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85)

새로 나타난 가이드는 검사실에 예상치 못하게 사람이 많이 보이자 주춤했다. 거기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 면면을 보면 다들 만만치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부장에 S급 가이드 표해승이 있었다.

당연히 주눅이 들 수밖에.

“안으로 들어가세요. 바로 검사 시작할게요.”

가이드는 그 말에 살았다는 얼굴로 도망치듯 안쪽으로 걸어갔다. 희윤도 눈치껏 그리로 가려고 몸을 돌렸다. 아니 그러려고 하다가 뒤늦게 아직 손이 잡혀 있는 걸 떠올리고 해승을 올려다보았다.

“왜요?”

눈을 마주치니 해승이 해사하게 웃는다.

“검사해야 하는데…….”

저 얼굴에 어떻게 딱 잘라 손 놓으라고 할 수 있을까. 희윤이 어물거리며 말하자 해승의 시선이 마주 잡은 손으로 향한다.

“아…… 그렇죠. 다녀오세요. 여기서 보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손길이 풀어진다. 어지간히 오래 잡혀 있었는지 피가 도는 손끝이 조금 저릿저릿한 것 같았다. 아니, 허전한 느낌도 함께 들어 희윤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그리고 해승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검사는 30분. 그동안 묵직한 정적이 흘렀다.

모니터를 뚫어지도록 바라보는 해승을 지부장과 안효정, 연구원이 연신 곁눈질했다. 말만 안 했다뿐이지 시선은 정신없고 요란하다.

“뭐, 어쩌라고. 왜 봐?”

해승이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자 안효정이 “와, 저놈 저거.” 하고 입을 열었다.

“야. 표해승. 너 무슨 속셈이야?”

“속셈?”

“왜 희윤 씨 옆에서 알짱거리냐고.”

해승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에 안효정이 한마디 하려던 때.

“연희윤 에스퍼.”

“뭐?”

“연희윤 에스퍼라고 부르라고.”

뭐래. 저 자식이. 안효정은 그제야 해승의 태도를 이해했다. 지금 자신이 희윤을 친한 척 불렀다고 저러는 거다.

“본부에 오래 묵은 에스퍼가 기본적인 매너도 몰라?”

“허…….”

그렇게 오래 있었으면서 그럴 수 있느냐는 듯 쳐다보는 눈빛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안효정은 어이없는 웃음만 흘렸다. 저놈이 고작 예의 문제로 저러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오고 있었다.

아까는 그냥 기분 탓인가 했는데 이제는 확신이 섰다. 지금 표해승은 새로운 에스퍼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검사 끝났습니다.”

그사이 30분이 지났는지 연구원이 말했다. 해승의 관심은 단숨에 모니터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 작은 실소가 흘러나왔다. 눈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빛이 서렸다.

“……11%네요.”

마찬가지로 매칭률을 확인한 안효정이 얼굴을 찌푸렸다. 상중하 중에서도 하급 상성이었다. 해승의 입가에 떠오른 얄미운 미소 때문에 안효정은 더욱 어두운 안색을 했다.

“실망하지 말아요, 연희윤 에스퍼. 이제 고작 두 명 해 본 거니까.”

“네.”

사실 별생각이 없는 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해승을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자 해승의 미소는 더욱 화사하게 변했다.

“기분 좋으세요?”

희윤이 묻자 해승이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뇨?”

웃고 있어서 물어본 건데, 해승에게 돌아온 반응이 저렇다. 희윤은 머리를 긁적였다. 본인이 아니라면 아닌 건데. 왜 자신의 기분이 가라앉는지 모를 일이다.

“당연한 결과인데요. 뭘.”

“네?”

“걱정하지 말라고요. 어차피 희윤 씨 가이드는 정해져 있으니까.”

역시나 별로 걱정하지 않은 희윤이 고개를 주억였다.

“희윤 씨. 오늘 일정 다 끝났으니까 퇴근하셔도 돼요.”

두 사람의 대화를 못마땅하게 보던 안효정이 더 기다리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아, 네. 그럼 들어가 볼게요. 고생하셨습니다.”

희윤은 꾸벅꾸벅 예의 바르게 인사하더니 곧바로 사라졌다. 어찌나 빠르던지 해승이 말을 붙이고 붙잡을 새도 없었다.

닫힌 문을 보며 어이없어하는 해승을 보며 안효정이 꼴 좋다는 웃음을 흘린 건 희윤이 미처 알지 못한 일이었다.

* *

첫날 이후로 희윤의 업무는 비슷하게 진행됐다. 오전에는 안효정과 교육실에서 이론 수업을, 오후에는 여러 가이드와 매칭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 희윤이 검사실만 가면 늦든 빠르든 해승이 나타났다.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은 외부에서 손님이 와서 못 올 테니까.”

