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85)

“계산은 내가 할게.”

식사를 마치고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출구로 향하며 해승과 나란히 걷던 희윤이 작게 속삭였다.

“안 해도 돼요.”

그런데 돌아온 해승의 대답이 당황스러웠다.

“네. 이미 되어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종업원도 별일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희윤만 이해 못 하고 눈을 끔뻑였다. 분명 해승이 자리를 비운 적도, 결제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여기 회원들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에요. 결제도 먼저 다 해 두고.”

그런 식당이 있을 리 있나. 희윤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종업원을 보았다. 희윤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돌아본 종업원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런 식당은 당연히 없다. 다만 계산이 미리 된 건 맞았다. 왜 그런지는 종업원이 설명할 수 없을 뿐.

종업원까지 그렇다니 희윤으로서도 더는 계산하겠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희윤이 얌전하게 인사하니 종업원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다음번에 다시 찾아 주세요.”

과연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희윤은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 타세요.”

어느새 차 앞으로 간 해승이 보조석 문을 열고 말했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희윤은 해승의 배려를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저 종업원만이 ‘어머. 저분이 별일이네.’ 그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해승과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수습했다.

“매칭 테스트 몇 시에 시작해요?”

벨트를 매고 막 차가 출발하던 때였다. 구불구불한 길을 불편함도 없이 부드럽게 운전하며 해승이 물어 왔다.

희윤은 아까 미처 보지 못한 주변 풍경을 감상하다가 대답했다.

“2시에.”

“흠……. 그럼 아직 시간 있네요. 드라이브 좀 하다 갈까요?”

“응?”

희윤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어쩐지 머릿속에 잔뜩 화가 난 듯한 안효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분명 해승과 둘이 외출해서 그런 것 같은데. 가는 길에 커피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쓱쓱 스치고 지나갔다.

“소화도 시키고, 볕도 쐬고요. 네?”

해승이 눈꼬리를 축 내리며 말했다. 저런 표정을 보면 희윤으로서는 별도리가 없긴 했다. 애초 이 차를 운전하는 건 해승이었으니까.

희윤이 가볍게 끄덕이는 걸 본 해승이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사실 차는 이미 드라이브 코스에 들어선 후였지만, 희윤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좋죠?”

희윤은 바깥 풍경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엉겁결에 하게 된 드라이브긴 했지만 확실히 좋기는 했다.

이제 막 봄볕으로 물드는 싱그러운 모습. 계절이 바뀌는지 봄이 오는지 여름이 갔는지도 모르고 일만 하며 시간을 보내던 희윤에 이런 여유는 낯설었다.

“근데 희윤 형은 어떻게 이능력자 검사받게 됐어요? 요즘은 국가건강검진에도 그 항목이 빠져 있다고 하던데.”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체가 등장한 건 30년 전. 괴물체는 그 당시에 막 개발된 최첨단 무기만으로는 잡을 수가 없어 초반에는 혼란이 대단했다.

더욱이 그 괴물체들은 지구 곳곳에서 자연재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처는 하지 못한 채 대책 회의만 하던 중 세계 곳곳에 기이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바로 지금의 에스퍼와 가이드였다.

그들의 활약으로 괴물체나 그것들이 일으킨 온갖 재해가 해결되었다 보니 더더욱 많은 일손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래서 국가에서는 아예 국가건강검진에 에스퍼 관련 항목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인권 문제로 그 항목이 빠진 게 불과 5년 전이었다.

“아, 그게…….”

희윤은 그때를 떠올리며 손으로 목덜미를 쓸었다. 그러다 슬쩍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차를 끌고 다리를 건너는데 아이가 강둑에서 굴러떨어지는 걸 봤어. 근데 주변에 보호자는 없고, 나 이외에 목격한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난 그 애와 거리가 너무 멀었어.”

당시 희윤은 당장 차를 세우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멀찍이 아이가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때 아이를 물 위로 끌어 올리고 싶다는 생각만 한 거 같아. 당장 아래로 가라앉아 버릴 것처럼 위태로웠거든. 그래서 부디 내가 강에 도착할 때만이라도 아이가 가라앉지 않게 해 달라고 강하게 염원했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폐가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희윤은 멈추지 않고 아이가 빠진 곳을 향해 달리고 달렸다.

“그때 갑자기 묘한 일이 생겼어. 아이가 있는 주변이 크게 출렁거리는 거야.”

마치 물에 빠진 아이를 떠받들 듯. 강은 살아 있는 것처럼 조금씩 파고를 높이더니, 급기야 아이를 강둑에 밀어 올렸다.

강둑에 올라온 아이는 안심이 됐는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달려가는 게 보였다. 희윤은 그것까지 확인하고서야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머리가 징징 울렸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몸에 힘이 없어 점차 바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로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신 거예요?”

해승이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며 자연히 희윤을 바라보았다.

“응. 내가 쓰러진 걸 지나가던 운전자가 보고 신고했대.”

머지않아 도착한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검사를 마치고 나니 의사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환자분, 이능력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희윤은 퇴원한 날 이능력자 관리 공단 서울지역 중앙지부를 찾아간 것이었다.

“넌 어땠어? 특별한 징조가 있었어?”

“글쎄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워낙 어렸을 때라.”

