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흐, 읍!”
멀미를 하는 것처럼 빈속이 울렁거리며 금방이라도 토악질을 할 듯 메스꺼운 느낌이 치달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현기증은 도무지 반길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간신히 욕지기를 억누른 몸뚱이가 똑바로 서 있지를 못하고 발을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허우적거리며 마구 내두른 왼손이 커튼을 부여잡았다. 불행히도 낡은 천 자락은 한순간에 실린 성인 남성의 체중을 감당하지 못했다. 가느다란 몸이 커튼에 휘감기고 천이 찢어졌다.
어두컴컴하던 방으로 일시에 햇살이 들어왔다. 마치 이전까지 보던 세상이 거짓이라는 양 강렬한 빛살은 일견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한쪽뿐인 안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급격한 변화였다. 서준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는 기침을 터뜨렸다. 지저분한 커튼을 덮어쓴 탓에 희뿌연 먼지가 입이며 코로 들어왔다.
“큽, 컥, 켁.”
“세상에, 서준! 괜찮아요?”
흰빛 사이에서 캠리의 이목구비가 한데 뭉그러지며 번져 보였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서준은 손을 휘저었다. 그는 허둥거리며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났다. 살갗에 닿는 오래된 천의 촉감이 선뜩했다. 시선이 빠르게 창가를 향했다. 다행히 바깥에서 기척이 나는 낌새는 없었다.
“대체 뭘 본 거예요?”
캠리가 그늘에서 나오지 않은 채 물어보았다. 그녀의 질문에 서준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사실 답이야 간단했으나, 때때로 단순한 것일수록 말문이 막힐 때가 있는 법이었다. 그는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 비틀거리며 항아리를 향해 걸어갔다. 항아리의 주둥이를 잡고는 빈약한 팔뚝에 힘을 주었다. 깨뜨리려는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더욱 힘들었다. 온 힘을 다해 묵직한 항아리를 옆으로 눕히자 안쪽에 있던 내용물이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나왔다.
“그건…….”
캠리도 호기심이 동했는지 은근슬쩍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그녀도 서준과 마찬가지로 바짝 마른 쥐포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맞히지 못했다. 그렇기에 캠리는 칼의 손잡이를 들고 꿰인 쥐를 직접 만졌다. 잠시 그것을 주물럭거리던 캠리의 낯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악!”
그녀는 징그러운 걸 만졌다는 듯 손에 든 걸 몽땅 바닥으로 내던졌다. 칼이 잘그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옷자락이 구겨지도록 손바닥을 마구 닦아 내던 캠리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칼이 대체 왜 여기 있을까요? 그것도, 이런 징그러운 것까지.”
“그건, 글쎄요…….”
막 알을 깨고 나온 새보다도 무지했던 서준이 세상을 알아 가려고 마음먹은 지 고작해야 한 해도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흉가의 항아리 속에 왜 칼이 들어 있냐는 질문은 난도가 높았다. 서준이 침통한 낯짝으로 바짝 마른 쥐와 칼을 번갈아 바라보자 캠리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꾸며 낸 것처럼 거창한 장탄식이었다.
“리이미아가 칼을 든 여자를 봤다고 했잖아요. 혹시 그 여자가 들었다는 칼이 이거 아닐까요? 어쩌면 저걸로, 사람을 무참하게 찔렀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깨끗하게 닦고는 숨겨 버린 거죠.”
캠리가 허공에 팔을 휘두르며 칼을 찌르는 시늉을 선보였다.
“무서운 말을……. 흉기를 숨기기에는 너무 조잡한 장소 같은데요. 여기 말입니다. 솔직히 숨겼다기보다는 그냥 넣어 놓은 거 아닌가요.”
“그래서 이 쥐를 트릭으로 사용한 거죠! 왜, 추리 소설을 보면 이런 식으로 사람들 이목을 다른 데에 쏠리게 하는 방법이 나오잖아요.”
“그 말은 무기를 여기다 버렸다는 뜻이잖습니까?”