희윤이 검사실 내부를 둘러보자 안효정이 말했다.

“네?”

“표해승 가이드가 신경 쓰여 그런 거죠? 와서 이상한 소리 할까 봐. 걱정하지 말라고요. 아마 내일까지 꼼작 못 할 테니까.”

해승이 오나 안 오나 궁금한 건 맞다. 근데 이상한 소리를 할까 봐 걱정한 건 아니다. 다만 왜 자꾸 신경을 쓰는지 본인도 모르는 희윤은 “네.”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나저나 진짜. 매칭률이 생각보다 저조하네요. 어떻게 30%를 넘기는 가이드가 없지.”

오늘로 매칭 테스트는 4일 차. 막 오늘 첫 번째 가이드와의 검사 결과를 확인한 안효정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검사표에 적힌 매칭률은 24%였다.

“음……. 연희윤 에스퍼는 어때요. 가이드들이랑 접촉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연구원이 물었다.

“기분이요?”

희윤은 조금 전 손을 잡았던 가이드와의 접촉을 떠올려 봤다. 해승과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느낀 청량하고 기분 좋은 감각은 없었다.

“그냥 뭐가 흘러들어 오는 것 같았는데……. 잘 모르겠어요.”

희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연구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안경 콧대를 추어올렸다.

“그럴 수 있죠. 희윤 씨가 에스퍼로 각성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아직 이쪽으로 개념이 잘 안 잡혔을 때죠. 공부는 잘되고 있어요?”

그러면서 연구원의 시선이 안효정에게 향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안효정이 칭찬을 쏟아 냈다.

“오늘 물을 운용하는 방법을 설명했어요. 이해가 빠르던데요? 주변에 있는 물을 느껴 보라고 했더니 넓게 퍼진 수분을 모아서 금세 공기를 축축하게 만들더라고요.”

부끄러운 기분에 희윤이 목뒤를 손바닥으로 쓱쓱 문질렀다. 거창한 일도 아니다. 안효정의 말대로 주변에 있는 물기를 감지하고 형태를 끌어낸 것일 뿐.

그건 무언가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준도 되지 못했다. 그런데 연구원은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뭐. 가이딩도 금방 이해하겠네. 그럼 자연히 매칭률도 올라갈 수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희윤은 사실 다른 가이드와의 매칭률이 저조한 것에 관해서는 고민되지 않았다. 연구원의 말마따나 앞으로 남은 검사도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도리어 희윤은 제 매칭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해승이 계속 나타날지, 그와의 매칭률이 계속 가장 높을지, 그럼 앞으로 해승과는 어떻게 되는 건지 그게 조금 궁금했다.

이런 생각은 안효정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내색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어쨌든 센터 내 가이드가 150명은 되니까 그중에 맞는 사람이 제법 될 거예요.”

“150명이요?”

“네. 생각보다 많진 않죠? 아무래도 에스퍼 대비 가이드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그나마 여기가 서울인 데다 중앙이라 이 정도 규모예요. 다른 곳은…… 뭐. 알겠지만, 더 심각하죠.”

안효정은 그냥 그러려니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네.”

희윤이 짤막하게 대꾸하자 연구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만약 저한테 맞는 분이 표해승 가이드님 하나면 어떻게 되나요?”

“어우! 희윤 씨.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도 말아요. 세상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워워!”

희윤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안효정이 두 손을 세차게 내저었다. 정말 악운이라도 떨치려는 듯 처절하게까지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은 안효정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희윤의 중앙지부 생활도 어느덧 일주일 차.

평균 매칭률은 21%였다.

오늘부터 이론 대신 지하에 마련된 에스퍼 전용 훈련장에서 실제로 능력을 구현해 보는 것으로 오전 일정이 변경되었다.

어제 희윤이 주변의 습기를 이용해 물방울을 만들어 내는 걸 본 안효정이 결정한 사안이었다.

“희윤 씨, 어제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기억하죠?”

“네.”

“좋아요. 그럼 오늘은 그보다 좀 더 스케일이 큰 걸 해 보죠.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만들고 싶은 걸 떠올려 보세요. 시작!”

안효정이 명랑하게 외쳤다. 희윤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을 느끼려 집중했다.

곧 온 감각이 촉촉해지는 기운을 감지했다. 머릿속으로 주변에 존재하는 수분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평소 희윤이 보고, 상상하던 물방울이 하나, 둘 허공에 맺히는 것이었다. 방울방울 뭉치던 것들은 점차 부피를 키우더니 어느새 하나의 줄기가 되었다.

