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눈알 모양으로 만든 익살맞은 사탕 정도는 골든도 먹어 본 적이 있었다. 둥글고 커다란 설탕 덩어리를 혀 위에 얹고 핥다가 녹아내리면 뺨 안쪽에서 이리저리 굴려 댔다. 간혹 그러다가 떨어뜨린 기억이 났다. 침과 설탕이 녹아내려 단 즙이 묻어나와 축축한 사탕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리처드의 눈알이 꼭 그 사탕과 같았다. 촉수가 뱉어 낸 정체 모를 액체가 묻어난 안구는 신기하리만치 둥그런 형태였다. 수정체 반대편에 붙은 시신경이 아니었다면 갑자기 웬 사탕이 굴러왔나 헷갈렸을 것이다.
“어….”
골든의 목구멍이 힘겹게 소리를 쥐어 짜냈다. 그러자 멀어졌던 감각이 일시에 그를 두드려 깨웠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뜨끈한 피비린내, 축축한 늪의 습기, 전신에서 돋아난 소름.
“허억!”
리처드가 죽었다. 저 얇은 가죽은 살아 있는 사람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러나 골든은 뒤로 자빠지는 대신 몸을 앞으로 숙였다. 육상 선수가 달리기 직전 취하는 자세와 비슷했으나 그는 앞으로 내달리는 대신 어정쩡하게 몸을 굽히고 있을 뿐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흙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피가 스며든 듯 눅눅했다.
추릅, 추릅….
골든과 브래스가 머저리처럼 구는 사이에도 촉수는 신경 쓰지 않고 식사에 열중했다. 이제는 헐렁해진 리처드였지만 속에 남은 잔여물까지 말끔하게 먹어 치우려는 모양이었다.
비좁은 관을 따라 내장이 통과하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촉수를 거두자 리처드였던 가죽은 흐물흐물하게 땅바닥과 늪지의 경계선에 떨어졌다.
두개골을 비롯한 뼈는 기호 식품이 아니었는지 두부만은 그나마 멀쩡하게 남았다. 그러나 근육과 지방까지 남김없이 긁어 먹은 탓에 뼈가 있어도 신체를 지탱하지 못했다. 겨드랑이였을 부근에 발뒤꿈치가 차곡차곡 개켜지는 모습은 현실성이 부족했다.
“하아, 하아, 하아….”
골든이 필사적으로 숨을 쉬었다. 그에게 가능한 건 고작 그뿐이었다. 바닥에 단단히 뿌리박은 돌덩이를 뽑아 던지는 일도, 가엾은 리처드를 데려오는 일도 불가능했다. 어쩌면 마음을 가다듬어 용기를 쥐어 짜냈다면 시도라도 했을지 모른다. 다만 그것은 골든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늪 속에서 그것이 몸을 일으키자 점성 있는 늪지의 액체가 바닥으로 철퍽 떨어졌다. 아, 그토록 끔찍한 생명체라니. 골든은 들이쉰 숨을 내뱉을 생각도 못 하고 꿀꺽 삼켰다.
하얗고, 거대한, 무언가.
그들이 보았던 촉수는 그야말로 일각에 불과했다. 바르르 떨리는 입술은 어설프게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골든의 인지 속에는 저것을 칭할 단어가 없었다. 그것의 몸뚱이는 여전히 늪 속에 반절은 잠겨 있었다. 고작 그 절반으로도 골든의 의기를 꺾기 충분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골든을 알아차렸다. 스스로 벌레가 되어 버린 것처럼 무기력해졌다. 손과 발에서 촉감이 멀어지고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다만, 그는 압도적인 절망에 짓눌려 체념하지 않았다.
“악!”
이유는 간단하다. 골든 외의 생존자, 브래스가 그를 냅다 밀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밀쳐진 몸뚱이는 그러잖아도 어정쩡하게 있던 탓에 넘어졌다. 골든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브래스가 다급하게 구 합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꼴이 보였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고 눈앞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브래스, 이 개자식!”
비록 악우라고는 하나 친구였던 브래스는 평소 내보인 인성답게 행동했다. 그는 골든의 욕설에 대꾸하는 대신 문을 잠가 버렸다. 철컥, 문의 잠금쇠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도 들렸다.
골든은 제 목과 볼, 귀에 열이 나는 걸 알았다. 달군 돌처럼 데워진 분노가 자신의 살을 익혔다. 그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넌 곱게 못 죽을 거야! 브래스 스티브!”
