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상승세를 탄 매칭률이 기어이 80% 후반대를 찍어 버린 것이었다.
“서, 설마……!”
연구원이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듯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부장도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70% 이상의 매칭률부터는 매칭 안정권으로 담당 가이드로 배정된다.
그리고 80% 이상이 되면 에스퍼와 가이드는 서로가 원할 시 전담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단, 담당 지정 1년이 지난 후부터.
“지, 지부장님. 이 정도면 전담도 가능한 거 아닌가요?”
연구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주먹은 불끈 쥐어져 있었다.
“으음…….”
지부장은 복잡미묘한 얼굴로 말을 아꼈다. 그녀의 시선은 검사실 안쪽 나란히 손을 잡은 채 앉아 있는 희윤과 해승에게 향했다.
두 사람에겐 아직 매칭률이 어떤지 보이지 않았다. 검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서야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지부장의 시선은 두 사람 중 해승에게 유독 오래 머물렀다. 해승은 마치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테스트 내내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갑자기 테스트를 받겠다고 쳐들어오더니. 표해승 가이드, 뭔가 촉이 왔었나 보네요…….”
마치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혼잣말하는 연구원을 지부장이 봤다.
“표해승이 자발적으로?”
“어? 모르셨어요?”
지부장이 검사실로 왔기에 당연히 알고 온 줄 알았던 연구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부장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아니. 연희윤 에스퍼가 첫 매칭 테스트한다기에 온 건데. 표해승이 요청한 거라고?”
이거 아무래도 수상쩍은데. 지부장의 시선이 다시금 검사실 안으로 향하던 순간.
[에스퍼와 가이드의 매칭 검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최종 매칭률 89%입니다.]
마침내 기계가 차분한 음성을 뱉어 냈다.
“검사 마쳤다고 얘기하겠습니다.”
연구원이 지부장의 눈치를 힐끔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깊게 골이 팬 미간을 보니 심경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 그래.”
지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구원이 얼른 마이크를 켰다.
- 연희윤 에스퍼, 표해승 가이드. 검사 끝났습니다.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세요.
얌전히 앉아 있던 희윤이 그 소리에 파드득 어깨를 떨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잡고 있던 손도 순식간에 풀어졌다.
해승은 바닥으로 떨어진 자신의 손을 쥐었다가 폈다가 하다가 검사실 문을 붙들고 돌아선 희윤과 눈을 마주했다.
도망치듯이 갈 때는 언제고 이제야 신경이 쓰이나 보다.
“나갈까요?”
희윤이 무어라 말하려고 입을 벌리는 그때, 해승이 먼저 말을 걸었다. 희윤은 어색하게 입을 닫고는 문을 열었다.
희윤이 미처 밖으로 나가기 전이었다. 뒤에서 불쑥 기척이 느껴지더니 커다란 손이 어깨를 감싸 왔다.
희윤은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우연이었다는 듯. 해승은 그대로 손을 떼고 희윤을 지나쳐 먼저 밖으로 나갔다.
“결과 나왔어요?”
“아! 표해승 가이드. 이쪽으로 오세요.”
연구원이 해승을 보고 반색하며 손짓했다. 해승은 걸음을 떼기 전 자연스럽게 희윤의 손을 잡았다.
“?”
희윤이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앞서 걷는 해승을 보았다. 분명 시선을 알아차렸을 텐데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저기, 표해승 씨?”
아직 가이드니 에스퍼니 하는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 희윤의 부름에 해승이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희윤은 말로 하기보다 눈짓으로 잡힌 손을 가리켰다.
“불편해요?”
왜 하필 그런 질문을. 꼭 그렇다고 대답하면 단숨에 표정이 어둡게 변할 것 같다. 희윤이 망설이자 해승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가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안효정이 황당한 표정을 했다. 표해승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게 어이가 없어서다.
대놓고 뭐 하는 짓이냐고 버럭 화내기에는 지금 이 자리에 지부장이 같이 있어 여의치 않았다.
“와…… 89%?”
마침내 모니터 앞에 선 해승이 매칭률을 확인하고 감탄했다.
“높은 건가요?”
해승에게 붙들린 채 끌려간 희윤도 자연히 그 옆에 서서 수치를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네. 아주요.”
희윤을 돌아보는 해승에게 다시금 그림처럼 예쁜 미소가 걸렸다. 정말 기쁘다는 듯 웃는 남자를 보는 희윤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안효정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제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그렇게 경고했건만.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에스퍼가 못 먹을 것에 기어이 홀려 버린 듯했다.
“이례적으로 수치가 제법 잘 나오긴 했는데.”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자, 희윤이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정신을 차렸다. 반대로 해승은 미소를 싹 거두고 심드렁하게 그쪽을 바라보았다.
지부장이 아직 골이 파여 있는 미간을 엄지로 쓱쓱 문지르며 마저 말했다.
“일단 첫 테스트니 다른 가이드와도…….”
지부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나보다 더 잘 나올까요?”
해승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물었다. 마치 그러면 가만 안 두겠다는 말투 같았다.
설마 착각이겠지.