눈꺼풀을 올린 희윤의 눈동자가 연한 파란색으로 찰랑거리고 있었다.

“어어?”

고작 물방울 몇 개 맺는 거로 끝날 줄 알았던 안효정이 생각도 못 한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그 순간 물의 흐름이 변화했다. 방울에서 줄기로 바뀐 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어느 한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촤아아…!

엄청난 속도로 회오리치던 물줄기는 기어이 천장을 향해 치솟아 갔다. 그걸 보는 안효정의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정작 희윤은 침적한 얼굴로 용오름 하듯 춤추는 물줄기를 관망할 뿐이었다. 덕분에 한 인물이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회전력으로 힘을 받은 물기둥이 급기야 천장 바로 밑까지 솟아올랐다. 그대로 물기둥과 천장이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으악! 희윤 씨. 그만, 그만!”

안효정이 두 손을 홱홱 내저으며 고함쳤다.

촤아아아아.

폭포처럼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물기둥이 부서져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실내는 희미한 물안개가 피었고, 공기도 계곡에라도 온 듯 서늘해졌다.

“와…….”

안효정은 감탄하며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아까 희윤이 능력을 구현할 때 켜 둔 타임 스토퍼에 8.77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말도 안 돼. 10초도 안 돼서 이런 능력을. 허…….”

희윤이 능력을 실행하는 속도는 빠른 편이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는 제어력이었다.

불과 어제 주변에 물기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물방울을 만들어 낸 게 전부였는데.

“희윤 씨, 전 말이에요. 성인이 A급으로 각성한 것도 신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건…….”

진짜 믿기지 않는 일이라고. 본부에 있는 물 속성 누구도 이런 건 보여 준 적 없다고. 흥분한 안효정이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요란한 박수 소리에 나오지 못했다.

짝짝짝. 짝짝짝짝짝.

난데없이 끼어든 소리를 듣고 희윤과 안효정이 그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자 문가에 기대어 서서 두 손바닥을 경쾌하게 맞부딪치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고작 그 별것 아닌 행동도 마치 광고 속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만드는 미인.

“표해승?”

먼저 기막힌다는 듯 이름을 부른 건 안효정이었다. 얼굴 역시 단번에 못마땅하다는 빛이 역력해졌다.

희윤도 해승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랍기도 놀랐지만, 그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희윤과 눈을 마주친 해승이 그림 같은 미소를 피워 올렸다.

“정말 대단해요. 각성한 지 불과 일주일밖에 안 돼서 이런 모습을 보여 주시다니.”

희윤은 낯간지러운 기분에 슬쩍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숫기 없는 모습에 해승의 웃음은 더 진해졌다. 그 꼴을 지켜보고 있는 안효정은 팍 얼굴을 구겼다.

“표해승 가이드. 누가 무단으로 에스퍼 훈련장에 오라고 했어요?”

“음? 그럼 안 되는 건가요?”

안 될 건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표해승이라면 더더군다나. 아마 그가 어딜 간다고 한다면 특급 기밀에 해당하는 장소가 아닌 이상에야 전부 가능할 것이다.

중앙지부의 최상층 지부장실도 제집처럼 드나드는데.

“내 에스퍼가 연습 중이라는데 와 봐야죠.”

“누가 네 에스퍼야!”

안효정이 와락 얼굴을 구기며 따지듯 소리쳤다. 그러나 여전히 해승은 태연자약한 얼굴로 희윤을 보았다.

저기에 있는데 설마 눈이 삐어서 안 보이느냐. 그런 태도였다.

“희윤 씨.”

안효정의 뒷골을 뻣뻣해지게 하는 뻔뻔한 태도와 달리 희윤을 부르는 목소리는 나긋한 봄볕 같았다.

“네?”

“이쪽으로 오세요.”

희윤은 저도 모르게 안효정의 눈치를 봤다.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을 보니 쉽사리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괜찮아요.”

마치 그런 희윤을 응원하듯 해승이 눈웃음까지 보이며 말했다. 그 미소에 희윤은 결국 해승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안효정이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표정을 하는 건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희윤이 사정거리에 들자마자 해승은 두 손을 낚아채 붙잡았다. 희윤은 곧 마주 닿은 손을 통해서 기운이 흘러들어 오는 걸 느꼈다. 언제나 그렇듯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긴 듯 청량했다.

“음……. 생각보다 안정도가 괜찮네요. 희윤 씨, 내 예상보다 더 훌륭한 에스퍼였구나.”

“아, 아니에요.”

희윤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왜 자꾸 저렇게 간지러운 칭찬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긴요. 정말 대단한 건데요. 제가 본부에 있는 동안 희윤 씨처럼 이렇게 단시간에 능숙하게 능력을 사용하는 에스퍼는 본 적 없는걸요.”