브래스는 뛰어난 개자식이었다. 그는 악에 받친 저주에 응하지 않고 깨끗하게 무시했다. 덜덜 떨리는 다리에 힘을 준 골든은 굳은 목을 움직여 앞을 보았다. 당장이라도 괴물이 자신을 잡아먹으려 달려들지 않을까 밀어 두었던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나 괴물, 이라고밖에 칭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그것은 고요했다. 그저 흐늘흐늘하게 촉수로 늪을 건드리며 조금씩 가라앉았다.
원인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골든은 달려 나갔다. 구 합숙소에 들어가려 애쓰지 않고, 만용을 부려 괴물에게 맞서지 않고 도주했다. 왔을 때와 똑같은 길을 향해서 다리를 혹사했다. 스스로 넘어뜨린 폐기물에 걸려 넘어지고 얼굴이 쓸리면서 달음박질했다. 스친 나뭇잎에 피부가 그이고 베이며 전진했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만 도착한다면 타인과 연락할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가지고 오로지 앞으로 나아갔다.
서준이 이미 퇴근했으리란 상식적인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맹목적인 기대는 이미 기도나 다름없었다. 달빛만이 유일한 등불인 어두운 숲길을 지날 수 있도록 하는 길잡이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달한 편의점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쓰러진 자전거와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팽개쳐진 가방, 박살 난 휴대 전화였다. 목에서는 피 맛이 났다. 전신은 땀으로 젖었다. 폐를 혹사해 달린 몸뚱이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골든은 이마를 타고 눈썹 끝에 매달린 땀방울을 거칠게 닦았다. 눈에 힘을 주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서준은 어디에도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박살 난 휴대 전화 앞으로 걸어갔다. 이렇다 할 특징은 없었다. 그러나 골든은 이것이 누구의 물건인지 한눈에 알아차렸다. 서준이었다. 그는 단내가 나는 입에서 억지로 침을 삼켰다. 오던 길에서 피 냄새를 언뜻 맡았었다. 그러나 제 착각이라 여겼다. 아니, 정확하게는 무시했다.
골든은 톰팃톳 주민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말썽꾸러기였으며, 인성 파탄자였고, 인격이 현저히 부족한 준비된 범법자였다.
결정을 내린 그는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서준의 가방 속에서 열쇠도 찾았다. 골든은 망설이지 않고 자전거에 올랐다. 그리고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갔다.
페달을 밟는 허벅지가 비명을 질렀다. 아직도 눈에 선명한 괴물을 향한 공포가 심장을 쥐어짰다. 하지만 그곳에 …가 있을지도 몰랐다. 골든은 입술을 깨물었다. 혀에 핏방울이 닿았다.
***
“뭐? 쓰러진 자전거?”
편의점 앞 쓰러진 자전거가 있었고 가는 길에 피 냄새가 났다며 중얼중얼 설명하는 골든을 향해 서준이 기가 막혀 되물었다.
골든의 이야기는 주관적인 성향이 심각했다. 그는 제가 생각하기에 중요하지 않다 싶으면 아예 묘사를 생략하거나 대강 넘어갔다. 심지어 객관성이 대단히 부족했다. 서준은 골든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용감하게 괴물에게 돌을 던졌다는 부분에서 코웃음을 픽 쳤다.
그러나 도저히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 자전거였다. 골든은 이야기 막바지에 편의점 앞에서 쓰러진 자전거를 타고 캠프장으로 돌아왔노라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대를 가늠하던 서준은 귓구멍을 파고든 단어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 점쟁아. 아마 네 자전거였을 거야. 아무튼 그걸 타고 돌아왔는데 정문이 닫혀 있더라고? 그래서 숲길로 다시 걸어온 거지.”
‘또 너였냐.’
서준은 헛웃음만 내뱉었다. 하여간 금·은·동 트리오는 그의 인생에 없는 편이 나았다. 마음 같아서는 소중한 자전거를 마음대로 탄 골든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팠다. 그러나 저 우람한 몸뚱이를 잡고 매달려 봤자 바람결에 허수아비 옷자락 나부끼듯 움직일 건 중심축이 빈약한 제 척추였다.
서준은 한숨을 내쉰 뒤 오른쪽 눈꺼풀을 긁었다.
“내 휴대 전화가 박살이…. 나… 있었…. 다고?”
