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윤 씨. 축하해. 드디어 매칭률 70% 넘는 가이드가 나타났네.”
안효정이 제가 다 기쁘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희윤은 얼떨떨하게 모니터에서 눈을 떼 안효정을 한 번 보았다가, 다시 해승에게로 돌렸다.
“하.”
해승이 한숨을 뱉었다. 그건 마치 겨울철 바람처럼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해승…….”
“결과 나왔나요?”
희윤이 막 해승을 부르려는데 정소한이 검사실에서 나오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질문을 던졌다.
“네. 정소한 가이드. 화면 보세요. 76%에요.”
대답은 아까부터 표정이 밝아진 안효정이 했다. 정소한도 모니터에 찍힌 수치를 보았다.
“그러네요. 와……!”
정소한이 반색하며 탄성을 흘렸다.
“그러지 않아도 아까 연희윤 에스퍼의 가슴에 손을 올렸을 때 느낌이 괜찮아서 내심 기대했거든요.”
아니, 왜 또 거기서 가슴 어쩌고 하는 얘기가……. 희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휙 돌려 정소한을 보았다.
이쪽을 보고 있었는지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정소한은 제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한 듯 희윤에게 미소를 보냈다.
“둘 다 A급이라 더 잘 맞았나 봐요.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안효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그녀는 해승을 없는 듯 취급하고 있었다. 희윤은 어렵지 않게 그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난처한 표정을 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연희윤 에스퍼님.”
정소한이 희윤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희윤은 바로 잡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해승을 곁눈질했다.
“아까 제가 한 얘기 기억하시죠?”
그러나 정소한의 음성에 도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희윤은 싸늘한 눈으로 정소한을 바라보는 해승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반대로 정소한은 해승에게 보란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가이딩은 매칭률이 전부가 아니라고. 상성도 중요하다고요. 연희윤 에스퍼가 본부에 있는 자료를 보면 아마 제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아실 거예요.”
말을 마친 정소한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다.
“그렇군요.”
희윤은 이번에도 담담하게 대꾸했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소한과 매칭률이 낮지 않다는 건 그에게도 본부로서도 괜찮은 일이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해승이 신경 쓰였다.
“어쨌든 이거로 한시름 놨네요. 연희윤 에스퍼 5분만 쉬고 다음 가이드랑 진행하도록 할게요.”
연구원의 사무적인 말에 희윤은 다시 해승을 보려던 시선을 돌렸다.
“네.”
“미안해요.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힘들더라도 조금만 협조해 주세요.”
“괜찮습니다.”
연구원은 희윤의 말에 웃어 보이고 정소한을 보았다.
“전 그럼 먼저 가 볼게요. 연희윤 에스퍼. 조만간 따로 봬요.”
“아, 네.”
머뭇거리다가 악수도 거절하게 된 희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소한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미소만 보였다.
“좋은 분이네.”
“무슨 상황요?”
희윤이 혼잣말을 흘리는 것과 동시에 해승이 차갑게 질문을 던졌다. 희윤은 얼른 고개를 돌려 해승을 봤다.
해승이 물어본 상대는 그가 아니라 연구원이었다.
“어, 그게…….”
연구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안효정을 보았다.
“몰라? 희윤 씨 일.”
“형이 뭐?”
“진짜 모르나 보네.”
제대로 알려 주지는 않고 기분 나쁘게 빙글거리는 안효정을 보다가 해승이 휙 고개를 돌렸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희윤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아까 출근하는데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잖아.”
“기자요?”
“응. 갯벌에서 능력 쓴 장면이 개인 방송에 올라왔나 봐. 그래서 날 찾겠다고 몰려든 상태야.”
해승의 눈썹이 구겨졌다. 손에 든 핸드폰을 터치하고 화면을 살피는 속도가 빨랐다.