“뭐, 칼이야 하나 더 준비했을 수도 있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확실히 생쥐 미라에 구태여 칼을 꽂아 놨다는 점에서 불쾌한 유머 감각이 엿보였다. 하지만 사용한 흉기를 버리는 계략으로 사용했다는 건 썩 찬동하기 어려웠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어디 바다나 강에 던져 버리는 게 훨씬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서준의 떨떠름한 반응에 캠리도 시무룩하게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러나 더 의견을 보태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적당히 떠오른 주장에 불과했던 듯했다. 캠리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서준은 왼쪽 눈꺼풀을 문질렀다.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건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숨겼는지 버렸는지 알 수 없는 칼이 아니었다.
‘바로 리이미아가 혼자 도망친 게 거의 분명하다는 점이지.’
당연하지만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항아리 안에도 리이미아는 없었다. 이쯤 되자 그가 캠리를 내버려 두고 홀로 흉가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놀라울 지경이었다.
‘캠리야 친구가 자기를 버리고 갔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1층에도 없고 2층에도 없으면 볼 장 다 본 거지.’
서준은 피로한 눈가를 어루만지며 숨을 얕게 내쉬었다. 그러잖아도 남들보다 절반밖에 되지 않는 시야를 지녔는데 어두운 곳에서 돌아다니다 보니 눈이 빠르게 피곤해졌다. 그나마 이곳은 서준의 멍청한 춤사위에 한결 밝아졌다지만 이미 혹사당한 안구는 피로를 호소했다.
“어쨌든 여기에도 리이미아가 없는 게 확인됐으니 얼른 나갑시다. 옆 방으로 가서 짐 챙겨요. 캠리, 당신의 말대로 조심해야 하니까요.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자고요.”
“알았어요. 참, 칼은 어떡하죠? 챙길까요?”
“음.”
칼을 든 사람과 마주쳤을 때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손에 뭐라도 쥐고 있는 편이 좋을까, 아니면 빼앗길 경우를 가정해서 칼을 숨겨 두는 편이 좋을까? 서준은 자신이 무엇을 골라도 하지 않은 쪽에 미련이 남으리란 사실을 알았다. 결국 그는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미루었다.
“캠리가 원하는 대로 하세요.”
“그럼 만약을 대비해서 챙길게요. 아, 정말 마지막이었네요…….”
캠리가 말끝을 흐리며 제법 밝아진 방을 돌아보았다. 서준은 아쉬워하는 그녀와 함께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갔다.
두 사람은 계단 아래쪽에서 나는 인기척에 유난히 신경을 쓰며 남이 모르는 사이에 아주 빠르게 옆방으로 옮겨 갔다. 흉가가 흉가라고 불리게 된 원인이자 서준의 목적이기도 했던 2층의 두 번째 방에서는 여전히 서늘한 공기가 흘렀다. 방은 그가 나가기 전과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흩어진 알약과 나란히 기대고 있는 똑같은 가방 두 개, 그리고 벽에 붙어 있는 지저분한 거울이 하나.
서준은 아까 들었던 고함인지 비명인지 모를 여자의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내쫓았다. 대신 그는 부러 거울 쪽에서 등을 돌리고는 가방을 어깨에 메는 캠리에게 주절거렸다.
“문이 너무 쉽게 열리지 않았어요? 왠지 처음 들어올 때랑은 느낌이 다르던데.”
“그건 아마 우리가 아까 갔던 방 때문에 그럴 거예요. 왜, 끝에서 두 번째인 못이 잔뜩 박힌 방이요. 그 방의 문이 워낙 뻑뻑하다 보니 다른 곳은 너무 편하게 열리는 기분이 드는 거죠. 상대적으로요.”
“아.”
리이미아의 가방까지 챙기던 캠리가 수더분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말은 논리정연하고 그럴싸했다.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쉬이 수긍했다. 그런 그를 향해 캠리가 팔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는 보온병이 들려 있었다.
“나가기 전에 목을 축이는 건 어때요? 조용히 빠져나가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죠.”
