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검사실로 들어간 정소한은 의자에 앉아 소문으로만 듣고, 멀리서만 몇 번 본 적 있던 사람을 기다렸다.
‘이름이 연희윤이었지. 물 속성에 A급.’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정보보다 먼저 정소한이 듣게 된 건 표해승이 마치 제 소유물이라도 되듯 챙기는 남자라는 사실.
‘이제 갓 성인이 된 애송이인 줄 알았는데…….’
그러니 겁도 없이 표해승의 옆에 붙어 있겠지. 조금이라도 본부에 있어 본 사람이라면 표해승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는 게 삶에 얼마나 유익한 일인지 잘 알 테니까.
그도 아니라면 그저 S급 가이드라는 것에 홀려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얼간이 정도로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오늘 가까이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무게감이 제법 있어 보였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지만.
‘뭐야. 표해승. 아주 제대로 여우짓이네.’
소문 중에 그런 말도 듣긴 했다. 표해승이 새 에스퍼에게 아주 내숭을 떨고 있다고. 사실 그건 믿지 못했다.
정소한은 무려 10년이나 표해승을 알고 지냈다. 그가 본 표해승은 에스퍼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 걸 넘어서 혐오한다.
그건 S급 가이드와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에스퍼들이 이제 갓 각성한 어린애에게 너무 들이대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긴 하지만.
“안녕하세요.”
단정한 목소리에 정소한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그의 상념 속에 있던 새 에스퍼가 어색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연희윤 에스퍼님.”
“네.”
본래 말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낯을 가려서 그런 건지 눈도 맞추지 않고 짧게 대답만 한다. 정소한은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웃는 낯으로 말을 걸었다.
“전 정소한 가이드입니다. 아시겠지만, 표해승 가이드와 같은 팀이에요.”
해승을 화제에 올리자 그제야 비로소 희윤이 정소한과 똑바로 눈을 마주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정소한이 다시금 미소를 띠며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희윤은 말없이 그쪽으로 걸어가 앉았다. 때맞춰 적당히 접촉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저 안내 들을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참 헷갈리게 하죠?”
검사를 할 때 늘 손을 잡았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말을 꺼내려던 희윤이 멈칫하고 정소한을 보았다.
“그냥 손을 잡거나 아니면 팔이나 가슴, 머리에 손을 올리라고 하면 될걸. 꼭 저렇게 오해의 소지가 있게 말해서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에스퍼나 가이드가 당황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
그제야 희윤은 정소한이 일부러 분위기를 부드럽게 말해 주기 위해 그런 말을 꺼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마 자신이 어색함을 감추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물론 희윤은 그가 본 것처럼 지금 이 자리가 썩 편치는 않았다.
그건 다 검사실 밖에서 애처로운 눈망울로 지켜보고 있는 해승 때문이었다. 뭐 실제로 해승이 저를 보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같이 들어가겠다고 어찌나 매달리는지 떼어 놓고 오느라 애를 먹어 더 그랬다.
“전 가슴에 손을 올리고 하는 가이딩을 선호하는데, 연희윤 에스퍼는 어떠세요?”
“네, 네?”
습관처럼 ‘네.’ 하고 대답하던 희윤은 뒤늦게 제가 들은 말을 떠올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래도 조금 동그스름한 눈매가 그 때문에 더욱 댕그랗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본 정소한이 작게 웃었다.
“가이드마다 편한 방법이 다 다르거든요. 전 심장 부근에 손을 대고 하는 게 가장 효율이 높더라고요. 괜찮으시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아…….”
희윤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특수 유리를 끼운 창으로 향했다. 괜히 해승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곧 매칭 테스트하자고 앉은 건데 가이드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불편하세요?”
“괜찮습니다. 편하신 방법으로 하세요.”
그 말에 정소한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럼 실례할게요.”
예의 바르게 인사한 정소한이 손을 뻗어 왔다. 희윤은 덤덤하게 제 가슴에 닿는 손바닥을 눈에 담았다.
희윤의 눈매가 살짝 커졌다. 미약하지만 부드러운 기운이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이건 다른 가이드들과 접촉할 때는 없던 일이었다.
“느낌 어떠세요?”
정소한이 물어 왔다. 희윤은 가슴에 닿은 손에서 시선을 떼 그와 맞추었다.
“그게…….”
“혹시 거부감이 있으세요?”
“아뇨.”
거부감은 아니다. 해승과 했을 때와는 다르지만 확실히 가이딩이 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행이네요. 가이딩은 매칭률도 중요하지만, 서로 간의 상성도 맞아야 하거든요.”
“그런가요.”
“네. 본부에서는 보통 매칭률이 60% 이상 되면 담당 가이드 리스트에 넣고는 해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니 되도록 많이 매칭해 두는 게 좋거든요.”
정소한이 조곤조곤하게 설명을 이었다.
“근데 상성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매칭률이 높아도 가이딩 효율이 떨어지게 돼요.”