“아직 연희윤 에스퍼라고 밝혀지진 않았어요. 그래도 언제까지 숨길 순 없으니까 본부에서 공식 발표를 할 생각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담당 가이드가 정해져야 해서 좀 바쁘게 검사하기로 했고요.”
안효정이 심각하게 인터넷을 뒤지는 해승에게 말했다. 해승이 눈만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래도 다행이죠. 정소한 가이드가 76%나 나왔으니까. 정소한 가이드는 에스퍼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잖아요? 실력도 그렇고. 무엇보다 같은 A급이니 상성도 최소한 평균은 될 거고요.”
희윤은 아까부터 자꾸 안효정이 해승을 건드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선배.”
“표해승 가이드도 잘 알죠? 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니까…….”
“왜, 내가 형이랑 상성이 안 맞는 거 같아?”
해승이 안효정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안효정은 그저 조용히 보기만 했다.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냐는 듯.
“형, 나랑 할 때 기분 나빴어?”
해승의 시선이 이번엔 희윤에게 향했다. 희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라는데? 안효정 에스퍼는 내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나 봐?”
해승이 입꼬리를 비뚤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듯한 분위기에 희윤이 얼른 두 사람 사이를 가리며 끼어들었다.
“저기, 해승아. 선배는 그런 의미가…….”
“설마 그동안 본인이 에스퍼들한테 한 짓 잊은 거 아니죠. 표해승 가이드.”
한 짓? 희윤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의문을 띄웠다. 해승의 눈빛이 다시금 싸늘해진 걸 보니 뭔가 일이 있긴 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 가이딩.”
다시금 안효정이 한마디를 던졌다.
“상성이 안 맞는 에스퍼한테 강제로 가이딩해서 거부 반응 일으킨 일로 징계도 받았었잖아요.”
‘뭐?’
희윤은 이제 아예 몸마저 안효정에게 돌리려 했다. 해승이 다른 에스퍼에게 저지른 일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쯤 돌아갔던 몸은 어깨가 붙들려 버리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희윤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해승을 보았다.
해승은 희윤이 아니라 안효정을 보고 있었다. 표정이 굳거나 기분 나빠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미소를 지은 채였다.
“내가 납치당한 게 몇 살 때인지 알아요. 안효정 에스퍼?”
해승의 말에 먼저 반응한 건 안효정이 아니라 희윤이었다. 희윤이 눈을 크게 떴다.
납치라고? 해승이가? 언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처음 듣는 얘기가 너무도 많았다. 안효정 역시 얼굴을 확 찌푸렸다.
“10살이에요.”
“10살?”
희윤이 해승의 팔을 꽉 붙들었다. 해승이 눈을 내렸다. 저를 잡은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희윤이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었다.
해승의 눈매가 휘었다.
“네. 형.”
목소리도 나긋하게 변했다. 하지만 희윤은 그 변화를 알아챌 겨를이 없었다.
“어, 어쩌다가…….”
“음…….”
해승이 곤란한 듯 입술을 내렸다. 그리고 괜히 안효정과 연구원에게 시선을 차례로 던졌다.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저, 잠시만. 해승이랑 얘기하고 올게요.”
“아니. 희윤 씨!”
안효정이 애타게 희윤을 불렀다. 굳이 따로 대화할 필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희윤은 멈추지 않았다.
그저 불안한 얼굴로 해승의 손목을 붙들고 밖으로 나갔을 뿐이었다. 막 사라지기 전 해승이 안에 있는 안효정과 연구원을 보았다.
“아오. 저…… 저 가증스러운 놈!”
해승의 눈빛을 본 안효정이 분통을 터뜨렸다. 연구원도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납치라니. 그게 무슨 납치야!”
“그러게요. 2시간 같이 있었나? 그나마도 아주 표해승 가이드가 그 에스퍼를 살살 녹여서 안전하게 돌아왔잖아요.”
“하. 그러니까요! 아주 그냥 극진히 모시고 데려왔죠.”
