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식당 밖 하늘이 붉게 변했다. 바다도 장밋빛으로 물들어 자꾸만 시선을 사로잡았다.
희윤이 그 아름다운 풍경을 넋 놓고 구경하던 그때.
쾅! 콰아앙! 쾅! 쾅!
폭발음과 함께 시야 한편에 엄청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여러 사람이 불이 난 곳에 모여드는 게 보였다.
희윤도 벌떡 몸을 일으켰다.
“희윤 형?”
출입문으로 달려가는 희윤의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를 비웠다가 계산을 마치고 돌아오던 해승이었다. 그러나 희윤은 그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터진 거죠?”
“119 불렀어요? 119?”
“여기 해마리 해수욕장인데요. 차에 불났어요.”
“얼른 좀 와 주세요. 불길이 숲으로 번졌어요!”
밖은 온통 소란스러웠다. 소방차를 부르는 통화 소리, 도와 달라는 다급한 목소리, 대체 무슨 일이냐며 웅성대는 소리까지.
단숨에 현장까지 달려온 희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폭발음이 처음 시작된 건 주차된 승용차에서였다.
뭐가 어떻게 터진 건진 모르겠지만 차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불에 휩싸여 있었다. 문제는 그 불길이 바로 옆에 있는 풀숲으로 번졌다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날은 건조하고, 바닷바람까지 연신 몰아쳐 불은 급속도로 덩치를 키워 갔다.
쾅!
승용차 앞 유리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지며 다시금 요란한 소리를 냈다.
“으악!”
“꺄아악!”
근처에 있다가 놀란 사람들이 서둘러 대피했다. 차량에서 튀어 나간 불씨가 다시금 풀숲으로 튀며 더욱 기세를 키웠다.
지체할 수 없었다. 희윤의 눈빛이 단단해졌다.
“희윤 형!”
해승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희윤의 눈동자 색이 푸르게 변했다.
“어어…….”
“엇!”
“헉!”
바다 저편에서 서서히 파도가 일어났다. 아니 그건 파도가 아니었다. 마치 바다가 살아 있는 것처럼 찰랑거리며 허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커튼처럼 넓게 펼쳐진 물줄기는 순식간에 육지로 날아와 불타오르는 차량과 풀숲을 뒤덮었다.
“와!”
“우와아……!”
“에, 에스퍼다! 에스퍼가 있었어!”
불은 단숨에 꺼지고, 그 뒤를 탄성이 이었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에스퍼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정작 기적처럼 바닷물로 순식간에 불을 잠재운 희윤은 커다란 손에 얼굴 반이나 막힌 채 어두운 골목에 끌려간 상태였다.
“희윤 형. 뭐 하시는 거예요.”
입이 막힌 희윤은 대답도 못 하고 푸르게 변한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바깥은 여전히 그를 찾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웠다.
불이 꺼진 후 특유의 탄내가 허공 중에 진하게 올라왔다. 그런데 이곳만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무턱대고 능력을 쓰면 어떡해요.”
계속된 추궁에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못 한다는 게 정확했다. 희윤은 이 상황을 어쩔까 고민하다가 손을 들어서 제 입을 막고 있는 해승의 손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제야 해승은 희윤이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차리고 눈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해승은 희윤이 식당을 나가는 걸 보고 곧바로 쫓았다. 그리고 목격한 건 이미 능력을 일으키는 모습이었다.
거대한 파도가 허공에 떠올라 불을 그대로 꺼 버리는 걸 보자마자 희윤을 이곳으로 끌어당겼다.
문득 묘한 불쾌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음. 다행이지. 그래도 더 번지기 전에 바로 꺼 버렸잖아.”
해승의 생각도 모르고 희윤이 뿌듯한 듯 말했다. 아직도 눈동자에는 푸른 기가 남아 있었다.
“다음엔 이러지 말아요.”
“위험한 상황으로 보여서.”
그래도 안 되는 거야? 희윤은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다. 어두운 곳에서도 해승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기증이나 두통은 없어요?”
“응.”
희윤은 고개를 저으며 제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다행이네요.”
그제야 안심한 듯 해승이 표정을 풀었다. 희윤은 해승과 마주 닿은 등과 어깨에서부터 계곡물에 닿은 듯 청량한 기운이 흘러들어 왔다.
“안 해 줘도 되는데…….”
희윤이 미안한 얼굴로 해승을 올려다보며 어물어물 말했다. 그사이에도 무언가 불안정했던 기운이 편안해지는 게 느껴졌다.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습 에스퍼는 원래 외부에서 능력을 쓰면 안 돼요.”
맞다. 그런 게 있었지. 희윤은 그제야 안효정이 주의하라고 알려 주었던 걸 떠올렸다. 수습 기간에 혹시라도 외부에서 일이 터졌을 시 능력을 사용하지 말고 본부로 연락하라던.
“형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어느 정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 판단이 안 되잖아요.”
“그렇지…….”
“그러다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는 거예요.”
“응, 미안. 나도 모르게.”
