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입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서해만 갯벌에 출몰한 괴물체를 처리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오전에 해승과 훈련인지 운동인지 모를 시간을 보낸 희윤이 막 구내식당에 들어설 때였다. 벽에 걸린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현재 그곳에는 A급 에스퍼 세 명을 포함하여 총 열두 명의 에스퍼가 출동해 있는데요. 갯벌을 종횡무진 움직이는 괴물체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에스퍼가 출동했다는 말에 희윤의 관심도 단숨에 그쪽으로 향했다.
“어?”
스쳐 간 자료 화면에 희윤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선배?”
다름 아닌 안효정이었다. 그제야 희윤은 파견된 에스퍼 중 몇몇이 서울지역 중앙지부 소속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안효정이 자리를 비운 지 벌써 이틀이 지나 있었다.
“흠……. 열두 명이나 갔는데 아직 그거 하나 해결 못 했나 보네요.”
옆에서 신랄한 말이 흘러나왔다. 희윤의 고개가 절로 그리로 향했다. 말투와 달리 해승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조만간 추가 파견 있겠는데요.”
“아…….”
희윤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불쑥 떠오른 생각에 도로 해승을 봤다.
“안 돼요.”
눈빛만 보고도 뭘 생각하는지 알아챈 듯 해승이 단호히 말했다. 희윤은 그저 조용히 보기만 했을 뿐이다.
“하…….”
그러나 맑고 동그스름한 눈을 본 해승의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해승이 눈을 찌푸렸다.
“좋아요. 그럼 지부장님께 확인해 보고 괜찮다고 하면 그때 같이 가요.”
“응. 그래. 그럴게.”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자 희윤의 얼굴이 단숨에 밝아졌다. 덕분에 해승이 같이 가자고 한 말도 흘려듣고 말았다. 희윤은 얼른 점심을 먹고 지부장을 만날 생각에 뷔페식으로 차려진 테이블로 걸어갔다.
식사도 부리나케 끝내고 커피까지 야무지게 챙겨 든 후 지부장실을 찾아갔다.
“연희윤 에스퍼도 출동하고 싶다고요?”
두 사람을 맞이한 지부장이 묘한 눈을 했다. 그의 시선은 희윤을 지나쳐 뒤에 팔짱을 끼고 선 해승에게 향했다.
허공 중에 맞부딪친 해승과 지부장의 눈동자가 말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요, 뭐. 본인이 희망한다면야. 현장에 가서 직접 보는 것도 좋긴 하죠. 대신 얌전히 있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지부장이 다짐을 받으려는 듯 단단한 어투로 말했다.
“네. 그럴게요.”
“상황을 봐서 물러서야 할 때는 빠르게 움직이고요.”
“명심하겠습니다, 지부장님.”
연이은 잔소리에도 희윤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도 안심이 되지 않은 지부장이 한마디 더 하려고 하던 그때였다.
“제가 잘 책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해승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분명 말로는 걱정이 어쩌고 하는데 어째 신경 끄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래. 뭐. 알아서 잘하겠지.”
지부장이 속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나 눈빛에는 여전히 염려가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수습인 희윤을 현직 에스퍼들도 애를 먹는 현장에 보내려니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저놈도 마찬가지인데.’
어쩐지 해승은 걱정되지 않는다. 맞는 에스퍼가 없어서 실제로 전투 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인데도, 어쩐지 상황이 닥치면 뭐든 다 할 것 같아서.
“근데 넌 갈 수 있어?”
“왜요?”
“왜긴. 네 할아버지가…….”
“제가 하는 일에 반대하시겠어요?”
“아무렴.”
그 어르신이 그럴 리 없기는 하지. 오히려 제 손자가 어디를 간다면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을 사람이다.
온갖 무기부터 그를 지킬 사람까지.
지부장은 네 멋대로 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용건은 끝이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해승은 저와 지부장의 눈치를 보는 희윤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길로 둘은 서해만 갯벌로 추가 파병될 팀을 따라 곧장 현장으로 이동했다.
서울에서 서해만 갯벌까지는 본부에서 운영하는 전용기로 이동했기에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럼 브리핑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도착해서도 곧장 전투에 투입되는 게 아니었다. 현장 지원팀 직원이 이제 막 온 에스퍼와 가이드에게 돌아가는 사정부터 설명했다. 희윤 역시 그 사이에 끼어서 직원의 말을 경청했다.
“현재 갯벌에 출몰한 괴물체의 개체 수는 세 마리입니다. 추정 길이는 7m 내외이며 갯벌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와 공격하는 패턴을 보입니다.”
화면에는 이틀간 치열하게 벌어졌던 전투 장면을 촬영한 영상과 사진이 떠 있었다.
“괴물체는 출몰할 때마다 약 규모 4에서 5 정도의 지진을 일으키며, 한번 갯벌로 들어가 버리면 어디에서 다시 나타날지 파악이 되지 않아 여러모로 애를 먹는 상황입니다. 오늘 아침 한 마리는 소탕해 현재 남은 건 두 마리입니다.”
