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47)화 (47/156)

#047

9. 《피 흘리는 호수의 살인마》 (원제: 블랙 레이크의 놀라운 진실과 거짓, 그리고 살인마와 미녀)

냄새에 색이 있다면 이 비린내는 꼭 피와 같은 붉은빛을 띨 것이다. 악취는 문 가까이 다가갈수록 짙어졌다. 틈바구니에서 새어 나오는 고기가 썩다 못해 말라비틀어질 때 풍기는 기묘한 단내…. 착각이라 웃어넘기지도 못할 일이다. 하몽 생산지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던 셈이다.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당혹감을 품은 채 서준이 느릿하게 숨을 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몽 캠프장의 일반 시설물과 무서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대체 얼마나 대범해야 이토록 지근거리에서 살인 행각을 벌여 온단 말인가? 아무리 지도에 나타나 있지 않아도 이만하면 동네 아이가 불쑥 숨어들지도 모를 위치였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대담한 장소에 하몽 생산지를 설치했기에 타인의 이목에서 벗어나 쉽게 관리를 해 왔다고 볼 수도 있었다. 비록 가스마스크의 마지막은 졸렬한 비명과 함께했으나 그의 간이 비대했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터이다.

서준은 손때가 묻어 빛나는 문손잡이를 선뜻 잡지 못했다. 칠이 벗겨져 드문드문 드러난 황색의 철이 유독 등줄기를 섬찟하게 만들었다. 망상처럼 피어오른 생각 탓인지 송곳처럼 삐쭉 솟아난 불안을 다스리려 해도 쉽지 않았다.

“준아, 이 근처에는 아무도 없어.”

서준이 하몽 생산지를 살피는 동안 숨죽이고 주변을 둘러보던 요한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긴장한 듯 어깨가 굳어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요한도 이곳의 용도를 깨달은 듯했다.

서준은 잇몸이 아리도록 이를 세게 악물었다. 가스마스크가 머리만 남는 몰골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자꾸 오한이 들고 두려움이 솟는 건 이 자그마한 오두막에 불과한 건물에서 숱하게 벌어졌을 살인을 상상하기 너무 쉽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경험한 게 많은 날은 특히 그렇다.

어렴풋한 몽상이 아닌 사실적인 정경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이렇게나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던가? 이토록 습한 공기가 떠다녔던가?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검보라색 표면의 늪에 반쯤 잠긴 나뭇가지마저 불길했다. 서준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요한과 시시덕거리며 잡담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거세게 뛰는 심장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이제 괜찮다는 걸 억지로 머릿속에 쑤셔 넣었다. 가스마스크도 괴생명체 X도 죽었다. 용맹한 크리스티나의 활약으로 가장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 남은 일이라고는 보비의 시신에서 열쇠만 챙겨 나가는 게 전부였다.

지긋지긋한 톰팃톳에서 벗어나 진정 자유로워질 시간을 평생 목을 빼고 기다렸건만 등줄기가 오싹하니 초조한 이 감각의 정체는 대체 뭘까?

서준은 차게 식은 이마를 손등으로 닦았다. 겨우 찾아온 희망을 선뜻 받아들일 성격이라면 그의 삶도 한결 편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포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괴팍한 겁쟁이가 서준의 본성이었다. 목울대가 크게 울렁거렸다.

‘이곳이야말로 열, 보비가 있을 확률이 높아.’

억지로 침을 삼킨 서준은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타당한 이유도 없이 근심스러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몽 생산지는 조용했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오두막은 깜깜해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드높은 하늘은 어느샌가 슬금슬금 푸르스름한 새벽녘의 색채가 섞여 들었으나, 밝아지기는커녕 그늘진 부분과 맞닿아 경계선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왜 그런가 눈에 힘을 주어 살피니 곧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오두막 안쪽의 창문에 널빤지를 덧대 창백한 달빛마저 가로막혀 들어오지 못했다. 서준은 잠시 눈꺼풀을 내렸다. 십 초를 센 다음 눈을 뜬 그는 땀이 배어나는 목을 매만지며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하도 긴장한 탓인지 가시밭을 걷듯 발바닥이 따끔거렸다.

“냄새가 정말 고약한걸.”

콧잔등을 찌푸린 요한이 중얼거렸다. 그는 서준의 머리 위로 팔을 올렸다. 무언가 막는 듯한 모양새에 저절로 시선이 위를 향했다. 암순응을 마친 눈은 변변찮게나마 사물의 윤곽을 더듬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썩 반길 만한 일이 아니었다.

“윽….”

서준의 고개가 황급히 아래를 향했다. 뛰다가 넘어지지 않도록 꽉 묶은 운동화의 끈 끄트머리가 너덜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준아, 바깥에서 기다려도 괜찮아. 내가 살필 테니까. 응?”

요한이 걱정스럽다는 듯 어깨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서준은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간신히 참으며 사귀지도 않는 주제에 스스럼없이 만져 오는 다섯 손가락을 일일이 떼어 냈다.

그는 요한의 정숙하지 못한 태도에 한 소리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한숨을 내쉬고는 아래를 향했던 시선을 똑바로 들었다.

