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20)화 (20/156)

#020

대체 어느 지점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지 서준은 도통 이해할 길이 없었으나, 어찌 되었든 목표는 이루었으므로 그는 요한의 옆구리에 뱀처럼 달라붙어 랜턴을 들어 올렸다.

희미하게 보이는 문 안쪽의 상황을 보아하니 반대편 문손잡이 또한 망가진 게 확실했다. 다만 그것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고작 문의 손잡이 주제에 공중 부양의 소질을 익힌 것은 아니었고, 단순히 문 안쪽에 상자가 쌓여 있던 탓이다.

서준은 굴러다니는 밀걸레를 주워 구멍 사이로 넣었다. 묵직한 감각이 손끝으로 느껴졌으나 상당히 쉽게 밀려 났는데, 뒤를 돌아보자 요한이 힘을 보태는 중이었다.

눈이 마주친 요한이 씩 이를 드러냈다. 서준은 그의 수줍은 마음이 대체 어느 때에 발휘되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튼 한 사람의 미력한 힘과 다른 한 사람의 든든한 힘으로 쌓여 있던 상자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묵직한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혹여 누군가 들었을까 싶어 서준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넓은 캠프장에 퍼져 나가기에는 미흡한 소음이었는지 괴물이나 연쇄 살인마가 들이닥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준아, 잠깐만.”

요한이 서준의 어깨를 매만지며 그와 자리를 바꿨다. 그러고는 느닷없이 문을 발로 찼다. 쓰러지고, 부딪히고, 끌리고…. 온갖 소리가 요란하게 부대꼈다.

그중 유독 귀를 잡아끄는 이상한 소리가 하나 있었다. 가득 차 있던 물이 쏟아지듯 찰랑거리는 맑은 소리가 들렸다. 이는 서준의 착각이 아님을 증명하듯 문틈 사이로 무언가 흐르기 시작했다.

발치에 닿으려는 액체를 피한 서준과 요한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그들은 서로의 표정을 보며 제 후각이 충실히 기능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아차렸다.

코를 찌르는 휘발유 냄새에 서준은 이제 거리낄 것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그는 랜턴, 정확하게는 랜턴 모형의 전등을 공연히 조심스럽게 껴안으며 방 내부를 훑어보았다.

예상한 그대로 비좁은 공간이었다. 방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협소한 크기의 창고 같은 장소. 그러나 뚜껑이 열린 휘발유 통이 아무렇게나 쓰러진 이곳은 사람의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처음 서준이 기대한 대단한 무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방을 빼곡히 채운 것은 크리스티나에게 쥐여 줄 샷건이나 전기톱 등의 흉기가 아니라 벽면 가득한 신문 조각이었다.

끝이 지저분하게 잘린 금발의 여성 실종자와 관련된 누런 갱지, 흑발의 남성 실종자 사진, 누군가를 찾는 전단지, 비통함과 슬픔으로 눌러 적은 글씨. 전율이 일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장소는 기실 가스마스크의 전리품으로 채워진 그만의 성이었다.

랜턴의 불빛이 갸름한 턱을 조명했다. 악문 이가 서로 긁히며 불쾌한 소음을 흘렸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서준은 자신의 표정을 모른다. 다만 그는 이곳에서 혼자 기쁨을 누렸을 존재를 상상할수록 역겨워졌다.

그때 따뜻한 손이 등을 어루만졌다. 뒤를 돌아보자 요한이 서준의 품에서 랜턴을 가져갔다. 그는 랜턴을 높이 들어 주변을 비춘 뒤 무던한 말씨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챙길 만한 건 없어 보이네. 그렇지, 준아?”

“어, 그래 보인다. 음…. 토할 것 같아.”

가스마스크의 내장 속으로 들어온 듯한 매스꺼움에 속이 다 울렁거렸다. 그리고 정말 피할 수 없다는 예감이 골통을 흔들었다. 이토록 정성스럽게 꾸민 공간에 휘발유를 준비했다는 것은 모든 걸 불태울 거란 의미나 다름없었다.

서준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자 요한이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기름 냄새가 심하니까…. 나가서 찬 공기를 쐬면 좋아질 거야.”

그의 불편한 속은 기름 탓이라 말하기 어려웠으나 이곳에서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가자. 여기서 더 있는 것도 시간을 허비하는 길밖에 안 되겠어.”

그는 이곳이 하몽 생산지가 아님을 되새겼다. 물론 경비 초소의 내용물이야 대단히 충격적이기야 했다. 다만 하몽 생산지는 작중 중요한 장소로 가스마스크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의 현장이었다.

이곳은 요한의 말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서준은 하몽 생산지의 대략적인 생김새와 몇 가지 특징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의 크리스티나가 내뱉은 대사를 통해 알게 된 정보였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나’는 이렇게 말했다.

- 오, 정말 지독한 냄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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