현장 지원팀 직원의 브리핑이 끝난 후 출동할 에스퍼와 대기 팀 그리고 가이드 팀으로 나뉘었다.
“투입조 에스퍼분들 이동하겠습니다. 남은 대기 조와 가이드분들은 셸터에서 상황을 지켜봐 주세요.”
그 말에 대기 중이던 가이드 몇몇이 담당 에스퍼를 찾아 움직였다. 희윤은 부산스러워진 분위기를 살피다 고개를 갸웃했다. 생소한 단어가 귀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셸터?”
“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건물을 셸터라고 불러요. 상황에 따라 에스퍼가 가이딩을 여기까지 받으러 올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현장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설치하는 임시 보호소죠. 보호소를 설치해서 에스퍼가 위험해졌을 때 바로 출동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해승이 바로 설명했다.
“전투 장소와 가까운 만큼 방어 속성 에스퍼들이 대비를 해 둬 만약 괴물체가 출몰해도 크게 위협이 되지 않을 거예요.”
“아…….”
희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을 쓱 훑어보던 현장 지원팀 직원과 희윤의 시선이 한순간 마주쳤다.
의아하게 이쪽을 보던 현장 지원팀 직원의 시선이 희윤을 지나쳐 해승에게 향했다. 더더욱 눈을 크게 떴던 현장 지원팀 직원은 곧 해승의 가늘어진 눈매를 보고는 서둘러 눈길을 돌렸다.
직원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괜히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자리를 이탈하지 말아 주세요. 만약 꼭 바깥으로 나갈 일이 생기면 먼저 연락해 주셔야 합니다.”
마치 이쪽을 본 적 없다는 듯 서둘러 말을 마친 현장 지원팀 직원이 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서두르는 뒷모습은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봐.”
희윤이 그런 현장 지원팀 직원을 보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네. 그렇죠. 처음부터 우리 지부에 지원 요청을 했으면 좋았을걸. 지지부진 시간을 버리다가 때를 놓치고 일을 키웠으니까요.”
어쩐지 냉정하게 느껴지는 말투에 해승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괜찮을 거예요. 이래 봬도 전세계에서도 가장 유능하기로 알려진 한국의 에스퍼니까.”
희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에도 느꼈지만, 해승은 썩 좋은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희윤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대기실 한쪽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화면에는 현재 전투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희윤은 그곳에서 어렵지 않게 안효정을 찾을 수 있었다.
“와…….”
진흙더미에서 치솟아 오른 괴물체는 무시무시하게 컸다. 7m라고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건만, 거의 직각으로 올라온 모습은 이삿짐 사다리차 못지않은 높이였다.
갯벌에서 나타난 괴물체는 미꾸라지와 개구리를 합쳐 놓은 듯한 괴상한 모습이었다.
“뭐야. 저 짱뚱어같이 흉측한 건.”
옆에서 해승이 꺼낸 말에 희윤은 저게 어떤 것과 비슷한지 알게 됐다. 짱뚱어라니. 처음 들어 보는 생물이라 검색해 보고 싶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바닥을 얼려 버렸네.”
괴물체가 갯벌 위로 튀어 올라오자 안효정을 비롯한 빙결 속성 에스퍼가 즉시 능력을 발현한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검은색에 가까운 갯벌이 얼어붙었다.
이윽고 또 다른 에스퍼가 바람 칼날을 날리며 괴물체를 공격했다. 괴물체는 갯벌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단단하게 얼어붙은 바닥에 떨어지며 몸을 마구 비틀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에스퍼들이 휘청거리는 게 보였다.
“허!”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영상만으로도 현장의 긴박함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희윤 형.”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희윤을 해승이 불렀다. 그도 모자라 어깨를 붙들어 당기기까지 했다.
“형.”
“응?”
악력을 느끼고서야 희윤이 고개를 돌렸다.
“어? 해승아, 왜 그래?”
희윤이 깜짝 놀라 물었다. 해승의 안색이 잠깐 사이에 하얗게 질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쪽에 앉아. 이리로 와.”
희윤은 당황한 얼굴로 해승을 이끌어 의자에 앉혔다.
“왜 이러지? 어디가 아파?”
“아뇨. 아픈 건 아니고.”
“그럼. 혹시 멀리 이동하느라 힘들었어?”
해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대형 모니터를 힐끔 봤다. 그나마도 황급히 돌리는 모습을 본 희윤이 “아.” 하고 낮게 탄성을 흘렸다.
“무서웠구나.”
생각해 보니 저도 해승도 현장은 처음이었다. 그러니 전투 장면을 보고 놀란 건 당연했다.
희윤이 그 말을 꺼내자마자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몰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내가 지켜 줄게.”
희윤이 희게 질린 해승의 볼에 손을 얹었다. 기분 탓인지 차게 느껴졌다.
“하…….”
손바닥에 닿은 뺨이 부드럽게 문질러진다고 느껴지던 순간, 해승에게 옅은 한숨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