그럴 리가 있나. 희윤은 해승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저를 기분 좋게 해 주려는 그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았다.

“안 믿으시는구나? 정말인데. 제가 저기 있는 안효정 에스퍼보다 여기 더 오래 본부에 있었어요. 물어보세요. 맞는지 아닌지.”

“어? 정말요?”

희윤의 고개가 절로 뒤에 삐딱한 표정을 한 안효정에게 향했다. 누가 봐도 그녀의 나이가 더 많아 보였다.

“맞아요. 쟤가 저래 봬도 본부에서 최연소로 각성한 가이드거든요.”

그다지 인정해 주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사실이라고. 안효정이 톡 쏘듯 말했다. 희윤은 눈을 크게 뜨고 도로 해승을 바라보았다.

마치 봄 하늘처럼 연한 푸른빛을 띤 눈동자를 본 해승이 빙긋 웃었다.

“최연소요?”

“네. 보자……. 본부에 들어온 게 8살이에요. 그 후로 저보다 어린 에스퍼와 매칭 테스트를 해 본 적 없으니 장담해요. 아, 물론 가이드도 마찬가지고요.”

해승이 저와 마찬가지로 다른 에스퍼와 매칭 테스트를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묘하게 씁쓸한 기분을 느끼던 희윤이 도로 동그래진 눈으로 해승을 봤다.

“어, 그럼. 표해승 가이드. 지금 23살이라는 거죠?”

“음? 맞아요.”

해승이 선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윤은 그 모습을 보며 느리게 눈을 한 번 깜짝였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해승을 천천히 살폈다.

제 눈높이에 해승의 반듯한 어깨가 있었다. 체격 역시 희윤이 폭 안길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아냐!’

왜 갑자기 생각의 흐름이 그리로 튀는 거람.

“희윤 씨?”

희윤이 돌연 고개를 휙휙 젓자, 해승이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이름을 불러왔다.

“아, 그게…….”

그렇게 차이가 나니까 아예 생각도 못 했던 거다. 해승이 저보다 무려 4살이나 어린 나이라는 걸. 희윤은 시선을 도로 해승의 가슴 언저리에 두고 입을 열었다.

“전 27살이거든요.”

새삼 4살이나 차이 난다는 게 신기해서. 희윤이 눈을 반짝 빛내며 꺼낸 말에 해승이 눈썹을 까딱였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희윤의 시선이 도로 올라가 해승과 마주했을 때 그런 빛을 띠었다. 희윤은 저도 모르게 비죽 입술을 앞으로 내밀고 대답했다.

“제가 4살이나 많네요.”

“그렇죠?”

그게 뭐 대수라고. 다시 한번 그런 반응이 돌아왔다. 희윤은 무심한 해승을 보다가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게 지금 중요한 문제인가 새삼 생각했다.

‘그러게.’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신경 쓸까.

“희윤 씨. 포기해. 쟨 누구한테나 싸가지가 없어.”

안효정이 퉁명스럽게 끼어들었다. 해승과 그녀의 시선이 허공 중에 맞부딪쳤다.

‘뭐?’

안효정이 삐딱하게 속으로 말을 던졌다. 눈꼬리도 뾰족하게 세웠다. 솔직히 표해승의 성격이 나쁘다는 건 본부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희윤이 막 안효정에게 고개를 돌리려던 때였다.

“희윤 씨. 아니, 희윤 형.”

‘희윤 형’하고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덜컥 브레이크가 걸렸다.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희윤의 고개가 도로 해승에게로 돌아갔다.

“제가 이렇게 불렀으면 좋겠어요?”

눈이 마주치자 해승이 눈꼬리를 곱게 접으며 물었다. 희윤의 눈꺼풀이 주책없이 빠르게 팔락거렸다.

아까 그가 능력을 써서 움직였던 물보다 더 빠르게.

“어, 어, 아, 아니, 아뇨, 아니.”

당황한 희윤에게서는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못했다. 귓불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걸 굳이 거울로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희윤은 얼른 제 두 귀를 손바닥으로 덮어 가려 버렸다. 그게 도리어 해승에게 제 상태를 알리는 거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듯.

“희윤 형이 원한다면 그렇게 부를 수 있어요. 나도 그게 편하고 좋으니까.”

이제는 완전히 안정을 찾은 연갈색 눈동자가 하릴없이 요동쳤다. 전체적으로 둥그런 느낌을 쥐면서 끝만 살짝 올라가 더 귀엽게 보이는 눈도 연신 깜빡거린다.

꼭 보송보송한 솜털이 난 강아지 같았다. 희윤을 보는 해승의 입꼬리가 더더욱 위로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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