오두막은 말하자면 흡사 중세 시대의 푸줏간과 비슷한 정경이었다. 도축당한 고기가 주렁주렁 늘어져 있었다. 나무 바닥은 피와 기름을 먹어 번들번들하게 윤기가 흘렀다. 네모난 작업대 위에는 잘린 팔을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두었다. 특별히 신경을 쓴 넓적다리는 천장에서 내려온 줄에 길게 매달려 있다.

요한이 막은 것은 끝이 뾰족한 갈고리에 꿰뚫린 몸뚱이였다. 큼직한 사람의 상반신은 목과 팔이 제거된 상태로 배가 길게 갈라져 속이 훤히 보였다. 뼈에는 살점과 근육이 대부분 붙어 있었지만 내장은 따로 빼 두었는지 비교적 허한 느낌이 들었다. 구역질 나는 광경이었으나 어쩐지 시선이 못 박혔다.

활짝 열린 갈비뼈를 눈에 담자 문득 자신의 장기가 신경 쓰였다. 내 심장은, 허파는, 간과 폐는 다 제자리에 있을까? 혹시 저 작업대 안쪽에 몰래 숨긴 내장처럼 누군가 뺏어 가지 않았을까? 길고 긴 창자를 뒤집어서 솔로 벅벅 문지른 게 아닐까?

진작에 배 속이 텅 비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더럭 밀려왔다. 아, 그렇지. 괴물이 다 빨아 먹었을 거야!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던 미끄덩한 촉수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내장을 투욱 건드리던 끔찍한 감각! 비어 버린 공간은 요한이 짚으로 채웠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환상이 비죽비죽 솟아났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비탈을 구르는 눈처럼 헛된 생각이 크기를 불려 나갔다. 이곳이 무엇을 하는 장소인지 안다고 여긴 것 자체가 오만이었다. 괴생명체 X처럼 괴물의 힘으로 자르고 부수지 않은 날것의 풍경이 망막을 자극했다. 모두 사람의 손으로 범한 살육이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손과 발에서 힘이 쭉 빠졌다. 점점 메스껍고 숨이 가빠졌다. 이런 추악한 광경을 목도하고도 속이 멀쩡하다면 그건 이 오두막의 주인이거나 극단적으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 게 틀림없었다.

요한은 창백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 같은 서준을 보았다. 그는 다급한 표정으로 뒤늦게 서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 냄새가 너무 독하지? 이상한 것도 많고…. 잠깐 나가 있을래?”

요한이 호들갑을 떨며 다시금 제안하자 서준도 이번만큼은 그의 말을 따르고팠다. 하지만 서준의 길기만 하고 썩 쓸모없는 무릎이 후들후들 떨리더니 큼직한 손을 맞잡기도 전에 풀썩 쓰러졌다.

서준도 제 나름대로 변명할 거리는 있었다. 가스마스크가 어찌나 열성적으로 청소를 했는지 바닥이 기가 막히게 미끄러웠다. 두 다리가 단단히 받치고 있다면 모를까, 누구처럼 의기가 약하다면 아차 하는 순간 자빠지고 마는 것이다.

허우적거릴 틈도 없이 몸이 무너졌다. 하필 근처에 있던 무언가를 건드려 함께 넘어졌다. 찧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물건의 정체는 거대한 오크 통이었다. 둥그스름한 형상이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은 제법 우스꽝스러웠다.

서준은 나무 바닥을 짚고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에 닿은 것은 단단하고 평면적인 바닥이 아니었다. 검지와 새끼손가락이 물컹거리는 것을 만지더니 쑥 들어갔다. 이어 으직, 하고 무언가 으깨졌다. 머릿속이 엉망으로 엉켜들었다. 서준은 자신이 짚은 것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때마침 활짝 연 문에서 서늘한 빛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썩 밝지는 않았으나 오두막 안이 워낙 어두워 협소한 양의 빛으로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던 공간이 사물의 색을 탁하게 비추어 냈다.

“아.”

서준은 의식적으로 입술을 벌렸다. 한숨인지 한탄일지 모를 음소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바닥에는 수많은 머리통이 굴러다녔다. 오크 통에 가득 차 있던 그것들은 턱 아래에서 바짝 잘라 내 목 부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말라붙은 가죽은 입술과 눈가, 뺨 부위의 살이 메말라 성별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머리카락은 다듬지 않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 금발과 흑발 두 종류가 전부였다. 그리고 서준의 손이 파고든 머리 역시 짧은 흑발의 머리였다.

서준은 부들부들 떨면서 제 손가락이 찌른 구멍을 확인했다. 안구는 농익은 과일처럼 쉽게 뭉그러졌다.

“흐으….”

목구멍이 조여들고 잇새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심장 언저리가 꽉 막힌 듯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요한이 서둘러 서준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고 그를 일으켜 세우자 손가락이 찔린 안구와 함께 빠져나왔다. 눈가가 텅 빈 머리통이 툭 떨어졌다. 귓가가 윙윙거렸다.

요한이 서준을 달래듯 다정한 얼굴로 무어라 말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이 혼란스러운 정신을 일깨운 건 요한이 아니었다.

“힉.”

누군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서준은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느릿하게 목을 돌렸다. 오두막 안쪽에 그가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콧물을 훌쩍거리는 한심한 몰골이었다.

“끄아아아악! 아악! 아아악!”

카랑카랑한 비명이 오두막을 가득 메웠다. 서준은 이 볼품없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았다.

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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