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전담 안 해?”
지부장이 정말 이해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네. 그 귀찮은 짓을 제가 왜 해요.”
“그럼 연희윤 에스퍼한테는 대체 왜 그래?”
해승은 도리어 왜 어이없다는 눈을 했다.
“제가 형한테 왜요.”
정말 모르겠다는 해승의 반응에 지부장은 이제 혼란스러워졌다. 요즘 본부에 떠도는 소문을 모르나.
“너 연희윤 에스퍼 마음에 들어 하는 거 아니냐고.”
지부장의 물음에 해승이 눈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예요.”
“연희윤 에스퍼랑 점심은 왜 먹으러 간 건데?”
“왜긴요. 배고프니까 갔지.”
그러니까 그게 이상하다는 걸 모르나. 해승이 가이드로 각성하고 본부에 온 지 벌써 15년. 그간 그가 누군가를 챙겨서 식사하러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제 가족들이 본부를 방문했을 때조차.
“희윤 형이 좀 귀엽긴 하죠.”
지부장이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점심때 제가 덜어 준 음식을 오물오물 먹던 희윤의 모습이 떠올린 해승이 툭 말을 뱉었다.
“뭐?”
“그냥 그렇다고요.”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해승이 입을 다물었다. 하긴 저 표해승이 에스퍼를 곁에 둘 리 없지. 지부장은 금세 수긍했다. 에스퍼고 가이드고 할 것 없이 전부 관심을 두지 않는 해승이다.
“그럼 대체 왜……. 아니, 아니다. 그래, 뭐. 네가 그런 거면. 일단 오후에 일정 없지?”
그럼 왜 그렇게 희윤을 졸졸 따라다니며 방해하느냐. 그렇게 물으려던 지부장이 말을 삼키고 화제를 돌렸다.
“왜요?”
“광고 촬영 때문에 감독이랑 작가가 온다고 연락 왔어.”
“그거 작년에 한 거잖아요.”
“작년에 했으니까 올해 거 해야지.”
“귀찮게…….”
본부에서는 매년 공익 광고를 촬영해 왔다. 이능력자의 활약상뿐 아니라 대중적이고 친숙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그건 매년 해승이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30분 후에 오기로 했으니까 차 한 잔 마시고 같이 가.”
“모델 좀 바꾸죠?”
“아니 또 왜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지부장이 골치 아프다는 듯 엄지로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잠깐만 만나고 가. 김 감독, 시간 많이 안 잡아먹잖아.”
물론 미팅에 해승의 참여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지부장은 매칭 테스트를 할 때 해승이 난입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안효정과 가이드 팀의 요청을 충실히 수행하려 한 것이었다.
“알겠어요.”
다행히 해승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만족스럽게 소파에서 일어서던 지부장이 옆에서 들린 낮은 탄성에 멈칫했다. 해승이 눈을 반짝였다.
“그거요. 희윤 형이랑 같이할게요.”
“뭐?”
지부장의 얼굴이 황당한 빛으로 물들었다. 분명 아까 희윤에게 별 관심 없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나.
전담할 생각도 없다면서. 근데 왜 또 챙기는 건데.
“왜요?”
지부장은 해승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 정말 연희윤 에스퍼한테 관심 없는 거 맞아?
그런 질문이 입 밖에 나오려다가 그대로 사라졌다.
* *
매칭 테스트를 끝내고 나오니 6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희윤 씨, 잠깐 시간 괜찮아요?”
해승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희윤이 안효정을 돌아봤다.
“네. 무슨 일이세요?”
“오늘 물 속성 에스퍼 두 사람이 돌아왔거든. 잠깐 인사할래요?”
“좋죠.”
본부에 물 속성 에스퍼는 총 열 명. 그런데 전부 제각각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운 바람에 희윤은 아직 한 명도 만나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희윤이 단박에 고개를 끄덕이자 안효정도 활짝 웃었다.
“그럼 가요. 기다리고 있으니까.”
“네.”
안효정의 말에 희윤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한층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서서 희윤을 말똥말똥 보고 있었다.
“B급 민효련이에요.”
“민효진이에요.”
두 사람이 차례로 희윤에게 인사했다.
“전남지부에서 무인도 순찰하는 일에 파견 다녀오느라 같은 물 속성인 연희윤 에스퍼가 들어온 것도 이제 들었지 뭐예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리고 이번에도 나란히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 희윤은 한 명씩 번갈아 가며 손을 잡아 흔들었다.
“혹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
“안효정 에스퍼한테 들으니까 제어력이 좋다면서요? 앞으로 활약 기대할게요.”
꼭 한 명이 말하면 다른 하나도 바로 입을 열었다. 덕분에 좀 정신이 없었지만, 희윤은 착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마침 궁금한 게 있었기에 희윤이 막 질문을 꺼내려던 때였다. 그의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신나게 흘러나왔다.
황급히 스마트폰을 꺼내 본 희윤은 화면에 뜬 해승이라는 이름을 보고는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희윤 형. 거기서 뭐 해요.”
