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102)화 (102/156)

#101

사람을 죽였다는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차로 친 육신이 살아 있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이중의 혼란 속에서 팀은 밭은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로지 그뿐이었다. 팀을 내려다보는 건 조롱하듯 사부작거리는 나뭇잎이 전부였다. 달조차 없는 새까만 밤……. 애초에 사람이 드문 국도라 팀도 이곳에 온 게 아니었나?

어두운 갈색 눈동자가 까맣게 반들거렸다. 그는 어정쩡하게 주저앉아 손으로 바닥을 죽 더듬어 살폈다. 가칠가칠한 아스팔트 바닥과 미끄러운 액체의 촉감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흐르는 피의 양이 심상찮았다. 이대로 병원에 가도 살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팀은 세차게 뛰는 심장에서 비롯된 고통을 애써 무시했다. 쿵, 쿵 거리는 박동은 거인의 발길질처럼 요란했다. 이조차 자신만이 듣는 소리였다.

마침내 결심한 팀이 양손을 뻗었다. 손바닥을 적신 핏물이 가녀린 발목에 자국을 남겼다. 팀은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그 방향은 아직도 시동이 걸려 있는 제 차를 향하지 않았다. 그는 숲으로 뒷걸음질 쳤다. 여린 피부가 아스팔트에 갈리며 핏자국을 더했다. 짙은 피 냄새가 비공을 가득 채우자 팀의 윗입술이 꿈틀거렸다.

역하다든가, 두려움의 표현이 어긋난 게 아니었다. 그는 인제야 진정한 환희와 희망을 알았다. 그간 누누이 자평하던 행운이 빛나는 걸 온몸으로 체감했다.

병에 걸린 청년은 자신이 자초한 타인의 죽음 앞에서 잘못된 기쁨을 만끽했다. 첫 살인이었다.

이후로도 팀은 운을 시험하듯 여러 사고를 일으켰다. 나라는 넓었고, 실종자는 많았다. 목격자가 없다면 사건도 없었다. 팀은 자동차를 수리하는 데 통달했다. 그는 요령이 좋은 남자였다.

아, 그러나 매너리즘이란!

기어코 팀에게도 타성에 젖는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는 살인과 은폐는 팀처럼 유망한 젊은이에게 참을 수 없는 무료함을 안겨 주었다. 틀에 박힌 살인, 신선하지도 독창적이지도 못한 지루한 일상……. 살인에 일종의 예술성마저 느끼고 있던 팀은 결심한다. 그의 원시적 공간으로 돌아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창안하기로.

방도는 옳았다. 첫 살인의 흔적이 지워진 땅을 바라보자 영감이 샘솟았다. 지금까지는 차 밖에 있던 사람을 죽였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차 안쪽의 사람을 죽이도록 하자.

팀에게 자동차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흉기이자 삶과 죽음을 엄정하게 가르는 외벽이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더한 쾌락을 얻기로 마음먹었다. 준비물은 간단했다. 살인이 사고로 보이도록 만들어 줄 조그마한 선물과 죽은 까마귀들. 팀은 운전자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스스로 사고당하는 걸 유도할 심산이었다.

그렇게 죽이려고 했지만…….

팀은 교활한 시선으로 요한을 곁눈질했다. 이 새로운 시도는 처음부터 좌초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작당이 잘 먹혀들어 간다 싶던 운전자가 그를 대뜸 내쫓은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 계획의 훌륭한 점은 무엇보다 시도하지 않는다면 범죄로 취급받을 일이 없었고, 시도한다면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팀은 수면제가 든 사탕을 손바닥에서 굴렸다. 새로운 시도가 시작부터 거꾸러진 원인이 무엇일까 곰곰이 고민했다. 차근차근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운수 좋은 남자는 대단한 집념의 소유자였으므로 그리 어렵잖게 발견했다. 히치하이커가 자동차에 치이는 장면에 오류가 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꼼꼼하게 실수를 삭제했다. 그리하여 히치하이커 괴담 개정판에서는 이렇다 할 모순이 없었다. 물론 요한은 팀이 한 이야기를 전부 흘려들었지만.