캠리의 목소리는 낮은 걸 제외하고는 멀쩡했다. 이상하게 느낄 만한 지점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이전과 같이 타당했으며 거슬리지 않았다. 않았어야 옳았다.
캠리가 내미는 스테인리스 보온병을 바라보며 서준의 목이 어색하게 굳었다. 그는 보온병에 비치는 길게 늘어진 제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기괴하게 변모한 낯짝을 눈에 담으며 다소 근본적인 의문을 떠올렸다.
자신은 왜 이곳에서 벗어나려 들까? 칼을 든 여자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은 왜 칼을 든 여자를 피하려 들까? 칼을 든 여자가 위험하다고 누차 들어 왔기 때문이다. 자신은 왜 2층의 숱한 방을 돌아다녔을까? 칼을 든 여자에게서 도망 다니는 리이미아를 찾아다녀서였다.
아니, 이러한 의문은 전부 이상했다. 서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곰 인형을 되찾는 것이었지, 리이미아의 행방을 쫓는 게 아니었다.
그야 캠리와는 안면을 익힌 정도의 친분이 있었으나, 말하자면 그뿐이었다. 사실 곰 인형만 돌려받는 건 몹시 간단한 일이었다. 캠리의 앞에서 리이미아의 가방을 뒤져 비타민 통 뚜껑을 열어 보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쌀쌀맞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서준은 리이미아와 반드시 만날 필요조차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흉가에 숨어 다녀야 한다는 인식이 단단히 새겨졌다. 심지어 그는 칼을 든 여자와는 마주친 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대체 언제부터 제 목적도 잊고 끌려다녔던가? 어느샌가 곰 인형은 뒷전이 되고, 리이미아와 만나는 일에 열중했을까?
“서준?”
간단했다. 바로 서준의 정면에 있는 여자였다. 이 방에서 캠리를 만난 후였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왜 그렇게 빤히 바라본담.”
캠리는 수줍어하는 것처럼 손에 든 보온병을 살짝 흔들었다. 보온병 속에서 액체가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준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해 보면 바짝 마른 쥐의 사체를 봤을 때의 충격이 시작이었다. 딱딱하게 말라붙은 내장을 억지로 파헤쳐 칼을 끼워 넣은 엽기적인 광경은 정체불명의 칼을 든 괴인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머리를 진탕 흔들어 놓았다.
그때부터 느낀 위화감의 종착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은근한 눈빛으로 자신을 살피는 캠리. 그러나 명징한 깨달음은 공포를 동반했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미지가 풍기는 근본적인 두려움이었다.
집요할 정도로 꽉 막아 놓은 상자 속에서 갉작거리는 소리가 난다면 꼭 이런 기분이 들 터였다. 열지도 못하는 상자 안에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공포…….
“캠리.”
“네?”
어두운색의 눈동자가 서준을 부드럽게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는 짜증이나 멸시 따위의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속내를 고작 눈빛으로 전부 알아내는 재주가 있다면 진작 돈방석 위에나 앉아 있지, 흉가에서 굴러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 전우애를 품었던 여자를 향해 물어보았다.
“이 방에서 리이미아와 같이 거울을 봤었나요?”
서준에게는 상자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 아주 작은 구멍이지만, 상자 속을 들여다보기 충분한 크기였다.
“네? 네. 맞아요. 우린 그럴 목적으로 이곳에 왔었는걸요.”
희미한 웃음이 캠리의 얼굴에 살며시 걸렸다. 온화한 미소에는 진심이 담긴 듯했다. 서준은 왼손의 장갑을 벗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벗겨지는 라텍스 장갑에 캠리가 눈을 깜빡거리며 얼마쯤 올렸던 윗입술을 도로 내렸다. 그녀는 팔꿈치를 접으며 물어보았다.
“갑자기 장갑은 왜 벗어요?”
“가끔 그럴 때가 있더라고요. 살에 직접 닿지 않으면 모르는 때가요.”
입술을 비집고 탄식이 새어 나왔다. 제가 해 놓고도 협잡꾼 같은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첫눈처럼 새하얀 손가락이 유리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