 슬금슬금 문질렀다. 유독 도드라진 푸른 정맥을 쓰다듬는 감촉이 전해졌다.

“준아, 업어 줄까?”

“무슨 말이야. 그러다가 습격당하면 어쩌려고.”

“무서워서 그래?”

요한은 빠르게 걸으면서도 서준과 눈을 마주쳤다. 서준은 그의 말을 입 속에서 되풀이했다. 무섭냐고?

당연했다. 언제 괴물과 살인마가 기습해 올지 알지 못했다. 쾌락을 위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가스마스크와 이유조차 모르는 괴생명체가 돌아다니는 캠프장이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서준은 오히려 요한의 평온한 눈빛이 이해 가지 않았다. 바다처럼 새파란 그의 눈동자에는 동요가 느껴지지 않았다. 다정하고 미온이 잔재할 뿐인 요한의 시선은 공감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동시에 요한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열기와 그의 담담한 낯은 부조화를 이루었다.

부조화란, 때로는 꺼려진다. 서준은 요한의 손을 떨구며 대꾸했다.

“그래. 무서워.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

그때 스치듯 떨어졌던 손이 갈고리처럼 서준을 붙잡았다. 요한이 활짝 웃으며 그저 넓기만 한, 앙상한 어깨뼈를 덮듯이 쥐었다.

“겁먹지 마, 준아. 내가 함께 있잖아. 응?”

그는 실력 있는 쿼터백이었다. 키 194센티, 97킬로그램의 거구, 노련한 몸놀림과 경기 전반을 관망하는 시선이 요한의 몸값을 올렸다.

하지만 그건 스포츠 경기에서나 보일 태도였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 평범하게 뛰는 심장은 기이할 따름이었다. 결국 서준은 혀 아래에서 굴러다니는 질문을 참지 못했다. 그는 요한의 그린 듯한 미소를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왜 너는 무서워하지 않아?”

괴물의 촉수를 끊어 만용이 끓어올랐을까? 차라리 그렇다면 요한의 피를 순환하는 장기는 더욱 빠르게 움직였으리라. 요한은 눈을 접어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 상황이 위험한 건 나도 이해해. 그래도 그런 감정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걸. 때와 상황이라는 게 있잖아?”

“그건….”

요한의 말은 대체로 옳았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그렇게 이성적으로 분리할 수 있던가?

서준은 요한에게 잡힌 어깨를 털어 내려 허리를 틀었다. 그리고 다시금 눈이 마주쳤다. 아, 감탄과 비슷한 탄식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저 몰골과 초면이라면 더없이 좋았으리라.

곤충의 눈알처럼 큼직한 안구 보호대, 갸우뚱… 움직이는 고개, 검은 우비를 뒤집어쓴 남자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하몽 나이프. 달을 가렸던 구름이 지나가며 일순 빛이 그의 자태를 자세히 비추었다.

건장한 체구의 남자는 캠프파이어장의 장작더미에 어깨를 기대어 서 있었다. 옆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가스마스크….”

목이 졸린 듯 긁힌 목소리를 꺼낸 것은 보비였다. 그는 믿기 싫다는 표정으로 가스마스크와 서준을 번갈아 보았다.

물론 보비의 바람과 현실은 일치하지 않았다. 분명 서준이 피를 냈던 다리가 잘도 움직였다. 척척 걸어오는 품새가 무척이나 탈 없이 튼튼해 보였다.

요한은 입을 다물고 서준을 제 등 뒤로 숨겼다. 그는 손에 든 꼬챙이를 금방이라도 던질 듯 단단히 꼬나쥐었다.

“저놈이 준이 네가 말한 그 자식이야?”

“…그래.”

가스마스크는 오른손으로 하몽 나이프를 가볍게 던졌다가 쥐는 둥 묘기를 선보였다. 그의 태도는 여유롭고 느긋했다. 한가롭게 구는 꼴이 마치 아는 사람과 마주치기라도 한 듯 반갑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칼을 쥐지 않아 빈 왼손을 들어 하나하나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머리통을 하나씩 셈할 때마다 서준의 기분도 시시각각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스마스크가 무슨 생각일지 대강이나마 짐작이 간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살인자는 하몽 생산에 필요 없는 목을 몇 개나 잘라야 할지 계산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요한이 있으니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타산적인 희망은 짧게 끝났다.

“우, 우리는 셋이야!”

보비가 호기롭게 외치자마자 가스마스크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몽 나이프를 집어넣고 석궁을 들었다. 절그렁, 묵직한 소리가 드넓은 야영지에 크게도 울렸다. 어, 하며 얼빠진 소리를 낸 보비의 머리 위로 날카로운 파공음이 쇄도했다.

콰득! 매서운 소리에 보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것은 밤눈이 밝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 어어….”

보비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서준도 그를 탓하기 힘들었다. 나무에 꽂힌 볼트가 만약 보비의 머리통에 박혔다면, 그는 이마와 뒤통수에 멋진 길이 하나 생겼을 터이다. 양철 냄비 따위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으리라.

석궁을 날린 가스마스크는 배꼽을 잡고 웃듯 몸을 흔들었다. 소리 없는 웃음은 대사 없이 몸짓만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연극과도 같았으나 전혀 우습지 않았다.

서준은 슬그머니 요한의 옆에 섰다. 이건 인간 방패로 될 수준이 아니었다. 순서대로 죽을 뿐이다. 공포 영화 속 살인마의 평균적인 힘과 체력을 생각하면 원거리와 근거리, 모두 가스마스크가 우위였다.

