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85)

출근하자마자 희윤은 가이드 세 명과 연달아 매칭 테스트를 했다. 셋은 똑같이 긴장한 얼굴로 인사하더니 그 후에는 입을 딱 다물었다.

희윤도 본래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니어서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자연히 정적이 흘렀다. 가이드가 저를 힐끔힐끔 관찰하는 건,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눈치를 본다고 생각했기에.

결과가 나왔을 때도 가이드들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안도와 함께 조금은 아쉬운 듯한 눈으로 희윤을 보았다.

그러나 정작 희윤은 쉼 없이 울리는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그들의 눈빛이나 표정을 알아채지 못했다.

“으음…… 그렇게 많은 가이드와 테스트를 했지만 매칭률이 50%를 넘긴 게 달랑 둘이라니. 이건 이것대로 참 신기하네요.”

연구원이 결과지를 훑으며 말했다. 희윤은 무어라 대답할 말이 없어 그저 눈만 한 번 굴렸다.

오늘은 안효정도 없어서 EST 실이 더 허전하게 느껴졌다. 안효정은 아까 두 번째 가이드와 검사를 마쳤을 때 잠시 들렀다.

지난번 서해만 갯벌에서의 토벌전 사후 처리로 각종 보고서와 서류 업무, 회의를 연달아 처리하느라 얼굴만 비친 것이었다.

희윤이 한가했다면 이런저런 내근직 업무를 알려 주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며 돌아갔다.

“최소한 세 명은 돼야 하는데……. 부디 나머지 가이드와의 검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야겠네요.”

이번에도 희윤은 무어라 대꾸할지 몰라 눈만 끔뻑였다. 다행히 점심시간 전 마지막 가이드가 들어왔다.

수더분한 인상의 40대 남자였다. 경력이 무려 15년이라는 B급 가이드는 조금 전 희윤과 마주했던 가이드들과는 달랐다.

“지민후 에스퍼라고 알아요? A급인데 잠정적 S급으로 구분되는 능력자예요. 능력은 충분한데 아쉽게 수치에서 조금 부족해서 A급이 됐죠. 그 에스퍼가 내 에스퍼예요.”

“네.”

“근데 그런 에스퍼가 내가 해 주는 가이딩을 정말 좋아해요. 1순위라니까?”

희윤이 이번엔 대꾸 없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6팀에 바람 속성 최선영 에스퍼는요? B급이긴 해도 제어력이 뛰어난 능력자죠. 늘씬하고 키도 커서 서구형 미인인데…….”

B급 가이드는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본인이 담당하는 에스퍼에 관하여 떠벌떠벌 늘어놓았다.

“내가 가이딩하면 꼭 안마사한테 마사지 받은 것처럼 시원하고 상쾌해서 좋다나. 하…….”

에스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끝까지 들어 보면 결국 본인 자랑이었다.

“뭐 가이드 일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은 거 없어요?”

한참 혼자 떠들던 B급 가이드가 희윤에게 물었다. 턱을 살짝 치켜들며 바라보는 눈빛이 거만했다.

희윤은 없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으려다가 멈칫했다.

“아까 가이딩이, 아니 가이딩을 받으면 시원하고 상쾌하다고 하셨죠.”

“네. 맞아요. 가이드와 에스퍼가 서로 상성이 좋으면 그래요.”

“가이드, 에스퍼 간에 느끼는 게 다른가요?”

“다르죠. 가이딩에 따라서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 시원하게 느낄 수도 있고, 온수에 몸을 담근 것처럼 따듯할 수도 있고.”

“그건 가이드 매칭률과도 관련 있나요?”

희윤의 질문에 B급 가이드가 입술을 씰룩였다.

“뭐야. 내가 매칭률이 얼마 안 나올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말투도 돌연 까칠하게 변했다. 희윤이 당황해서 얼른 입을 열었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하긴 듣자 하니 표해승 가이드 외에 매칭률이 다 바닥이라면서요? 뭐 그것 때문에 본인이 대단한 에스퍼라 생각하는 건가.”

B급 가이드는 희윤의 얘기는 다 듣지도 않고 제 할 말만 쏟아 냈다. 심지어 마지막엔 혼잣말처럼 뱉은 게 딱 비꼬는 투였다.

“그런 적 없습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희윤이 딱딱하게 말했다. 그러다 조금 누그러진 투로 덧붙였다.

“음……. 그리고 가이딩도 상성이 좋으면 개개인마다 받는 느낌이 다르다고 해서 여쭤본 겁니다.”