“요한, 제가 가진 게 이런 거밖에 없어서요. 입이 심심하면 사탕이라도 드세요. 새콤한 맛이 있어서 운전할 때 먹으면 졸음도 쫓고 좋아요.”

팀은 다시금 용기를 북돋우며 사탕을 내밀었다. 노란색 껍질에 싸인 레몬 캔디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미각을 자극했다. 요한이 사탕을 힐긋 내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모호한 웃음을 피부 위에 붙인 채였다.

“먹을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느릿한 질문이었다. 톰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바닥을 억지로 누르고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런 조그만 사탕을 어떻게 식량이라고 치겠어요. 이건 차라리 부적에 가까웠죠. 아, 이게 있어서 내가 버틸 수 있구나… 하는.”

“그런 당분 덩어리 부적을 제가 어떻게 날름 삼키겠어요. 당신이 먹어요, 팀.”

요한이 부드럽게 거절했다. 그의 어투는 팀이 한 말과 비슷해 언뜻 듣기로는 놀림조로도 들렸다. 팀이 긴가민가하며 옆을 보았다. 산뜻한 옆얼굴은 사내답게 거친 면과 유독 신경 써 꾸며 낸 듯한 유순함이 뒤섞여 속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팀은 한결 더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며 사탕을 내밀었다.

“아니에요. 솔직히 제가 억지를 썼는데 호의로 태워 주셨잖아요. 제 보답이라고 여기시고 꼭 드셔 주었으면 해요.”

“으음.”

난처하다는 듯이 살짝 기울어진 목이 낮게 울렸다. 그는 팀의 손바닥 위에 놓인 레몬 캔디를 보더니 글로브 박스를 향해 고갯짓했다.

“팀, 글로브 박스를 열어 봐요.”

“예? 예.”

요한이 사탕을 섭취할 때까지 가능하면 그의 비위를 맞출 작정이던 팀은 순순히 명령에 따랐다. 그러자 붓으로 그린 듯이 무던하던 표정에 금이 갔다. 당황한 팀은 아연한 얼굴로 글로브 박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곳에는 레몬 캔디가 가득했다. 다른 물건이 있어도 사탕에 파묻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팀은 자신이 손에 쥔 사탕이 그곳에 빠져 버릴까 조심스럽게 글로브 박스를 닫았다. 이어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요한을 올려다보았다. 거뭇거뭇한 눈두덩의 살이 바르르 떨렸다.

“그, 레몬 캔디를 굉장히 좋아하나 보죠?”

안 받는 이유가 너무나 명확했다. 그야 똑같은 사탕이 이미 수십 개씩이나 있다면 새로운 사탕은 필요 없으리라. 약간 질린 듯한 눈빛을 한 팀에게 요한이 어깨를 가볍게 추어올렸다. 그가 좋아하는 건 서준이 준 사탕이었지, 레몬 캔디가 아니었으나 이 또한 굳이 알려 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히치하이커도 끈질긴 남자였다. 그는 섣부르게 포기하지 않았다. 팀은 신이 저에게 안배한 억센 운을 믿었다. 옆자리에 있는 한 기회는 얼마든지 돌아오리란 확신이 있었다.

초조한 마음을 꼭꼭 접어 심장에 잘 수납할 즈음이었다. 도로 앞쪽에 새까만 덩어리가 보였다. 팀은 터져 나오려는 폭소를 삼키고는 천연덕스럽게 손가락질했다.

“아, 저기 봐요!”

그것은 죽은 까마귀였다. 슬며시 벌어진 부리와 반쯤 펼친 채 뒤틀리고 굳은 날개, 미처 감기지 못한 새까만 눈동자, 그리고 뻣뻣한 몸뚱이……. 까마귀는 피투성이였지만 원체 색이 짙어 그리 티가 나지 않았다. 까마귀는 크기가 제법 큰 새였기 때문에 상당히 흉한 몰골이었다.

