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85)

치열했던 서해만 갯벌 전투는 해가 완전히 저물고 나서 끝났다. 사체로 변한 괴물체는 처리반에서 정리하여 본부에서 운영하는 연구소로 이송할 예정이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본부로 이동하겠습니다.”

지친 얼굴을 한 현장 지원팀 직원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직원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더욱 피곤하고 고생한 흔적이 가득한 에스퍼와 가이드가 말없이 셸터를 나왔다.

공터에는 25인승 대형버스 두 대가 대기 중이었다. 올 때는 긴급한 상황이라 전용기를 이용했지만, 돌아갈 땐 버스였다.

길고 고단한 이동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에 불만을 표출할 정신도 없어 보였다.

“희윤 씨!”

그들 사이에서 피와 먼지로 지저분해진 안효정이 불쑥 나타났다.

“선배.”

희윤은 안효정을 발견하고 해승의 품에서 빠져나와 달려갔다. 얼굴에는 반가움과 걱정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대체 어떻게 여길 왔어요?”

“현장을 보고 싶어서 지부장님께 말씀드렸어요.”

“어휴. 그런 건 내가 어련히 데리고 갔을 텐데, 왜 위험하게 여길 왔어요.”

희윤이 어설피 웃기만 하자 안효정은 쯧쯧 혀를 찼다. 그리고 그들보다 조금 떨어져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해승을 발견하고 더욱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 담당 가이드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능력도 썼다면서요. 조심해요. 그러다 큰일 난다니까?”

누가 봐도 해승을 향한 도발이었다. 해승이 희윤이 능력을 쓰자마자 바로 가이딩한 걸 알았을 테니까.

희윤은 이번에도 소리 없이 웃었고, 해승은 그저 가소롭다는 눈빛만 보였다. 안효정은 그런 반응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진짜 걱정돼서 그래. 쟤 믿지 말아요, 희윤 씨. 정 날 못 믿겠으면 본부 가서 소문 좀 들어.”

안효정이 해승이 듣지 못하게 희윤의 귓가에 얼굴을 붙이고 속삭였다.

“소문요?”

“그래.”

소문이라는 게 뭐지? 희윤이 고개를 갸웃하던 순간. 기어이 해승이 더 기다리지 않고 다가와 희윤의 몸을 뒤로 쓱 끌어갔다.

“하, 진짜.”

안효정이 그런 해승을 보며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표해승 가이드.”

이곳엔 무려 서른 명에 달하는 에스퍼와 가이드가 있다. 전담도 아니고 심지어 담당 리스트에도 없는데 이렇게 제 소유처럼 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효정 에스퍼. 얼른 가 보시죠?”

안효정이 부르는 것과 동시에 해승이 어딘가를 턱짓했다. 안효정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눈으로 그곳을 보았다.

그러자 언제쯤 부를까 망설이고 있는 자신의 가이드가 서 있는 게 보였다.

“효정 씨. 그만 가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가이드가 말했다. 해승을 신경 쓰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뿐 아니라 그의 주변에 있는 다른 가이드들 역시 불편한 표정이었다.

“아, 미안해요.”

“선배.”

희윤도 그들을 살피고 안효정을 불렀다. 더 잡아 두지 말고 보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얼른 가세요.”

“하……. 네, 희윤 씨도. 뭐, 자세한 얘기는 본부에서 따로 해요.”

안효정이 할 말이 남은 얼굴로 대화를 마쳤다. 시간을 더 끌 수 없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셸터는 빠져나가는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그 와중에도 해승은 희윤을 붙든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흠, 흠. 저기…….”

그때까지 이쪽저쪽 상황을 분주하게 살피던 현장 지원팀 직원이 헛기침하며 다가왔다. 그 소리를 들은 희윤이 먼저 그를 돌아보았다.

눈을 마주친 현장 지원팀 직원은 정작 희윤보다는 그 뒤에 버티고 선 해승의 눈치를 봤다.

“두 분도 이만 버스에 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제야 희윤은 자신들도 여기에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서울로 돌아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으니까.

“네. 지금 움직…….”

“우린 알아서 갈 겁니다.”

희윤이 채 대답을 마치기도 전, 해승이 잘라내듯 말했다.

“네?”

해승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한 현장 지원팀 직원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차 불러 놨으니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그런데 말투에 냉기가 섞여 있어서 현장 지원팀 직원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역시 저 가이드는 가끔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 예. 그러시군요. 그, 그럼, 알겠습니다.”

해승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일하면서 알음알음 그가 대단한 집안사람이라는 걸 들어온 현장 지원팀 직원이다.

그러니 그쪽에서 제 도련님을 챙기려 알아서 뭔가 보냈나 보다 짐작을 했다. 현장 지원팀 직원은 희윤에게도 해승에게도 아닌 애매한 대상에게 꾸벅 인사하고 부리나케 사라졌다.

그사이 셸터에 있던 다른 이들마저 모두 빠져나가고 안에는 둘만 남았다.