“아, 그렇지.”

희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8살 때 뭘 했느냐고 물어보면 가물가물하다. 그러니 해승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미쳤다.

“가이드라고 판정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어?”

“뭐 그냥 그런가 보다 했죠. 애였잖아요. 뭐 아는 게 있나. 그냥 시꺼먼 어른들이 와서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렇게 휩쓸려 다닌 게 전부죠.”

“힘들었겠다.”

툭 뱉은 말에 운전 중이던 해승의 고개가 희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정작 희윤은 창밖을 보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해승도 곧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 힘든 건 없었어요. 그냥 좀 짜증이 났지.”

사실 말수가 부족한 희윤은 이럴 때가 제일 고민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그랬어?”

희윤이 어설프게 맞장구를 쳤다.

“네. 학교 갈 때 외에는 계속 본부에만 있었거든요. 계속 검사만 시키고.”

“검사?”

“가이딩 질은 좋은지, 양은 얼마나 되는지. 가이딩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가이딩할 때 뇌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심장은 잘 뛰는지, 신체 발달은 어느 정도인지.”

“아…….”

아무래도 국내 유일한 S급이다 보니 할 수 있는 검사는 전부 해 본 듯하다. 어렸을 적 해승이 떠오르자 더욱 안타까운 기분이 들어 희윤의 눈빛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발견한 해승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뿐이면 되겠는데 얼굴도 모르는 어른들이랑 자꾸 손잡아 보라잖아요. 기분 나쁘게.”

“헉! 손을 잡으라고 했다고? 왜?”

희윤이 화들짝 놀라자 해승은 뭐가 웃긴 지 소리 내어 웃으며 대답했다.

“매칭 테스트 때문에요.”

“아……. 그것도 8살부터 그랬어?”

제가 괜히 오버한 것 같아 민망해진 희윤이 귀를 살살 만지며 물었다.

“음. 아뇨. 10살부터요. 2년 동안은 검사만 했어요.”

“본부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대. 원래 그런 건 다 성인 때 해야 하는 거 아냐?”

“예전에는 그런 게 없었죠. 그것도 10년 전에야 생긴 법이에요.”

“그랬나?”

전혀 몰랐다. 예전에는 이쪽 분야를 자세히 파고들 만큼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으니까.

“그때 아마 거짓말 안 하고 하루에 열 명쯤은 테스트했을걸요?”

“뭐? 10명이나?”

희윤이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성인인 자신도 오전에는 교육, 오후에 고작 서너 명과 매칭 테스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기력이 쭉 빠진다.

그런데 성인도 안 된 어린애한테 그게 무슨 짓이람!

해승은 저보다 더 화나는 얼굴을 한 희윤을 슬쩍 보았다. 입꼬리가 절로 휘어졌다.

“그러니 얼마나 짜증이 났겠어요.”

“그래. 이해해. 아니. 짜증이 뭐야. 너 정말 힘들었겠다.”

에스퍼도 그런데 일반인에 가까운 가이드는 오죽하랴. 뭣보다 손만 잡고 있는 에스퍼와 다르게 가이드는 매칭 테스트 때 가이딩까지 해야 한다.

그래야 두 사람의 상성이 맞는지 또 매칭률은 얼마나 되는지 측정이 되니까.

희윤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저도 모르게 해승의 팔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해승의 시선이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정면으로 돌아갔다.

“뭐 예전에 그랬다고요. 지금은 그러지 않죠. 형도 해 봤겠지만, 일일 최대 테스트 인원도 다섯 명으로 정해져 있고요.”

“그랬구나…….”

어린 나이에 가이드가 되어 고생한 얘기를 들으니 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진짜 고생했어.”

“뭘요. 이젠 괜찮아요.”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힘들었던 게 다 좋아지진 않지.”

힘든 시간은 세월이 지나도 상처로 남는다. 희윤이 겪어 본 바로는 그랬다. 그건 그냥 힘든 과거가 될 뿐이다.

“이제 안 해도 되니까 상관없어요.”

그래도 뭔가 다른 위로를 해 주고 싶어 입을 열었는데, 그보다는 해승의 말이 먼저였다.

“응?”

희윤이 맹하게 해승을 돌아봤다.

“저한테 형이 있잖아요.”

즐거운 얘기라도 하듯. 해승의 목소리에는 웃음기마저 묻어났다.

“아…….”

“다행이지 뭐예요. 형이 더 늦게 왔으면…….”

그랬으면 본부를 엎는 한이 있더라도 찾아내라고 했을 텐데. 얼마나 다행이냐고.

운전하는 해승의 눈빛은 말했다. 물론 그를 마주 보는 게 아닌 희윤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으응.”

근데 그건 전담이어야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희윤이 배우기로는 그랬다. 지금 매칭 테스트를 하는 이유는 가이딩이 가능한 가이드의 리스트를 만들기 위한 거다.

리스트가 필요한 건 그들이 희윤만 가이딩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에스퍼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즉슨 전담이 아니라면 해승이 희윤을 가이딩하더라도 다른 에스퍼와도 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래도 뭐.’

저렇게 좋아하는데 괜한 말은 하지 말자. 희윤은 조용히 침묵을 택했다.

진실은, 나중에 알아도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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