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85)

해승의 무단 침입으로 잠시 중단되었던 훈련은 곧 재개됐다.

“희윤 씨. 아까 그거 다시 만들어 볼래요?”

안효정이 제 머리 높이 정도 손바닥을 올리고 말했다. 그리고 희윤에게 시야를 터주듯 옆으로 비켜서며 말을 덧붙였다.

“이번엔 천장까지 말고 이 정도만.”

“네, 해 볼게요.”

희윤은 집중하기 전 힐끔 해승에게 시선을 던졌다.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해승이 두 손을 꼭 움켜쥐고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반달처럼 곱게 휜 눈웃음까지 확인한 희윤의 시선이 얼른 눈을 감았다.

마치 반려동물이 제 주인에게 잘 봐 달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귀엽네.’

어딜 봐서 저게 저보다 4살이나 나이가 많은 ‘형.’이란 건지. 조금만 놀려도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서러워할 것 같은데.

촤아아.

아주 잠깐 다른 생각에 빠졌다가 돌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찰나에 희윤의 눈동자는 다시금 하늘색으로 변했고, 물방울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하나의 줄기가 되어 솟아 올라갔다.

“와우……. 아까보다 능력이 발현되는 게 더 빨라졌네.”

안효정이 감탄이 들려왔다. 해승은 그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마치 살아 있는 짐승처럼 회오리치는 물줄기를 바라봤다.

A급 물 속성 에스퍼.

사실 자연 계열 능력자는 워낙 본부에 많은 편이라 두드러진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저 정도라면 같은 A급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했다.

“희윤 형. 물줄기 두 개로 쪼개 볼래요?”

갑자기 들려온 해승의 목소리에 희윤이 어깨를 움칫 떨었다. 동시에 그에게 제어되고 있던 물줄기도 같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다시 집중한 희윤은 머릿속으로 물이 갈라지는 상상을 했다.

촤아악.

곧바로 물줄기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와우.”

다시금 안효정이 탄성을 흘렸다. 해승도 눈을 반짝했다.

“역시 내 에스퍼님. 기대 이상이네.”

해승이 작게 말했다.

“야. 희윤 씨 네 에스퍼 아니거든?”

안효정의 반박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해승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는 희윤에게만 관심을 줄 뿐이었다.

“…….”

잠시 후 위로 솟아올라 회전하던 물줄기 두 개가 다시금 갈라섰다. 총 네 개가 춤을 추듯이 움직였다.

“헐.”

급기야 안효정이 평소 버릇처럼 감탄사를 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희윤은 집중하느라, 해승은 그런 희윤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느라.

촤아아. 촤아아악.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춤추던 물줄기가 다시금 시원스러운 소리와 함께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짝짝짝. 짝짝짝짝. 짝짝짝짝짝.

동시에 요란스러운 박수가 훈련실을 시끄럽게 채웠다. 이번엔 해승이 아니라 안효정이 친 것이었다.

“와, 나 진짜 놀랐어. 세상에. 희윤 씨. 진짜 물건이네. 와…… 물건이야.”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상기된 얼굴을 한 그녀는 물로 흥건한 바닥을 보고 다시 한번 “이야.” 하는 소리를 흘렸다.

조금 전 역동적인 모습은 환상인 듯 잠잠하기만 했다.

“희윤 형.”

그사이 해승은 희윤의 뒤에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등에서부터 팔을 뻗어 와 앞쪽으로 둘렀다.

“어? 해, 해, 해승 씨.”

졸지에 해승에게 뒤에서 안긴 희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른 사이를 벌리려고 했는데 단단한 팔뚝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표해승 씨.”

난처하게 부르는 것과 동시에 희윤은 저에게 흘러들어 오는 부드러운 기운을 느꼈다.

“가이딩이요. 손을 잡는 것도 좋은데, 접촉 면적이 넓을수록 효율적이거든요.”

아니 그걸 꼭 이런 자세로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희윤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떨렸다.

“어때요?”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려 입을 벌릴 때였다. 해승의 물음에 항의는 주춤했다.

“혹시 기분 나빠요?”

“아뇨. 그럴 리가요!”

희윤은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고 해승을 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폭 안긴 자세 때문에 보이는 거라고는 저를 감싼 길고 단단한 팔뿐이었다.

“다행이에요. 음…… 좋아요. 금방 안정화되네요. 확실히 상성이 좋네요. 우린.”

해승이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 물론 이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안정도는 이렇게 서로 딱 붙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아직 에스퍼로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본부 생활도 고작 2주 차 햇병아리인 희윤이 사실 여부를 알 리 없었다.

그저 희윤은 해승에게 뒤에서 안긴 탓인지 그의 숨결이 목덜미에 곧바로 느껴지는 게 너무도 신경 쓰일 뿐이었다.

“야! 표해승! 당장 안 떨어져!”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안효정이 바락 소리쳤다. 물론 해승에게 그 말이 제대로 먹힐 리 만무했다.

“해승 씨.”

희윤이 그만 놓아 달라는 의미로 해승을 불렀다.

“네, 희윤 형.”

물론 해승은 꿈쩍하지 않았다.

“다 된 것 같은데 이제…….”

희윤은 결국 말로 부탁했다.

“흐음…….”

해승은 얌전히 두 팔을 풀었다. 그러자 안심한 듯 희윤이 어깨의 긴장을 푸는 게 눈에 들어왔다.