그도 모자라서 그 에스퍼는 자신은 세상에 달리 없을 악독한 존재이며, 다시는 세상에 발을 디디면 안 된다는 소리까지 했다.
“그랬지. 그래서 표해승 가이드가 정신감응을 쓴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지.”
“정신감응은 무슨……. 희윤 씨한테 한 거 보세요! 분명 그때도 온갖 가증이란 가증은 다 떨었을 거예요.”
연구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안효정은 분통이 터진다는 얼굴이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역시 안타깝게도 이미 밖으로 나가 버린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 희윤은 그저 해승의 손목은 붙든 채 사람이 없을 만한 장소를 찾느라 분주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비상문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 갈 수는 없었다. 곧 새로운 가이드와 매칭 테스트를 해야 했으니.
철컹.
문을 여니 계단과 이어지는 곳에 작은 공간이 하나 있었다. 반대쪽에서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둘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법한 곳이었다.
“말해 봐. 납치라니?”
희윤이 해승의 손을 놓아주며 물었다. 해승은 벽에 몸을 기대며 걱정 가득한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희윤을 보았다.
이런 반응을 할 걸 예상하고 꺼낸 말이긴 한데. 정말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뭔가 간질간질하고 술렁거리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나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어떤 감정인지 정의 내릴 수 없었다.
“아까 말했던 게 전부예요. 10살 때 납치를 당한 적 있어요. 다행스러운 건 저를 납치한 에스퍼가 마음이 약했다는 거죠.”
해승이 한숨을 쉬듯 말했다.
“2시간 정도 저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건물로 데리고 갔다가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도로 본부로 데려다줬어요.”
“그런…….”
담백하게 흘러나온 말이라 희윤은 더 안타까움을 느꼈다. 고작 10살에 그런 짓을 당한 거다. 그걸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져야 했을까.
“뭐 납치는 그때뿐이었고, 그 후로는 그냥 작업 거는 에스퍼나 집착하는 에스퍼나, 왜 자기랑 매칭률이 낮냐고 따지거나 욕하거나 매달리거나…….”
“그런 일들도 있었단 말이야?”
희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해승을 봤다. 기막힌 이야기를 하는 사람 같지 않게 여전히 표정이 담담했다.
“네. 손에 꼽기 어려울 만큼요. 제가 매칭 테스트한 이후로 계속 그랬죠.”
“대체 왜들 그렇게…….”
“에스퍼는 원래 그래요. 가이드를 더 많이 거느리고 싶어 하죠. 더군다나 전 S급 가이드잖아요. 국내에서 유일한.”
그건 에스퍼들을 탐욕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S급 가이드가 제 곁에 있다는 것. 그 가이드가 저를 가이딩한다는 것.
그게 자신이 우월하다는 증거가 된다고 착각한다.
“언제까지 그런 거야?”
희윤은 제가 묻고도 속이 답답해졌다. 어쩐지 답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해승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피했다.
“어떻게 그런…….”
15년이라고 했는데. 그럼 그동안 내내 그런 대접을 받아 왔다는 것 아닌가. 그저 가이드라는 이유만으로.
시야가 까마득하게 어두워지는 기분에 희윤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해승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상하다.
심장 주변에 물이라도 찬 듯 자꾸 술렁거린다. 저 대신 화를 내주는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매칭률이 높아서?’
그도 아니면 유일하게 사심 없이 다가온 존재였기에 그럴지도. 해승은 아직 자신의 이런 감정을 무어라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손바닥을 가슴 위에 올렸다.
그러자마자 눈썹을 치켜세웠다. 조금 전 보았던 불쾌한 장면이 떠올라 버렸기 때문이었다.
“희윤 형.”
“……응?”
희윤은 저를 나직이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아까와 톤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마주 본 해승의 얼굴은 과거를 떠올려서 그런지 아직 좀 어둡게 보였다.
‘아닌가? 뭔가 좀…… 화난 것 같기도 한데?’