“일단 등급 차이도 있고.”
“그건 에스퍼가 높았을 때 문제고요. 나랑 희윤 씨 사이면 더 좋은 거 아니에요?”
희윤의 눈동자가 휙 해승에게 꽂혔다. 성을 떼고 이름으로 불려 당황한 것이었다. 대체 언제 봤다고?
그리고 사이라니. 무슨 사이?
인사 한 번, 우연한 마주침 한 번, 매칭 검사 한 번 해 본 게 다인데. 무슨 대단한 만남이라도 가졌던 것처럼.
희윤이 많은 의문을 품고 올려다보았지만, 볼 수 있는 건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한 해승의 뺨이었다.
“아니. 그건 그런데. S급 가이드가 A급 에스퍼를 하는 건 효율상…….”
“와, 지부장님. 너무하신다. 지금 희윤 씨 까는 거예요? 이렇게 대놓고?”
“까기는 누가! 표해승!”
해승의 말에 대답하다 저도 모르게 열이 오른 지부장이 언성을 높였다.
“너 이 자식!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지부장님. 진정하세요.”
보다 못한 연구원이 지부장을 말렸다. 아직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희윤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 희윤 씨? 일단 이쪽으로 와요. 검사는 다 끝났으니 나랑 커피 한잔해요.”
해승과 지부장이 붙으면 더 시끄러워지는 걸 아는 안효정이 일단 희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대피하려고 했다.
“어디 가요?”
하지만 희윤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을 쳐다보는 해승이 눈이 꼭 저를 두고 가는 주인을 보는 듯한 반려동물의 그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 저…….”
희윤의 시선이 퍼뜩 아래로 떨어졌다. 붙잡힌 손에 꾹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해승이 놓치기 싫다는 듯 더 강하게 잡은 것이었다.
해승의 눈이 더욱 슬픈 빛을 띠었다.
“야. 표해승. 가증 떨지 말고 손 떼라?”
보다 못한 안효정이 나섰다. 희윤이 당황해서 그쪽을 보았다. 동시에 해승의 눈빛도 싹 달라졌다.
살벌하게 쳐다보는 시선에 안효정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저게 지금 누구한테 작업질이야?’
척 보기에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행태인데 안타깝게도 붙잡힌 희윤만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일단 검사받느라 수고들 했고. 표해승 가이드는 이만 가고, 연희윤 에스퍼는 지금 컨디션 어때요?”
안효정이 한마디 더 하기 전, 지부장이 세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희윤은 아직 마주 잡은 손을 힐끔 내려다보았다가 지부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괜찮습니다.”
“그럼 매칭 테스트 한 번 더 합시다.”
지부장은 제 볼을 쿡쿡 쑤시는 눈길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했다. 실은 그녀도 안효정과 다를 바 없이 생각했다.
새로 들어온 연희윤 에스퍼에게 표해승은 너무 과한 상대라고.
왜일까.
희윤은 해승에게 붙잡힌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똑같은 이능력자라고는 해도 에스퍼와 비교해 가이드는 체력이 일반인과 비슷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저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해승의 악력이 미약하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알면 저 가이드님은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흐음…….”
해승의 시선이 지부장과 안효정, 연구원을 차례로 훑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희윤에게 향하며 눈빛의 온도가 달라졌다.
“오늘 몇 명이랑 더 해요?”
“글쎄, 요?”
희윤은 오후의 볕처럼 따사롭게 웃는 해승의 얼굴을 보며 얼떨떨하게 대꾸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유독 저를 대할 때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다른 것 같다.
슬쩍 옆을 보니 착각이 아닌 것 같았다. 안효정이 상한 음식을 먹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한 명만 더 하고 희윤 씨 퇴근할 거야.”
안효정이 패드의 화면을 해승 쪽에 보이며 말했다. 그 속에는 얼른 꺼지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승은 눈썹 한쪽을 찡그리며 패드를 봤다. 워낙 조형미가 뛰어난 얼굴이라 그런지 그 모습도 절로 눈길이 간다.
희윤은 제가 떠올린 생각에 놀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자신이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달아오른 귓불을 잡히지 않은 손으로 살그머니 매만지던 순간.
“불러.”
해승이 말했다. 쉽게 떨어진 승낙에도 안효정을 비롯한 세 사람은 의심의 눈초리를 버리지 못했다.
“뭐 해. 테스트할 가이드 부르라니까. 연구원님, 연락하세요.”
기어이 해승이 연구원을 돌아보며 명령조로 말하기까지 했다. 그런 해승을 미심쩍어하면서도 연구원은 착실하게 가이드를 호출했다.
“넌 안 가?”
당연히 자리를 비켜 줄 줄 알았던 해승이 꼼작 않자 안효정이 삐딱하게 물었다. 시선은 여전히 해승에게 꼭 잡혀 있는 희윤의 손에 꽂혀 있었다.
해승은 보란 듯이 손을 잡아당기며 웃었다.
“나도 보려고. 과연 다른 가이드랑은 매칭률이 얼마나 잘 나오는지.”
꼭 선전포고라도 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