“어?”
스마트폰이 아니라 귀에 곧바로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해승이 사무실 입구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의 손에는 통화가 연결된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해승아.”
“테스트 끝나면 곧장 연락하라고 했는데.”
희윤의 부름에 대꾸하면서 해승이 안효정을 비롯한 쌍둥이를 쓱 훑어보았다. 동시에 눈을 마주친 쌍둥이의 표정도 상극을 만난 것처럼 싹 달라졌다.
“우린 먼저 가 볼게요.”
“연희윤 에스퍼, 반가웠고 저놈 조심해요.”
다시금 번갈아 인사를 전하면서 경고까지 야무지게 한 쌍둥이가 잡을 새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희윤이 얼빠진 표정을 하는 사이 해승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퇴근할 거죠? 가요.”
“어, 어?”
그리고 희윤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손목을 붙들더니 그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표해승 가이드! 뭐 하는 짓이야.”
안효정이 뒤에서 소리 질렀지만, 이미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탄 후였다. 덕분에 희윤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구경하는 다른 사람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더불어 저 표해승이 저렇게 집착하는 희윤에 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가는 것도.
“어디 가?”
엉겁결에 주차장으로 끌려와 조수석에 앉은 희윤이 그제야 물었다. 그사이 벨트를 매고 시동을 건 해승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저녁 먹으러요.”
“저녁?”
“네. 같이 밥 먹어 준다면서요.”
“아…….”
물론 점심에 그런 비슷한 말을 하긴 했다. 그런데 해승이 오늘 곧장 저녁을 먹자고 할 줄은 몰랐다.
“빈말이었어요?”
“아니.”
희윤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한쪽 눈썹을 세웠던 해승이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뭐 사 줄 거예요?”
“글쎄……. 뭐 먹고 싶어?”
해승은 뭐든 사 주겠다는 듯 저를 바라보는 희윤을 물끄러미 마주했다. 동글동글한 눈을 살짝 올려 뜬 게 귀여워 보였다.
“회 먹으러 가요.”
“그래.”
그건 얼마나 하려나. 희윤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계산을 슬쩍 미루었다. 얼마가 되었든 해승이 점심으로 사 준 것보다는 비싸지 않겠지.
차는 아직 해가 쨍쨍한 도시를 빠져나가 한참 서쪽으로 달려갔다. 처음엔 드라이브라도 하는 듯한 기분에 들뜬 얼굴을 하던 희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차 안에서 조금씩 불안감을 내비쳤다.
“어디 가는 거야?”
“횟집이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해승이 마침내 차를 세운 곳은 놀랍게도 서해안의 잔잔한 바다가 보이는 해변이었다.
“와, 바다다.”
차에서 내린 희윤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저녁으로 회를 먹자더니 갑작스럽게 서해까지 끌고 온 건 당황스러웠지만,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 도로 즐거워졌다.
“좋아요?”
“응. 엄청 넓네. 물도 반짝반짝해.”
해승은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신나게 말하는 희윤을 보며 웃었다. 그러는 희윤의 눈동자야말로 예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서울 구경도 안 해 봤다던 사람이다. 당연히 바다도 처음일 거라 생각했다. 회를 먹자고 할 때 자연히 그것까지 떠올렸던 해승이 희윤의 손목을 잡았다.
“바다 잘 보이는 자리로 가요.”
희윤 역시 바다가 보고 싶었기에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해승의 뒤를 따랐다. 물론 손을 잡고 있으니 당연히 같이 가게 되겠지만.
창가 자리로 안내받은 희윤의 시선이 바깥 풍경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살짝 입을 벌리고 넋을 놓은 희윤을 대신해 해승이 알아서 주문을 마쳤다.
“희윤 형.”
음식이 나올 때까지도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희윤을 해승이 부드럽게 불렀다. 그제야 희윤이 고개를 돌렸다.
“헉.”
그러다 식탁에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뭐가 이렇게 많아.”
내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더라. 저절로 다시 돈을 머릿속에 떠올린 희윤의 눈동자가 떨렸다.
“얼른 먹어요.”
그런 희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승이 점심때 그랬던 것처럼 앞접시에 광어회를 적당히 덜어 앞에 놓아 주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너도 먹어.”
“네.”
희윤은 대답하면서도 저를 바라보기만 하는 해승의 시선에 두툼한 회를 덥석 입에 넣었다.
“아무것도 안 찍어 먹어요?”
그 모습을 보던 해승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
“원래 초장이나 간장 안 찍어 먹냐고요.”
“아……. 원래 뭘 찍어 먹는 거야? 그게 회는 처음 먹어 보는 거라서.”
어색하게 웃는 희윤을 보던 해승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러더니 제 앞에 있는 그릇에 각각 초장과 간장을 담아 쓱 내밀었다.
희윤은 괜히 민망해 시선을 피한 채 회를 콕 찍었다. 처음 먹어 본 회는 해승이 챙겨 줬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그냥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