B급 가이드는 해승의 말에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그러나 결국 저도 잘못 생각했다고, 미안하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희윤이야 몰랐지만, 그는 본인이 A급이 되지 못한 것에 자격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가이딩에 관해 말할 때 민감하게 반응했다.

- 검사 끝났습니다.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주세요.

연구원의 안내가 경직된 공간에 울려 퍼졌다. 가이드가 먼저 일어나 검사실을 나섰다. 혼자 남겨진 희윤은 긴 한숨을 쉬고 마른세수를 했다.

‘설마 다른 사람들도 저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B급 가이드의 말을 곰곰 생각하다 보니 오늘 저와 검사했던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떠올랐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눈도 안 마주치고, 계속 눈치만 보던 모습들이.

“하…….”

매칭률이라는 게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는지 모르겠지만, 이래서야 연구원의 말대로 가이딩이 가능한 담당 가이드가 추가로 나올지 걱정됐다.

‘그래도 해승이가 있으니까…….’

누구보다 저를 먼저 챙기고, 곁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데 괜찮지 않나.

“아냐. 그건 아니지.”

희윤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해승에게 매번 해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표해승 가이드. 가이딩 혐오증이 있어요.〉

불쑥 안효정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 그런 해승에게 의지하는 건 좋지 못했다. 그러다가 혹시 제게 질리거나, 부담스럽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희윤은 아주 오래전 제 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갔던 일을 떠올리지 않으려 다시 한번 고개를 휘휘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희윤 에스퍼.”

연구원이 미묘한 얼굴로 검사실을 나서는 희윤을 봤다.

“네?”

희윤은 의아한 얼굴로 대답하며 연구원과 떫은 표정을 한 B급 가이드를 번갈아 보았다.

“박진우 가이드와의 매칭률이 58%가 나왔어요.”

희윤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연구원이 말한 수치가 눈에 보였다.

“일단 박진우 가이드. 고생했고, 이만 돌아가 보셔도 됩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연희윤 에스퍼님도 수고하셨어요.”

“들어가세요.”

희윤이 뭔가 상황에 맞는 듯 안 맞는 듯한 어설픈 인사를 했다. B급 가이드는 고개만 까닥이고 사라졌다.

“음. 일단……. 박진우 가이드와의 매칭률은 애매하긴 해요. 전에 설명해 드렸다시피 보통 담당 가이드는 최소 70% 이상부터 넣거든요. 그게 효율이 높고요.”

“네.”

“근데 지금까지 추이로 봤을 때,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일단 예비 후보군으로 해 둘 거예요.”

희윤은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대부분 가이드와 매칭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안정권으로 들어선 게 둘뿐이니 만약을 대비해 두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박진우 가이드가 B급이기는 해도 가이딩 양이 많은 편이고, 경력이 제법 돼서 실력도 좋다는 거예요.”

“네.”

“어쨌든 점심 먹고 오후에도 마저 진행할게요. 식사하고 오세요.”

연구원이 모니터를 끄며 웃어 보였다. 희윤은 식사 맛있게 하라고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해승이었다.

“응, 해승아.”

희윤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타이밍 좋게 걸려 온 전화에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 형, 끝났죠?

“어. 지금 막.”

- 그럼 곧장 20층으로 올라와요.

“20층?”

희윤은 머릿속으로 층별 안내도를 떠올렸다. 20층은 임원진 개인사무실이 있는 층 아닌가. 가이드인 해승이 그리로 오라는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 네. 올라와서 복도 가장 끝으로 오시면 돼요.

희윤의 의문을 모르는지 해승은 그것으로 용건이 끝난 듯 곧 보자면서 전화를 끊었다. 결국 희윤은 해승의 말대로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복도에는 그를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시선들과 다가가서 말을 걸어 볼까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20층에 뭐가 있는지 해승이 왜 그리로 오라고 했는지 고민하느라 희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20층은 의외로 대부분 빈 사무실이었다. 문이 열린 것도 닫힌 곳도 있었는데 대다수의 문패에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텅 빈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더더욱 왜 이리로 불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내 해승이 말한 대로 가장 끝에 도착한 희윤이 그 옆에 걸린 문패를 확인했다.

고문 이사 사무실

간단한 세 글자가 보였다.

똑. 똑.

“형, 들어와요!”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해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윤은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열린 틈으로 환한 빛이 들어왔다. 곧 안쪽 풍경이 눈에 보였다. 해승은 커다란 창가 앞에 서 있었다.

안에는 해승만 있는 게 아니었다. 타원형 테이블에는 50대쯤 되어 보이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둘 다 정장 차림이었는데, 의문 섞인 눈으로 희윤을 바라봤다.

희윤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동작을 멈췄다.