목소리의 높낮이가 제멋대로였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전거는 그나마 온전히 자신의 소유물이라기도 했다지만 휴대 전화는 아직 약정도 한참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서준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골든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밟기라도 했는지 아주 완전히 깨졌던걸. 새것 하나 사.”
서준은 황폐한 시선으로 괴로운 진실을 전한 골든의 주둥이를 노려보았다. 어째서인지, 두 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코를 훌쩍거리며 손등으로 문질렀다.
‘가스마스크군.’
뜨거운 안면과 달리 서준의 머릿속은 한없이 차갑게 식었다. 그는 볼 안쪽의 살을 깨물었다.
가스마스크는 바깥과 캠프장을 완전히 차단해 버리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자전거를 사용한 사람이 사실 골든이었다는 것에 몸을 떤 이유는 비단 아까워서가 아니다. 가스마스크의 어마어마한 체력에 짜증과 공포가 섞여 뱃속을 진창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심장 구석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 한 자락이 불쑥 솟아났다. 공포 영화의 연쇄 살인마란 어떤 존재이던가? 그들은 건물에서 떨어져도, 총에 맞아도, 칼에 찔려도, 폭발에 휘말려도, 차에 치여도, 물에 빠져도 태연한 낯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연쇄 살인마였다.
피투성이 넝마가 된 파이널 걸이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전까지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인간을 초월한 괴력과 체력, 생존력을 자랑했다. 가스마스크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는 그나마 후속편이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지.’
서준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끔찍하고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가정에 불과했지만, 만약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가 인기를 얻어 2편, 3편이 나왔다면 정말이지 그의 미래는 답이 없었으리라.
그때 상념에 빠져 있던 서준의 정수리에 요한이 턱을 얹었다. 갑작스러운 무게감에 서준이 놀라 몸이 뻣뻣해지도록 긴장하자 큼직한 손이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었다.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흐음, 그럼 서준이 이곳을 지나갈 때 공격한 사람은 브래스가 확실하겠어.”
“브래스가 대체 왜….”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준은 크리스티나의 근심 어린 표정을 응시했다.
그녀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악의를 향한 이해가 부족할 따름이다. 그는 다시금 골든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불그죽죽한 낯은 화가 난 것처럼 보여 익숙한 얼굴이었다. 서준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를 미끼로 쓰려던 거였겠지. 괴물한테 대신 먹힐 먹이로 말이야.”
슬슬 이해가 갔다. 구 합숙소 건물 앞에서 나던 악취의 흔적과 왜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볼트로 서준을 맞추지 않고 늪 쪽으로 밀어 내듯 쏘아 대기만 하였는지.
브래스는 서준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삶이 더욱 길게 이어지길 바라며 그를 제물로 삼으려 했다.
“그런, 그런 짓을….”
브래스의 야비한 짓거리는 진주처럼 새하얀 이가 희게 튼 입술을 꾹 깨물게끔 만들었다. 크리스티나가 인상을 쓰자 얼굴이 퍼렇게 질린 에어리가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브래스는 정말 개자식이고, 너는 친구 좀 골라 가며 사귀어. 골든.”
리처드의 죽음에 관해 듣던 중 연신 헛구역질을 하던 그녀는 골든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골든은 무언가 항변하려 했지만, 말 그대로 친구에게 버림받은 상황이었다. 그는 목을 푹 숙였다.
하지만 골든이 입을 다문다고 에어리까지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다. 크리스티나의 어깨를 도닥이던 그녀는 번뜩 눈을 빛냈다.
“잠깐만!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지금 저 밖 늪에는 리처드의 그, 그것이 있고, 브래스는 가스마스크한테 잡혀가서 석궁을 강탈당했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골든 너는 기껏 탈출해 놓고 경찰에 신고도 없이 되돌아왔고? 이딴 게 인생이라니, 젠장!”
“가스마스크는 또 무슨 말이야?”
“그것부터 설명해야 하는구나….”
골든이 불퉁하게 대꾸하자 서준은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왜인지 새로운 사람이 늘어날수록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늘어만 갔다. 그러나 골든은 가스마스크가 무엇인지 듣기도 전에 성난 표정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누가 빈손으로 와? 설마 내가 저 점쟁이 따위에 눈이 돌아가서 정신없이 달려온 줄 알아? 기가 막히는 헛소리 작작 해. 자, 봐. 여기 전화기를 챙겨 왔다고.”
골든이 손을 넣은 그의 바지 주머니는 과연 불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