친절한 사람이었다. 안효정이 에스퍼로서 알려 주는 것과 달리 가이드에 관해서는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아 다소 아는 게 부족했던 희윤은 저도 모르게 풀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적인 거부감은 매스꺼움이나 울렁거림이고, 이명이나 어지럼증이 발생하기도 해요. 그보다 심할 때는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손발 저림, 몸의 떨림…….”
꽝!
정소한은 눈을 찌푸린 채 요란한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문이 활짝 열려 있고, 해승이 서 있었다.
희윤은 희윤대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쪽을 보았다. 어째 이와 비슷한 상황이 최근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와 다른 점은 해승이 곧바로 두 사람에게 걸어왔다는 점이었다. 희윤의 가슴에 올라온 손을 본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해승은 망설이지 않고 희윤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당겼다. 그도 모자라 정소한의 팔도 쳐 냈다.
“아…….”
정소한이 손을 붙잡고 작게 신음을 흘렸다. 희윤이 놀라 그를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해승이 희윤의 턱을 붙잡아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희윤이 해승을 올려다보던 그때.
“야! 표해승!”
안효정이 버럭 소리 지르며 검사실로 뛰어 들어왔다.
“해승아?”
“형, 가슴은 안 돼요.”
“응?”
“그래요. 형 생각해서 손바닥을 대고 하는 건 이해해 수 있어요. 그래도 가슴을 허락하는 건 싫어요.”
이게 지금 무슨 소리야.
‘내가 뭘 들은 거지?’
희윤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반대로 손목을 돌리던 정소한은 황당한 표정을, 씩씩대며 쫓아온 안효정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저기, 해승아.”
“안 돼요?”
“아니, 저기, 그러니까…….”
희윤은 당황한 눈으로 안효정과 정소한을 보았다. 그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크게 오해한 것 같았다.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눈에 띄게 침울해하는 해승을 보니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건 그들이 아니라 이쪽 같았다.
“하긴. 제가 형 전담도 아니고. 이런 말 할 자격이 없죠.”
급기야 목소리마저 우울감이 잔뜩 묻어났다.
“아냐.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그럴게. 손만 잡고…….”
“손만 대고요.”
“응. 그래. 그럴게.”
단호한 말투에 희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안효정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정소한도 여전히 어이없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소문으로 듣기는 들었는데…….
‘저 천하의 표해승이?’
진짜 저렇게 내숭을 부린다고? 왜?
“해승아, 이제 나가 봐. 나마저 검사하게.”
아직 턱이 붙들려 있어서 말이 좀 어눌하게 나갔다. 희윤은 그래도 꿋꿋하게 해승과 눈을 맞추었다. 해승이 한숨을 쉬더니 손을 물렸다.
“네, 형. 알겠어요.”
‘네.’ 하고 말할 때는 뒤가 조금 끌리는 듯했다. 꼭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들려서 안효정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정소한은 이제 숫제 입까지 벌렸다. 어찌나 가증을 떠는지 지금 제 앞에 있는 게 표해승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해승은 짐짓 슬픈 표정으로 희윤을 한 번 보더니, 몸을 돌렸다.
“하……!”
안효정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 그녀는 할 말이 많은 눈으로 희윤을 보다가 다시금 한숨을 길게 내쉬고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으니 검사실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 그럼 검사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두 분 적당히 접촉…… 아니, 손을 마주 대 주세요.
아까처럼 적당히 접촉하라던 연구원이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손을 마주 대 달라니.”
황당하네. 정소한이 혼잣말을 뱉었다. 뒤에 말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았다. 물론 에스퍼인 희윤은 어렵지 않게 들었지만, 알은체하지 않았다.
‘곤란하네.’
진짜로. 대체 어쩌다가 해승이 저런 태도를 보이게 된 걸까. 능력을 사용하는 에스퍼는 가이딩이 필수인데. 본인 외에 사람과 접촉하는 걸 저렇게 경계하다니.
근데 희윤에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건 해승의 집착이 아니었다. 그런 모습이 그저 귀엽게만 보이는 자신이었다.
희윤은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게 단속하면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바닥이 정소한에게 보이도록.
정소한이 떨떠름한 얼굴로 손바닥을 마주 댔다. 그러자 곧 아까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 검사 끝났습니다. 두 분 정리하고 나오시면 됩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순조롭게 끝났다. 희윤은 안내를 받자마자 바로 팔을 거두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어쩐지 얼른 해승이 보고 싶었다.
검사실을 나선 희윤은 가장 먼저 해승을 찾았다.
“해승아?”
그런데 해승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팔짱을 끼고, 모니터를 보는 얼굴이 딱딱했다. 눈빛 역시 어딘지 모르게 어둑하게 가라앉은 기분이 들었다.
희윤의 시선도 절로 해승이 바라보는 화면으로 향했다.
[에스퍼 : 연희윤
등급 : A
가이드 : 정소한
등급 : A
매칭률 :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