요한은 추임새를 넣듯 저런, 하고는 차를 부드럽게 몰았다. 자동차는 까마귀를 밟지 않고 약간 돌아갔다. 놀란 기색 없이 태평한 태도였다. 하지만 팀은 승부수가 두 번째부터라고 여겼다. 그도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대신 은밀한 함정을 파듯이 교묘한 말씨로 히치하이커 티모트의 이야기를 상기시켰다.

“그러고 보니 티모트가 죽기 전 본 것도 까마귀였죠.”

“근처가 숲이니까 새야 많지 않을까요? 아, 저기도 날아간다.”

바람결에 우수수 흩날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요한이 대답했다. 과연 새 한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갯짓했다. 거기다 우는 소리는 또 어찌나 요란하던지 그야말로 야생의 보고였다. 태평한 낯짝은 역시 훼손당하지 않은 자연이란 위대하다며 감탄을 늘어놓았다. 팀이 보기에 내실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말이었다.

그는 왜인지 조급한 기분이 들어 빨리 두 번째 까마귀 사체가 나타나길 기도했다. 그리고 하늘이 여전히 잿빛이고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한 시간이 지났을 때, 준비한 두 번째 까마귀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팀이 삿대질할 필요도 없이 요한이 아는 체를 했다.

“아, 또 까마귀가 죽어 있네요. 누가 사냥이라도 했나?”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바퀴의 방향을 틀었다. 팀은 부러 싸늘한 음성을 꾸며 냈다. 손쉬운 일이었다. 몇 차례의 살인은 팀에게 결코 지울 수 없는 악독한 흔적을 남겼다. 그는 평상시와 살인을 할 때의 구분이 확실하다고 여겼으나 실상 눈동자만은 언제나 음험하게 빛나고 타인에게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사특한 혓바닥이 뱀처럼 날름거렸다.

“이상하지 않아요? 아까도 우리는 까마귀를 봤잖아요. 요한, 당신은 분명히 피해 갔지만 또 눈앞에 나타났죠. 이게 단순한 우연에 불과할까요? 게다가 아까 본 까마귀와 방금 본 까마귀, 완전히 똑같았어요.”

그는 덤덤한 성격의 무딘 청년조차 제 혓바닥으로 얼마든지 난도질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무리 체격이 훌륭한들, 뇌가 만들어 낸 환상을 한갓 근육이 이길 수 있겠는가? 팀은 사람의 불안을 자극하는 방법을 알았다. 안다고 자신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자신감이라 착각했던 자만은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병색이 짙은 목이 천천히 요한을 향했다.

불길한 예언을 일삼는 예언자 노릇을 하려 했던 팀은 의아한 눈빛으로 요한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담담하다. 태평한 얼굴에는 이렇다 할 근심이나 걱정거리가 없었다. 요한은 편안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아까 칠 뻔한 까마귀는 날개깃이 위로 꺾이고, 부리도 아래로 부러졌어요. 하지만 다리는 멀쩡했고…. 그런데 이번 까마귀는 눈알이 뭉개지고 다리도 부러졌으니 다른 새라고 봐요.”

그는 새 한두 마리가 바닥에 떨어진 게 무슨 대수냐는 듯이 굴었다. 그러고는 팀을 향해 활짝 웃었다.

“참, 팀도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줬으니까 나도 비슷한 괴담을 하나 말해 볼게요. 듣고 평가 좀 해 주실래요?”

“괴담…이요?”

팀은 불안한 기분에 휩싸였다. 본래 이러한 기분을 받아야 하는 건 상대방이어야 하는데도 손등의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요한은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푸른 눈은 선 채로 꿈을 꾸듯 몽롱하게 반짝거렸다.

“어떤 살인자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 살인자는 자동차 트렁크에 시체를 싣고 국도를 달리고 있었죠. 그는 시체를 처리하기 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도 없고, 멈추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래요. 차 앞에 히치하이커가 나타나기 직전까지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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