스산한 바람이 한 줄기 불었다. 크리스티나가 아니라, 이쪽이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냉정하게 따지면 이건 삼 대 일이 아니야.’

서준은 제 미력한 힘을 인지했다. 전력을 파악하자 덮쳐 오는 암담함에 무릎이 다 풀릴 지경이었다. 할 줄 아는 건 깽깽거리는 것밖에 없는 보비와 근육의 비중이 현저히 낮은 육체를 가진 자신은 전력이라기보다는 짐덩이에 가까웠다. 요한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준아, 그리고 보비, 가능한 한 움직이지 마. 표적만 될 거야.”

보비에게 보호 장비랍시고 양철 냄비를 씌웠지만 실상 그것은 그의 마음이나 달래 주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양철 냄비 따위는 볼트에 스쳐도 찢어질 기세였다. 서준도 주머니에 넣었던 과도를 꺼냈다. 가스마스크도 석궁을 재장전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으며, 서준조차 예지하지 못한 사고가 발발했다.

“으아아악!”

양철 냄비를 쓴 보비가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돌진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장담컨대 가스마스크조차 대비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무려 보비의 대가리에 배를 얻어맞았다!

[……!]

퍽, 하고 온몸을 다한 박치기에 가스마스크의 몸이 뒤로 기우뚱 기울었다. 물론 앞뒤 가리지 않고 세차게 뛰어든 보비도 넘어졌다. 그는 가스마스크를 덮치듯 엎어졌다.

기가 막힌 절호의 기회였다. 서준보다도 요한이 먼저 달렸다. 그는 육중한 무게를 지녔으나 발이 무척 빨랐고 한달음에 달려간 요한은 그대로 꼬챙이를 던지려 했다.

“으악!”

그러나 가스마스크도 더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보비의 목덜미를 잡아채 그대로 던졌다. 보비의 몸이 가볍게 날아오며 요한의 시야를 방해했다.

요한이 보비의 목을 잡고 옆으로 치우자 하몽 나이프가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서준이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외치며 손을 뻗었다. 꾸드득, 칼날이 살을 파고드는 불쾌한 소리가 야영지에 들어찼다.

오른쪽 손등에 타는 듯한 통증이 불처럼 번졌다. 서준은 비명을 지르고픈 목구멍을 꽉 닫았다. 그와 가스마스크의 시선이 마주쳤다. 번들거리는 유리알 너머로 전해지는 살기를 착각하기는 어려웠다.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서준은 제 손바닥을 꿰뚫고 나온 하몽 나이프를 바라보며 창백한 얼굴로 웃었다. 기회를 놓치는 건 사양이었다. 그는 미리 꺼내 둔 과도를 손바닥 살갗이 다 일어날 정도로 꽉 쥐었다.

“이 씨발 새끼!”

복수의 쾌감은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더운 땀이 목선을 타고 흐르고, 역수로 잡힌 자그마한 칼이 가스마스크의 손목을 찍어 내렸다. 우득, 뼈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손가락 마디를 잇따라 약하게 꺾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가스마스크의 뼈는 서준의 살보다 단단했다. 그는 제 손목이 찍히는 것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하몽 나이프를 잡은 팔에 힘을 주어 그것을 뒤로 빼냈다. 살이 헤집어지고 갈리자 서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큿, 아악!”

핏줄을 끊고 근육을 들쑤시는 고통은 잠깐의 쾌락 따위로는 완전히 예방할 수 없었다. 너덜너덜하게 깨물었던 입술이 벌어지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잠깐의 틈, 서준이 주저앉아 몸을 웅크리는 사이, 가스마스크가 하몽 나이프를 빼내던 짧은 시간을 요한 또한 잡아챘다.

그는 방해가 되는 보비를 옆으로 밀쳐 냈다. 타인을 걱정하는 말이나 죽을 뻔한 공포로 인한 경악 따위는 드러내지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문 요한은 그저 꼬챙이를 잡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날개뼈가 도드라지며 어깨와 팔의 근육이 채찍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은색 빛은 가스마스크의 목을 겨냥해 직선을 그렸다. 그의 눈동자가 어두운색으로 번뜩이며 방독면과 우비의 협소한 틈을 노렸다.

캉!

그러나 살인은 실패했다. 요한의 궤적은 틀리지 않았으나 가스마스크는 핏물이 묻은 하몽 나이프 대신 석궁으로 자신을 보호했다. 꼬챙이는 석궁의 등자에 걸렸다.

“운이 좋으네?”

요한이 빈정거리자 가스마스크는 고개를 옆으로 조금 기울였다. 그는 요한의 도발에도 목소리를 낼 마음이 없는 듯했다.

요한과 가스마스크의 몸집은 엇비슷했다. 아니, 가스마스크의 옷차림 때문인지 그가 더 건장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보았을 때, 남자도 요한의 힘을 쉽게 누르지는 못하는 듯했다.

서준은 팔을 털어 고통을 억지로 떨쳐 냈다. 잔디 위로 선명한 색의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그가 몸을 일으키는 걸 알아차렸는지 요한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크게 외쳤다.

“준아, 괜찮아?”

“난 신경 쓰지 마!”

서준은 자신을 신경 쓰느라 요한이 죽는 꼴을 보게 될까 봐 얼른 대답했다. 그는 더 말하는 대신 가스마스크의 팔에 달려들었다. 가스마스크가 지금 당장은 석궁으로 꼬챙이를 막는 데 힘에 부친다지만 언제 하몽 나이프를 든 손을 휘두를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서준의 가벼운 몸은 옆에서 부딪혀 오는 몸뚱이에 휘청 넘어졌다. 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서준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짙은 역광이 그를 밝혔다. 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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