괜한 심술이 삐죽 솟은 해승이 도로 팔을 쓱 허리에 감자 등이 딱딱해졌다.

“저 불러 보세요.”

불퉁하게 튀어나온 목소리에 희윤이 고개를 비스듬히 돌렸다.

“네?”

“저한테는 형이라고 부르라 했잖아요.”

아니 내가 언제? 그냥 나이가 많다는 것만 살짝 티를 냈을 뿐인 희윤의 눈동자에 잠시 억울함이 스쳤다.

“뭘요?”

“이름요.”

“해승 씨?”

“씨는 빼야죠.”

“어…….”

안효정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것도 모르고 희윤과 해승의 핑퐁은 계속되었다.

“안 불러 주실 거예요?”

“어, 음. 그…… 해, 해승아?”

왜 뒤에 말꼬리가 살짝 올라가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좀 귀엽다고 생각하며 해승이 미소를 지었다.

“네. 앞으로 그렇게 불러 주세요.”

만족한 듯 해승의 팔이 순순히 풀렸다. 희윤은 자유로워지고도 멍하니 있다가 안효정과 눈이 마주치고야 파드득 해승과 사이를 벌렸다.

“희윤 형.”

“네?”

“말도 편히 해 주세요.”

“아…….”

희윤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요, 제 가이딩?”

“아까도 물어봤던 것 같은데…….”

왜 또 묻는지 몰라 희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해승이 다시 입을 열기도 전 어떤 말이 나올지 알아차린 듯 안효정의 얼굴이 구겨졌다.

“좋았어요?”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데 그 외 다른 답이 나올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엄연히 좋은 건 사실이었고.

희윤이 위아래로 고개를 움직이자 해승이 그것 보라는 듯 안효정에게 시선을 던졌다.

“안 돼. 본부 방침이야.”

“어차피 평균 21%라면서요. 더 해 봐야 소용없다니까.”

“그게 네 맘대로 되는 일 아니라니까?”

“형이 괜찮다는데?”

“아니 희윤 씨가 언제 그랬어?”

안효정이 따지듯 던진 물음에 해승의 눈길이 도로 희윤에게 돌아갔다.

“형, 저 싫어요?”

왜 나오는 질문이 저딴 식인가. 안효정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희윤은 난처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죠?”

희윤의 긍정에 해승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예쁘게 웃었다. 안효정의 얼굴에 불안한 빛이 서렸다. 지금까지 상황을 봐서는 저 새내기 에스퍼에게 나올 답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해승아, 매칭 테스트는 더 받아야 해. 그게 방침이잖아.”

그런데 희윤에겐 예상과 다른 말이 나왔다. 해승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매를 키웠다. 반대로 안효정의 눈동자는 통쾌함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그렇다네요. 표해승 가이드. 그러니 떼쓰지 말아요.”

안효정이 웃음기를 담고 말했다. 누가 들어도 빈정거리는 소리였다. 그녀를 향한 해승의 눈매는 어느새 가늘게 변해 있었다.

가뜩이나 가로로 긴 눈매가 반으로 접히자 더 매섭게 보였다.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지.”

분명 수긍하는 말인데 왜 불길한 기분이 들까. 마치 첫날 희윤이 다른 가이드에게 매칭 테스트를 받는다고 했을 때처럼.

안효정이 의심 가득한 눈으로 해승을 보았으나 돌아온 건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한 미소뿐이었다.

“일단 훈련은 끝났죠?”

사람을 긴장하게 해 놓고 금세 표정을 바꾼 해승이 희윤에게 물었다. 희윤이 끝난 게 맞냐는 듯 안효정을 봤다.

“네. 점심 먹고, 오후에 매칭 테스트하면 돼요.”

“좋네요. 그럼 희윤 형. 저랑 밥 먹으러 가요.”

희윤이 눈을 깜빡였다. 무슨 소리인가 되새길 새도 없이 손목이 붙들렸다.

“우리는 따로 먹고 올 겁니다.”

“어?”

“뭐?”

해승이 통보하듯이 말을 던지고 그대로 희윤을 끌고 훈련실을 나갔다. 뒤늦게 희윤과 안효정이 얼빠진 소리를 뱉었지만, 이미 두꺼운 훈련실 문은 ‘쾅’ 하고 닫힌 후였다.

“형. 뭐 먹고 싶어요?”

이제는 이름도 떼고 형이란다. 급격한 호칭과 상황의 변화에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희윤은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해승을 올려다봤다.

“면 좋아해요? 아니면 고기? 든든하게 밥? 뭐 회도 괜찮아요.”

질문하면서도 해승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자연히 그에게 붙들린 희윤도 종종거리며 바쁘게 따라갔다.

그런 두 사람을 다른 에스퍼들이 신기한 듯 구경했다.

“저거 표해승 가이드 아냐? 그럼 저 옆에 있는 게 이번에 각성했다는 물 속성 에스퍼인가?”

“둘이 되게 친해 보이네. 매칭률도 엄청 높았다고 하더니.”

“그러게. 표해승 가이드 빼놓고 나머지랑은 최악이라고 그러더라. 그럼 전담이 되는 건가. 그것도 뉴스겠네.”

그들이 속닥속닥하는 말은 요즘 본부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사자인 희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해승에게 붙들린 채 끌려갔다.

물론 에스퍼인 그가 버틴다면 힘든 일이겠지만.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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