“괜찮아, 형.”

해승이 웃음기 서린 투로 말했다. 희윤이 머뭇거리며 한걸음 움직였다. 하지만 그보다 해승이 그에게 다가가는 게 더 먼저였다.

“이쪽이 내 에스퍼, 희윤 형.”

해승이 희윤의 어깨를 감싸며 소개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놀란 듯, 이해한 듯 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자주 볼 테니 얼굴이나 미리 익혀 두라고 불렀어요. 그럼 두 분 먼저 가 보세요.”

그러나 정작 두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 주지 않은 채 해승이 명령 투로 말했다. 그들은 불쾌한 표정도 없이 희윤에게 눈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해승은 희윤을 소개했던 두 사람이 수호 그룹에서 온 직원들이라고 말했다. 왜 그들에게 희윤을 소개해 줬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희윤은 굳이 묻지 않았다.

사실 질문할 새도 없었다. 해승이 바로 오전에 있던 검사는 잘했느냐 물어 왔기 때문이었다. 희윤은 매칭률이 비교적 괜찮게 나왔던 박진우 가이드에 관하여 말했다.

“58%인데 예비 후보로요?”

“응.”

“흠……. 본부에서 어지간히 형이 신경 쓰이나 보네요.”

희윤은 혹시 해승이 기분이 나쁜 건 아닌지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고개를 갸웃하더니 희윤 앞에 도시락을 쓱 밀어 줄 뿐이었다.

“얼른 먹어요, 형. 1시에 곧바로 검사 있다면서요.”

그러고 젓가락까지 반으로 정확하게 쪼개 희윤에게 내밀었다.

“응.”

희윤은 젓가락을 받아 들고 아래를 봤다. 도시락은 일할 때 가끔 편의점에서 사 먹곤 하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호화스러웠다.

불고기와 전복, 새우구이, 꼬막무침, 연근조림, 달걀말이, 게살 샐러드, 가지볶음, 후식으로 먹을 과일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색도 알록달록 예뻤는데, 무엇보다 훈기가 올라와 더욱 입맛을 돋웠다.

“잘 먹을게.”

“네. 미안해요. 도시락이라.”

“아냐. 다 맛있어 보이는데……. 나 이렇게 푸짐하고 양 많은 도시락은 처음 봐.”

“맛도 좋을 거예요. 특별히 형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추려서 만들라고 했으니까.”

“응? 만들라고 했다고?”

희윤이 뒤에 들린 묘한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네. 얼른 먹어요.”

그러나 해승은 의문은 해결해 주지 않은 채 다시 한번 식사만 권했을 뿐이었다. 희윤도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점심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맛있었고, 배가 불렀다. 해승은 회의실 한쪽에 마련된 미니 카페에서 커피까지 직접 내려 희윤의 손에 들려 주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끝나면 연락하세요.”

“응. 너도 수고해.”

“네, 형도요. 혹시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숨기지 말고 말하고요.”

해승이 농담을 던지자 희윤도 픽 웃었다.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턱이 있나. 오히려 다들 왜인지 저를 슬금슬금 피하는 것 같은데.

저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눈치 보는 이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희윤이 그렇게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해승은 희윤이 사라지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식사하는 도중 도착한 메시지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희윤이 오전에 검사한 가이드의 사진과 신상, 결과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아직 지부장에게도 가지 않은 보고였지만, 해승은 거리낄 것 없이 읽어 내려갔다.

15년간 본부의 S급 가이드로, 수호 그룹이라는 거대한 후원사의 고문 이사로 앉아 있는 그에게 이런 것쯤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흐음…….”

희윤이 말했던 대로 매칭률이 58%인 B급 가이드가 있긴 했다. 해승도 그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허세와 허풍이 있고 거만한 가이드. 어리거나 갓 입사한 신입 가이드들에게 약간의 꼰대질을 하는 사람.

A급 이상 가이드에게 자격지심이 있으며, 제가 맡은 에스퍼에 관하여 떠벌리기 좋아하는 이.

“뭐 그래도 일은 빼지 않고 기본은 하니까. 예비군으로 나쁘진 않겠지.”

그래도 만약을 위해 조금은 미리 준비를 해 둬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해승은 액정을 껐다.

오후에는 그도 바빠질 예정이었다. 아까 만난 사람들은 희윤에게 말했다시피 수호 그룹에서 온 직원들이 맞았다.

내년에 들여올 새로운 무기에 관한 협상을 위해서였고, 회의를 진행하기 전 해승과 미리 조율하기 위해서 와 있던 것이다.

물론 지부장도 이미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해승은 빈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곧바로 올라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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