뒤늦게 제 실수를 깨달은 희윤이 어두운 얼굴을 했다. 정말로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이렌이 들려왔다. 희윤은 그쪽을 잠깐 돌아보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부 가면 사실대로 얘기하고 징계받을게.”
일이 잘 해결되었다고는 해도 해승이 말한 게 맞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으니 제대로 알려야 했다.
“네. 그래도 잘했어요, 형.”
해승은 부드럽게 흘러들어 가는 제 기운을 느끼며 희윤을 잡은 손아귀에 좀 더 힘을 줬다. 에스퍼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마른 손. 이 손에 이끌려 오던 파도가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보았을 때 해승이 느낀 건 분명 불쾌감이었다.
“지부장님, 죄송합니다.”
희윤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지부장은 뒤통수에서도 미안함이 잔뜩 느껴지는 희윤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해승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힌 채 희윤에게 눈길을 주고 있는 게 보였다. 둘이 같이 퇴근했다고 했을 때, 영 불안하더라니.
“고개 들어요, 연희윤 에스퍼.”
지부장은 한숨을 쉬며 일단 제가 말을 하기 전까지 계속 한 자세로 있을 사람부터 바로 세웠다. 그리고 엄한 눈으로 희윤을 보며 말했다.
“보고는 받았어요. 뭐 급박한 상황이라 그럴 수 있었겠지. 그런데 앞으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수습 기간엔 현장에서 능력을 쓰면 안 돼요.”
“네. 알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요. 일단 오늘은 반성문 좀 쓰고, 앞으로는 주의해요.”
반성문이라는 말에 희윤의 고개가 또 수그러들었다. 지부장이 일부러 제게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한 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 형,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반성문 쓰는 법부터 배우겠네.”
희윤은 제 어깨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나 차마 해승을 밀어내지는 못했다.
지부장에게 해변에서 있던 일을 보고하는 동안 해승이 함께해 주었기에 든든한 마음도 들었으니까.
“표해승 가이드.”
지부장이 장난치지 말라는 듯 나무라는 투로 해승을 불렀다.
“우리 형 주눅 들게 하지 말아요. 지부장님. 대단하지 않아요?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에스퍼가 단숨에 그만한 화재를 진압한 거.”
대단하긴 하지. 아무리 A급이라고는 해도 썰물로 빠져나간 바닷물을 끌어와 불을 꺼 버리다니.
정말 보고를 받을 때마다 희윤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그런 희윤에게 해승이 붙어 있는 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지부장은 복잡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봤다.
“정신이 없어서 영상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쉽다.”
해승이 정말로 애석하다는 듯 눈을 찡그렸다. 그러면서도 계속 희윤에게 치대는 모습을 보며 지부장은 입을 씰룩거렸다.
“표해승. 넌 같이 있었으면서 안 말리고 뭐 했어.”
“제가 무슨 수로요. 저처럼 빈약한 가이드는 못 하죠.”
“네가? 특공무술 유단자가?”
“그럼 뭐 해요? 에스퍼도 아닌데.”
희윤은 특공 무술이라는 말에 눈을 댕그랗게 떴다. 희고 고운 얼굴에 날씬한 몸매를 가진 해승이다.
그런 해승이 무지막지한 싸움 실력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호신용으로 배웠어요.”
희윤과 눈이 마주친 해승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지부장은 황당해했지만, 진실을 폭로하지는 않았다.
사실 해승이 특공 무술을 배운 건 성장 배경 탓이었는데 굳이 말하진 않았다.
“멋지다. 그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형도 가르쳐 줄까요?”
“에스퍼도 그런 거 배워?”
“그럼요. 현장에서 다른 에스퍼들이랑 같이 움직이려면 체력도 필요하니까요.”
순진하게 그럴까 하고 눈을 반짝이는 희윤은 참으로 귀여웠다. 물론 그 모습을 보는 지부장은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본인은 알지 못했다.
“그래. 네가 괜찮다면.”
가이딩도 해 주고, 특공 무술도 가르쳐 준다니. 해승의 제안이 희윤은 그저 고맙기만 했다.
“그럼 일단 갈까요?”
“어딜?”
희윤이 지부장의 눈치를 살짝 보며 물었다. 아직 얘기도 안 끝난 것 같은데 움직여도 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반성문 쓰러요.”
“아…….”
맞다. 그거 쓰라고 했지. 조금 밝아졌던 희윤의 얼굴이 도로 어둑해졌다. 좋은 일을 한 건 괜찮은데, 이런 건 참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지부장님 저흰 가 볼게요.”
자연스럽게 희윤의 손을 붙잡은 해승이 지부장에게 말했다. 지부장은 네 멋대로 하라는 듯 손만 내저었다.
“오늘 정말 죄송했습니다. 반성문, 아니 경위서는 쓰는 대로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뭐.”
해승에게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예의를 차리는 희윤을 보다가 지부장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매칭 테스트할 가이드도 많건만, 어째 저 에스퍼의 앞날은 벌써 누군가에게 꽉 저당 잡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