왜 그러지? 혹시 옛일 중 분노할 만한 게 떠올랐나?
“대체 왜 그러셨어요?”
저를 비난하는 말에 희윤은 눈을 끔뻑였다.
“응?”
내가 뭘 어쨌는데. 갑자기 과거 얘기를 하다가 저를 탓하니 희윤으로서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예전에 해승에게 잘못한 일이라도 있던가. 빠르게 되짚어 보았지만,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혹시 내가 너한테 뭐 크게 실수한 게 있었어?”
모를 때 묻는 게 제일 좋다. 희윤은 항상 그렇듯 망설이지 않고 질문했다.
“네.”
해승이 단호하게 대꾸했다. 그랬구나. 대체 뭐지. 언제 무얼 내가 실수한 걸까.
“저 말고 다른 사람이 가슴을 만지게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으세요.”
“……뭐?”
그런데 나온 말이 가관이었다.
“제가 얼마나 놀란 줄 아세요?”
“그건 가이딩 효율이 좋다고 해서…….”
“그럼 다음에도 또 그러신 거란 말이에요? 가이딩 효율만 높으면 어디든 만져도 된다고요? 여기도? 여기도?”
해승이 돌연 희윤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기 시작했다. 어깨, 가슴, 배, 그리고 그보다 더 아래로 내려와 닿는 감촉에 희윤이 기겁했다.
“으악! 너, 어, 어딜……!”
희윤은 해승의 손을 재빨리 쳐 냈다. 해승도 더는 하지 않겠다는 듯 두 팔을 들어 올려 항복 자세를 취했다.
부지불식간에 타인의 손이 닿았던 부위를 가린 희윤이 새빨개진 얼굴로 그런 해승을 노려보았다.
“거봐요. 당황스럽죠?”
“당, 당, 당연하지. 너, 그, 어떻게. 거, 거길…….”
너무 놀란 나머지 희윤은 말도 제대로 뱉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심장이 아직도 쿵쾅거리고 뛰었다.
어쩔 줄 모르고 씩씩거리는 희윤을 보던 해승이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얄밉던지 희윤은 주먹을 쥐고 가슴팍을 팍 쳤다.
“아야.”
“아프라고 때린 거야! 정말 한 번만 더 그래봐. 그땐 정강이를 차 줄 테니까.”
“형도요. 저랑 약속해 주세요. 아무나 못 만지게 하겠다고.”
해승은 한마디를 지지 않았다. 어이없는 와중에도 희윤은 떼를 쓰는 듯한 말투에 “하.” 하고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진짜 중증이긴 중증인가 보다. 저런 모습도 그냥 다 귀여워 보이니 말이다.
“그래. 알았어. 네 말대로 손만 잡고 할게.”
“아뇨. 손바닥만 대고요.”
해승이 엄숙한 투로 말했다.
“……그래.”
전에는 그래도 잡는 건 괜찮더니. 정말 시간이 갈수록 해승의 집착이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했다.
“그럼 이제 가자. 다들 기다리겠어.”
희윤이 그렇게 말하며 먼저 비상문을 열었다. 해승도 별말 없이 그 뒤를 따랐다.
“희윤 씨 왔어요?”
안효정이 희윤을 보며 팔을 들었다. 안에는 그녀와 연구원 외에도 낯선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 죄송해요, 선배.”
“아뇨. 뭐.”
안효정의 떨떠름한 눈빛에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끝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매칭 테스트는 아까와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매칭률은 20%로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물론 접촉은 고작 손바닥을 마주 대는 거로 했다.
그 후 한 명 더 검사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점심은 안효정과 둘이 먹었다.
해승이 당연히 동행할 줄 알았는데, 그는 선약이 있어서 가 봐야 한다며 한껏 아쉬운 표정을 했다.
“희윤 씨.”