“누가 기다리고 있어?”

희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해승의 품에 있었다.

“아뇨. 근처 호텔 준비해 뒀어요. 거기서 쉬고 내일 올라가요.”

“어?”

“형 피곤하잖아요. 이대로 올라가면 힘들 테니까 하루 자고 가자고요.”

“어…….”

희윤의 눈꺼풀이 당황하여 빠르게 깜박였다. 여기서 하루 있다가 가자니…….

“가요, 형.”

해승이 그런 희윤의 팔을 붙들고 끌어당겼다. 바깥은 벌써 버스 몇 대가 출발하여 휑하게 바뀐 후였다. 마지막 남은 버스 역시 막 떠나려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 검은 세단 한 대가 주차된 게 보였다. 희윤은 저게 해승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새벽에 일어나서 이동하는 것보단 지금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공휴일과 주말을 제외하고 출근해야 하는 건, 에스퍼도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

오늘은 목요일. 그러니 당연히 내일도 본부에 나가야 한다.

“내일요? 아뇨. 안 나가도 돼요.”

“안 나가도 된다고?”

“네.”

왜? 희윤이 눈으로 물음을 던지자 해승이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보면서 손등으로 뺨을 쓸었다. 희윤은 아주 자연스럽다는 듯 다가온 접촉에 어이없어하는 눈빛을 보냈다.

“현장에 출동한 에스퍼는 일이 마무리되면 다음 날 하루 휴가를 쓸 수 있어요.”

“어? 그래?”

“네. 형도 어쨌든 출동한 거니까 적용되고요.”

“그런 게 있었구나.”

희윤은 알지 못했던 휴가 소식이 어안이 벙벙해졌다. 동시에 에스퍼가 위험하지만 정말 안정적이고 꽤 괜찮은 직종이라고 다시금 실감했다.

“그렇구나.”

“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요, 형.”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얼떨떨함에 희윤은 조금 전 해승이 제 뺨을 쓸었다는 것도, 두 사람이 함께 호텔을 가기로 했다는 내용도 잊었다.

그저 해승에게 붙들린 채 터덜터덜 세단으로 걸어갔을 뿐이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건 낯익은 주민들이 쭈뼛쭈뼛 다가오는 걸 발견한 순간이었다.

아까 셸터에 항의하러 왔던 사람들이었다.

“고맙소이다.”

그중 잿빛 머리 남자가 투박한 말투로 인사를 전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꾸벅 고개를 숙였다.

희윤은 그들을 보다가 옅게 웃었다.

“다행이에요. 이제 마음 편히 지내셔도 됩니다.”

그 말에 주민들은 더욱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희윤에게는 그 이상 해 줄 말이 없었다. 치열한 전투에 대한 답은 자신이 들어야 하는 게 아니다.

더 고생한 에스퍼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그럼.”

희윤은 목 인사를 건네고 얼른 세단으로 향했다. 뒤에서 주민들이 다시 한번 고맙다며 인사해 왔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세단 앞에 먼저 와 서 있던 해승이 어서 타라는 듯 비켜 주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탁.

문이 닫히고 나서야 희윤은 바깥을 볼 여유가 생겼다. 주민들은 여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눈치 보고 계시더라.”

“그랬어요?”

해승이 운전자에게 출발하라고 눈짓하며 대답했다. 사실 그 역시 어두운 구석에 서서 망설이고 있던 주민들을 진작 알아챘다.

“응.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래서 더 망설이셨겠지.”

“흠.”

하여간 가만 보면 희윤은 마음이 참 여렸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관심을 보이고.

하긴 그런 사람이었으니 제 동네에 갑자기 나타난 어린애도 지나치지 못하고 함께 자리를 지켜 주었겠지.

“정말 다행이지. 오늘이 다 가기 전에 해결돼서.”

“그러게요.”

이런 사람이라서 해승은 그를 더욱 제 곁에 두고 싶었다. 희윤이 본부에 나타난 걸 발견했을 때, 어떤 운명의 끌림을 느꼈다.

그저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만 전달받았던 사람이 직접 제게로 왔으니까.

심지어 그와 악수했을 때 전해지는 기운으로 해승은 제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높은 매칭률을 보고 더욱 확고해졌다.

“희윤 형.”

해승이 미소를 지으며 희윤을 불렀다. 바깥에 있던 희윤의 눈길이 곧장 그에게로 돌아갔다. 희윤은 저를 홀릴 듯 매혹적으로 변한 해승의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응?”

기껏 저를 불러 놓고 해승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얼마 안 남았다니 뭐가? 그런 의미로 바라보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해승은 희윤을 제게 바짝 끌어당겨 반듯한 어깨에 머리를 괴었을 뿐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희윤이 매칭 테스트를 마칠 날은.

해승은 장담했다. 저밖에 없을 거라고. 희윤과 맞는 사람은.

하지만 언제나 모든 일이 생각대로는 흐르지 않는 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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