식판에 가득 담긴 밥과 반찬을 깨끗하게 비우고 수저를 내려놓던 희윤이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아까부터 안효정이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닫고, 또 말을 꺼냈다가 다른 화제로 돌리기를 반복했기에 얼른 꺼내 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표해승 가이드한테 얘기 들었어요?”
마침내 나온 질문은 해승에 관한 것이었다. 희윤은 말을 고르고 고르다가 뭉뚱그려 답했다.
“음, 네. 에스퍼들이 그를 괴롭혔다는 건요.”
사실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하, 뭐. 그래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아니 그건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럼 표해승 가이드가 그 일 때문에 가이딩 혐오증이 있다는 건 알아요?”
“가이딩 혐오요?”
“그건 또 말 안 했나 보네.”
하긴 제가 작업 거는 상대한테 할 소리는 아닌가. 안효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쯧 한 번 찼다.
“네. 가이딩 혐오보다는 정확하게는 에스퍼 혐오라고 하는 게 맞겠다.”
가이딩이 아니라 아예 에스퍼 자체를 혐오한단다.
“하지만 그러기엔 저한테는…….”
“그래. 희윤 씨한테 가이딩도 하고 곁에 못 붙어 있어서 안달이지.”
안달까진 아닌데. 희윤은 속으로 생각하며 목뒤를 문질렀다.
“이건 나뿐만 아니고 지부장님이나 연구원님도 생각한 거야.”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나. 안효정이 본론을 꺼내기 전 길게 서두를 늘어놓았다. 그것도 지부장이니 연구원이니. 희윤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면서.
“희윤 씨도 불쾌하게 여기지 말고 들어 줘.”
“네. 말씀하세요.”
희윤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안효정은 한숨을 푹 쉬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거 매칭률 때문에 그래요.”
매칭률? 희윤은 눈꺼풀을 깜빡깜빡 움직였다.
“그러니까…… 표해승이 희윤 씨한테 그러는 거 말이야. 매칭률이 지나치게 높아서 그런 거라고요.”
“아…….”
“희윤 씨도 알겠지만. 표해승 가이드한테 그간 그렇게 매칭률이 나온 사람은 희윤 씨가 유일하거든. 2년 전인가 40% 대가 나온 에스퍼도 있긴 하지만. 뭐 하여간.”
“40%요?”
“응. 하, 그것도 말이야. 표해승이 강제 가이딩으로 괴롭혀서 지방으로 가 버렸다고요!”
다시금 안효정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전에 말씀하셨던 강제 가이딩 했다는 게…….”
“맞아요. 그거. 물론 그쪽도 잘못은 있었어. 덮치려고 했거든요. 그래도 그건 아니지.”
“덮쳐요?”
일순 희윤의 표정이 굳었다. 안효정은 얼른 손사래를 치며 상황을 설명했다.
“진짜 덮친 건 아니고 낌새가 있었다고. 낌새가. 해 보지도 못하고 표해승 가이드한테 제압당했어요. 한방에. 전에도 말했잖아요. 특공 유단자라고. 가이드라고 우습게 봤다가 제대로 걸린 거죠.”
“그 에스퍼는 어떻게 됐어요?”
마치 아직 여기에 있다면 가서 따질듯한 분위기에 안효정이 서둘러 말했다.
“여기 없어요. 섬으로 유배 간 지 오래에요. 아마 영영 못 돌아올걸요.”
그 말에도 희윤의 안색은 쉬이 밝아지지 못했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너무 마음 주지 말라는 거예요.”
“마음요.”
“원래 그래요. 에스퍼는 가이드한테, 가이드는 매칭률이 높은 에스퍼한테. 서로가 서로한테 필요한 존재잖아요.”
“네.”
“물론 에스퍼가 좀 더 그런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표해승이라면 또 모르는 거니까요. 하……. 미안, 희윤 씨. 가뜩이나 오늘 여러모로 복잡할 텐데. 이런 소리까지 해서.”
“아니에요.”
희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분이 묘했다.
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